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시각/영상글 수 646
영상팀 고정희추모기행 리뷰 (미난, 글쎄, 지지큐)
추모기행에 대해/ 영상의 내용에 대해/ 영상의 형식에 대해 / 영상작업자로서의 역할, 작업자 마인드에 대해
1. 스크립트 (내용)
미난: 스크립트 쓰는 게 부담이 되었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처음 작업이어서 그랬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어요. 내레이션이랑 의미부여하는 게 어려웠는데요. 많이 헷갈렸던 것은 내가 생각한 것을 일방적으로 넣어도 되는건가 이런 생각이 있었고, 그런 게 있었던 것 같고, 글로 푸는 게, 글을 많이 쓰지 않아서 어려웠어요. 디자인 팀에 있을 때는, 여행이나 프로그램을 하면 따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가지지 않았어요. 에세이 쓸 때 정도 그런 것 같고, 이번엔 스크립트를 쓰고 영상을 만들고 하면서, 능동적이지만은 않았지만 정리할 시간을 가지면서 생각을 하면서,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공부가 되고 정리가 된 것 같아 좋았어요.
글쎄: 최종 스크립트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한 번 떠올려보면, 크게 두 번 정도 수정을 했어요. 기행 전에 미리 써 둔 크리킨디 글이 있었고, 기행에서 선생님들의 강연을 듣고 나서 동행, 인연, 연시에 대한 내용을 풀어내려고 했던 글이 있었어요. 처음에 썼던 글은 하자작업장학교가 고정희 기행을 간다는 것에 대해서 집중하는 내용을 충분히 쓸 수 없는데 크리킨디 이야기를 하니까 이 영상에서 포인트를 두는 지점이 하자작업장학교인지, 고청문인지, 고정희추모기행인지 알 수 없게 돼버렸던 것이었어요. 그리고 왜 고정희인지, 왜 고정희 기행에 가는지에 대해 나의 버젼으로 대답을 해보고, 그 대답을 수정하기도 하고, 또 보충하면서 계속 그 질문을 해보고 대답을 해보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기행 이후에는 고정희의 연시 부분을 풀어내지 못해서 문학상 내용까지 드러냈다가 다시금 이 기행의 내용에서 중요했던 부분인 것을 재확인하면서 다시 수정을 했었죠. 결과적으로 고정희추모기행, 문학상에서 있었던 사실들, 내용들을 서술하는 스크립트를 쓰면서 마무리 했었어요.
지지큐: 뉴스 형식을 제안했던 이유는, 미난의 판단이나 감상 같은 것을 이야기할 때 오그라들어하거나 대표성을 가지는 데 함부로 이야기해도 되나 하는 이야기를 해서, 객관적 사실 위주로 작업을 해보자 라고 한 것 이었는데요. 아무리 뉴스형식이라고 해도 사건을 고르고 풀어나가는 방식에 따라서 의견이 안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미난은 잘 한 것 같아요. 그 고민을 계속 해야하고... 뉴스형식 말고도 다른 형식의 작업같은 걸 해본다면 다각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뉴스형식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위주로 해야하는데 의견을 넣을 수 밖에 없는데 그 선이 어려웠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다른 형식의 작업을 해보면서 글을 좀 써보면 어떨까 싶었는데.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번에 작업일정은 잘 지킨 편이었던 것 같아요. 훌륭한 것 같은데, 글을 쓰는 연습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같은 말을 여러 버전으로 쓸 수 있잖아요. 그런 연습도 필요한 것 같고요.
이번에 했던 이야기들이 사실, 영상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준비를 하고 갔잖아요. 어떤 경우에는 준비를 하지 못하고 가게 될 수도 있고. 고정희 기행이 어떤 부분에서 연례행사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고정희로부터 키워드를 어쩌면, 기행을 가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뽑을 수도 있어요. 식상할 수도... 전형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이번 영상은 전형을 따른 것이기도 해요. 미리 어느 정도 스크립트를 쓰고 간 것도 그렇고, 그런데 앞으로 올해 미난이 작업장학교 사람들이랑 같이 했던 이야기, 고정희가 무슨 의미냐? 이런 이야기를 정말 해볼 수도 있는 거고, 고청문 분위기도 그렇고 고정희 잘 모르겠고, 백일장처럼 온 사람들도 많고, 어느 순간에는 그것 자체가 이야기꺼리가 될 수도 있겠죠. 고정희 뭐야? 이런 농담같은 것도 스크립트가 될 수 있는 순간도 있겠죠. 이번에는 그런거를 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앞으로는 오히려 이야기가 될 거는 그런 부분이죠. 도대체 지금 고정희가 뭐냐, 무슨 의미냐, 진짜 많은 사람들이 고정희 기행에 오는데 관심없는 사람들이 많고... 이제는 관련없는 사람들이 고정희 기행에 많이 오는데, 그런 변화가 영상의 주제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지금같은 경우에는 스크립트를 써 가서 그거대로 가는 게 있었고, 그런데 그런 미난이 느꼈던 것들을 더 집어넣으면서 갈 수도 있겠죠.
글쎄: 스크립트 마지막 문장, 인영의 끊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지금은 영상이 미화하는 것도 있고 잘 정돈하고 봉합하는 그런 것이지만.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정말 인연이 되는 기행이었을까? 라는 것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발전시켜나가서 시도해보는 것 그런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뿌듯함 반, 안 뿌듯함 반이라고 했는데 그 지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미난: 잘 끝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기도 하고. 전체적인 느낌인데, 에세이 쓸 때만 정리를 하고, 갔다 오면 끝! 이런 게 많이 있었는데, 갔다오고 2주째가 됐는데, 그런데도 계속 생각하려고 하고 조금 더 고정희기행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고, 어느 정도 마무리를 지어가는 생각도 있는 것 같고, 딱 멈춰버린 게 아니라 이어서 생각해본 게 뿌듯한 것 같은데, 안 뿌듯함은 내가 쓴 스크립트처럼 정말 이렇게 생각을 하는지, 고정희가 어떤 사람이었었고,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사람 고정희에 대해서 생각을 좀 덜했던 것이 아타까웠던 것 같고, 뭔가 조금 더... 제목도 못 붙이고 이러는게 아쉬운데, 만들었으면서도 제목을 못 붙이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직 자신감이 없다고 해야하나, 그런게 있는 것 같은데, 평생 그럴 것 같은데... 확실하게 생각할 수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되서 아쉬운 것.
2. 작업 과정
미난: 러프컷 정리를 글쎄가 다 해서, 그게 가장 난잡하고 복잡한 일이었을 것 같은데, 그게요. 죄송했고요. 아프고 지각하고 그래서. 러프컷을 작업해봐야 하는 거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고요. 되게 많이 찍었잖아요. 제 머릿 속에 있는 건, 기억에 남는 장면은 조금 밖에 없었는데 영상을 보면서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판단을 해봐야 했던 것 같은데. 대각선으로 촬영할 때 수평도 잘 모르겠고, 기본적인 것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글쎄: 제가 하는 걸 봤으니까 배울 수 있고 감을 잡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이런 감을 잡은 후에 그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난: 맞는 것 같다. 러프컷이 있어야 하는지 몰랐는데, 그게 있어야 좋았던 것 같고. 지지큐와 글쎄와 작업하면서 느낀 거는, 내가 어떤 역할인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뭘 해야 하는 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귀가 얇아서... 내가 여기에서 이걸 하면 되는지, 안되는지 잘 모르겠고.
글쎄: 그건 계속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미난: 재미있는 건 재미있었어요.
지지큐: 뭐가 재밌었나요?
미난: 만들어지니까. 프로세스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는데요. 스크립트를 자꾸 미루고 그러니까 나중에는... 러프컷 만드는 것도 몰랐는데, 그냥 앉아서 편집하고 글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고, 많이 느꼈어요. 체력관리도 못한 것 같아요. 피곤하다고 느꼈는데, 축구도 봐야할 것 같고 그래가지고... 그리고 학교생활에도 피해를 끼쳐가지고 저번 주에 지각을 엄청 많이 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지각을 했거든요. 늦게 까지 하더라도 집에 가서 바로 자면 되는데, 잠이 또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야 잠이 오나봐요... 자꾸 그랬네요. 쉬자 하면 쉬고 자고 그래야 하는데.
글쎄: 제 역할.... 사실, 작업장학교 죽돌과 영상작업을 한 건 처음은 아닌데 이제야 구체적으로 깨달은 게 있어요. 1기 졸업생 원이 죽돌이었을 때, 판돌이 어떤 파트너가 돼주었었는지에 대해 쓴 글이 생각나요. 쿠로코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작업장학교 죽돌들이 많이 이야기해 왔는데요. 죽돌과 영상작업을 할 때 저도 좋은 쿠로코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놓친 부분들이 있었어요. 처음 작업을 하는 죽돌이 혼자 스스로해보면서 이것저것 한 번 해보고, 실수도 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업 과정에서 죽돌에게 혼자 해보는 시간을 충분히 주려고 했어요. 이번에 미난과 작업하면서도 편집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는 그래버렸어요. 쿠로코는 무대 위에 있어야 하는 건데 전 무대 아래로 내려 가버린? 하루는 미난한테 혼자 편집을 해보라고 했었는데, 미난을 두고 가는 길에 생각이 많아지면서, 그 다음 날이 돼서는 그 방식이 잘못된 거라는 확신이 섰어요. 실수를 해보기 위한 경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다는 것. 그리고 이번 기행동안 미난에게 상황별로 어떤 촬영 스킬이 필요한지 알려주고 했었지만 고정희 추모기행 영상을 준비하는 작업자로서 이 기행의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은 것 같아요. 영상 기술자, 작업자가 된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의 내용에 대해, 그 의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중요한데 고정희 기행을 하면서 그런 시간을 갖지 않은 것도 놓치고 간 부분이었어요. 미안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반성합니다.
(하자작업장학교 1기 졸업생 원의 글 “자기주도학습의 여정”에서 발췌) 꼴레지오에서 내가 처음 한 일은 <얼터너티브 패션쇼 - 몰개성의 시대는 갔어>의 기획과 진행에 참여한 것이다. 이 패션쇼는 하자패션방의 패션쇼를 보고 난 남이가 "모델들의 생김새와 표정이 너무 똑같아서 누가 누군지도 알 수 없었다"고 투덜거린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히옥스는 "그럼 우리 패션방의 쇼에 대한 답가로 좀 더 개성적인 패션쇼를 해보자"라고 받아쳤고, 곧 회의가 소집되었다. 히옥스는 꼴레지오 아이들에게 패션쇼가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야 좋을지 물었고 우리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 갖가지 아이디어들을 냈다. 그러한 의견들을 종합해 히옥스는 기획서를 썼고, "너희들이 했던 이야기가 모두 잘 들어 있느냐"며 보여 주었다. 사실 그때 나는 '기획서'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게다가 그 기획서에는 우리가 했던 얘기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훨씬 깊이 있는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 솔직히 무슨 말인지 반은 알아듣고 반은 깜짝짬짝 놀라면서 읽었지만, 나는 히옥스에게 그냥 "잘 썼다"라고 대답했다. 패션쇼를 준비하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의를 진행하고 일을 분담하는 방법, '피곤해서 하기 싫어요', '슬램하는 거 쪽 팔려요'하며 궁시렁대는 아이들을 설득하는 방법, 대중음악작업장까지 찾아가 쇼의 개념을 설명하며 녹음작업을 부탁하는 방법,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해 게시판이나 메일로 홍보하는 방법 등을 히옥스는 아이들을 데리고 진행시켜 나갔고, 나는 아는 척 담담히 있었지만 사실은 놀라워하며 그 과정을 지켜 보았다. 솔직히 그때의 나로서는 행사 전 날, 패션쇼 무대인 쇼케이스에 검은 천을 치는 단순작업조차 해낼 능력이 없었다. 그것은 그 패션쇼가 내 수준에 맞지 않는 너무 큰 일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히옥스가 우리와 '함께' 작업하고 있는 척 하면서도 실제로는 우리를 '데리고' 기획부터 진행까지의 모든 공정을 노출시킨 작업 스타일은 그때의 나에게 적절한 것이었다. 히옥스는 우리가 '처음'이라는 걸 알았고, 그래서 우리 생각과는 달리 우리가 잘 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단순작업을 동반한 진행파트는 자기 혼자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 밤을 새워가며 했다. 하지만 기획파트만큼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해서, 이게 어떤 행사이며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는 분명히 알도록 했다. 이러한 학습스타일을 지금의 나는 '얹혀서 가는 경험'이라고 부르는데, 그 때의 패션쇼가 그러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었다는 걸 깨닫는 데만도 나만의 시간과 내공이 필요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나와 제리는 <하자 1주년 생일파티>를 기획, 진행했다. 판돌들의 도움 없이 우리 둘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낸 행사였고 게다가 매우 성공적이기까지 했지만, '얹혀서 가보는 경험'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후략)
지지큐: 미난이 쓴 리뷰를 봤는데, 카메라 맨과 쿠로코가 어떻게 다른 것 같아요?
미난: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거는, 둘 다 헬퍼가 아니라는 거였는데요. 쿠로코도 중증장애인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로 만들어 주기 위해 같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고, 영상을 찍는 것도 나는 카메라로 찍고 있지만 내가 작업장학교랑도 좀 떨어져 있고, 고청문이랑도 좀 떨어져 있었고, 그러면서 3자가 된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했었고, 고청문에서 뭔가 하지 않으면 제가 찍을 것도 없고.... 이건 제가 더 정리를 해야 하는 것 같은데요. 학교에 영상작업을 하는 게 저 밖에 없잖아요. 매체 팀마다 역할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디자인팀에 있을 때는 무언가 달갱의 말을 빌리면 “보다 더 좋게 만든다” 생각했는데, 영상팀에 있으면서는 우리는 다 같이 하기 때문에 경험을 공유하잖아요. 그런데요. 영상팀은 좀... 예쁜 영상 찍고 싶다 했었잖아요. 학교 영상팀에 있으면서 생각이 바뀐 거는, 예쁜 영상도 좋긴 하지만 그건 첫 번째가 되면 안될 것 같고 첫 번째는 작업장학교 죽돌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영상을 만들어서, 작업장학교 죽돌과 공유해야겠다, 제 생각을 진지하게 말로 표현하는 걸 잘 못하기 때문에 영상으로 살짝 표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가 아니라 학교 밖 사람들에게는 저는 일단, 고정희 기행을 하면서 일반학교 사람들을 되게 많이 생각했는데, 저도 일반학교를 다녔었고. 이런 문화를 하는 것을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면서 그게 쿠로코와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를 도와주는 존재이긴 하지만 같이 하는, 쿠로코가 헬퍼가 아니다 항상 이야기했는데, 같이 뭔가 하는 거고. 영상을 찍는 걸 혼자 하는 거지만 그래도 같이 하는 거고 작업장학교와 함께 하는 거인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점은요. 다른 점은, 이렇게 말을 하면 안되는데, 쿠로코는 도움을 주는 존재이기도 한 것 같은데, 카메라맨은 도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쿠로코는 헬퍼가 아니예요.
그리고 또 전체적인 시야를 넓혀야 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만 보게 되는데, 찍는 것도 되게 제 생각대로 찍으면 너무 일방적으로 찍는 것 같은 거에요. 시야를 좀 넓혀서, 풀샷을 찍는 다는 게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볼 수 있고,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지지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잘 못한 것 같네요.
글쎄: 함께 촬영하는 사람이랑은 촬영하는 동안에 서로의 상황을 계속 확인하면서 도움을 주고받고 해야 해요. 자주 눈도 마주치고, 신호도 주고받고. 삼각대 다리를 빨리 접는 걸 도와줘야 할 수도 있고, 주변 사람을 조용히 시켜야할 수도 있고, 무선마이크를 옮겨줘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어떤 상황에서는 카메라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어요. 공연을 보고 싶고, 강연자를 보고 싶은데 카메라가 가려버린다든가, 카메라가 너무 눈에 띄어서 거슬리게 한다든가. 조용히 낮게 움직이고, 양해를 구해야 할 땐 정중하게 부탁을 하고. 촬영하는 사람이 계속 인상을 쓰거나, 너무 크게 웃거나, 지루해 하거나 하면 카메라 뒤에 섰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 눈에 띄기도 하고 당연하게도 분위기에 영향을 줘요. 차분하게 주의하면서 바른 자세로 있어야 해요.
지지큐: 정말 쿠로코인 거예요. 상황이 잘 진행이 안되고 있다면 도와줘야하는 거고, 카메라 맨끼리도 그렇고 상황 밖에 있는 게 절대 아니고 상황 속에 있는 거고.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미지 캐치 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으면 공기가 감지 되잖아요 영상에 기록되지 않더라도... 분위기를 읽고 기민하게 해야 하고, 쿠로코 역할을 잘 해야 현장에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난이 하나에 집중하는게 아쉬웠다고 했잖아요. 넓은 시야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쇼트의 문제가 아니라 분위기의 문제인데, 그리고 체력의 문제인데 계속 집중해야 하고, 강의 촬영 할 때에도 계속 듣고 있어야 하고 필요하면 적어 놔야 하고. 강의가 좋았는지 안좋았는지. 학교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이랑도 의견을 교환하면서 그 분위기를 계속 읽고, 분위기를 만들기도 해야 하고. 저도 카메라를 좀 만지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카메라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성실한 참가자가 되었었고.
미난: 웃긴 건데. 처음으로 쿠로코라고 느꼈던 거는, 촬영하면 사람들이 살짝 살짝 그 인식을 하는데 모른 척하려고 하잖아요. 쿠로코로 무대에 섰을 때 관객들이 막 웃었는데, 우리 존재를 아니까 그런데 나중에는 가면 갈수록 없는 것처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본다. 홍조는 대단한 것 같아요. 메솟도 가고. 더 무거운 거 들고 다니고.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지지큐: 저는 옛날에 시간 약속을 힘들어 했는데, 뭐가 있으면 먼저 가서 세팅하고 끝나면 정리하느라 늦게 나오고. 그런데 미난은 시간 약속에 대해서는 큰 무리는 없었는데, 근데 문제는 촬영하느라 놓친 것들이 있었던 것들. 태도나 표정은 미난에 대해서 아쉽다고 생각했어요.
미난: 그때 이성이 없었어요. 정신상태가 이상했었어요. 뭔가 기타도 치고 싶고... 브라질 노래 기타치는 거 처음이었고 그래서 그러고 싶었기도 하고, 뭐 그것 때문은 아니었는데, 이거를 어떻게 찍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 생각에서 이미 힘이 다 빠졌어요. 둘째 날 이상했어요. 버스에서 바로 잠들었어요.
글쎄: 영상작업 - 미난에게 미난은 촬영도 잘 하고 편집도 잘 하는 것 같아요. 고정희 생가의 옥상장면도 좋았고 버스에서 촬영한 창 밖 풍경도 좋았어요. 이미지들을 어떻게 연결시킬지 보면서 컷들을 잘 선택하는 것 같아요.
촬영하면서 사운드 신경 쓰는 것 어려웠을 텐데 깨지는 소리, 너무 작은 소리도 없이 잘 한 것 같아요.
촬영 전에 해야 하는 세팅들 잊지 말고요. 메모리카드 선택, 스테디숏 설정, 화이트 쉬프트, 아이리스, 사운드 볼륨, 포커스, 수평, 헤드룸, 숏 사이즈, 앵글,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의 거리(광각과 망원렌즈 선택). 렌즈도 잘 닦아야 하고.
데파페페말고도 영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음악들을 평소에도 많이 찾아 들어보면 좋겠어요.
공연 촬영할 때는 전체 곡을 영상에서 다 사용하지 않을 거라면 공연의 중요 부분들마다 숏을 다르게 촬영해도 되요. 아, 그런데 공연 촬영은 참 어려워요.
테이크가 길게 갈 때는 삼각대를 사용해야 해요. 화면이 많이 흔들리니까요.
촬영을 마친 후에는 바로 백업을 받아야 삭제 될 위험도 줄어들고 다음 소스 녹화분량도 확보할 수가 있어요.
수평 맞춰 촬영하는 것도 신경 쓰고 포커스 맞추는 것도. 그리고 기록이 중요한 촬영에서는 (강연기록이나 인터뷰 등) 앵글을 한 번 잡으면 고정을 해야 해요. 녹화는 됐지만 줌 넣고 앵글 바꾸고 하다가 중요한 부분인데 그 소스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수 있어요.
삼각대를 가방에 넣기 전에 플레이트가 끼워 있는지 확인하고, 헤드를 숙여 놓지 말고 (숙여놓으면 압력 때문에 헤드가 망가져요), 가방에 넣을 때는 헤드가 밑으로 가게 해야 멨을 때 수직으로 들려요.
카메라 전원은 촬영 후 반드시 꺼야 하고, 액세서리들은 챙겼는지 확인하고, 촬영 마친 후에 배터리 충전은 필히.
3. 고정희 추모기행 글쎄: 그리고 이번 기행동안 미난에게 상황별로 어떤 촬영 스킬이 필요한지 알려주고 했었지만 고정희 추모기행 영상을 준비하는 작업자로서 이 기행의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은 것 같아요. 영상 기술자, 작업자가 된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의 내용에 대해, 그 의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중요한데 고정희 기행을 하면서 그런 시간을 갖지 않은 것도 놓치고 간 부분이었어요. 기행 중에 리뷰를 하고 그 생각들을 유지해야 고민해야 정리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랑도 의견을 나눠야 돌아와서도 스크립트를 쓸 수도 있고...
미난: 아까 작업과정 이야기했던 것들, 쿠로코 이야기를 해버렸는데... 일반학교 애들 보면서 나도 저랬었나 싶고... 영상, 고정희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었고.... 이렇게 막이 있는데, 진지한 막이 있는데, 이 정도 벌어져서 진지하게 생각을 하려고 조금은 바뀌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뿌듯했고요. 제일 뿌듯했던 거는 최진솔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사이가 안좋았었는데, 그런 것도 풀리고, 이번에 하면서 좀 어떻게 풀리게 됐어요. 그래가지고 개인적으로 좋은 여행이었다고 생각했고... 그러니까 최진솔이랑 되게 사이가 안좋았던 것이 일방적으로 화를 낸 적이 있었어요. 걔가 날 보면서 무서워서 숨을 못쉬겠다 그랬는데, 그게 나아지기까지의 시간이 길었는데, 남중, 남고를 나오고 성미산학교를 처음가서 그런 사람을 처음보고 어려워서, 여성학 이야기를 읽어보고 그랬던 기억이 있는데, 그러면서 어떤 좀 이렇게... 되게 큰 도움을 준 것 같아요. 가까워지는데... 뭐냐면, 작업장학교에서 쌓아왔던 경험때문일 수도 있고... 제 성격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성미산학교 다닐 때는 막 뭐라고 하고 다니고 그랬었는데, 그게 좀 좋았어요. 걔가 어느 날 페이스북에 메시지가 있어서 봤는데, 그 친구가 어색하게 대화를 할 줄 알았는데, 그 아이는 어색해하지 않았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고 조금은 나아졌단 생각이 들었고, 메시지까지 와서 되게 뿌듯했었어요.
지지큐: 작업장학교 죽돌들끼리는 리뷰를 했었을 텐데, 그런 리뷰를 좀 영상에 나오게 하는 것도 좋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학교 사람들이랑, 동료들이랑 계속 이야기하면서 내 생각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 생각도 들어보고... 계속해서 기행의 분위기를 읽고 편집할 때에도 그런 것들을 넣으면 좋았을텐데... 글쎄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가 기행 중에도 리뷰를 했었던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뉴스 형식도 좋지만, 앞으로 미난의 생각들을 이야기하는 것도 해봐야 하는데, 중요한 거는 미난 개인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좋겠어요.
글쎄: 저는 저보다 먼저 고정희를 만났던 소녀들을 통해 고정희 시인을 알게 됐었어요.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를 해왔던, 고정희 시를 읽어왔던, 고정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인의 친구들을 만나왔던 소녀들과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되면서 고정희 시인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 같아요. 고정희를 통해 포럼을 진행하고, 페스티발을 기획하고, 슬램을 했던 소녀들이 새롭게 고정희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경험들을 공유시켜 주었고 그러면서 저도 어느 순간에는 그 소녀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고정희 시인으로부터 출발한 다양한 작업들을 했어요. 아시아소녀들의 경계넘기라는 주제로 아시아디스토리페스티발 기획하고, 소녀들의 슬램파티, 고스트걸즈 영상작업, 또문 20주년 영상, 허난설헌과 리칭짜오 다큐멘터리 작업 등등... 그러다가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는 고정희 추모기행에 가지 못했어요. 최근에 하자작업장학교와 함께 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기행에 참여했어요. 제 앞에 있었던 소녀들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시, 공동체에 대해서 느끼고 생각해보고 공부하고 작업도 하고 그랬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 하자도 시즌2, 학교도 시즌2, 상황들이 많이 바뀐 이 시점에서 고정희 시인을 알게 된 새로운 사람들이 시인을 만나는 방법은 또 변화하고 다양해지고 그럴 수 있을 텐데... 아직 그게 무엇일지는 모르지만, 제가 고정희 시인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새롭게 시인을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경험이 중요할 것 같단 생각...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