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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 ...............................................3학기, 공연음악팀, 푸른(이연주) 1. 솔직하게 적어보는 작업장학교에서의 공부 나는 조금 초조했었고, 불안했었다. 3학기가 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 말고도 벌써 18살이 되어버렸다는 것에 대해, 곧 스무살이 된다는 사실에 대해 막연한 걱정을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 스무살은 성인이 된다는 것이고, 경제적인 책임감 또한 가지게 되는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이 허공에 붕 떠있는 나를 현실로 조금씩 내려앉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가 있는 장소, 작업장학교에 대해 생각하게 되며 내가 하는 공부가 나를 먹여살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하는 걱정이 들면서 지금 하는 공부들과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현실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의심해보고, 스스로의 말을 점검해보아야 겠다 는 마음이 들었다.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후 학교에서는 나비문명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로 던져졌고, 다른 방식의 삶, 다른 문명을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이번 학기부터는 그런 대안적 삶의 방식에 대한 실질적인 실험과 공부들이 조금씩 시작 되었던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막연하고, 심지어 잠깐 생각났다가 또 다시 사라지는 걱정들을 하고 있을 무렵 자공공포럼1을 듣게 되었고, 후지무라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3만엔 비즈니스와 마을, 커뮤니티 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질문이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는 질문으로 연결되게 되었다. 그렇다고 막연한 걱정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긍정적으로 상상해 해볼 수 있는 방법, 실마리를 알려주신 시간이었다. 한 편으로는 판을 벌일 수 있는 하자라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과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사실, 두려움과 걱정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것에 대조되는 바램이 있어야 마땅한 것인데 정작 나는 그래서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좋아하는 것은 점점 사라지고, 싫어하는 것만 늘어나는 답답한 모습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기도 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소원리본에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생기게 해달라고 적었을까! 어쨌든, 상상을 해보았을 때 마치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같은 뻔하게 느껴지는 상상만이 들었고, 이것도 사실은 대안학교를 다니며 자연과 생명 같은 키워드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다른 상상의 길이 막혀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기발한 상상이나 방안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이래저래 불만과 걱정은 많지만 그렇다고 원하는 것을 똑바로 말할 수 도,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면서 여러 가지의 일들을 함께 상상해 보아야 완성되는 그림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뻔하게 느껴지는 상상이라도 자공공마을( 스스로를 사랑하고, 친구들과 함께 일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만들어가는 마을)이라는 키워드를 접하게 되고, 미래를 걱정뿐만이 아니라 바램으로 채워갈 수 도 있을 거라는 마인드를 접하게 된 건 꽤 괜찮은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학기 안에서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으려고 했던 생각도 바로 이런 식으로, 공부들을 하나의 소스라고 생각을 하고 나비문명 혹은 나의 상상의 마을에 넣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전체적으로 그렇게 학교의 공부가 지향하는 방향을 이해할 수 있었고,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나의 미래에 대한 연결로도 학교가 하나의 조그마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번학기에 시작한 현미네홉 프로젝트도 그런 소스 중의 하나였다. 지난 학기 나비문명에 관한 페차쿠차를 했을 때에도 많이 나왔던 “자급자족”에 대한 실험이었고, 그 자급자족이 지금의 도시생활과는 어떻게 연관되어 정의될 수 있는지 조금 맛보는 정도의 공부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맛보기 이었나 하면, 주도적인 공부가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밭을 돌보고,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듣고, 강화도와 인천에 짧은 현장학습을 다녀왔지만 농사에 관한 지식이나 관련 소식을 주의깊게 살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실험이라는 단어에 집중하지 못하고 농사를 주도적으로 짓지 못했던 것도 아쉬운 부분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일정부분 새롭게 생각하게된 것들도 있고, 나비문명이라는 것에 맞추어 생각을 진전시킬 수 있었던 것도 분명히 있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밭을 돌본다는게 무엇일지, 농부로서 작물이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어떤 마음인지 궁금해 하기도 했고, 실제로 농사를 지으며 계속 커가는 작물들을 유심히 관찰해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영상을 보며 현재 시골에서의 농사나 도시농업, 먹거리에 관한 이야기를 보게 되었고, 농사가 우리의 삶에 어디까지,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귀농에 대한 환상을 품은 젊은이의 모습을 하기 전에 농사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현재의 농촌 상황이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할 만큼 좋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었다. 이런 생각과 수업시간이 구체적인 정보를 만나 살이 붙고, 계속 이어져나가지 못했던 점이 아쉽게 느껸지다. 그래서 이번 현미네홉 프로젝트는 맛보기였던 것 같다고 씁쓸한 마음으로 말해야 할 것 같다. 생각만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럼 앞으로 현미네홉 프로젝트를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우선 앞서 말했듯이 일단은 능동적인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각자 농사를 하며 집중을 하는 부분들 (예를 들면 먹거리, 동,식물들과의 교감, 공동체 등등) 이 생겼으면 좋겠고, 그렇게 집중이 되어야 어떠한 것들이 더 필요하고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의지가 생길 것 같다. 그런 의지를 조금 더 나타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간다는 기분이 들 것 같다. 그리고 그 공부를 하기 위한 시간이나 환경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 현미네홉에 대한 자각, 공부가 부족했다는 부분도 인정하지만 학교의 일정, 분위기도 현미네홉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는 것에 동의한다. 우리는 조금 무책임했다. 작업장학교의 프로젝트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시간들이 많았다. 일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자각하고, 문제가 있다면 공유를 해서 풀어가야 한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다음학기에는 농사를 짓고 수확을 했을 때 나오는 먹거리들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더 공부해 보고 싶다. 수요와 공급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고, 그 수확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수확한 먹거리를 어떻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지 배워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지금은 쌈, 채소류를 간단하게 씻어서 그냥 하자마을사람들과 나누고 있는데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만 같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일상이나 소소한 파티들이 조금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해 초, 강정마을에 관한 기사를 보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하게 되었다. “발파를 저지하려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해군기지 반대 활동가들이 차량으로 교량과 도로를 막고 일부 주민은 쇠사슬을 몸에 두르고 강력히 저항했지만 공권력에 의해 허물어졌다” 강정마을에서 구럼비발파 진행이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사들이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영상들을 보며 조금씩 관심을 가졌었다. 왠지 그런 사회적인 일에 관심을 가져야 될 것 같은 약간의 압박과 스스로에게 그런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을 때 였기도 하다. 소식을 들으며 지난여름 다녀왔던 그 마을의 모습과 아름다운 바다, 하늘이 떠올랐고, 또 영상으로 보게 되는 경찰들과 주민들 간의 마찰도 인상깊게 다가왔었다. 특히 길을 가로막고 있는 우리 오빠 또래의 경찰들에게 엄마 나이대의 아주머니들이 우시면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는 장면은 머릿속에 스캔이 된 것처럼 한동안 떠나가지를 않았다. 사실 그때 영상을 보며 왠지 심각해져서 괜히 혼자 집에서 울기도 했었다. 논리적인 사실파악과 책임감을 가지기 전에 이런 대책없는 감성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하나의 문제 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서도 하여튼, 그러했던 상태에서 “공권력에 의해 허물어졌다”라고 말하는 뉴스기사는 이것이 녹색당이 말하는 정치의 필요성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공연을 위해 녹색당 창당대회에 다녀온 후로 정치가 무엇일까? 녹색당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걸까? 하는 물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강정마을 소식을 접하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조금 이해되기도 하고, 와닿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밀양 송전탑문제와 학교에서 접하게 되는 이야기들을 듣게되며 계속 떠오르게 됬다. 나는 아직 녹색당원이 아니다. 창당대회에 갔을 때에도 자주 접하게 되는 이야기들이라 호기심을 가졌지만 차마 당원신청서를 내지는 못했었다. 따로 소득이 없는 나에게 “당비”라는 것에 대한 어색함과 정치적 입장을 가진 당에 소속된다는 것이 준비가 조금 더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었었다. 지금도 그들의 이야기가 더 와닿을 때 까지, 내가 준비가 될 때까지 녹색당원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어쩌면 서로의 준비를 기다릴 만큼의 여유가 우리의 현실에 없을 수 도 있지만, 앞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접하게 되고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녹색당, 정치에 관한 생각이 계속 떠오르게 될 것 같다. 학교에서 이야기하는 핵과 핵발전소, 버_마의 난민문제, 여러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말 와닿는가? 라고 물어본다면 사실 나는 아니요.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정말 탈핵이 필요한지, 나와 저 먼 나라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이 어떻게 연관 되어있는 것인지, 바깥세상의 일을 정말 나의 일처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진실로는 확신 할 수 없다. 언제는 “너무 피곤한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그들의 이야기로 나의 방향을 맞춰보는 것이 힘들고, 귀찮고, 와닿지 않아 부질없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스스로 느끼기에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았고 혹은 공부를 그저 흥미로운 하나의 이론, 반응, 통계, 모습으로만 보고 그쳐버렸던 것 같다. 사실 이런 나의 상황을 깨닫는데도 1년 반 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작업장학교에서의 1년이 긴장되어 있고, 나의 개인적인 마음보다는 일단 보고, 듣고, 적고, 말했다면 2년차를 보내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는 내가 정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이번학기에 나에게 요구되는 포지셔닝의 변환은 관찰자에서 주체자로서 조금 더 많은 소리를 내보고, 경험을 해보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만한 충분한 의지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스스로에게도, 모두에게도 답답한 시간을 보냈었다. “왜 나는 지금보다 더 행동할 수 없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고, 생각 끝에 내 마음이 이만큼까지 와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먼저 나서서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큼 공감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공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공부를 중단해야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일 수 있지만 거짓말 하지 않고, 내가 공감하고 있는 부분까지만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작업장학교에 계속 머물며 또 다른 계기와 생각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내 공감의 크기가 넓어질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체라고 생각하며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하는 공부가 의미 없는 것이라고 여기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이제야 겨우 내 마음과 말을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초조하지만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이제야 제대로 된 길을 밟아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2. 사람과 시대를 이야기하는 문학 “문학” 하면 떠오르는 헤밍웨이나 세익스피어와 친하지도 않고, 한국의 책들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다. 생각해보면 문학이라는 말이 생소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번 학기에 문명의 전환기를 타이틀로한 영상인문학강의를 듣고, 고정희 추모기행에도 다녀오며 문학이 어 떤 것인지 나름 이야기해볼 수 있게 되었다. 영상인문학강의에서는 주로 역사적인 사실들과 그것을 문학이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문학이라는 것이 시대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바램, 삶까지 상상해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쟁을 겪은 후 슬픈 현실적인 사실에 대한 바램을 허구로 덧붙여 소설로, 극으로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것이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함으로서 치유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나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왔었다. 1년 전의 영상인문학강의 때에도 그랬지만, 쉽게 접하는 매체들을 그냥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를 넘어 스토리가 있고, 생각을 해볼 수 있는 하나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 흥미롭고 즐겁게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의 매체를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지금 사람들이 열광하는 드라마나 소설은 그저 다른 세계에 대한 환상이라는 생각이 내 안에 있었는데, 어쩌면 그런 작품들 또한 지금 사람들의 바램이나 마음이 담겨져 있을거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우리는 모두 가난하지만 정의로운 사람을 원하고, 돈 많은 연상연하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길 바라는 걸까? 언제나 사람들이 스스로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가장 가까운 생활의 한 모습에 예술이 있구나 하는 것 또한 다시 확인해본다. 고정희라는 시인도 시를 통해서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그 시대를,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던 시인이라고 한다. 올해 떠났던 “고정희추모기행”에서는 그녀의 시를 작년보다 조금 더 많이 읽을 수 있었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까지 조금 들을 수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을 수 록 학교에서 왜 그녀를 그토록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우리의 매체가 지향하는 길과 그녀가 거의 같은 길을 걸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시나 작품말고도 시대를 이야기하는 현실적인 문학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의 나는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연시가 더 좋고, 감정의 늪으로 향하게 하는 그런 작품들에 더 익숙하다.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는 감각이 부족하고,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거기까지여서 일까? 지금으로서는 시 또한 표현의 도구가 될 수 있고, 문학이라는 것이 세상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기록해주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을 기억해본다. 3. 작업장학교의 매체작업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우리의 어긋남 지금의 작업장학교를 소개하는 말에 꼭 들어가는 것이 두가지 있다면 첫째로는 3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두 번째로는 3개의 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지금의 작업장학교에서 매체작업은 매우 중요한 것이 되어있다. 내가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작업장학교에서 보내며 정의하게된 “매체”는 소통의 도구라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매체는 그 매체가 가지고 있는 테크닉에 대한 우월성보다 하려하고자 하는 말, 즉 목적을 얼만큼 잘 이해하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가기위한 공간도 아니며 그래서 쓸데없이 서로 경쟁하기 위한 공간도 아니고, 우리가 해보려고자 하는 “나비문명”이라는 공부가 있기에 매체작업 또한 그 공부를 전달하고자 하는 수단이라는 것이 내가 가지게 된 결론이다. 하지만 언제부터, 도대체 왜 이었을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었던 매체에 대한 태도는 목적에 대한 사유나 이해보다는 테크닉에 더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훈련도 정말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그런 도움을 받기 위해 매주 워크숍수업을 듣고, 그 워크숍에서 나오는 과제들을 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 과정에서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첫째로는 나를 비롯한 죽돌들이 스스로를 무능력한 학생으로 포지셔닝 했다는 것이다. 배울 때의 겸손한 자세는 물론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겸손해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니까. 하지만 스스로를 주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치 강사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과제를 해간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나, 그런 타인의 코멘트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과도한 자책을 하는 것은 겸손도 아니고 배움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어느 부분보다 주체로서의 자각과 자신감, 책임감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매체이다. 스스로 선택했고, 그 작업이 작업장학교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둘째로는 위와 같은 포지셔닝을 죽돌들 스스로 만들어낸 부분도 있지만 워크숍 강사들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공연음악팀을 하며 페스테자에게 워크숍을 받았었는데, 브라질 악기를 익히고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과 연습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팀으로서 공연에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힘쓰지 않으면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조건 또한 있었다. 하지만 그 연습을 해가는 과정에서 언제부턴가 페스테자에게 연습을 몇시간 했냐는 질문을 받게 되고, 코멘트들 또한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었다. 페스테자 입장에서는 바쁜 학교의 일정사이에서 아직 마음 붙이지 못하고, 제대로 연습해오지 않아 버벅거리는 죽돌들이 답답했을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력을 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했을 수 도 있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감시당하는 기분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의 평가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지난 학기부터 우리 사이에서 많이 쓰였던 “까였다”라는 말은 강사들의 코멘트가 어떠하였고, 그 코멘트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가 어떠하였는지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실력을 나무라기 위해 일부러 분위기를 잡는다고 느껴질 때면 공포와 우울과 자책 같은 여러 기분 나쁜 감정들을 느꼈고, 그렇게 까이지 않기 위해 연습을 해가는 것이 반복이었던 나날들도 있었다. 한 번 각인된 그들의 모습과 태도는 나에게 워크숍시간을 충분히 두려운 시간, 싫은 시간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스스로를 무능력한 학생으로 포지셔닝 했던 것 만큼 그들을 강압적인 선배나 꼰대강사로 포지셔닝 했을 수 도 있다는 생각 또한 든다. 어쩌면 미숙한 나의 잘못이 클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이렇듯 우리가 서로에게 주는 영향과 가지고 있는 태도가 많이 꼬여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 워크숍강사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그들이 그저 일주일에 한, 두 번 와서 매체에 대한 스킬을 알려주고 떠나는 타인이 아니라 학교에서 하는 공부에 공감을 한 사람들이고, 함께 일을 해보며 여러 가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동료로서 인식이 되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매체를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배워나갈 것인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 또한 하게 된다. 평가와 감시받는다는 것에 대한 압박, 매체에 대한 부담, 동기부여 없는 브라질 음악 등 이러한 것들로 오는 자책과 우울한 마음이 커져 한동안 나는 패닉상태가 되었었다. 몸도 마음도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태로 되돌리기 힘들었고, 무기력함과 분노로 자주 잠들지 못했었다. 일단 멈춰야 겠다는, 멈추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간절함이 생겼고, 나는 5월즈음부터 공연팀활동을 모두 쉬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나는 워크숍을 위한 연습을 하기 싫었고, 점점 지쳐갔지만 스스로가 나약해서 이런 것이고, 연습을 하기 싫다는 마음이나 워크숍이 싫다는 마음은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마음 또한 가지고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버티듯이 지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공연팀을 쉬게되는 시점을 계기로 나는 더 솔직해져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스스로를 너무 탓하고 있진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내가 느끼는 바와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원래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요즈음의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도 명확히 알 것 같았다. 사실, 지금도 나는 페스테자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학기마무리 쇼하자에서 별과 신상, 1학기 공연팀 멤버들과 만들었던 무대도 나중에는 조금 힘든 마음으로 올렸었다. 명확히 어딘가를 향하는 이런 마음이 잘못된 것이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도 나의 상태는 이렇듯 아프고, 초라하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문제들이 수면위로 올라오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나도 어디에선가 시작은 다시 해야겠기에 쇼하자에서 했던 것처럼 파고지무대정도는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바투카다에서의 춤은 계속 춰보고 싶다. 별과 신상과 했던 무대가 개인적으로는 즐거웠던 경험이라서 또 다른 허무한 환상을 품고 있을 수 도 있지만, 파고지라면 브라질 음악에 다시 다가가는 것도 괜찮게 갈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마음 낼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워크숍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이며 나는 팀 내에서 어떤 포지셔닝을 가지게 되는 것인지 하는 복잡한 문제들이 떠오르지만 일단 지금의 내가 얼만큼 하고 싶고, 할 수 있는지 물어본다면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학기를 마무리하는 것이 이렇게 무거웠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공연음악팀이 하고 싶은 것에서 해야만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며 왔던 혼란과 결국 쉬게 되었던 경험은 내가 마음이 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좋고 싫음을 재빠르게 판단해서 밀어내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이 에세이에서 파고지를 다시 언급한 것은 어쩌면 내가 이 미적지근함을 견뎌야 하는 과정이 될 수 도 있고, 일부러 꿋꿋이 호의적인 척 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 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직도 혼란스럽고, 어긋나 있는 것은 지금의 나로서는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는 부분도 있다. 다시 문제를 건드리고 싶어질 만큼의 에너지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내가 무미건조하고 미적지근이라고 말하는 상태를 계속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정직하게 어긋남을 말해야 어디가 되었든 지금의 상황에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크게 배웠다. 개인적인 좋고, 싫음을 떠나 내가 쓸모가 될 수 있는 곳에 가서 할 수 있는 만큼 일한다는 마인드를 가져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공연음악팀을 쉬면서 나는 춤에대한 생각도 다시 조심스럽게 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순간마다 춤이 떠올라 매번 춤으로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이니 해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러모로 지쳤기 때문에 사실 깊게 고민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작업장학교에서의 춤은 오도리 말고도 지구를 위한 한 시간을 위해 로자라는 분께 “기도하는 몸짓”을 배워서 췄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춤이 작업장학교의 일과 연결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었다. 그 후로 생각이 크게 진척이 된 것은 아니지만 춤 또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그 후 공연팀을 쉬며 춤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볼 무렵 녹색당선언 이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관계는 개개인이 풀어야할 몫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일을 도와주는 상담, 심리치료 등이 전환마을에는 필요하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춤이 생각이 났다.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는 춤은 분명히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춤을 췄을 때, 몸을 움직였을 때 나는 명상을 하는 것처럼 한 곳에만 집중하게 되거나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게 되고, 그 후 컨디션은 춤을 추기 전보다 훨씬 좋아진다. 그래서 나는 사실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에서 오는 에너지가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특성이 만약 나비문명으로 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이라면 춤이 그 역할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을 안에서의 춤 또한 조금씩 상상해보게 되었다. 나비문명때 즈음의 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긴 연습의 시간과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여 특정한 모습을 하게되는 무용, 힙합 뭐 이런 종류가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춤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움직임을 억압당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가브리엘 로스의 말처럼 엉덩이를 마음껏 흔들 수 있는 (꼭 엉덩이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몸을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춤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고, 기대해보려 한다. 4. 소통에 대하여 작업장학교에서 춤을 춘다고 했을 때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그 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도리를 담당해오며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혼자 자신이 좋아하는 춤을 추는 것과 그 춤을 나누는 것은 확연히 다른 것이다. 이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사람을 만나 나누는 것은 나에게 마음내기 힘든 일이다. 사실 나는 누군가를 보살피고, 기다려주는 것을 별로 하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이런 마음은 작업장학교에서의 작업을 할 때 내가 조금 더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배울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벽이 되었었다. 우리의 공부에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먼저 다가가 안내를 해주고 대화를 이끌었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나의 이런 태도는 조용히 내 속에서 학교와 부딪히는 부분이었다. 이번 “고정희추모기행”때에도 쿠로코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나왔지만 나는 청소년참가자들에게 다가가기 보다 멀찍이 서있었고, 오히려 다른 죽돌들이 함께 논다는 분위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꽤 당황스러워 했었다. 문학을 하는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죽돌들의 리뷰를 듣고 나서야 행사를 만들어가는 한 역할로써의 마인드도 중요하지만 무대에 있던 참가자들과 만나는 것이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중요했을 수 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여수 국제 청소년 축제를 경험했고, 그동안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기에 진행안내나 형식적인 말투로 말을 걸고 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어렵거나 어색한 일이 아니게 된 것 같은데 약간은 일회용 적이고, 일적인 만남 말고 조금 가볍게 다가가 대화를 하고, 웃고 떠드는 것은 참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그것이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제대로 학교에서 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가끔은 진심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스태프로서의 긴장감을 가지고 참가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스마트한 모습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통, 대화 이런 키워드는 일상적인 우리의 모습에서도 많이 필요한 것이었다. 310공동행동을 위해 처음으로 지금의 1,2,3학기끼리 진행되었던 회의에서 나는 어색함과 이전과는 다른 답답함을 느꼈었는데, 예전과는 달리 “언제 말을 꺼내야 할까” 하는 눈치를 볼만큼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조율되고, 정리되지 못했었다. 여러 시행착오들이 있었고, 그런 것들을 전체가 대화로 풀어가는 것 그리고 그렇게 정리되면서 하나의 상상을 같이 해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오도리를 진행했을 때에도 가지고 있었던 공동의 작업, 공동의 감각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보기 시작했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맡게 된 작업이라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던 혹은 이해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공동의 작업과 감각에 대한 필요성이 그 작업에서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히옥스께서 우리에게 여러 번 하셨던 코멘트 중 일상 속에서 학교공부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셨었는데, 이번 학기에는 그것이 소통에 관한 팁이었고, 그 소통이 전체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현미네홉 프로젝트만 해도 밭마다 담당멤버들이 있고,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정보나 코멘트들이 오고갔어야 하는 프로젝트 이었지만, 밭일에 대한 호기심이나 걱정이 생겨도 그것이 서로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만의 생각으로 그쳤었던 것 같다. 각자 밭 안에서의 소통도, 그 소통에 대한 의지도 모두 부족했던 것 같고, 전체적인 죽돌들 안에서의 소통 또한 부재상태였던 것 같다. 흙으로 프로젝트도 중간중간에 점검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 또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또 가끔은 104호의 뒷정리가 안되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거나, 늘 하는 사람만 아침에 수확한 것을 점심 때 식당 앞에 꺼내놓을 때면 많은 답답함을 느꼈었다. 그때는 답답하고, 화가 나는 마음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작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혼자 속으로 체념했던 나도 절대 잘했다고 평가할 수 없는 것 같다. 왜 나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을까? 스스로가 강압적인 선배 따위로 보일까봐 입을 다문적도 많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일을 벌일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그래서 정확하게 코멘트를 하기보다는 무관심한 척 하거나 체념했던 적이 많다. 이런 시간들을 보내며 소통에 관한 강의나 이야기들이 더 내게 다가왔고, 내가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불신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의 나는 친절하거나 따뜻한 느낌보다는 부정적이고 차가운 시선으로 외부를 바라보고 있다. 학교에 들어오기 전부터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건 곧 세상에 혼자서도 꿋꿋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래서 1년동안 가지고 있던 시가 굳셀 시였다. 그런데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은 그 마음이 사실은 타인을 적으로 여기고, 그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방어라는 것이다. 정말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 사실은 “아무도 믿을 수 없어” 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았던건 아닐까. 이런 마음은 일상에서의 내 모습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건 내가 시간약속을 어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 부분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공적인 약속에 지각을 하는 것을 조금 많이 싫어한다. 영화관에 늦게 들어가는 것 같은 경우도 싫어하는데 왜냐하면 그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를 비난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것이고, 그것은 마치 내가 그 사람에게 진 것처럼 느끼게 한다. 이처럼 가끔 나는 내가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건 학교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상당한 경계를 스스로 긋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 스스로가 넘을 수 없고, 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경계가 있지만 그만큼 소통의 필요성을 느끼며 답답해 했었고, 그 중요함 또한 한편으로는 실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고민의 중심이었던 공연음악팀의 활동을 쉬게 되고, 여러 생각들을 해보며 나 또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상적인 우리들의 이야기 중 대부분은 옆에서 보면 시시껄렁한 잡담일 때가 많다.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관심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을 유지하는 편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공통점이 참 없구나 하는 걸 느끼기도 했었고, 대화가 적은 날도 꽤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더 가까워져 보려고 나름의 노력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러면서 서로 동화되기도 하고, 여자들만의 특유한 문화가 만들어져 버렸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어떤 방법으로, 어떤 계기를 통해 서로 가까워지고 대화가 이루어 져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문화를 어떤 그림으로 그려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이다. 막상, 다시 학기가 시작된다면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떻게 다가가야 더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 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소통이 곧 관계와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라 생각이 되어 그 상황에 직접 부딪혀보기 전까진 잘 예상할 수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당장, 학교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나에게 타인이었던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서지 못하더라도 가지고 있던 경계심이나 냉소적인 반응은 지워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비록 마음을 열 자신과 의지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있고, 그 경계를 당장 지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에게도 곁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하고,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한 학기동안 나는 정말 아팠다. 그리고 열심히 앓았던 것 같다. 돌아보면, 그 것이 어쩌면 당연히 아프고, 문제를 느꼈어야 했던 부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열심히 아프고 난 후로 똑바로 나의 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다시 내가 정말 어디까지 와있는지, 얼만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었다.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생활에서 앞으로 내가 중심을 잡을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것이 외부로 향하는 문을 다시 닫아버린 걸 수 도 있지만 나름 중요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고, 그 시간들이 나를 조금 더 당당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이번 학기 에세이의 제목을 “성장통”으로 지으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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