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 된 것을 가지고 다시 한 번 각자 자신의 글들을 수정해서 내일 오전 10시까지 올려주세요.
가능한 최대 150자 내에서 해주길 바랍니다.

도로시
나는 정말 내가 왜 고래인건지 의심하지 않았다. 그냥 고래이야기를 보고 나도 고래인 줄만 알았다. 아니 고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 )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에서 빈 공간을 채울 때 날 '고래'라고 생각하고선 그 공간을 채웠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난고래야' 라고 했지만 어떤 고래인건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정말 쇼하는 고래인지 아님 바다 속을 헤엄치며 다른 고래들과 함께 먹이를 모아먹는 그런 고래인건지...하지만 분명한건 쇼만 하는 고래이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달곰
나의 목표는 영화를 한편 찍는 것이다. 영화를 찍으므로 내가 얻고 싶어 했던 것은 관객들의 즐거움, 그로인한 뿌듯함(?) 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나의 고민과 관념을 영화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 그 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박수 받고 싶지만 단순히 묘기를 보여주고 받는 박수는 싫다. 그렇지만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으려고 했던 건 내가 하는 말들이 '나의 말' 이 아닌 것 같아서이다. 우리가 추려는, 추고 싶은 '춤' 은 무엇일까.


나를 춤추게 하는 것은 누군가의 명령이나 조련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이였음 좋겠다!) 너로 인해 내가 춤을 추고, 그 춤이 또 다른 이를 춤추게 할 수 있었으면, 나는 누군가의 연구나 추측으로 고래가 여기 있음을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다. 고래는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춤추는 고래는 파도를 일으킨다.


 "춤" 고민하며 이야기하고 만들어 내는 과정 혹은 행위/ 2001년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존재를 선언한 고래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고래들의 존재를 모르는 척 하던 세상은 이젠 이런 궁금증을 품고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고래라면, 세상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여기 나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나와 함께 있는 이들과 각자의 춤추는 방법으로 춤을 추며 세상 속에서 그 세상의 이야기를 읽고 쓰며 아파하고 기뻐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에이스
나는 나의 이야기가 뭔지 알고 찾아야 할 것 같다. 나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아야 나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홍조
내게 누군가가 기대와 관심을 표현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함과 동시에 굉장히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의 기대나, 희망, 목표를 말하는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기도 했다.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나를 평가의 눈으로 재고 따지는 것 같아서 힘들고 싫었다. 하지만 그전에 내가 먼저 나를 남의 눈을 빌어 재고 따지는 것이 아닐까 고민됐다. 
그래도 이러한 고민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하고 싶었던 일조차 해야 하는 일로 만들며 나를 지탱했다. 흥미로 시작했지만 억지로 일을 끌고 나오는 게 다반사였다. 이제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나를 지탱한다기 보다 홀로 설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피 
나는 항상 바랐다. "어린 마음"을 유지하기를. 몸이 나이가 먹는다 해도 자그마한 동심과 순수함이라도 남기고 싶다. 주어가 내가 되어 하고 싶은 말을 계속 하고 싶다. 성실하고 진실 되게 자식이 생긴다면 부끄럽지 않게.

상상
 나다운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들이 하는 말이나 그때그때의 분위기에 휩쓸려 주눅 들지 않고 무엇이든지 나답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것을 쪽팔려하는 오점을 없애고 싶다.

리사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니트족처럼 집에서 자유롭게 생활을 할 수도 있고, 일반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을 듣는척만하며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허나 우리는 왜 굳이 하고 싶은 일도 하며 해야 하는 일도 하는 하자작업장학교를 다니는 것일까? 난 cultural animator가 되기 위해 작업장학교를 다닌다. 변호사, 경찰, 교사와 달리 cultural animator는 직업이 아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며 나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임무는 직업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내가 학습하고 싶은 것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슬봉
내가 나한테 없었던 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만들기 시작하면서 내 틀에 갇혀버린 것 같다. 그 틀을 하자에 와서 다시금 멈췄던 질문을 함으로써 깨어서 그 틀을 버리는 게 아니라 그 틀에 살을 덧입히고 틀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싶다.

두란
고래는 춤춘다. 자기의 언어로. 그렇게 자신을 알린다. 나는 춤춘다. 춤추려고 한다. 나를 알려야하는지 의심하면서. 뭔가 하나에 끈기 있게 집중하지 못하고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 '지금'을 보거나 생각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피하는 것을 끝까지 고민하면서 춤추고 앞으로도 추려고 한다.

구나
~것에 의해 춤춘다는 것이 나에게는 서로 다른 것들이 모였을 때, 그 각각의 다름을 기본으로 느끼는 것들의 움직임이 되기도 하고, 흘러가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소속감 없이 따라다니는 수동적인 움직임이 되기도 했다. ~에 의해서의 ~가 나 자신이 되어본 적은 많지 않다. 나의 몸짓과 소리를 갖기까지는 내 안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연결해 가고, 결론을 짓기 위함이 아닌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접근하는 관심이 중요한 것 같다.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고고 와 디디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끊임없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가지고 다음 날 자신이 들었던 질문을 상대방과 나누는 것이다. 내 이야기 혹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나누며 노래하고 악기를 치는 것 그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동녘
타협하지 않고 싶다. 원인은 무기력함과 관심없음. 생각을 '멈추는 것' 이 아닌 '놓는 것'. 그간 내가 가지고 있었고 하자의 약속에 의해 더욱 증폭된 '나이차별'에 대한 반발심이라던가, 입학 초기 '주니어가 되면...'하며 가지고 있었던 로망은 어디간걸까.
열의를 품은 것들, 나누고 싶은 것들에 대해 타협하며 그런 무기력함과 관심없음의 냉정으로 실망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지금 현재 하자에서 나 자신에게 바라는 것은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리고 이 생각들을 ( )로 표현하고 싶다. 무엇으로 표현하고 싶은지는 차차 알아갈 것이다.

무너
평상시에 "나"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내가 말을 할 때도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주어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나를 주의 깊게 생각해본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어떤 소리를 내며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어니
나의 존재를 그들이 알아차리길 원하지 않았다. 내가 내는 소리에 대답해올 말이 두려웠다. 그들이 나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나의 소리가 그들의 가청권 밖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아직 그들을 향해 나의 소리를 외치지 않은 것뿐이다. 그래서...

반야
나는 고래가 헤엄쳐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떨 때는 느리게 헤엄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세차게 헤엄치기도 한다. 어떤 방법이든 계속 꼬리와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헤엄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2001년의 고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밤비
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상처받게 하는 사람과 시선, 문화를 말하고 싶다. 나는 말하기 전 조사하고 정리하며 보다 많은 것을 알아가고, 나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치유한다. 내 얘길 들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우리는 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간다. 난 스스로 나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퓨니
나는 내가 십대라는 이유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학습을 하며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곳을 향해 가지 않아도 왜 우리가 모두 똑같은 곳을 향해 가야하는지 의문을 가져도 이 모든 것들이 제제당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목소리를 내었을 때 그 목소리가 들리기를 바란다.

어쓰
나는 많이 알고 싶다. 단편적인 지식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적다. 내가 관심 있는, 재밌어 보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그 말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말이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더 알고 싶다.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공감대가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의 기분 좋음을 더 느끼고 싶다.

무브
나는 결과 지형적인 사람이라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달려간다. 그렇기에 순간을 놓쳐 남은 것이 많지 않다. 나는 이런 행동과 달리 많이 나누고 싶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속없는 고집 부림도 그만 했으면 좋겠고 맥락을 이해하여 확고함을 드러내고 싶다. 또한 완성된 결과에
프레스티지함의 마무리는 없는지 생각 할 수 있는 섬세함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