국가관… 애국의 다른 이름인가, 이념적 충성의 잣대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노래 ‘헌법 제1조’ 가사)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일부 젊은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들고 거리행진을 벌였다. 보수 진영의 ‘애국주의’ 고취를 연상시킨다며 국가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한 토론회에서 이런 현상을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헌법(헌정) 애국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애국은 ‘국가’ 그 자체라기보다 민주적 법치국가의 보편주의적인 헌법이념을 향한 것이며, 이를 대한민국에 대한 애착으로 구현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독일의 ‘헌법 애국주의’는 국가의 정치체제를 규정하는 헌법의 기본이념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애국심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국가 그 자체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을 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헌법 애국주의’가 주창된 것은 2차 세계대전 후 나치즘이라는 비극이 더 이상 되풀이돼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나치즘의 부활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틀이 바로 자신들이 만든 헌법이었다. 독일인이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더 이상 나치즘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헌법과 그 헌법에 따라 운영되는 나라에 대한 자부심인 것이다.
하버마스의 ‘헌법 애국주의’ 개념은 ‘당신의 국가관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 난무하는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진보진영은 국가에 대한 관점을 밝히라고 하면 거부반응을 보이며 어떤 국가공동체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회피해왔다”며 “공직에 출마하는 사람들이라면 국가에 대한 관점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왜 나는 대한민국에 충성한다, 애국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바꾸고 싶다고 말을 하지 못하는가”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애국이나 건국정신 같은 용어를 보수에서 빼앗아왔고, 프랑스 사회당도 애국을 말하는 것을 보면 애국은 보수의 독점물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애국이라는 것이 폐쇄적이고 종족적·민족적인 집단으로서의 국가를 넘어서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한 시민들의 공동체에 대한 성실성이나 충성도를 얘기한다면, 그리고 개개인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공적인 체계를 바꾸려는 열정을 뜻한다면, 그 방향성은 곧 ‘국가관’일 수 있고 당연히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공적 의무를 맡은 사람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공적 권력이나 자산을 위임받은 사람들이므로 어떤 윤리적 기초는 정해져야 하고, 대부분 임명식 때 선서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 보수들이 말하는 국가관은 “이념적 충성도를 검증하겠다는 것”(박명림 교수)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박 대표는 또한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윤리의 내용은 민주주의 정치과정의 외부로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정치과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공직자들에게 ‘헌법 준수’를 요구하는 것은 헌법 자체가 민주주의 과정에 의한 것이므로 무관하지만, 반공 이데올로기의 강요는 민주주의를 초월한 외부에 마련된 잣대”라는 설명이다.
덧붙여 박 대표는 “국가는 민주주의 체제에 앞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헌법을 만드는 시민합의의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결과로서 존재한다”며 “그동안 권위주의적 접근이 지나치게 강제돼온 결과 국가관이나 국가정체성을 반공 등으로 규정하게 된 것은 곤란하며 이런 측면에서 국가관이나 국가정체성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자체도 다시 한번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승우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도 최근 보수진영에서 묻는 ‘국가관’이라는 것이 “공동체의 정체성을 묻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신들이 만든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에 동의하느냐 안 하느냐를 묻는 것은 편가르기하려는 의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정말 국가관이나 공동체의 정체성을 묻고 싶었다면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어디로부터 연유되는 것인지, 기본적인 원리나 성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먼저 밝힌 뒤 상대방의 생각을 물어야 한다”며 “한국 사회에서는 국익이나 국가관이라는 추상화된 틀로 논의되면서 오히려 그것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어렵게 돼 있다”고 말했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는 도리어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국가관 발언이야말로 헌정 질서에 어긋나는 발언 아닌가”라고 되묻는다. 그는 “헌법에서 말하는 국가란 곧 집권당을 뜻하는 것이고, 집권당은 늘 선거를 통해 바뀐다”면서 “체제 내에서 인정한 정당의 소속원이라면 그 국가관이 무엇인지는 상대 정당이 물을 수 없고, 그 국가관을 동의해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되는 질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입력 : 2012-06-04 22:11:15ㅣ수정 : 2012-06-04 22:11:15
|
CopyrightⓒThe Kyunghyang Shinmu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