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으로서, 대화하기.


나는 내가 시민이라는 것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을 때 나를 설명하는 정체성들 중 하나로 '시민' 이라는 단어를 크게 가져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체성이 그렇듯, 시민이라는 정체성 역시 가져오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나는 어떤 시민이 되고자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시민인가는 세계와 공동체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하승창 市인께서 이야기하셨다. 내가 지금 서있는 이곳에 초점을 잘 맞추고,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 서서 '인식'하며 움직여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세계와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하기 위해 먼저 나는 나에게 초점을 맞추어본다. 여기 한조각인 나는 이곳에 살아있고, 다른 조각들과 함께 덩어리를 구성하고 있다. 결국 여러 개의 '나'들이 모여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내면을 구하는 것이 세계를 구하는 것"이라고 조원규 詩인께서 이야기하셨다. 시민 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선 시민으로서의 '나' 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먼저다.  


시민으로서의 나를 발동시키는 것은 감수성이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조각으로서 단순히 세상일이 아니라 '내가 포함된 세상일' 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러한 감수성은 나를 멈춰 서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선을 주었다고 하여 움직였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처럼. 이제는 감수성을 넘어서, 내가 가진 입장으로 움직여야 하겠다고 홍성태 時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모두 다 잘 살 순 없나, 라는 입장이 '그거 원하지 않는 사람 어디 있겠냐' 라는 코웃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방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방법을 찾기 위해선 본질적인 문제를 들여다보고 고민하며 움직여야 한다"고 권혁일 施인께서 이야기 하셨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움직여야 하는 것은 자신의 일상이다. 기부를 일상으로 가져오기 위해 연습을 했을 때 훨씬 더 지속적인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처럼. 그러나 혼자 입 꾹 다물고 행동한다 해서 내가 꿈꾸는 만큼의 큰 변화가 일어나진 않는 것 같다. 나 혼자서 종이컵 안 써서야, 혼자 고기 안 먹어서야, 이 지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이 고민이 '나 하나쯤이야..' 로 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자신의 움직임을 넘어서 남들까지 움직이게 하기 위한 관찰이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TCK, TCK, TCK 영상을 만들며 움직임을 유도하는, 우리의 뜻을 전하는 것을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인지를 배웠다. 누구를 움직이려 하는 것인지, 나는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 것인지 더 깊고 섬세하게 생각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런 캠페인이 아니더라도 내가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했을 때 놓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고, 다른 움직임들을 반영하는 의식적인 일상을 만들기 위해선 기존의 인식을 바꾸고,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제너럴닥터 視인들께서 보여주셨다. 그런 인식을 바꾸는 것은 지금의 자신을, 우리를 직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이야기까지. 혼자 생각하며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확장하고 싶으니 더 이상 왜 라는 질문으로 나를 고립시키면 안 된다. '어떻게'를 동반한 움직임을 시작해야 한다. 그 움직임들이 쌓이고, 깊어지면 자연스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시민으로서 필요한 사람, 필요한 조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함께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끊임없이 날개를 움직이고 있는 민욱 翅인께서 너의 현실에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다수나 대중과 같은 모호한 단어가 아니라 '너'라고 깊숙하게 표현하려면 그 만큼의 관찰과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너'에 대해 공감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 개입하는 것. 그리고 제약을 안고 같이 나는 것.

자신의 이야기를 혼자서가 아니라 밖으로 끄집어냈을 때는 당연히 그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나는 그것이 두려워 모호하게 나의 뜻을 내비칠 때가 있다. 또한 남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두려움으로 받아 들여질까봐 그렇게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런 두루뭉술한 관계맺음을 하면 서로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걸 이제 안다. 비판적인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협업이야 말로 나를, 너를 성장시키는 것 이란 걸 여러 시인을 통해, 그리고 이곳 하자에서 배워나간다.


자신들을 매개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 엮여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6명의 시인들이 해주셨다. 두 달간에 거쳐 시민문화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간 지금, 나는 자연스레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민으로서, 그리고 내가 속한 이곳 하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표현할 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그저 쏟아내는 게 이야기를 걸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떻게 '잘' 전달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필요하다. 잘 전달하고 싶어 여러 도구들을 잡게 되는 것 같다. 시민으로서, 또한 매체도구를 잡은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 구체적인 대화하기를 계속 연습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