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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글 수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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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3 02:13:50
Daw Aung San Suu Kyi meets students from South Korea http://www.nldburma.org/international-affairs/asean/215.html
2011.03.03 02:24:12
아웅산 수치 "청소년 활동 통해 민주화 운동 강화해야"최종수정 2011.03.02 11:18기사입력 2011.03.02 10:46 하자작업장학교 청소년 11명의 아웅산 수치 인터뷰 전문[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
우리는 최대한 많은 청소년들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가택연금 이후 저를 가장 놀라게한 사실 중 하나는 7년 전보다 훨씬 많은 청소년들이 버마 민주화를 위해 뛰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함께 하고 있고 예전보다 더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새로운 상황을 발판으로 민주화 운동을 강화해야 합니다.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지 20년이 더 지났고, 운동을 막 시작했을 때 청소년이었던 사람들은 이제 어른이 돼 투쟁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많은 아이디어와 제안, 지원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저는 이 나라에서 폭력을 원치 않습니다. 폭력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폭력은 나쁜 정치적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버마에서의 정치적 변화는 늘 폭력으로 이뤄져왔습니다. 군사 쿠데타는 정치를 바꾸는 폭력적인 방법입니다. 이미 너무 많은 유혈사태가 있었습니다. 저는 정지척 변화나 국가의 중대한 변화를 만드는 방법이 폭력이라는 생각을 없애고 싶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바탕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전통을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평화를 믿습니다. 우리는 함께 대화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입니다.
군사정권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단순히 대화를 하는 것도 버마에서는 아주 큰 문제입니다. 대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직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군사정권의 몇 몇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그 것이 진정한 협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협상은 해결이 필요한 진짜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인데 우리는 아직 이를 해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협상, 진정한 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민주화를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청소년들로 꾸려진 이 네트워크에는 많은 청소년 단체들과 개인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네트워크에 여러분이 함께 해준다면 저는 매우 기쁠 것입니다.
태국-버마 국경 난민촌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청소년들이 먼저 기성세대들과의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대화를 시작하는 것, 대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세대간의 대화, 군사정권과의 대화는 우리가 항상 요구해온 것입니다. 국경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또 말하고 싶습니다.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교육이 개인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교육에 대해 보다 넓은 견해를 가졌으면 합니다. 교육이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부자가 되기 위해 혹은 중요한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걸 도와주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저는 국경에 있는 청소년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많은 단체들과 NGO, 개인들이 도움을 줬으면 합니다. 그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합니다.
최악인 것은 지금 버마의 상황에서 민족 화합이 필요하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과 같아서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버마 내 민족 화합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나라를 운영하는 방법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을 한 데 모아내고 버마의 다양한 소수 민족들 사이의 화합을 이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메솟과 국경지역 곳곳에서 카렌족, 샨족 등 많은 소수민족 사람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소수민족들이 함께 모이기를 원합니다. 각기 다른 문화적 가치와 정체성을 가졌지만 안전하고 자유가 있는 나라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행복한 국가의 정의는 매우 단순합니다. 국가가 사람들에게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 나라가 행복한 나라입니다. 독재정권은 안보를 지킨다는 핑계로 사람들의 자유를 박탈합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서로를 죽여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유와 안전, 모두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든 소수 민족들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가는 데 함께 했으면 합니다.
한국의 청소년들도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뭘 도울 수 있을까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걸요'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모든 도움이 중요합니다. 시작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도우려는 의지, 변화를 향한 의지가 있다면 그걸로 이미 첫 걸음을 내딛은 셈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까? 당신들은 민주화를 절대로 이뤄내지 못할 것입니다. 군사정권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으며 당신들은 민주화를 절대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절대로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같은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의지와 인내심이 있다면 민주화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은 버마가 지금 매우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명확히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버마는 지금 어떤 길을 가야할지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우리 모두가 동참하는 민족 화합의 길입니다. 전세계가 이를 위해 함께 했으면 합니다. 우리와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버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갖고 버마 사람들의 염원을 이해하면서 함께 했으면 합니다. 우리는 기본권을 누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유롭고 안전하고 싶습니다.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달성하기는 어려운 목표입니다. 여러분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도움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2011년 2월7일 아웅산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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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솟의 일정에 이어 작업장학교로서는 처음 방문한 버마에 가서도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크리킨디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HIV 쉼터와 그곳을 설립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에 조용한 감동을 받았다. 퓨퓨땐 혹은 맙퓨라 불리는
이분은 마웅저선생님이 소개해주셔서 만날 수 있었다. 병원이 아닌 쉼터는 처음엔 자원봉사자를 위한 트레이닝 센터였다고 한다. 그러다 갈 곳이 없는 환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면서 쉼터로 바뀌게 된 것이라고 했다. 2001년, 아웅 산 수치 여사와 함께
시작한 이 쉼터는 여러 가지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멈추지 않고 해결방안을 찾아 가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편하고 평범한 인생을 살 수도 있었는데, 어째서 힘든 길을 선택해 HIV Shelter를 만들기로 결정했냐는
나의 질문에 퓨퓨땐은‘이 병에 대해 처음 듣고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내 또래의 사람들이 병 때문에 일도 못하고
죽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고, 내가 많이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과 주변사람들 모두 그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오래 하지 못할 일이라며 반대했지만, 전 아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만큼 도움 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처음엔 힘들었지만 상황은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그리고 또 젊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병 걸리면 미래가 없어지는 거예요. 나라를 생각해서라도 꼭 시작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어요’라고
답했다. 퓨퓨땐의 결심과 지속적인 노력은 아웅 산 수치 여사는 물론 NLD내부에서도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퓨퓨땐이 우리를
위해 수치 여사와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마도 수치 여사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서새롬
난민캠프에서는 주로 그곳 청소년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청취하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자고 의논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곳 청소년들은 주로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 국경을 넘기 전 버마 안에서 겪었던 경험, 졸업 후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얼굴이 노출되면 행여나 버마 안에 있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염려하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며 뒷모습으로 인터뷰 했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이곳에 있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버마에 있었을 때 몰랐던 현실을 이곳에서 와서, 또는 학교에 다니면서 직시하고 사실을 알았을 때, 자신에게는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들은 무척 버마를,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했지만 지금은 돌아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friendship bridge라고 이름붙여진 국경다리에서 우리는 메솟의 버마 청소년들을 대신해서 우리가 국경을 넘자, 버마로 가는 거다.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마침내, 여행 초반에, 몸이 안 좋으셔서 못 만날 수도 있다던 아웅 산 수치 여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2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메솟에서 얼마나 익숙하게 듣고 보았던 ‘아웅 산 수치’이었겠습니까. 어색한 소개와 질문이 오가는 시간도 잠시, 우리는 차분히 메솟에서 본 것과 느낀 것, 청소년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네 차례의 메솟여행을 기록했던 영상들도 건네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웅 산 수치 여사에게 메솟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습니다. 아웅 산 수치 여사의 말씀들을 듣고 기록하면서, 사실 내가 매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하고 있었구나, 화려한 테크닉으로 표현해야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진심을 전달해주는 메신저이고 소통의 도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까지, 그저 해왔으니 해야 하는 작업을 한다가 아니라, 전달해야하는 고유의 메시지를 스토리와 감동이 있게 연출하고 구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촬영한 것을 다시보고, 토대로 뼈대 만들어보고 살도 입혔다가 한 줄로 압축해보며, 긴 여정동안 보고,
듣고, 카메라로 담았던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으면 한다고 생각해봅니다.
전민혁
이번 여행을 하면서 긴장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아웅 산 수치 여사를 만났던 그 시간에는 내내 식은땀이 났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을 오기 전에 영화나 사전조사를 하면서 아웅 산 수치 여사의 이름이 많이 거론 되고 더 큰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인 것 같다. 아웅 산 수치 여사와 이야기하면서 느낀 것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영어로 대화를 해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지만, 우리가 말할 때 집중해서 들어주고 항상 준비되 있는 것처럼 질문을 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 간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을 절대 위나 아래로 흘리지 않고 우리와 eye contact를 했다. 초,중학교때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리더십을 가지려면 필요한 자세가 있다. 그 이야기에서 들었던 내용들이 아웅 산 수치 여사의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는 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