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할까, 혈서 쓸까 고민하다 둘 다 했어요
덕성여대 학내분규는 김씨가 입학하기도 전인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부터 박원국 전 이사장의 족벌체제로 인한 재단 전횡은 심각했다. 결국 1997년 한상권 교수가 재단의 일방적 평가로 재임용에 탈락하면서 학생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65일간의 수업거부, 260일간의 총장실 점거 등으로 박 전 이사장은 교육부로부터 해임됐다. 하지만 2001년 박 전 이사장은 학교로 복귀하려는 시도를 내비쳤다. 이에 맞서 김씨를 비롯해 단과대 학생회장들이 자신들의 예쁜 머리카락을 잘라야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기 시작했다. "예전 박원국 이사가 있을 당시 학교에선 누구도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었고, 교육 받고, 교육할 권리를 내세울 수도 없었어요. 그때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어요" 김씨는 지난 2001년 상황들이 아직도 눈 앞에 선한 듯했다. 지난 2001년 2월 15일. 이날은 비가 왔다. 학교에서 새내기 새로배움터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중에 박 전 이사가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김씨를 포함해 50여 명의 학생들은 교문 앞에서 박 전 이사의 차를 둘러싸고 막아섰다. 교직원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우산으로 학생들을 때리는 등 물리적 충돌이 이어졌다. 이 와중에 박 전 이사는 학교 행정동 건물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다시 건물 출입구를 막았고 일부 학생들은 차량 위로 올라가 눕기도 했다. 총장실 점거도 쉽지 않았다. 학교 쪽에서 동원한 용역과 학생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그해 3월 개강 이후 학생들 사이에서 이같은 내용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총학생회는 학생들에게 현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고, 수업거부 등 강력한 투쟁을 이끌기 위해 삭발을 결심했다. 여학생들이 삭발을 결실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 일부 총학생회 간부 사이에선 삭발 대신 혈서를 쓰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김씨가 웃으며 말했다. 결국 이들은 삭발과 혈서를 함께 진행했다. 비민주적 재단으로부터 학교를 지키기 위한 이들의 절박한 심정이었다.
김씨는 단식도 했다. 단식 19일째. 교육부는 이사진 중 4명을 관선이사(교육부가 선정하는 이사)로 바꾸겠다고 결정했다. 그는 "7명 모두가 관선이사가 되길 바랐기 때문에 교육부의 결정을 받아들일지를 놓고 밤새 고민했다"며 당시의 고민을 털어놨다. 이사진 3명이 기존의 재단 이사로 유지된다면 학교는 여전히 불안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남씨는 "선배들의 힘겨웠던 투쟁의 노력을 다시 거꾸로 되돌릴 수 없다"면서 "우리도 지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구 재단의 복귀를 막아내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현했다. 김씨는 덕성여대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 갈등에 대해 걱정스러운 마음을 비쳤다. 그는 구재단의 학교 복귀 시도에 대해 "치료를 했지만 남아있는 바이러스"라며, 사학재단의 '끈질김'으로 인해 97년, 2001년 투쟁의 성과가 물거품이 되는 일을 염려했다. "후배들이 또다시 우리 때와 같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당시 투쟁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함께 '부채감'을 가지고 있어요...후배들이 덕성여대의 투쟁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문제에 대항해 잘 싸워나가길 빕니다."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아니 '더' 슬퍼졌다 2001년의 기억은 김씨 삶을 뒤흔든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치지 않고 요구해서 승리했다. 투쟁 이후의 일들로 인해 마음의 시련을 혹독히 겪기도 했다. 투쟁이 끝난 후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릴 정도로 그 해의 후유증은 컸다. 하지만 당시의 경험이 '교육'에 대한 그의 신념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지금 김씨는 문화연대 문화정책팀장으로 우리사회의 교육 변화를 위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원래도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대학에서 그런 문제를 겪으면서 책으로는 알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알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교육 문제에 더 관심을 많이 갖게 됐어요." 그는 이제 문화연대 활동을 그만두고 현장에서 사람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일을 할 계획이라 한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민중의 집'의 사무국장 일을 도맡아 지역공동체 안의 교육문제를 직접 접하고 관련한 일을 하고자 한다. 경험으로 다져진 그의 교육에 대한 고민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김나영씨는 요즘 대학생들의 현실이 10년 전에 비해 더욱 어려워진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또 해결되지 않는 비합리적인 대학의 재정구조와 점점 더 제 기능을 잃고 상업적인 공간으로 변해가는 대학을 비판했다. "사회 현실 자체가 학생들이 못 나서게 만드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대학생의 위치 자체가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대학생은 어쨌든 사회적 목소리를 내야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대학생들은 최소한의 양심, 책임감이 있었어요. 요즘엔 그런 것들이 거의 사라진 상황이고, 오히려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든 주체들이 된 거죠. 당장에 등록금만 하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고, 대출을 받는다 해도 평생 빚쟁이가 되는 거잖아요. 요즘은 취업이 너무 불안정하니까 학교에서 투쟁을 했을 때, 하고 나서 벌어질 개인적인 문제가 너무 크게 다가오는 거예요. 우리 때는 빚이라도 없었는데, 지금은 빚까지 안고 그런 걸 감당하기 너무 힘들어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은 자신의 미래가 저당 잡힌다'는 생각에 대한 대학생들의 공감"이라고 말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