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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S글 수 1,063
오늘 이야기 된 것을 가지고 다시 한 번 각자 자신의 글들을 수정해서 내일 오전 10시까지 올려주세요. 가능한 최대 150자 내에서 해주길 바랍니다. 도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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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니
어쓰
무브
2009.09.10 20:02:31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귀가길에 UFO가 나타난다. 문명의 끝을 이룬 외계인들이 그 UFO에서 내리고, 나에게 제안을 한다. 지금 당장 같이 떠나자. 그러면 우주의 비밀, 하나의 진리를 가르쳐 주겠노라며. 막 헤어진 친구나 연인이 마음에 걸리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의 얼굴이 스친다. 그들에게 한 마디 인사도 없이? 최고의 지식을 얻어 누구에게도 자랑하거나 나눌 수 없이? 자, 어쩔 테냐. 따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주저 없이. 난 떠나겠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
2009.09.10 08:53:44
1) 나는 항상 바랐다. "어린 마음"(동심)을 유지하기를. 몸이 나이가 먹는다 해도 순수함을 남기고싶다.
2) 성실하고 진실 되게, 주어가 내가 되어 하고 싶은 말을 계속 하고 싶다. 자식이 생긴다면 부끄럽지 않게. 로 고쳐주시면 좋겠습니다 양상. 나의 동심 내 동심은 무엇인가? 어릴 때 메뚜기 다리를 뜻는 것? 아니면 뺑뺑이 타다가 튕겨져 나가서 우는 것? 후..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잘 보이지 않는 내 동심을 의식하며 지키려 한다. 의식하고 지키려 하는 것 중 대표로는 '인사'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유는 왠지 인사는 어렸을 땐 어른들이나 친구들에게 많이 했지만 나이 먹으면서 되도록이면 인사를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친한 사람에게 빼고) 그냥 지나치며 얼굴을 마주칠 땐 대충 모른 척 하면서 피해가는 게 요즘 시대의 어른들이다. 인사 말고도 유치한 장난이나 개그를 한다던가 몸을 움직여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 횡단보도를 건널 때 손을 들고 걷는 것 등 의식하고 하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내 동심이 무엇인지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2009.09.10 20:07:31
a passionate person이었지... :)
아무튼 그건 "초심"이라고 말하는 거겠지. 그런데 '동심'이라. 난 오피가 이제 훨씬 더 성숙해졌으면 하는데. 때때로 이 대안학교 현장이란 곳에서는 <피터팬>이나 오스카(<양철북>의 주인공)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는 것 같더라. 여러 이유로 성장을 멈춘 채 "어린 아이"인 채로 남아 있는. 심지어 오피가 "내 동심이 뭐였지?"라고 물으면서도 동심에 대한 얘기를 하는 상황이, 진심으로 못마땅하다. 생각을 좀 더 진전시켜서 다른 사람이 그 생각에 반응할 수 있도록, 그 수준에서 말을 건네주길.
2009.09.10 09:39:03
‘즉흥적인 면과 함께 학습에 대한 ‘근거’라는 것과 ‘질문하기’는 답을 찾으려고 하기 보단 내가 그것들을 왜 필요로 하는 지를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싶다.’ 즉흥성을 띄운 상태로 학습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 그 때 순간마다 번뜩하는 집중력과 순발력이 있는 것이야 나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지만 즉흥적으로 학습을 해 버리면 깊이도 생각도 없이 그냥 한 번 '생각 해봤으니까 됐어' 정도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나에겐 즉흥성과 함께 따라올 학습적인 면의 ‘근거’가 필요했다고 느꼈다. 어떤 것들을 하자고 제시 했을 때 '왜 이건 안하나요?' 혹은 '왜요?' 라고 사람들에게 질문했을 때 그 사람이 이걸 왜 하려고 하는지 그 생각이 듣고 싶어서 물어본 거였지만 원하던 대답이 아닌 '왜? 하기 싫어?' 라며 내 질문은 '반항'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렇다면 단순한 ‘왜?’ 가 아닌 ‘너가 어떻게 생각하고 그 말을 한 건지가 궁금해’ 라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럼 이 부분을 학습적인 면의 근거에 더해볼 수 있겠고, 다 계산을 하고 제시를 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시행착오를 겪으며 왜 채워나가고 싶은지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싶다.
2009.09.10 11:42:52
이 전에 ~는 고래를 춤추게 한다 썼을 때,
나는 우리가 벙어리 고래라고 했어요- 할 수 있는 얘기가 없고, 얘기를 하기 싫어서 말이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이 안 나오는 것처럼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린 사실 학교에선 대화를 나누고 소통을 할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 성적이 나를 설명해주고, 친구들은 '동료작업자'가 아닌 장난만 칠 아이들인데(뭐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그렇게 우린 설명하는 법을 잃었던 거라고.. 그래서 "어땠니?"라는 질문에 "재밌었어요"라고만 대답하면 정말 좋았던 건데, "왜? 어떤 부분이?"라고 질문하면 말문이 막히는.. 저는 처음 하자 들어왔을 때 이게 내가 앞서 한 대답을 부정하는 것 같아서 울컥하기도 했었지만.. 너무 변명같은가?
2009.09.10 09:43:17
[질문과 고민은 생각에 여운을 남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다양한 사실에 접근 할 수 있는 유익한 방법이다.]
죽돌들은 고민을 참 많이 하는 것 가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에는 일정 깊이(내가 만족 할 만한 고민에 대한 해답)에 도달하지 못 할때를 알때가 있다. 그럴때에는 본인 아닌 다른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얘기를 꺼낸다. 개개인의 고민은 모두의 고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 하는 고민이라며 생각으로만 머무르는 것 보다 함께 나누고 같은 주제를 놓고 '다양한 사실'을 접하는 방법이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P.S : 오늘 제가 첫번째 순서로 했는데, 많은 얘기를 듣지 못해서 안타까웠습니다. 혹시라도 하려다가 말았던 이야기가 있으면 나눠주세요. 위에 쓴 글은 오늘 했던 이야기에서 많이 바꿨습니다.
2009.09.10 11:01:29
"(내가 만족 할 만한 고민에 대하 해답)에 도달하지 못 할때를 알때가 있다. 그럴때에는 본인 아닌 다른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얘기를 꺼낸다. 개개인의 고민은 모두의 고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 하는 고민이라며 생각으로만 머무르는 것 보다
함께 나누고 같은 주제를 놓고 '다양한 사실'을 접하는 방법이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에 거의 99% 공감해. 나머지 1%는 그래서 그 함께 나눠서 '다양한 사실'을 접한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지가 난 고민인데. 사실 나도 우리가 같은 주제로 토론을 하며 이야기를 나눠서 있을지 모르는 그 다음 단계나 그 이상의 관계로 나아가길 바래. 난 이제 막 그 이상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있는 중이야. 이 질문은 디자인 팀에서도 공유했었는데, 다들 할 말이 있겠군. 하지만 아까 홍조 이야기에 유리가 말하셨던 것 처럼, 우리가 본인이 아닌 네 말대로 타인이 고민을 털어 놓았을 때 참말로 관심을 갖고 '다양한 사실'을 나눠줄 준비와 연습이 필요한거 같아(적어도 나는). 혹시 너가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한다면, 나에게 힌트를 다오. (기본적인 마음가짐에 대해서 ...)근데 그 준비와 연습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MOVE? 1-. 근데 네가 만족하지 못하는 고민의 답에서 막혔을 때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눠서 풀어보기도 하고, 그 고민이 '생각으로만'이 아니라 대화가 아닌 또 다른 표현으로 풀어볼 수도 있겠지. 하자에서 쉽게 떠오르는 건 '작업'이라는 것이고. 1-. 고민이 일정한 해답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의 고민은 무엇인고? 혹시 그때 감정은 무엇이 있나? 그저 답답한가? 막 내가 너무 모지라다고 생각되나? . 사실 난 거의 모든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하는데, 그러다보니 이게 자기위로겸 자기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 질문을 너무 직설적으로만 하고 있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질문을 바꾸곤 해.
2009.09.11 09:42:20
고마워 SAN. 나는 이런 고민을 나만 하는 줄 알았어
지금 2NE1은 전체가 모였을때 얘기 하는 것 보다 소수로 모였을때 이야기가 더 잘 나오는 것 같아. 그런데 나는그것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좋은 기대효과를 얻으려면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도 다시 흩어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있어. 언젠가 산이 얘기를 한 것 같은데(아마 지난학기 끝날 때 나눈 이야기로 기억) 많은 사람이 있으면 많은 얘기와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학기를 보냈다고. 근데 이제는 소수?(21명은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다고 생각함)가 되었으니 좋은 시너지에 대해서 기대 해 봐도 될듯! 다양한 사실, [각자가 받아들이는 의미와 대답이 다른 것] 과 [듣는이와 말 하는이가 공감 될 때]를 다양한 사실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었어. 무엇이 옳고 그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맥락과 일치되어 나오는 [다른] 이야기들이 나올 때. 그것이 다양한 진실이라고 생각해. 또한 다른 이야기들이 부딪히고 부딪혀 이야기의 끝 지점에서 조화를 이룰 때, 나는 그것이 내가 원하는 이상의 답변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보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말해야 원하는 답을 원할 수 있을 꺼라고 생각해. 맞아. 내가 만족하지 않는 고민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도 '작업'이라고 동감 한표. 나는 [같은 작업장, 같은 죽돌, 다른 팀]이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어. 얼마전에 본 [Wonder & Wonder] 프로젝트가 팀과 팀의 경계를 넘어서는데 도움을 주긴 했지만 같은 주제를 두고 세 팀이 공동프로젝트 하는 것은 없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어. (다시금 Save my city 같이 관통된 주제로 함께 하는 계기가 또 언제 오려나..) 내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으려 할때 취하는 생각은, [질문 꼬리에 질문으로 문다.]야. 어라, 말이 좀 이상한가. 질문에 대한 질문을 갖게 되다 보면, 내가 도달 할 수 있는 끝 지점에서 얻는 대답이 적어도 나의 [진짜 대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야. 근데 요즘은 나 자신에게 질문에 대한 폭이 좁다고 생각하여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그것 또한 쉽지 않네. 책을 읽는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떤 책들에 손을 데야 할 지 모르겠다~ 다양한 종류의 질문을 던지다 보면 질문에서 얻었던 센스들이 다른 질문에서도 발휘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야. 또한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폭을 넓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어 P.S : 요즘 죽돌 사이에서 독서문화가 발전되려는 조짐이 느껴져 기분이 좋음. P.S 2 : 와.. 하나의 질문에서 마인드맵처럼 퍼져 나가는 것.. 좋네요. 좋아요. 시기에 맞는 큰 주제를 하나 생각 해 봐야겠어요.
2009.09.10 10:34:03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다운 것'이 어떤 것이라고 대답하지 못해서 버벅거렸던 건 사실 모르기 때문이었는데, 왠지 모른다고 대답하면 안될것 같아서 대답은 미뤄두고 생각만 했었다. 여전히 답이 안 나온다. 오늘 회의시간에 잠깐 이야기를 했었던, '현재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질문일까? 어쨌든 이건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 할 질문인것 같다. 그리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나 부족한 점을 부끄럽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했는데, 나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질 않고 아닌척 하며 속으로만 썩히고 있어서 문제해결이 되질 않으니 항상 답답함을 느낀다. 모르는데도 아는 척 어물쩡 넘어가버리는 태도를 고쳤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는데 지금 와서 되씹어보니 단어 선택이 조금 엇나가지 않았나 싶다. 아.. 아닌데.. 쓰다보니 또 아닌데.. 사실 지금 저 위의 문장도 긴가민가 하다.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해야할지 아님 나의 부족한 점을 인정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라고 해야할지 아님.. 또 다른 문장으로 해야할지.... 아이고............
2009.09.10 10:44:00
[ 좀 단순해지고 싶다 ]
생각을 정리한다는건 참 어려운 것 같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에서 맴돈다. 내가 고민하는 영화제작에 관해서 해답을 찾아 가려면 먼저 이 복잡한 머리속을 좀 청량하게 해야할 것만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현실적으로 구체화 시켜보고 싶다. 이러기 위해서는 머리가 혼탁하면 안되는데 지금 상태가 그렇다 절망적이다. 자기관리를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해왔다. 단순하게 움직이고 싶다.
2009.09.10 10:57:59
'내가 십대라는 이유로 모든 일을 제제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까지 사회에서 생각하는 십대의 목표는 명문대이다. 그것이 목표가 아닌 사람은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된다. 내신1등급을 받고 명문대를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기 위해 모두 같은 학습과 생각을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비정상이 되어버린다. 난 똑같은 곳을 향해 가고싶지 않다. 똑같은 학습이나 생각을 하고 싶지도 않다. 분명 난 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후에 난 명문대에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한 사람보다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며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2009.09.10 11:17:13
그래서 지금 퓨니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 있나요?
전 예전에 위와 같은 질문을 들으면 그저 막막했거든요. 혹은 저 질문을 던져주는 사람에게 화가 나기도 했어요. 왜 도대체 저런 답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을 저렇게 하는 것인가? 혹은 도대체 언제까지 저 질문에 대답을 해야되는가? 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자신의 글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걸까? 그렇다면 지금 퓨니의 행복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명문대에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한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것은 어떤 부분일까? 혹은 명문대와 좋은 회사에 취직된 사람은 그것이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을까? 이런 것들까지 생각해봐요- 퓨니가 지금 디자인 팀에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요? 혹은 무엇들을 해왔나요?
2009.09.10 11:33:18
사이다가 말씀하신 말 : 주어를 잘 생각해봐
퓨니가 제도권 학교를 선택하지 않고 일탈했다고 해서 그런 시선을 받은 적이 있었나? 사실 주어가 퓨니가 아닌 십대이기 때문에 퓨니의 얘기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어- 정말로 퓨니는 저런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지금도 지속하고 있었나? 그리고 연장 질문 세개 더!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할것인가? 그 일을 위해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퓨니 뿐만 아니라 자신의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언급했던 다른 죽돌들도 질문해봤으면 싶어용) 우왕 어떤 질문을 해야할지는 너무 잘 아는데 답은 안나와- 이 답을 알고 있었더라면 벌써 졸업했겠지-
2009.09.10 11:11:16
[스스로 끊임없이 넓고 깊게 만들 것이다. 거기에 필요한 타협과 그렇지 않는 타협을 구분하자.]
'타협한다'는 것 자체에 굉장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이유가 내 안에서든,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를 이야기하거나 끊임없이 질문을 이어가고 나누는 과정에서 피곤함과 괴로움을 느끼고, 혹은 겁내고 앞으로 더욱 힘들 과정을 멋대로 상상하고 '이만하면 됐겠지' 하며 나의 생각들이나 질문의 맥락이 다를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흐름에 적당히 맞춰서 '스스로에게 비겁한 자기타협' 해가는 것 자체에 무기력함을 느끼고 '관심없음'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이젠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타협하며 그저 무기력함과 관심결여 때문이었다고 인식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내가 가지고 있는 질문들이나 욕구들이 안팎으로 계속 나누어지고 이어질 여지를 끊어버리고, 그냥 그랬다고 때우는 것이 그토록 싫어하는 '자기 타협' 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는 타인, 혹은 자신과의 '타협'이 비겁하고 스스로의 기대를 저버리는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저돌적으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점점 늘려나가는데에 있어서 필요할지도 모르는 '자기타협' 일 수도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이 지금에서야 들었다. 끊임없이 질문을 돌리고 유지하며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자기타협'이라는 것은, 스스로 섣불리 단정짓고 생각의 끈을 끊어버리는 적당적당이었던 것이다. 잘난척 좀 하자!!
2009.09.10 11:11:20
위에 글에 적혀있떤 제 이야기를 하자마자 들었던 코멘트는 디디와 고고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은 서로 대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래는 수정본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서 한계를 느꼈다. 고립되었음을 느꼈다. 이제는 귀기울여들을 차례라고 생각한다. 세심하게 볼 차례라고 생각한다. 졸업식을 앞둔 나는 하자가 어떻게 정리되고 있는지 볼 생각이고 판돌들은 죽돌들에게 무슨 코멘트를 하는지 귀 기울여 들을 생각이다. 그리고 그 경험들을 가지고 나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다. [한글 문서정보로 보니 195자래요...150자 이내로 쓰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예요!] 타이틀 정하기 진짜 어렵네요. 고래와 바다 혹은 스스로 등의 틀에서 확장시키질 못하겠어요 ㅠㅠㅠ 흠 그래도 생각해보자면..
2009.09.10 11:15:07
[계속해서 학습의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스스로에게 임무를 부여하는 우리는 cultural animator이다.]
[연결고리], [정체성], [자발적/스스로] 나는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니트족이라고 부를 수 없다. 참관만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이라고도 부를 수 없다. 통역을 해왔지만 통역만 하는 통역가로 부를수도 없다. 내가 만약 뛰어나게 디자인을 잘했어도 나 자신을 디자이너라고 하지 않았을것이다. 내가 통역가일 수 없는 이유는 나에게는 영어를 한글로 통역하는 일보다 사람을 만나고 서로로부터 배우는 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영역에서 각자의 학습지점을 공유하는 자리를 만듦으로서 현장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사람(cultural animator)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의 언어를 만들기 위해 나는 하자작업장학교를 다닌다. 우와 150자의 두배인 300자 하고도 56자가 더 들어가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09.09.10 11:21:28
'춤을 추고 있다.'
'춤' 고민하며 이야기하고, 만들어 내는 과정, 결과 혹은 그 행위/ 난 2001년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존재를 선언한 고래들이 있던 공간에서 춤을 추고 있다. 세상은 "그래서 너희가 뭘 하는데?"라며 궁금해 할 것이다. 나는 세상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여기 나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같은 세상 속에서 동시간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관찰하며 탐구하고 춤을 추고 있다고. 또한 나 홀로가 아닌 이 공간 속에서 함께 서로를 나누며 춤을 출 것이라고 말이다. � 밑에꺼는 내 위에 글이 다른 사람들과 너무 다른거 같아서, 그들과 맞게 아예 나에 대해서 써봤어. '나는 이래서' 나는 사회문제에 '관심과 고민만' 많은 청소년이었다. 때문에 항상 너무 골치가 아팠다. 도데체 땅은 왜 파는지, 왜 입을 막는지, 왜 쫓아내는지. 아니, 왜 그렇게 되는 걸 사람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는지. 왜 아빠는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오고, 가끔 얻어터지는지.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 분하고 이해 할 수가 없어서, 이것에 대해 파헤쳐 갔고 알게된 내용들을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말'을 넘어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 그래서 난 이제 막 디자인이라는 CARD를 꺼내들었다.
2009.09.10 11:41:09
<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리고 이 생각들을 표현 하고싶다. .>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지금 어떤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잡념이든 다른 무엇이 됐던 말이다. 하지만이것이 어느 한 부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듯 연관성을 찾아 끊임없이 생각한다. 난 하나의 무한궤도가 되어볼까 한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연관짓고 또 거기서 물고 늘어져 다른 생각에 퍼즐을 맞추고, 그리고 이것들을 표현할 것이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그것이 음악이든, 글이든, 행동 몸짓발짓이든. 계속해서 생각하고 표현할 것이다.
2009.09.10 11:59:20
[바다 속을 헤엄치며 다른 고래들과 함께 먹는 먹잇감은 '힘'이다. 혼자서는 많은 힘을 얻지 못한다. 서로 모여서 힘을 합치면 많은 '힘'을 먹을 수 있고 그 '힘'을 먹고나서는 힘을 얻어서 앞으로 더 헤엄쳐 나갈 수 있다. ]
나는 정말 내가 왜 고래인건지 의심조차하지 않았다. 고래이야기를 보고 나도 고래인 줄만 알았다. 아니 고래이구나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당연히 난 고래여야 하는 건줄 알았다. 어제 회의하기 전까지만 해도 '난 고래구나' 라고 했지만 어떤 고래인건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재주를 부리고 먹이는 구하지 않고 누군가에게서 받아먹는 쇼하는 고래인지 아님 바다 속을 헤엄치며 다른 고래들과 함께 먹이를 모아먹는 그런 고래인건지...내가 바라는 고래는 바다 속을 헤엄치며 다른 고래들과 함께 먹이를 모아 먹는 고래이다. 여기서 나오는 먹이란건 '힘' 이다. 같이 서로 모여서 먹이를 모아 먹어야 많은 힘들을 얻을 수 있고 채워진 힘으로 앞으로 더 헤엄쳐 갈 수 있듯이 우리도 서로에게 힘을 주고 받기도 하고 또 자기 스스로에게도 힘이란 먹이를 던져주면서 앞으로 더 헤엄쳐가는 고래이길 바란다.
2009.09.10 16:19:49
~에 의해 춤을 추는 ~가 나였으면 한다. 하지만 함께 하고 있는 각각 다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서 ~가 생겨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들과 서로의 꺼리를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에겐 나 스스로에게 접근하는 관심과 그 관심을 멈추지 않고 생각하고,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연습에서 사람들과의 다름을 통해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한다. <각각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 의해 자신의 꺼리들을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꺼리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지속적인 연습을 하고 싶다. >
2009.09.10 16:28:26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은 구별 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 누군가가 기대와 관심을 표현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함과 동시에 굉장히 견디기 힘든 일이다. 더욱 괴로운 일은 하고 싶은 일이 해야하는 일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하고 싶었던 일조차 해야 하는 일로 만들며 나를 유지했다. 흥미로 시작했지만 억지로 일을 끌고 나오는 과정에서 일을 그르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남들의 기대 속에서 움직이고 생각하는 틀을 깨고, 그것을 적절하게 내 안으로 끌어들여 보다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하고 싶으니 해야 하는 일"로 자연스럽게 연결 짓기를 기대한다.
2009.09.10 16:30:41
나는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디자인’이라는 매체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던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하고 싶은 얘기는 어떤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말을 걸어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로선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지만 내가 말한 춤에는 결심의 의미도 포함된 것이라 내 이야기를 꾸준히 풀어나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춤추게 하는 고래(나)는 다른 이도 춤출 수 있게끔 도와준다. 내가 피하지 않고 끝까지 춤을 추다 옆을 보았을 때, 모두가 춤을 추고 있다.)
2009.09.10 16:38:43
바다의 흐름에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선 꼬리와 지느러미를 움직여야 한다. 흐름에 휩쓸려 나를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나는 어떤 것을 바라며 부단히 움직이려고 하는 것일까? 예전에는 내가 할 프로젝트를 상상하면서 구상하는 일이 힘이 들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이 조금씩 감이 잡혀가는 것 같다. 나는 그 느낌을 잃지않고 더 확실하게 해줄 수 있는 근거들을 계속 찾고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움직여야 한다. 나에게 학습은 전에는 블럭쌓기였다. 어떤 모양을 만들지는 생각해 보지 않고 그냥 블럭을 쌓기만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떤 모양으로 블럭을 쌓을지 상상하며 블럭을 쌓아보았다가 아니면 다르게도 해보고 그러다 보면 무언가 하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만의 노하우도 터득하고 내가 원하는 그림도 점점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고 기대하며 움직인다.
2009.09.10 16:39:46
[고민과 걱정으로 나를 설명하려 하지 말자.]
나는 평상시에 '이렇게 되면 어쩌지?' 하며 "나"에 대해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하고, 또 고민과 걱정을 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지만 그것에 비해 지금 나한테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는 일은 적은 것 같다. 이제 나는 고민과 걱정으로만 나를 이야기하고 싶지도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걱정은 줄이고 생각을 많이하며 매 순간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내가 어떤 소리를 내며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한 물음을 가져가는 것, 그렇게 움직이고 싶다.
2009.09.10 17:12:49
[너로 인해 내가 춤을 추고, 그 춤이 또 다른 이를 춤추게 할 수 있었으면!]
어제 쓴 글에서의 주어는 ‘나’ 가 아니라 ‘우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주간의 우리가 했던 고민에 집중하다보니 나의 이야기보단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처음에는 주어 자체를 ‘우리’라고 쓴 문장들이었다.)
예전에 나는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출발하는 일인 줄만 알았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 움직이는 것이 모두 내 안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행동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님을 이젠 알 것 같다. 분명히 나를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 눈으로 들어온 광경, 너의 말, 누군가가 올려놓은 고민,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사건, 혹은 사람 그 자체가 나를 움직이게 한다. 분명히 나를 춤추‘게’ 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받아들여 고민함으로써 나는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춤추‘게’ 했다고 하여 똑같이 춤을 춘다면 그것은 춤이 아니라 고래 쇼다. 춤추게 했던 것은 출발이 되어야지 그것이 끝이 되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의 춤을 소화시켜 내 것으로 만든 내 춤을 추어야한다. 그렇게 나의 춤을 추다보면 또 그 춤으로 인해 누군가가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가 춤으로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한다. 그 연결이 나에겐 큰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것 같다.
나에게 춤이란 : 자신을 맴돌던 고민이나 생각 등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 안에서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또 표현하고 싶기 때문에 언어를 갖는 것. 사람에 따라 춤의 언어는 다양하고 안무역시 다양하다.
2009.09.10 22:07:06
지금 우리는 '춤' 을 추기 위해 리듬을 타고 있다. 그 춤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박수 받고 싶지만 단순히 묘기를 보여주고 받는 박수는 싫다. 그렇지만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으려고 했던 건 내가 하는 말들이 '나의 말' 이 아닌 것 같아서이다. 우리가 추려는, 추고 싶은 '춤' 은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다. 모든 작업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한 사람만에게라도 공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게 박수를 받는 게 아닐까.
2009.09.10 22:11:29
나는 말하고싶다. 내가 문제의식을 갖고 관찰한,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모두에게 들려줄 것이다.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나를 구성하고 있다. 추상적인가? 하나의 이야기: 지금 당장은 영화이다. 들려주고자 하는 이유는, 내가 가진 문제의식을 나만 갖고 속에 꽁꽁 감추고 있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나는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가진 생각을 들려주고, 그들도 나와 같이 생각해 '우리'가 되고 싶다. 내가 중심이 되어 쓴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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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한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
혼자 오롯이 공부하고 싶은 것도, 그저 외로움에 쩔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고, 내가 공부한 것들을 매개로 다른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다. 소모적인 대화만을 하던 일반학교 시절과 다르게 하면 할수록 즐거워지는 대화를 하고 싶다. 그런 대화를 하는 순간의 즐거움을 아니까.
내가 하는 얘기가 나만 할수 있는 얘기면 좋겠다는 건 너무 큰 바람일까. 나만 할 수 있는 얘기라는게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도 내 말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다. (진부하지만)내 언어를 갖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