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경향 901호

[커버스토리]에너지 빈곤층 체감겨울은 ‘냉골’

이씨 할머니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잠시 망설였다. “창피스러워서 우째야 쓸까.” 77살 할머니의 목소리엔 설움이 배어 있었다. 낡은 현관문을 열자 습한 곰팡이 냄새가 먼저 다가왔다. 두 노인네가 사는 7평 남짓한 주택. 한기는 바깥과 다를 바 없었다. 낡은 현관문과 섀시 틈 사이로 바람이 들이치지만 가스가 아까워 보일러를 켜지 못하고 있었다. 이씨 할머니는 이른바 에너지 빈곤층이다. 현재 에너지 빈곤층은 130만 가구로 추정된다.

에너지 빈곤은 단지 추위를 감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에너지 빈곤은 의식주 비용의 감소, 영양섭취 부족, 육체적 또는 심리적 질환, 가계부채의 증가, 사회적 소외 등을 동반한다. “겨울이 빨리 갔으면 좋겠어.” 그래서 이들은 오지도 않은 겨울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란다. 혹한에 대한 고통과 두려움을 해마다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인권처럼 기본권이다. 누구나 빈부의 격차와 상관없이 최소한의 에너지를 공급받을 권리가 있다. |박민규 기자

한라산에 첫눈 소식이 있던 지난 11월 10일 서울 관악구 삼성동, 구 신림10동의 시유지에 세워진 무허가촌을 찾았다. 서울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낙후된 지역. 무허가촌이기 때문에 도시가스가 연결되지 않아 골목 곳곳엔 프로판가스(LPG)통이 즐비했다.

이씨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30년째 관악구에서 살고 있다. 당초 윗동네 삼성산 자락에 자기 집을 가지고 살고 있었지만 10년 전 그곳에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보상금 몇 푼 받고 아랫동네로 쫓겨 왔다. 중간에 보상금은 지인이 ‘둘러 먹었고’(사기당함) 겨우 남은 1000만원으로 현재 시유지인 무허가촌의 빈 방에 들어왔다.

겨울이 두려운 이씨 할머니·황씨 할머니

방 하나와 주방, 화장실로 구성된 7평 남짓한 집. 그러나 화장실 변기는 고장이 나서 이씨 할머니가 길에서 주워온 고물들을 모아놓는 창고로 바뀌었고, 방 안에도 헌 옷이며 헌 책들이 가득했다. 두 노인네가 다리 곧게 뻗고 몸을 누일 자리도 부족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여기 옷가지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문 쪽으로 뻗고, 나는 옷 쪽으로 다리를 뻗고 문지방 베고 잔다”는 게 할머니의 설명이다.

이씨 할머니는 하루 서너시간씩 재활용품 수집에 나서고 있다. 일주일 내내 카트를 끌고 박스와 철물을 줍고 다닌 지가 벌써 15년을 넘어섰다. 만성 고혈압과 골다공증으로 다리를 절고, 한여름엔 어지럼증에 쓰러지기도 했지만 두 노인네의 유일한 수입이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 한 일을 놓을 수 없다. 절뚝거리며 폐품을 거둬 고물상에 팔면 하루 5000~7000원이 손에 쥐어진다. 월평균 20만원 정도의 벌이다. 여기에 두 노인이 기초노령연금을 받으면 한달에 35만원 정도의 수입이 된다.

방안에 앉으니 살림살이는 더욱 옹색해 보였다. 현관문은 틀이 안 맞아 삐거덕거리고, 창틀 또한 군데군데 송송 뚫려 바람이 들었다. 주방의 천장은 일부가 무너져 루핑으로 대강 때워놓은 상태였다. 아무리 난방을 한다고 해도 결코 따뜻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올해 난방비 지원 나왔느냐?”는 말에 이씨 할머니는 “주면 주는 대로 받는 거지. 달라고는 못하지, 양심적으로”라고 말했다.
관악구 삼성동 이씨 할머니의 7평 무허가집. 방안 가득 주워 놓은 폐품 탓에 두 노인네 누울 곳도 비좁았다. 이씨 할머니가 ‘관악정책연구소 오늘’의 이봉화 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득진 기자

이씨 할머니는 요즘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밤에 잠깐 난방을 한다. 프로판가스를 연결한 가스보일러다. 20㎏ 한 통에 3만6000원. 최대한 아껴 쓰면 일주일까지 버틸 수 있지만 한참 추울 땐 3일이면 바닥이 난다. 한밤중 몇 시간만 보일러를 돌려도 한 달이면 가스비만 15만원.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많은 1월엔 프로판가스비로만 30만원 돈이 넘어간다. 취사용은 따로 프로판가스를 연결했는데, ‘해 먹는 것이 별로 없어서’ 두 달에 한 통이면 족하다. 전기요금은 냉장고와 밥통, 전등 2개를 합쳐 한 달에 1만원 정도가 나온다. 두 노인네 35만원 수입에 광열비로만 17만원이 넘게 지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씨 할머니는 생활수준이야 최하층이지만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멀리 사는 자식들은 이따금 생활비를 보내오지만 ‘제 자식들 대학 보내느라’ 그 액수는 많지 않다. 밥이야 한 번에 밥솥 가득 지어놓고, 반찬은 동네 복지관에서 주는 것으로 버티고 있다. 이씨 할머니는 가난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사무소나 사회복지담당관에게 도움의 손길 한번 내민 적도 없다. “가스값이나 안 올랐으면 좋겠는데….”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이씨 할머니의 소박한 바람이다.

주거환경이야 이씨 할머니보다 조금 낫지만 겨울이면 여전히 춥고 배고픈 것은 황씨 할머니(73) 역시 마찬가지다. 두 골목 건너 역시 무허가촌에 사는 황씨 할머니는 5년 전 이곳으로 이사했다. 그나마 화장실이 딸린 집이라 ‘늘려 온 것’이다. 10평 남짓한 황씨 할머니 집의 난방기구는 석유보일러와 전기장판이다. 바닥과 벽은 단열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 냉골이다. 이날도 바닥에 불을 넣지 않아 전기장판을 벗어나면 엉덩이가 시렸다.

황씨 할머니는 장애를 가진 조카와 함께 산다. 두 사람 모두 기초생활수급자로 60만원 정도의 지원을 받고, 고물 주워다 판 돈을 합치면 월수입은 70만원 정도. 그 중 에너지 비용은 평균 10%를 넘어서고 겨울철이면 40%를 넘어선다. 겨울철 한 달 석유값이 25만원, 전기료 3만원에 프로판가스비 3만6000원을 합치면 32만원에 이른다. 난방비용이 많이 들어 수시로 기름탱크에 나무 막대기를 넣어 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한다는 황씨 할머니는 “지난 겨울엔 복지관에서 석유 한 드럼을 넣어주어서 아끼고 아껴 한 달 가까이 썼다”며 “격년제로 지원해주기 때문에 올해는 그마저도 혜택을 받지 못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황씨 할머니는 봄부터 시름이 더 늘었다. 조카 손녀 둘이 들어오는 바람에 집안일도 많아졌고, 생활비도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조카며느리가 이혼을 하며 조카손녀들을 데리고 갔다가 더 키우지 못하고 돌려보낸 것. 요즘엔 조카손녀들 등교 때문에 아침엔 보일러를 가동하고 있다. 지난 겨울에 석유값이 없어 난방을 못한 경험이 있는 황씨 할머니에겐 다가오는 겨울이 두렵기만 하다.

난방비 힘겨운 에너지빈곤층 130만가구
날씨가 추워지면서 겨울철 혹한에 시달려야 하는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에너지 빈곤층이란 저소득으로 인해 최소한의 에너지마저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가구를 말한다. 이씨 할머니와 황씨 할머니 모두 대표적인 에너지 빈곤층이다.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관심은 지난 2005년 경기도 광주에서 한 여중생이 단전된 집에서 촛불을 켜고 잠을 자다 불이나 숨진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목숨을 잃은 여중생의 가족은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나면서 전기료가 많이 나왔고, 건설현장의 인부로 일하는 아버지 남씨는 겨울철 일거리가 떨어지자 전기료 88만원을 체납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적정 난방 수준으로 실내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가구 소득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지출하는 가구를 에너지 빈곤층으로 보고 있다. 이 정의를 적용하면 국내 에너지 빈곤가구 수는 2008년 기준 약 130만 가구로 추산된다. 2005년 119만 가구에서 2007년 122만9000 가구로 2년 동안 3만9000 가구가 증가한 데 이어, 2008년에는 130만 가구로 1년 만에 7만1000 가구가 증가했다.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추세로, 2008년 우리나라 총 가구수가 1667만3000 가구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10 가구당 1 가구가 에너지 빈곤 상태인 셈이다.

통계청의 ‘2009 월소득 10분위별 가구당 가계수지’(2인 이상) 자료에 따르면 월 평균소득 52만4908원인 1분위 가구의 주거·수도·광열비는 15만8854원으로 전체 소득의 30.26%를 차지한다. 2분위 가구의 경우 14.14%로 나타났다. 반면 월 평균소득이 873만80원인 10분위 가구의 경우 이 비용이 27만5934원으로 전체 소득의 3.16%에 불과했고, 9분위 역시 4.53%에 그쳤다. 가난한 가구일수록 소득 대비 비중이 커지며 1분위 가구의 경우 월소득의 3분의 1가량을 주거·수도·광열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광열비(전기료·연료비)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도 같은 결과다. 지식경제부가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50만원 미만 소득계층의 경우 2008년 소득 대비 광열비 비중은 38.2%, 50만~100만원 미만 계층은 10.4%였다. 반면 300만~350만원 미만 계층은 광열비 비중이 3.2%, 600만원 이상 계층은 1.6%에 불과했다.
에너지 빈곤층 가구 탐방을 함께 한 ‘관악정책연구소 오늘’의 이봉화 소장은 “올해 1월 지역 내 단전, 단가스 경험가구나 기초생활수급자 가구 21곳을 조사해보니 동절기 난방비용이 10만~20만원인 가구가 62%, 10만원 이하인 가구가 28%였다”며 “소득이 적다고 난방비나 수도요금이 비례해서 줄어드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또 “난방비용이 가구 소득의 10~50%를 차지하고 있는 가구가 많았지만, 난방의 질은 무척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주택 상태가 노후하거나 무허가 건축물인 경우가 많아 단열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에 실내의 냉기만 가시게 하는 정도의 난방으로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여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저소득가구의 에너지 소비실태 조사’를 진행한 진상현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같은 서울에서도 중산층 이상은 단열재와 섀시 등의 건축이 잘 돼 있어 열효율이 높기 때문에 에너지 비용부담이 오히려 적은 편”이라며 “가전제품에도 차이가 나 에너지 효율을 높인 각종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오래된 제품에 비해 에너지를 10% 정도 절약해준다”고 말했다.

추위와 폭염, 그리고 질병이 두렵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빈곤의 원인으로 가계소득, 에너지 가격, 주택의 에너지 효율 등 세 가지를 꼽는다. 소득 증가와 에너지 효율 개선은 에너지 빈곤가구의 감소에 기여하지만,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에너지 빈곤가구의 수를 늘리는 구실을 한다. 현재 정부에서는 가계소득에 대해서는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으로, 에너지 가격은 할인제를 통해 지원하고 있다. 에너지 효율 개선사업은 한국에너지재단을 통해 가구당 100만원 내에서 지원을 시행 중이다.

에너지 빈곤층이 고단한 것은 겨울뿐만이 아니다. 여름철에도 에너지를 마음껏 사용하지 못하며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올 여름 서울시정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지역 저소득 가정의 하루 선풍기 이용시간이 전국 평균치의 절반, 에너지 소비량은 64%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서울에 사는 월 평균소득 125만원 이하 600 가구를 대상으로 1년간(2008.7∼2009.7) 에너지 소비실태를 조사한 결과 선풍기 사용시간이 하루 3.7시간으로 전국 평균치인 6.9시간의 절반(53.6%)에 그쳤다. 연중 선풍기 사용일수는 69.4일로 전국 평균치인 95일의 73% 수준이었다. 에너지 이용기기 보유 현황에서도 에어컨 보급률이 10가구당 1대로 매우 낮은 가운데 선풍기 보급률도 전국 평균보다 가구당 0.7대가 적은 1.1대여서 저소득 가정이 여름철 냉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난 여름엔 쪽방촌의 방 온도가 바깥보다 5도 높고 한낮 습도는 72%까지 오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기도 했다. 성균관대 사회의학교실과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하자작업장학교가 지난 7월 27일부터 8월 6일까지 서울 돈의동 쪽방촌의 65세 이상(평균연령 73세) 고령 가구 20곳의 실내기온을 조사한 결과, 여름철 실내 권고 기준치인 26~28도보다 4~5도 높은 31~32도로 조사됐다. 단열 시설이 전무한 노후 건물에 미로처럼 작은 방들이 붙어 있어, 마치 집열판 같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모아진 열기가 밤새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 관악구 삼성동 무허가촌의 모습. |조득진 기자
높은 습도는 더 큰 골칫거리. 볕이 잘 들지 않는 위치에 있어 퀴퀴한 방안은 불쾌지수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이들 가구 내 습도는 오전에는 실외와 차이가 없지만 오후에는 평균 72%로 실외보다 12% 가량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건강을 위해 권고되는 여름철 습도(60%)보다 매우 높은 수치다.

때문에 노인들의 체온도 그만큼 빨리 올라가고, 이는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실제 조사 결과, 조사 대상 노인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2시간 30분에 불과했고, 절반 이상의 노인이 어지러움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고령인 이들은 대부분 고혈압·당뇨병·심장질환·관절염·호흡기질환 등의 지병을 앓고 있어 폭염에 그대로 방치될 경우 병세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더위에 지친 데다 잠도 못 자니, 그야말로 3중고인 셈이다.

관악구의 이씨 할머니도 여름엔 노상 문을 열어놓고 산다. 방안에 달린 창문이야 바로 옆집과 붙어 있어서 있으나마나다. 방안에 옷이 가득해 더욱 답답해 보이지만 “이 옷 버리면 겨울엔 어떻게 살려느냐”는 할아버지 호통에 차마 버리지도 못하고 있다. 좁은 골목의 뜨거운 공기를 오직 선풍기 한 대로 버틸 뿐이다. 그나마 선풍기도 전기요금이 아까워 누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는 게 이씨 할머니의 말이다.

고통체감도 큰 에너지 빈곤층

에너지 빈곤은 사회적 비용도 증가시킨다. 에너지 빈곤은 냉난방 부족으로 인해 거주자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며, 광열비 비중 증가는 다른 지출항목의 감소를 유발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특히 가구원 중에 노인, 어린이, 장애인, 만성질환자 등이 있는 가구는 에너지 빈곤에 상당히 취약하다. 

진상현 교수는 “에너지 빈곤에 처한 가구 중 상당수는 적절한 냉난방과 건강한 식생활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며 “이는 두 가지 선택을 모두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소득수준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가구원들은 만성적인 감기, 기관지염, 심장질환 등과 같은 질병에 시달리고, 이미 앓고 있는 질병이 더욱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장애인, 만성질환자, 노인 등이 있는 가구는 에너지 빈곤에 더욱 취약하다. 이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래 집에 머물기 때문에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심각하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빈곤은 주거비 이외의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의 감소, 건강문제로 인한 결근과 결석, 가구원들이 난방이 되는 공간에만 거주하게 됨으로써 과밀 등과 같은 간접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다른 사회계층에 비해 에너지 빈곤층의 고통 체감도가 더 많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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