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중산층 아파트인 한강맨션아파트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주공은 장 총재의 구상에 따라 29억7200만원을 투입해 공급면적 89㎡(27평), 105㎡(32평), 122㎡(37평), 168㎡(51평), 188㎡(57평) 등 5개 주택형 24개동(관리동 포함), 총 660가구의 단지를 조성했다. 부지는 동부이촌동 공무원아파트 옆에 수자원개발공사가 매립한 한강 북변(北邊)을 골랐다. 평면설계는 우리나라 최초로 완전 입식 구조를 채택해 마포아파트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했다. 특히 침실과 부엌을 완벽하게 분리했고 중산층 아파트라는 점을 감안해 고급 자재를 사용했다. 건축 기술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많아 주공 기술진이 현장 직원들을 지도하면서 공사를 해야만 했다. 주공은 성공적인 분양을 위해 200만원을 들여 모델하우스(견본주택)를 짓고 800만원의 광고비를 사용했다. 아파트 본 공사를 하기도 전에 견본주택을 건립한 것은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에서 한강맨션아파트가 처음이다. 이런 '사적 의미' 때문이었는지 견본주택 기공식에는 국무총리까지 참석해 흥행을 도왔다. 그렇지만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반발과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서민 주택을 건립해야 할 주공이 중산층 아파트를 짓는 것은 본래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는 목소리가 거셌다. 이에 대해 장 총재는 '주택개량과 주거기능 향상의 선구적 역할도 주공의 임무 중 하나'라며 국민을 설득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견본주택과 분양 광고에도 불구하고 초기 입주가 저조했던 점이다. 면적이 큰 주택형은 분양을 끝냈지만 다른 평형은 신청자가 많지 않았다. 한강맨션아파트 준공에 앞서 일어난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로 인해 아파트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것도 초기 분양 실패의 원인이 됐다. 이런 비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주공은 분양 촉진비를 직원들에게 지급하면서 '아파트 판매'에 동원했다. 결국 이런 노력과 시간이 흐르면서 미분양은 해소됐다. 그리고 잇따라 건설된 반포와 잠실, 여의도, 압구정 현대 등 중산층 아파트의 선구적 모델을 제시했다. |
연세대 건축공학과에 재직하다가 지난해 47세를 일기로 작고한 장림종 교수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종암아파트를 찾았다. 재건축을 앞두고 아무도 살지 않는 유적과 같은 그곳에서 장 교수는 서울의 사라져가는 1세대 아파트의 역사를 추적할 결심을 했다. 이 책은 이후 10년에 걸친 추적과 연구의 기록이자 장 교수의 유작으로, 고인의 제자 박진희가 마무리지었다.
장 교수의 1세대 아파트 연구의 계기가 된 종암아파트는 1958년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다. 준공식에는 이승만 대통령 부부와 장관들이 참석했다. 건설 당시 금속 비계를 사용한 것은 물론, 동 배치나 실내 공간 디자인 측면에서 획기적이었으면서도, 안방의 단이 더 높아서 마루에 앉아 마당을 내려다보던 전통 건축 요소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30년에 지어진 충정아파트(준공 당시 도요다아파트 또는 한자를 그대로 읽어 풍전아파트)가 있다. 지하 1층 지상 4층에 연면적 1050평으로 반도호텔과 함께 대표적인 현대식 건물로 손꼽혔다. 도요다아파트에서 유림아파트를 거쳐 충정아파트로 바뀐 역사는 굴곡진 우리 현대사 그 자체다. 광복 직후 해외에서 귀국한 동포들이 무단 점유하기도 했으며, 북한군이 아파트 지하실에서 처형을 집행했는가 하면, 서울 수복 뒤에는 ‘트레머호텔’이라는 이름으로 유엔 전용 호텔이 됐다.
1961년에는 한국전쟁 때 아들 6형제가 모두 전사했다는 이유로 건국공로훈장을 받은 김병조에게 불하되어 코리아관광호텔이 되었지만, 6형제 전사가 사기극임이 드러났다. 오늘날의 충정아파트는 그 옆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초록색의 낡고 허름한 상가 건물 정도로 보일 뿐이다. 이 책은 개별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문학·영화·광고·그림 속 아파트에 관한 문화사적 이야기도 담고 있으니 근대 건축사이자 생활사·문화사를 겸하는 셈이다. 1세대 아파트 연구라는 ‘선각자적’ 연구 활동에 나섰던 고 장림종 교수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마땅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