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유영하는 고래들에겐 그들만의 ‘축제’가 있다. 겨울이 되면, 그들은 남반구를 향해 3개월을 헤엄쳐 만나 크릴새우를 즐기며 춤을 추고 잔치를 벌인다고 한다. 작업장학교는 지난 8년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계속해서 유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여기 모인 33마리의 고래들은 이제 다시 유영을 하러 여행의 경계에서 잔치를 벌인다.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하자작업장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는 이곳을 거쳐 가면 대단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입시지옥과 청년실업은 내 현실이 아니라며, 남들과는 다른 꿈을 꾸려 이곳에 왔건만 하자는 나에게 꿈만 꾸지 말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게 했다. 내 일상의 99%를 하자에서 보내면서 ‘죽돌’이라는 게 죽치고 앉아만 있는 것이 아닌, 하자에 죽치고 있지만 생각과 몸은 항상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잘되려고 이렇게 바삐 움직이는지 질문한 적도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인식’이 나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꿈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꿈꾸던, 그것과 지금의 나 사이에는 수많은 과정들이 있고, 계속해서 움직이며 그 과정들을 하나하나 부딪쳐 가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각자의 언어를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표현하고 움직이고 있음을 알려가며 이곳에서의 학습을 시작했다. 이때 화려한 스킬보다 중요한 건 ‘왜’라고 묻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핵심은 그 매체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가 아니라 어떤 얘기를 하기 위해 매체를 잡았느냐 인 것이다. 이것을 알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작업하고 동료를 만나고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설령 모르겠다 하더라도 놓아서 안 된다는 것 또한 안다.

가끔 우리가 죽치고 있는 하자는 환상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적북적하는 동네, 언제라도 누군가와 손잡고 작업을 벌릴 수 있는 공간. 하지만 적막한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어느 쪽이 현실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 시간 죽치고 있을수록, 안전한 하자 안에서만 안주하려고 하고 점 점 더 나라는 개인에 사로잡혀 내 매체를 나를 들여다보는 도구로만 쓰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매번 우리가 자화상을 그릴 수는 없고, 셀프 카메라를 찍을 수는 없다. 작업동료를 발견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본 것처럼, 공동 작업을 하기 위해 생각을 모았던 것처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매체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것 너머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가 살고 있는 공간과 환경을 둘러보는 시도도 했었다. 그렇게 관찰하게 되었을 때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얘기로 재구성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시선과 정체성은 뭔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무엇인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매체는 자신을 방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방 밖으로 끌어내어 세상과 현실을 바라보는 얘기를 하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내가 하자에서 해오던 것 일들, 맺어왔던 관계들을 나가는 동시에 버리고 간다면 이곳에서의 2년은 환상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이 지속해야 한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다.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은 구만리만큼 길다. 하지만 이 길도, 그것이 향한 꿈도, 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구만리의 여정을 시작하는 나는, 하자에서의 시간과 경험을 양손에 들고 한 발 한 발 정확히 걸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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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돌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