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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S글 수 1,063
아무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둡고 고통스럽고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여전희 우리가 하루를 마감하는 밤하늘에는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별빛처럼 아름답게 떠 있고, 날이 밝으면 우리가 다시 걸어가야 할 길들이 가지런히 뻗어 있습니다.
우리는 저 길에 등을 돌릴 수도, 등을 돌려서도 안 되며 우리가 그리워하는 이름들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 생각을 하게 되면 내가 꼭 울게 됩니다. 내게는 눈물이 절망이거나 패배가 아니라 이세계와 손잡는 순결한 표징이며 용기의 샘입니다. 뜨겁고 굵은 눈물속으로 무심하게 걸어 들어오는 안산의 저 황량한 들판과 나지막한 야산들이 내게는 소우주이고 세계 정신의 일부분이듯이, 그리운 이여, 내게는 당신이 인류를 만나는 통로이고 내일을 예비하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함께 떠받치는 하늘에서 지금은 하염없이 비가 내리고, 스산한 바람이 무섭게 창틀 밑을 흔드는 계절일지라도 빗방울에 어리는 경건한 나날들이 시의 강물 되어 나를 끌고 갑니다. 고정희, 시집 [지리산의 봄], 시인의 맺음말
2009.05.28 20:02:25
시인은 자신의 아픔을 모셔놓고 그 아픔을 향해 춤을 추는 사람이다. 시인은 자신의 아픔을 몸 속에 넣어놓고, 모시고 얼르고 놀아주는 축제를 벌여주며 때맞춰 제사지내는 사람이다. 시인은 그 아픔이 싫어 도망가다 도망가다 병든 사람이지만 그 아픔을 제 서방보다 귀히 여기는 사람이다. 시인은 밤이면 밤마다 어둠 붙여들고 아픔 맞으러 산에 오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시인은 제 아픔의 신은 뼛속에 감춰두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얼르는 사람이다. 누구의 눈에도 보이진 않지만 시인의 눈에는 빠안히 보이는 병든 귀신들을 얼르고 놀아주다 저 멀리로 보내는 사람이다. 아픈 자였으나 아픔을 감춰두고 핏발선 눈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과 죽음을 놀아주는 사람이다. 아픔의 핵을 신처럼 받들어 들고 그 아픔의 핵인 입술로 사람의 아픔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며 책망하고 갈망하는 사람이다. 그것을 노래로 하는 사람이다. / 김혜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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