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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 다른 배움이 아닌 이어지는 배움 ...............................................1학기, 공연음악팀, 까르(조채윤) 절대 안 올 것 같던 고1이 되고, 나는 9년 동안 다니던 볍씨를 졸업하게 된다. 졸업한다는 것이 볍씨와 영원히 say good bye는 아니지만 볍씨세계에서 조금 방향을 틀어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배움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자에 오고 지내다보니 ‘와~ 졸업했어, 이제 끝’ 하고 다른 걸 찾기보다는 ‘자, 이제 내가 배운 것을 어떻게 더 넓힐까’ 라고 고민하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1학기를 마치는 시점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하자 어떠냐고 물어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는데 저에게는 아주 좋은 학교예요.”라고 답한다. 하자는 볍씨에서 자연스럽게 생활로 익힌 생태, 평화 함께 살기를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공부하고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무언가 배울 때마다 전에 했던 것들에 이어지고, 쌓이고 깊어지는데 어떻게 이리도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건지, 신기하고 그 점이 참 재미있다. 내 안에 있던 볍씨의 세상과 하자의 세계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어쩌면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 연결을 찾고 이으려는 움직임은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1. 광명ymca 볍씨학교 볍씨, 만남 볍씨와의 인연은 6살 때 광명 YMCA에서 만든 유치원을 다니며 시작되었다. 엄마는 광명 YMCA에서 만든 직거래 유기농 먹거리 마을 공동체 ‘등대생협’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고, 이 공동체는 후에 학부모들이 모여 '볍씨학교'를 만든다. 지금은 맞벌이주부들이 늘어나 등대생협의 움직임이 많이 작아졌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단지마다 활발하게 돌아가는 신기한 도시마을공동체였다. 유기농 음식을 놀이터 같은 곳에서 받으면서 엄마들이 단지별로 모여 건강한 음식에 대한 공부도 하고 독서, 문화, 바느질, 등의 소모임도 하고 서로의 집에 놀러가서 생활나눔도 하고 메실도 담그고, 시원한 영화를 정해 매년 한여름 밤에 마을 놀이터에서 크게 상영을 해 주민들이 모여 보기도 하고 각 마을 사람들이 다같이 모여서 축제도 하고... 나는 이 덕에 동내에서 많은 이모들과 선생님과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그만큼 사람들의 사랑을 주고받으며 자란다. 그리고 생협을 하면서 내 입은 자연스럽게 건강한 먹거리들이 낯설지 않고 군것질에 쉽게 노출되지 않았던 것 같다(오히려 하자오면서 엄청 먹기 시작).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난 이 동내가, 주민이, 그리고 아침 길에 있는 벚꽃나무가 좋고 담장이 쳐져 있지 않은 하안 12단지가 편하다. 내가 볍씨학교를 들어가고 초1부터 6까지 배운 것은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인 것 같다. 아침마다 산에서 들리는 소리들을 나누며, 바닥에 떨어진 오디를 주어고, 열매를 따고, 무더기로 나오는 지렁이들을 보고, 아프면 다친 곳에 황토를 바르고, 언니들이 해주는 아카시아 파마도 받고, 문제가 생기면 이야기로 풀어나가려고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이야기 하려 하고, 세밀화를 그리며 조금한 것도 관찰하게 되고, 생활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을 놀며 배우며. 학교에서 한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지금의 내가 되는 것에, 나의 생각에 도움이 되는 것들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렇다고 볍씨가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실제로 저런 것들은 내가 학교를 졸업할 시기 즈음에 안 것이고 나에게 초등과정하면 떠오르는 것은 ‘우리들의 복잡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때린 적 없고 들어내어 싸운 적 없다. 분위기로 암묵적으로 오랜 기간 서로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고 상처들을 주었다. 초등학교, 나에게는 관계가 죽을 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중학교를 선택해야하는 시기가 오고, 생각해보니 볍씨학교, 볍씨사람, 볍씨나무, 볍씨세상 그리고 그 6년이라는 세월 함께 지낸 우리 반이 좋아 볍씨를 선택한다(볍씨는 중학교를 이어가려면 다시 면접을 봐야한다). 한편으로는 청소년 과정을 들어가며 있는 다른 수업들이 기대가 되었고 볍씨를 끝까지 하고 싶다는 막연한 오기도 있었다. 청소년과정이 되어 합반을 하고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나를 옭아매던 관계라는 것에서 여유롭고 자유로워 질 수 있었고 더 넓게 생각할 수 있었다. 관계라는 것을 옆으로 치우고 보니 수업이 보이고 배움이 보였고 그 것에 재미가 붙었다. 숨통이 탁 트였고 그 기세로 나는 볍씨뿐만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만남과 배움을 찾았다. 대안교육청소년네트워크 1기 운영위, 교육공동체 ‘나다’, 도서관, 두리반 등 여러 곳들을 다녔고 하자와도 이때 만나게 된다. 물먹는 하마같이 여러 가지를 빨아드렸고 나의 흐름템포는 신나고 빠르고 즐겁게 흘러갔다. 졸업을 준비하면서는 볍씨를 깊게 알게 되었다. 볍씨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건지, 우리가 하던 수업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우리들의 욕 안 쓰고 컴퓨터 안 하고 tv 안 보고 핸드폰 안 쓰고 선배 개념 없고 고기 잘 안 먹고 남녀분간 없는 문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았다. 그래서 10년이 넘어가다보니 색이 조금씩 바뀌는 학교의 중심을 잃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또 눈치 볼 것도 없겠다 반 애들 모두와 서로 더 속 깊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고, 우리들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수업은 ‘수업’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반년을 거친 졸업과정 끝에 난 졸업을 하게 된다. 손수건에 염색되듯, 나에게 볍씨라는 물이 든 것 같다(그것을 강요하지 않았고 가르치지 않았다는, 조심스럽게 천천히 들어왔다는 것이 무척 고맙다). 그 물이 싫거나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난 그런 내가 좋다. 볍씨학교 나왔다는 것은 나에게 당당한 일이고 내가 아이가 생긴다고 해도 나는 생명이 소중한 세상,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인 볍씨 세상에 아이를 보내고 싶다. 졸업, 그 뒤 대안교육에 대해 중3때 집중하게 되어 대안교육에 대해 더 생각하고 싶었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존중하고 같이 고민할 수 있는 곳이 대안학교 같아서 난 고등과정도 대안교육을 이어하고 싶었다. 졸업을 준비하는 동시에 학교를 찾기 시작했고 그 학교의 배움 주제, 과목, 문화, 분위기들을 보고 각 학교의 학부모, 선생님, 학생들이 얼마나 그 학교에 마음을 담고 있는지를 보았다. 그런데 기대와 정반대로 적합한 학교가 보이질 않았다. 갈수록 조급해졌고 ‘잘 알지도 못 하면서 까다롭게 구는 것 아닐까?’ ‘어딜 가든 배움은 있으니 일단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물론 난 어디 가서도 잘 지내겠지. 하지만 그렇게 수동적으로 날 맡겨놓기 싫어 home school을 결정한다. 해보고 싶은 것이 많고 모르는 게 많아 이것저것 경험해보고 싶던 나에게 home school은 괜찮았다. 그때 한창 그림에 빠져있던 터라 졸업을 하고 하루 종일 그림에 대한 이러저러 공부하고 자료 찾고 그리며 두 달간을 보냈고 모든 사람들이 공부하라고 자리 내주는 시기에 학교를 못 간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난 내 생활에 만족했다. 하자를 보며 살면서 한 번은 저 곳을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졸업하고 당장이 아니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내 친구 놈이 졸업하고 바로 거길 간다고 했었고(9년 동안 봐왔으니 졸업하고 같은 학교는 피하자라는 암묵적인 규칙이 우리에게는 있었기에) 또 하나는 하자는 작업자들의 공간인 것 같았다. 뭔가 자신의 분야들을 잘 하고 어느 정도 배우고 온 사람들이 그것들을 토대로 일을 벌리고 척척 진행하는, 나 같은 경우는 깊게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들어가도 도움이 안 될 것 같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을 기획 한다기 보다는 아직 좀 더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아직 신입생 모집을 안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목이언니와 하자라는 곳에 대해 와 이야기를 하면서 하자작업장학교가 시즌2로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즌 2는 1보다 나에게 더 가까웠다. 학교의 키워드 [생태, 평화, 함께 살기]가 매우 마음에 들었고 내가 좋아하는 주제들 영화나 악기나 디자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라는 것도 설레였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따라 주제를 잡고 공부를 한다는 것도 좋았다. 심지어 10 to 10일정도 궁금했다. 가장 기대가 되었던 건 저 정말 마음에 드는 세가지 키워드를 좋아하고 그것에 대해 공부를 하고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하자작업장학교에는 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제안해도 싫어할 사람들이 아니겠구나, 그 사람들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들. 페차쿠차를 하며 볍씨를 다시 알게 되었던 것도 좋았어서 하자에 들어오면 그런 배움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country road와 I wil이라는 노래와 까르라는 이름과 울부짖을, 눈물 시와 7명의 죽돌들과 함께 난 3월 3일 크리킨디학교 시즌2 하자작업장학교를 들어오게 된다. 2. 하자작업장학교 유레카, 나비문명! 나비문명은 공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내가 두루뭉수리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이 책에 텍스트로 정리가 되어있어 평소에 가지고 있던 나의 생각을 돌아볼 수 있었고 그 생각들 위에 살을 더 붙일 수도 있었다. 이 책이 나에게 큰 도움을 준 것은 ‘우리에게는 제 2의 문명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 유레카. 답답했다. 항상 지구와 우리들의 소비문화에 대해 한창 열을 올리며 대화를 하다가 그럼 우리들이 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되면 생각나는 것들은 있지만 그것이 지금 사회에서 가능하다고 생각되지 않았고 그래서 ‘원시시대 타령’이나 ‘인간종말’타령을 하면서 끝이 흐지부지해지곤 했다. 우리가 나와야 하는 답안은 다른 것이 있을 것 같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크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나부터 아끼고 보자, 라며 그것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것들은 생각하지 못 하고 별 의미부여와 목표 없이 애매모호하게 그 문제를 남겨두었었다. 그런데 나비문명을 만난다. 제 2의 문명, 이건 지금까지 걸리던 나의 걸림돌을 다 부셔버리는 개념이었다. 이제는 모르겠다가 아닌 저것을 향해 움직이고 더 공부하면 되는구나!!! 착착착!!!! 그건 절망이나 체념이 아닌 다짐과 의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책을 본 뒤 한 죽돌과의 대화가 기억난다. 우리들의 문화가 환경에 끼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문제되는 것들이 많이 보이다보니 그 죽돌에게서도 자연스럽게 “그럼 정말 원시시대 생활을 해야하는 건가?”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이번엔 그것에 수긍을 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나온 책이 나비문명입니다요, 거기서는 그렇게 말하는 우리들에게 우리가 가야하는 것은 원시시대가 아닌 제 2의 문명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제 2의 문명이 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또렷하게 못 하겠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 일단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자기도 얼른 나비문명을 읽어야겠다고 공부가 이래서 필요한 거구나, 더 해야겠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처음으로 이 문제가 지속가능한 고민거리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방학 때 나비문명 재탕과 블루이코노미 책을 봐야겠다는 다짐하며. “그라운딩이란 자연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인이 존재 기반인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사키 다카시 [나비문명 中] 그라운딩이라는 단어와 개념도 알게 되었다. 생소하고 모호하지만 참 매력적인 단어였다. ‘그것을 위해’가 아닌 ‘그것으로써’이야기 하고 느끼는 것은 의식을 해서가 아닌 함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되었다가 멀어지는 것 같다. 뒷산에 앉아서 조용히 같이 있을 때나 나무에 기대어 있을 때, 바다를 계속 보다가 어느 순간 허한 마음이 들고 평온함을 느끼고 가끔씩 자신이 그것과 일체된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도 미미한 그라운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 산이나 바다에 가면 괜히 중얼 중얼 그 곳에 있는 무언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그게 좋으면서 한 편으로는 내가 하는 행동들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소심해지고 눈치를 보게 되었다 ‘산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혼자 말을 하거나 가만히 멈춰있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겠지?’ 이런 생각 때문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워크나인 사람들이나 마사키 다카시 선생님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더 하고 있군’ 하며 이상하게 힘이 되었다. 내가 했던 행동들은 아주 작은 행동들이었고 조금 더 당당해지고 깊어지고 생각하고 싶다. 이 장에서 ‘생태’를 외치지 않지만 그 자체가 생태라는 하와이이야기가 나왔다. 세계가, 작게 보면 우리나라가 말뿐인 “생태 생태”를 외치지 않고 생태 그 자체로 있을 수 있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우리들에게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 할까? 이런 고민에서 난 가장 중요한 것이 어릴 적의 자연스러운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하와이 사람들 이야기를 보면서 볍씨 생각이 났다. 볍씨를 다닌 아이들은 생태를 외치지 않는다, 생활이 배움이 노는 것이 아이들이 그냥 그 자체가 생태이다. 작가가 나무와 대화하고 바다를 어머니라 부르면서 그라운딩을 말하고 무기를 버려야 평화가 온다고 하는 이 책은 개인적으로 ‘이상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이상함은 세상을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자연의 어머니의 품속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그래서 자연과 끊어진 고리를 찾고 다시 이을 수 있는 과정의 첫 스타트를 끊어줄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된다. 탈핵 ‘인간은 자연과 갈라져있다.’ 나는 나라의 성장을 위해 큰 공사가 시작되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죽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뼈저리게 느낀다. 지금 우리가 미래세대에게 남기는 것은 원전 쓰레기 많이 아니다. 곳곳에서 자연을 해치고 만든 것들도 모두가 미래세대에게 남겨진다. 망가진 생태계, 망가지고 있는 생태계. 우거진 숲을 보면 ‘살아있어서 고맙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나를 보며 바깥에 나갈 때는 마스크를 꼭 쓰고 나가야한다는 이야기는 점점 남일 같지 않아진다. 원전은 ‘돈‘과 ’사람들의 무관심’에서 생기고 지속되는 것 같다. 정부와 기업들의 돈에 대한 욕심은 정말 절대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돈은 이제 교환가치뿐이 아닌 그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사람과 나라가 왜 그 돈 때문에 서로를 속여야하는 건지. 그에 비해 사람의 무관심도 생각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내가 시위를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반대하는 사람들을 막막하긴 하지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심어준다면, 아무 반응 없는 무관심한 사람들은 정말 답이 없다. 한 번에 지치게 만든다. 그리고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을 무관심한 사람으로 변하게 한다. 내가 그랬다. 행진에 참여하고 1인 시위를 해도 사람들과 정부는 관심이 없어보였고 바뀌는 것도 없었고 그걸 보면서 나도 시위는 부질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예전 같았으면 분노했을 쌍용 정리해고, 강정마을, 용산참사, 원자력 발전소 보면서 덤덤하게 대응했다. ‘사회가 뭐 그렇지.’ 그런데 하자에 오고 3.10 공동행동이나 earth hour, 탈핵파티 등에 참여를 하면서 그 생각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런 움직임으로 미미하지만 사업의 진행의 속도 늦어지고 사람들의 인식에 원전이 자리 잡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행진의 무리 속에서 함께 걸을 수도 있었고 마이크를 쥐고 선언문을 낭독할 수도 있었으며 네트워크를 동원해 친구들을 대리고 함께 참여할 수도 있었고 공연을 하며 그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도 있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든 분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꼭 앞장서지 않아도 계속해서 배우고 기억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과만 바라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도움 되는 일은 있었던 것이다. 못하는 일에 대해 전전긍긍하고 낙심하는 것보다 그게 마치 벌새가 물방울을 떠다 나르는 것 같은 미미한 움직임이어도 분명 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고 그것들을 행동하고 싶었다. 좌절하지 말자, 그럴수록 더 공부하자. 이 생각은 내가 탈핵을 배우며 사회의 일에 무기력했던 내가 힘을 얻고 바뀔 수 있었다. 내가 하자에 입학을 하고 바로 시작한 ‘핵 없는 사회를 위한 3.10 공동행동’는 나에게 들어오자마자 ‘지구를 위한 축제’라는 고민을 하게 했다. 분명 이건 지구를 위한 축제인데 행사 준비를 하며 많은 일회용을 필요로 하는 시스템이 이해할 수 없었고 불편했다. 그렇지만 진행은 해야했고. 그래서 이건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하자의 방식일 것이고 예술의 영역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준비했었다. 하지만 당일 날 참가하면서도 끝나고 한 쪽에 수북하게 쌓인 쓰레기들은 진지하게 ‘우리는 누구를 위해 축제를 여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우리가 환경에게 사람과 물고기와 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뭔가 잘 못 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마음 그대로 리뷰에 쓰고 나눴다. ‘하자의 방식’과 ‘볍씨의 방식’에서 나는 힘들었다고 다른 곳에 왔으면 적응을 해야 하는 건 맞는데 조금 혼란스러웠다고 지구를 위한 것은 무엇일까 싶다고. 그런데 그것을 히옥스가 페이스 북에 일본에서 만든 현수막과 함께 올리시면서 나만의 고민이 아닌 모두의 고민이 되었고, 과정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물품을 구해 우린 Earth Hour준비를 하게 된다. Earth Hour를 하면서는 준비하는 과정이 3.10 때와는 다르게 마음이 편했다. 글루건 까지 자전거 발전기를 돌리며 하는 것을 보며 이런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작업을 한다는 사실이 좋았다. 아마 다른 죽돌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항상 행사를 하다보면 일회용사용은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데 그 연결을 끊었다는 점이, 끊을 수 있다는 점이 뿌듯했다. 앞으로도 지구를 위한 행사들을 할 때는 정말 지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았고,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지구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을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반핵과 탈핵이 다른 점은 반핵은 원전이나 핵을 반대하는 것이라면 탈핵은 그것을 넘어 대안을 찾고 지속적인 삶을 고민하는 것이라 했다. 탈핵을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대체 에너지, 지역 에너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가장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은 히옥스가 추천해 주신 책 [태양과 바람을 경작하다]이었다. 읽고 놀랐던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에너지에 관해 많은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부안시민발전소이야기는 사람들도 에너지공부를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정을 붙이고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쌈을 먹기 시작하면 쌈의 매력에 빠지듯 에너지 공부에 빠지면 에너지의 매력에 빠지는 것이다. 나비문명에서 말한 말뿐인 생태가 되지 않으려면 지역에서 그들의 힘으로 조금씩 시작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그것은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그린 빌리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역 에너지 공동체는 단순히 대안 에너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에너지 공부, 점검, 절약,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해야 하는 것은 반대 운동이나 행진들도 있지만 이렇게 몸으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지방의 이런 움직임을 보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던 차에 만나게 된 곳이 햇살씨앗절전소였다. 이곳은 ‘전기를 줄이는 것이 생산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이 모여 전기를 아끼고 자신들의 방법을 공유하고 수다를 떨고 방법을 찾으며 다큐도 보고 함께 강좌도 듣는, 한 마디로 놀면서 에너지를 공부하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은평 두꺼비하우징 윤전우 팀장님의 강좌를 들으며 우리들이 할 것은 ‘즐겁게 절약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지하게 하는 말이지만 ‘절약’은 지속적인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 모임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파라다이스였다. 평소에 ‘나는 전기를 왜 아낄까?’ 했던 물음을 ‘아끼는 것은 또 다른 발전의 방식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으로 해결해버린 것뿐만 아니라 불 끄자고 하면 ‘그까이거 좀 쓰면 어때서’ 인 사람들이 아닌 ‘코드도 뽑자’라고 할 사람들이 있는 모임이라니...! 너무너무 함께하고 싶어 조심스럽게 “이건 여기 주민들만 할 수 있는 거예요?”라고 물었는데 이건 지역 공동체로 하는 거라 그렇다고 하면서 나에게 하자에서도 이런 모임을 만들어서 해보는 거 어떠냐고 말을 하셨다. 흑. 그렇지만 그 말을 듣고 지속적으로 가져갈 수 있을 나의 역할을 하나 알게 되었다. 관심 있어 하는 절약을 주제로 지어진 공간에서 참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시작하는 것. 아직은 시간도 배운 것도 부족해 힘들지만 내가 속한 곳에서 충분히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여서 또 하나의 햇살씨앗발전소를 만들어 다같이 고민하고 즐겁게 활동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들이 모이고 모여 탈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끼는 습관과 소중하게 대하려는 마음이 탈핵이라는 주제를 만나고 좀 더 구체적으로 필요한 움직임으로 성장하게 된 것 같다. 자공공포럼 자공공포럼의 시작은 ‘의미를 잃은 움직임들을 찾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의 의미를 잃은 공부, 일, 돈, 삶, 놀이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지역과 서로와 나를 위해, 작은 마을 단위로 경제가 돌아가는 earth days money와 소비를 줄이고 적절한 만큼만 작업하고 스스로 생활을 꾸려가는 3만엔 비즈니스. 자공공포럼은 나에게 ‘소비적인 삶’과 ‘모든 것의 연결점’에 대한 생각을 이을 수 있었다. 내가 이걸 배울 때 즈음 우리 가족생활에는 변환의 기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중 3때, 나는 우리 아빠가 어렸을 적부터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는 걸 알게 된다. 충격이었다. 어째 사람이 꿈도 없고 되겠다는 것이 좋은 아빠라니. 그걸 알고 보니 우리아빠가 안타까웠다. ‘도대체 아빠가 아빠를 위해서 하는 건 뭐가 있을까?’ 대학을 간 이유는 직장을 위해, 스트레스를 받으며 직장을 다니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 돈 버는 이유는 자신의 노후보다 우리를 위해...? 그렇다고 우리에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조금 화가 났다. 미안하기도 했다. 어째 사람이 저럴까. 모든 대한민국 아빠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아빠가 그러지 않길 바랬다. 그래서 저녁에 아빠를 만나면 종종 하던 말 “아빠, 내 미래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이젠 아빠를 위해 좀 사시지?” 그리고 다양한 반응을 보이던 아빠가 드디어 내가 고1이 된 시점에서 나의 말에 힘입어 회사를 관둔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든 생각, ‘3만엔 비즈니스 열심히 공부 해야겠네.’와 ‘내 말에 책임질 수 있어야겠군’. 아빠가 자신의 관심사나 자신의 삶과는 아무런 연관 없이 돈(궁극적으로는 가정)을 위해 일한 대가로 우리는 생활은 무지 검소하지만 휴가를 수영장으로 스키장으로 외식을 빕스로 가며 꽤나 풍족한 삶을 살아왔다. 이제는 아빠가 자신에게 도움이 일들을 하게 되었다. 수입이 한정된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지출 줄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아직까지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자주해서 가족들이 먼저 인식해 가족에게 말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모두가 준비가 되었을 때 ‘소비적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 최소한의 자급자족 이야기를 다 같이 해보고 싶다. 어느 시점부터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난 퍼포머가 되고 싶어’같이 직업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난 사람들을 즐겁게 하며 살고 싶어’라는 삶의 방식을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다양해진다고. 3만엔 비즈니스도 비슷한 것 같다. ‘난 이런 사업을 하고싶어’가 아닌 ‘난 이런 사람들을 바꾸고 싶어’에서 시작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바로 자신의 관심사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로 이어진다. 그런 방식으로 내가 살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는 않지만 나의 배움의 한 단락 마무리는 이런 삶을 시작하는 것이 될 것 같다. 자공공포럼이 좋았던 이유는 사회와 일을, 놀이와 비즈니스를, 공부와 삶을 이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볍씨를 다니며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내가 배우는 것들은 사는 것과 직결되는데 공교육 아이들이 받는 배움은 배움 따로 삶 따로 인 것 같았다. ‘저 배움은 무엇을 위한 배움인가’ 싶기도 하고. 지금 사람들이 일하고 배우는 것들은 마치 희생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아빠가 10년을 넘게 주식회사에서 일해서 자신에게 얻는 것은 무엇인가. 평일엔 일하고 휴일엔 세상을 다 가진 듯 쉬고 다시 평일에는 스트레스를 참으며 일하는, 이젠 사회가 그 둘의 양극화를 줄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평일에 배운 것을 휴일에 더 붙이고 평일이 되면 붙인 것에서 더 배우고, 배우는 것이 쉬는 것이고 노는 것이 배우는 것인 나 같은 삶! 그것이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돈까지 주네”라는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볍씨를 다니며 나와 생각이 많이 비슷한 아이가 있었다. 졸업을 하고 나는 하자에 왔고 그 아이는 ‘공교육의 길을 걸어봐야 하지 않냐’라는 주변사람의 권유에 연극극단 ‘마루’를 다니며 검정고시를 준비와 대학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지내는 세계가 다르다보니 어느 센가부터 암묵적으로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이야기 안 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와 내가 속해있는 시스템은 지향하는 것 자체가 다르니 서로 왈가왈부를 따질 수 없었다. 어느 날 그 애가 말 했다. “현실은 현실이더라.” 무슨 말이냐 하니 현실은 대학을 가야한다고 그래서 이왕가는 거면 쪽팔리기 싫다고 “in seoul!”이런다. 이런 거구나. 느낌이 굉장히 이상했다. 그렇게 이해할 수 없다고 한 애들의 길을 똑같이 걷겠다고, 그것이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이 애를 이렇게 바꿔놓을 정도의 현실은 도대체 뭐 인거지 싶었다. 그러며 더 생각했다. 자신은 없지만 내가 열심히 배워서 꼭 일과 나와 내 세상을 연결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하고 싶다고. 난민 버마를 만나면서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의 범위가 좁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너무 확연하게 들어나 당황스러웠다. 영상을 보든 강의를 듣든 다 내가 모르던 것이었고 막막하기도 하면서 더 발동이 걸렸다. 처음에 가장 이해할 수 없던 부분은 ‘왜 그들은 한 나라 ’버마‘인 것인가.’. 150개의 소수민족, 그들은 언어도 문화도 다 다르다. 내가보기에 그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관계보다 더 확실한 일본, 중국, 한국 같은 관계였다. 각자 다른 150개의 나라들로 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한 나라란다. 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라통일이 아닌 EU연합국 같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씩 양보해서 힘을 모으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았다. 버마는 ‘국가는 국민을 존중해야한다.’ 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와장창 깨지는 곳이었다. 말도 안 되는 정치가 너무 당당하게 돌아가고 있는 나라. 전혀 다른 세상이야기라 상상이 안 가고 이해가 안 가는 그런 곳이었다. ‘나’라는 것이 박탈당하고 ‘지속가능함’ ‘미래’라는 생각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사람들. ‘정부가 뭘 원하는 거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버마의 문화를 받아드리고 그들의 땅에 있는 지하자원들이란다. 내 머리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망을 가고 나라의 가치가 뚝뚝 떨어지는 것에도 굴복하지 않고 계속 군부독제를 하며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이유는 국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정치를 해서 인걸까?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은 돈뿐이지 않나? 말이 안 돼서 상상하기 조차 힘들었다. 버마는 공책에 필기하는 것으로 습득속도가 못 따라 갈 것 같아 유일하게 노트북으로 필기를 했다. 너무 무지했던 터라 어떠한 입장을 말할 수도 없었고 왈가왈부 할 수도 없었다(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기록하는 창, 질문하는 창, 정리하는 창 이렇게 세 가지를 띄워두고 청소기처럼 모든 정보들을 빨아들이는 마음가짐으로 알아갈 뿐이었다. 히옥스와 면담을 하고 든 생각이 ‘이해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내가 한 뒤에 그들을 ‘이해하려 시도하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 가서 버마에 관련될 것 같은 서적들, 그들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한국의 역사 서적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등의 책을 빌려놓고 보니, ‘이 많은 것들을 알지도 못 하면서 이해 안 된다고 했다는 건 참 웃기는 군’ 싶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하자죽돌들이 공통으로 생각하는 어떤 것이 메솟과 연결이 되었던 것일까. 지금 우린 그 연결점에 잘 접근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생겼지만 풀리진 않았다. 사실 내가 메솟에 가서 나와는 사는 세계자체와 환경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 막막한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지, 어떻게 하면 나만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닌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우리가 가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직 모르겠다. 이 부분에서는 정말 자신이 없다. 하자작업장 사이트에 있는 자료들을 읽고 먼저 다녀온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계속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정말 모르는 게 많다. ‘인권’을 배우면서 가까이 있고 중요한 것이지만 난 눈에 보이지 않다보니 감이 오질 않았다. 한 쪽에서는 이것이 무참히 짓밟혀 그것의 존재에 대한 공부, 인권이란, 권리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 반면 한 쪽에서는 절박하지 않아 실감이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잊혀지는 상황을 보며 미안하기도 하고, 이런 우리가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지 싶기도 하고. 버마와 메솟과 earth right과 인권을 배우며 ‘생명이 소중한 세상,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이 떠올랐다. 별 생각 없이 말하고 노래 불렀던 세상은 참 소중하고 중요한 세상이었다. 매체 매체는 지속적으로 수, 금 계속 가지고 갔던 배움인 만큼 꾸준하게 고민을 하게 했고 그 비중은 무시할 수 없었다. 1학기 내내 진지하고 조심스럽고 매번 고민의 발단이 되고 끊임없이 물음들을 던져준 매체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느 정도 풀어내야할지. 중 2,3이 되고 나는 이것저것 도맡아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점점 혼자 하는 것의 편함을 느끼는 것을 넘어 나중에는 남과 함께 했을 때 답답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졸업과정에서도 다른 애들을 잘 믿지 못하여 다 못 할 일을 구지 혼자 맡아서 했고, 일들이 많아져 못 하는 일이 생기다 보니 괜히 승질내고 ‘왜 나에게 모든 걸 시키는 거지?’ ‘남들은 왜 나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하지 않는 거지?’라며 화도 냈었다. 졸업을 한 뒤에 내가 진행을 한 방식을 돌아보니 ‘조금 더 여유롭고 나눠가며 즐겁게 했으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좋았겠다.’싶으며 애들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나중에 내 이름에 ‘열심히 하되 나도 웃고 남도 웃을 수 있게 하자.’ 라는 뜻으로 고스란히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여러 이유로 세 가지 매체 다 매우 하고 싶었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고 찾아보고 개인 작업을 해야 하는 디자인과 영상보다는 혼자서 절대 할 수 없는, 함께하는 팀 작업이 무엇인지 고민 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공연팀에 들어가자고 결정한다. 브라질 악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알고 배우고 싶었던 것 같다. 바투카다에서 심장을 담당하는 수루두. 난 수루두의 음색과 역할과 오로라와 해야하는 것들이 좋았다. 내 인생은 항상 앞에서 진행을 끌고 나가는 역할이었다. 발언을 하고 제안을 하고 사회를 보고 꽹가리를 치는. 그 역할들이 재미있기도 하고 일단락 지을 땐 뿌듯하기도 했지만 부담스러움도 컸다. 나중엔 뒤에서 차분하게 정리를 하고 싶으면서도 매번 내 이미지나 분위기로 나는 앞장서게 되었다. 그것을 수루두를 하면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수루두는 자신의 위에서 악기들이 놀 수 있게 기둥을 세워주는 역할이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1,2번이 함께. 굳세고 믿음직스럽고 듬직하다 등의 나와는 멀었던 단어들과 역할들을 고민하게 되었다. 나의 또 다른 모습들을 찾고 ‘나를 그렇다고 단정 짓지마!’라고 말하고 싶던 것 같다. 여리여리 해보이고 부러질 것 같은 모습이 아닌 단단하고 강한 모습도 있다는 것을. 매우 크고 듬직한 수루두와 함께 하면서 그 면을 배우고 싶었고 수두루와 함께하면 재밌는 일들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래서 수루두를 칠 때는 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리뷰를 보니 대부분 연주하는 것, 좀 더 잘 하는 것이 중심에 있다. 공연팀 워크숍은 합주가 아닌 다른 생각거리들이 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정리를 잘 하지 못하고 나의 역할과 우리 팀끼리의 소통을 잘 하는 것 정도의 생각에서 더 나아가지 못 했다. 난 즐겁고 맞는 합주하는 것에 집중을 하며 수루두라는 악기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재미나게 하던 내가 쇼하자와 철쭉제 공연 딱 두 번하고 악기가 바뀐다. 내가 악기를 바꾼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체력도 있지만 수루두에 대한 애정이 다른 악기들과의 얇은 벽을 만든 것 같아서 였다. ‘나는 수루두를 치러 온 게 아니라 브라질 악기를 하러 온 것’이라고 정리한 뒤 힘들었지만 처음으로 다른 악기에 관심을 돌리게 된다. 그런데 악기가 바뀌면서 공연팀에서 가지던 물음들이 다양해지고 임하는 자세가 조금 달라졌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공책을 만들어서 공연팀에 대한 고민이나 리뷰나 공연에 대한 정보나 생각들을 정리해 쓰기 시작했고 [공연/음악]게시판의 자료들을 보며 초기 페스테자들이 고민 한 것들을 보고 나는 어떤가 물어보기 시작한 것들도 이때부터였다. ‘공연을 위한 공연이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 ‘그럼 무엇을 위한 것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 공연을 하고 싶나‘ 라는 물음들도 생겼다. 곰곰이 이것저것 생각해보니 ’함께 사는 많은 생명들을 위해, 그들을 위로하고 축하하기 위해 공연‘을 하고 싶었다. 대상이 사람뿐만이 아닌 인간 때문에 망가져가는 자연들을 위한 공연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름의 하고 싶은 공연방식이 생기다보니 공연에서 구지 악기를 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별로 못 배운 까이샤 보다는 다같이 하는 삼바, 마음을 다해 부를 수 있는 트리스테자, 하나의 멋진 퍼모먼스인 바침마쿰바를 하는 것이 그들과 더 침착하고 신나고 진정성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철쭉제든, 모내기든, 고정희든, 탈핵파티, 햇살씨앗선포식이든 난 다양한 역할로 참여를 할 수 있었고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서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비슷한 레파토리의 공연이 다르게 만난다는 것을 알았다. 바투카다에서 조금 다른 위치에 있게 되니 다미나 핑두가 이해가 되는 부분들도 생겼다. 계속 다른 쪽에 서봄으로써 많은 부분들을 이해하고 싶었고 매체라는 부분이 범위가 넓어서 단정 짓기가 참 어려운 것이 많다는 생각 때문에 자주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저런 고민들이 막상 내가 까이샤의 기술을 더 잘 해야하는 순간이 오고부터 점차 뒤로 밀려갔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들은 ‘손목’만이 아니라고, 까르가 원하는 공연자의 모습은 뭐냐고, 페스테자는 어떤 공연자들이 모이는 곳 같냐는 말들을 들었다. 그게 무엇인지 이해가 가긴 했지만 네바다도 잘 안 되어 기본적인 합주가 안 되는 상황이 오니 생각하기가 참 힘들었다. 패드연습을 하면서 매우 중요한 것을 빼트린 느낌이었고 내가 지금 하는 건 하자에서, 페스테자에서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배움이 아닐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느낌들이 싫어 자꾸 되돌아보고 그 문제점을 인식하려 하고 이야기하며 기술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지만 많은 것들이 정리되지가 않았다. 생각하고 정리하고 연습하고 매체는 그렇게 1학기 내내 나에게 있었고 앞으로도 모든 것이 ing형으로 있을 것 같다. 매체를 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 된 점이 ‘소통’이었다. 함께 즐겁게 하나의 뜻을 가지고 공연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서로를 알지 못하면 참 하기 힘들었다. 소통의 부재가 느껴질 때는 공연을 하면서 그 점이 자꾸 신경이 쓰였고 날 불편하게 했다. 팀과의 소통만이 아니다. 관객과의 소통도 있다. 우리는 공연을 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참 신경을 많이 써야했다. 이 부분이 워크숍을 하면서 부담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던 것 같다. 공연 팀을 하다보니까 [홀림]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는 너무 팀이라는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특히 공연팀 워크숍을 시작하고 진지하고 매우 열성적이게 악기를 치는 나와 죽돌들을 보면서 홀림생각이 많이 났다. 왜 홀림에는 이런 기운들이 없었을까, 이런 고민들을 하지 않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홀림은 선택이긴 하지만 반 의무가 섞여 있는 수업, 아이들의 나이, 그리고 선생님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조금 더 자발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풍물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 공연할 곳들도 있다는 것, 함께 할 사람이 있고 배울 수 있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혜택을 얻고 있는지 알았으면 싶다. 나중에 볍씨학교에 잠시 들러서 지금 풍물을 하고 있는 애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고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풍물은 이렇게 생각나고 계속 도움을 주고 싶은 것으로 남았는데 바투카다는 나에게 어떻게 남을까? 라는 생각들도 든다. 이제 2학기가 되고 1학기들이 들어오면 분명 내가 했던 것들은 1학기들이 하게 될 것이고 내가 해야하는 역할은 달라질 것이다. 그게 아쉽기도 하고 이상하게 샘도 난다. 그런데 그 역할에 대해 내가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똑같이 진지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festeaza라고 말할 수 있는 고민과 나눔과 배움을 하고싶다. globish 볍씨에서는 중1 때부터 영어를 시작한다. 그래서 5, 6학년이 되면 학생이나 부모들은 '너무 늦은 게 아닌가.’ 하며 쓸데없는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영어 첫 수업 알파벳을 쓰는데 굉장히 햇갈렸던 것 기억이 난다. Q가 소문자로 뭐지? 순서는 뭐더라? B와 D가 소문자로 어떻게 다르더라?! 그러면서 ‘나 이거 심각한 거 아닌가.....?’ 그렇지만 다른 애들도 별반 다른 게 없던 터라 서로 웃으면서 시작할 수 있었다. 영어 선생님이 재밌게 하셨고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에 대한 호기심이 있던 터라 난 영어를 참 재미있게 했다. 기억력이 유달리 좋은 편도 아니었고 숙제할 때 쉽게 집중을 잘 하는 것도 아니라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실제로 열나게 했다. 재밌었으니까. 그러다 중2때 친구와 함께 교회 학원에서 영어를 배운 적이 있는데 푸는 건 숙제로 알아서 하고 그곳에 가서는 답 체크하는 것과 CD를 듣는 것 밖에 없던 그 시스템이 마음에 안 들었고, 점점 ‘차라리 내가 집에서 문제집 가지고 스스로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커져 그만두었다. 학원시스템이 대부분 그렇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이상했다. 학원은 알려주는 것 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만들게 하는 곳 같았다. 공부해야하는 동기. ‘돈 벌기 쉽겠네,’라는 베베 꼬인 생각도 들고. 여하튼 학원숙제를 하는 것 보단 학교공부에 더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자신 있게 영어로 먼저 탁 꺼내서 이야기하기 힘들었다. 알긴 알겠는데 영어사용이 낯설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단어로 얼마나 소통할 수 있을지 궁금했고 자신 있게 말을 꺼낼 수 있을 계기가 필요해 전화영어를 시작했다. 전화영어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3달 정도 했을까, 난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줄었다. 문법을 잘 모르겠어도 단어들을 막 던졌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알아듣고 고쳐주는 문법들을 받아 적으면서 문장의 음이나 어울리는 밸런스의 느낌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익숙해진 것 같다. 그 다음부터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툭툭 던지는 말들이 더 잘 들어왔고, 영어가 줄줄 나오는 것을 들을 때 ‘어이씨 모르겠다.’가 아닌 ‘다 들어주겠어.’라는 마음으로 접할 수 있었다. 졸업을 하고 잠깐의 홈스쿨을 하면서 영어는 계속하고 싶어서 집에서 [Grammar In Use]라는 인터넷 강의를 한 20쳅터 정도 했었다. 여자 선생님이 그때 설명해준 문법을 생각하는 방식은 글로비시를 하며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영어에는 충분히 시간과 노력을 했었고 조급하거나 불안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곳,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수준차이가 날지 궁금했다. 그래서 첫 글로비시 시험은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거라 굉장히 떨렸다. 다행스럽게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볍씨이상으로 글로비시가 재미있었고 나에게 맞았다. 볍씨의 공부에 불안함을 가질 필요가 없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볍씨홈피에 한 번 이야기를 해서 부모님들이 불안해서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싶었다. 괜히 학원을 보내서 학교에 집중 못 하게 하지 말고 학교에서 열심하면 된다고. 영어는 오히려 늦게 시작해서 더 재미와 열성을 다해 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자의 글로비시는 교재부터가 하자와 연결이 되어있었고 우리가 하는 내용도 고정희나 EARTH HOUR, 난민포럼 같은 일상과 연결이 되어있어서 ‘이런 식으로 영어가 다가갈 수도 있구나.’ 하며 영어의 폭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우리가 한 것을 다시 되돌아봄으로써 내가 고민해야 할 것들과 발전해야하는 것들을 알기도 했고, 각자가 만드는 문장 때문에 본의 아니게 죽돌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영어도 수업만이 아닌 생활 속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단어들도 사회에 필요한 단어가 아닌 내가 움직이고 있는 세계에서 필요한 단어들 위주여서 좋았다. 볍씨도 볍씨의 문화를 책으로 만들어서 그것으로 아이들이 공부하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와 생활을 최대한 연결시키는 것을 하고 싶었다. 그 project에 내가 어떻게 기여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글로비시를 하며 그 흐름들을 전보다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굉장히 놀랐던 것은 이번 라오스청소년유스센터의 PPT. 열심히 듣고 이해하다가 중간이 돼서야 ‘아, 통역이 없네?’를 알아차렸다. 것 참 기분이 좋았다. 하자는 강연을 들을 때, 일본어는 문제가 없지만 영어는 이상하게 잘 알아듣는 것도 아니면서 통역에 대한 불신이 종종 생겨서 내가 스스로 그 분의 말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건방진 생각일까). 강연을 위해서라도, 내 소통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있을 서밋을 위해서라도 영어는 조금씩 꾸준히 하고 싶다. 2학기가 되어서도 지금처럼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3. 돌아보기 1학기동안 문화에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 탈핵과 생태의 시작은 공부에도 있지만 난 생활과 문화에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탈핵을 공부하고 강의를 듣고 리뷰를 하며 든 생각이나 마음가짐을 이어서 자신의 생활을 점검하고 돌아보고 변화하는 것들이 잘 안 된 것 같다. 그래서 공부와는 모순된다고 생각되는 문화들이 있었고 1학기 작업장학교를 지내면서 스스로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 사실 어느 시점부터는 변화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문화들만이라도 지켜졌으면 싶었다. 특히 손수건. 필수항목에 있는 손수건은 나에게 낯선 물건이었는데 이것은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하자는 매일 이를 닦아서 더더욱.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수건은 그 필요성만큼 많이 활용되고 있지 못 하다. 손수건을 쓰지 않으면 써야하는 것이 화장실의 두꺼운 손 휴지이다. 하자에서 생활을 하면서 내가 적지 않은 노력을 한 것도 이 휴지를 안 쓰는 부분이었다. 처음엔 그냥 그 휴지가 아까웠다. 손 한 번 씻었다는 이유로, 이빨 한 번 닦았다는 이유로 쓰는 휴지가 굉장히 불편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공부하고 말하는 것들과 우리들에게 이미 있는 손수건의 문화를 보면서 이 휴지를 끊임없이 쓰는 것은 ‘무책임’의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뻔히 알면서도 안 하는 것이다! 휴지를 안 쓰는 것은 작은 일 같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충 계산을 해봐도 우리는 하루에 세 번 이를 닦고 손도 씻는다. 하루 평균 4장이라고 보면 휴일을 뺀 한 달이면 대략 90장이고 죽돌 수 10명 정도만 곱해도 900장. 한 달에 작업장에서만 900장이다. 이건 나무 몇 그루이며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일까. 이 조금한 습관부터 바꾸지 못하면 우리는 탈핵을 말 할 수 있을까? 또 하자는 전기가 참 많이 쓰이는 곳이다. 나 같은 경우도 휴일 내 멀티탭 두 칸에는 항상 많은 전자기기들이 줄을 서있다. 초기에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 때는 핸드폰 전력의 10% 정도는 자전거로 충전하곤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자전거로 충전을 한다면 스마트폰은 절대 팔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전하는 건 터무니없이 힘든데 다는 속도 또한 야속하게 터무니없이 빠르다. 매번 콘센트를 찾아다니는 노트북과 핸드폰, 문제이긴 하지만 둘 다 필요성도 확실하게 있다. 에세이든 리뷰든 디자인이든 노트북은 쓸 수밖에 없고 이미 2년 약정인 핸드폰 바꿀 수도 없다. 그렇지만 거기서 멈추지 말고 자신이 최소한 난 요것정도는 할 수 있겠다. 라며 자신의 선을 생각하는 문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전자기기보다 대기전력소모가 큰 핸드폰 충전기를 그때그때 뺀다던가, 화면조명을 줄인다던가, 하자에 있었다는 ‘노트북 안 키는 날’을 다시 이야기해본 뒤 다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고 기왕이면 쓸 때 내가 키면 무엇을 할 것인지, 지금 그 타이밍이 맞는 것 같은지 등등 말이다. 문화는 소비뿐만이 아니다. 먹는 것에도 문화가 있다. 나는 우리들이 음식을 대하는 문화가 조금 더 소중해졌으면 좋겠다. 사실 영셰프가 음식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여러 가지로 실망이었다. 하자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이상 조금 더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주었으면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만드는 사람들이 노력하는 모습들이 안 보여서 일까. 먹으면서 그 음식들을 소중히 대하지는 못 했다. 코아페와 가장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이거였다. 코아페는 딱 봐도 정성이 느껴진다. 그래서 빵을 먹을 때 경건해지는 마음으로 꼭꼭 먹게 된다. 참 이 먹거리 문제는 난감하다. 쌀 한 톨에도 농부의 여든 여덟 번의 손이 거친다는데 우리가 받는 접시위의 그 음식들이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쳤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음식을 소중히 나누고 받은 뒤 안 남겼으면 좋겠다(그치만 어떤 공장요리들은 참 소중히 대하기가 난감하다)! 난 항상 영셰프 국물이 많다고 느껴서 둘이 나눠먹곤 하는데 이런 대안들을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오도리를 하면서 밥을 먹을 준비를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식묵상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밥에 대한 이야기는 각자 이야기 해봐도 좋을 것 같구. 저녁은 소풍가는 고양이가 아니면 외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참 애매하지만, 음식마다 탄소발자국이 있고 그런 것을 알고 생각하며 먹는 것과 아닌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번 학기는 음식을 대하는 것에 감사함이나 소중함을 놓치고 행복감으로만 대해 ‘아차’싶다(민망하기도 하다). 앞으로는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그런 것에도 신경을 쓰면 좋을 것 같다. 어딜가나 그 곳의 문화가 있고 하자 또한 문화가 있다. 어떤 것은 말로만 되는 문화이고 어떤 것은 행동으로 지속되고 있는 문화이다. 어쨌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들이 생태, 평화, 공동체로 갈 수 있는 첫 걸음은 행사나 강의들이 아닌 이 문화들이라는 것이다. 1학기 동안 하자작업장에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 처음 하자작업장에 들어왔을 때, 이상했던 기억이 난다. 죽돌들이 서로 그다지 관심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관심도 없고 애정도 없고 각자 배우고 작업하기 위해 모인 작업자들 같은 느낌이었다. 대체로 분위기가 사무적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특히 리뷰. 하자의 리뷰는 정말 사무적인 느낌이 들었다. 리뷰를 하며 쓰는 말자체가 존댓말이다. 가끔은 말을 하거나 들으면서 회사 ppt 발표 같은 느낌과 회의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게 이상해서 반말을 써보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서 반말을 하는 것도 불편했다. 우리는 누구에게 말을 하는 것인지.... 이런 분위기는 어디에서부터 생긴 건지. 그리고 한편으로 참 불친절했다. 모든 걸 스스로 공부해야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 있었고 그것을 이해하려면 알아서 물어보고 알아봐야했다. 근데 처음 접하는 것들 이다보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 모르겠었고 그걸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난 고정희 기행을 가면서도 줄창 광주민주화운동만 알아봤지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고 가는 일도 생기고.... 이러저러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나중에는 흐름을 찾기가 쉬워졌지만, 이것저것을 던져주지 않고 진행되는 시스템은 여러모로 불편했다(이 정보들은 글로비시에서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 학기 죽돌들에게는 수업 안에서 하나하나 설명 안 해주니 찾아보는 게 중요해요. 라고 꼭 말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하자작업장학교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인 10to10일정. 해야 할 것들도 있고 혼자 공부하고 알아볼 것들도 많은데 10 to 10일정은 개인시간을 갖기 너무 짧았다. 물론 학교가 10시에 끝남에도 불구하고 하던 것을 깔끔히 끝맺음을 못해 시간이 부족하다고 종종 느끼지만 말이다. 집에 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선호나 핑두는 어떻게 일정관리를 하는 건지(갈수록 늙어가는 핑두를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9시정도에만 끝나도 밤새는 일 없이 할 것도 하며 좋을 것 같다. 궁금하다. 9시 귀가면 어떤 변화가 올지,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올지 아님 더 많이 놀게 될지. 그리고 하자의 휴일 그 이틀은 글로비시와 배움 정리와 준비를 다 끝내고 나면 정확하게 끝이 나곤 했다. 너무 타이트해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다른 일정이 추가되면 다 못 끝내곤 했다. 하자를 다니면서 이번 학기에 많이 접한 단어는 ‘소통’이었다. 워크숍을 하면서도 강연을 하면서도 소통은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가장 먼저해야하는 죽돌들끼리의 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나 제안할 거리나 궁금한 것이나 이야기는 다양한데 그것을 나눌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 답답함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고 있는 생각들이나 궁금했던 것이나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들을 각자가 가져가지 말고 다 같이 공유가 좀 되면 좋겠다. 그러면 고민들을 이어하기도 쉽고 사소한 것들에 더 신경 쓸 수 있을 것 같다. 하자의 리뷰. 난 어떤 것을 하면 그것을 기록하거나 나누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 시간이 나쁘지 않지만 그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보여서 다 같이 리뷰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으면 싶었다. 하자하면 ‘리뷰’라고 나올 정도로 중요한 것을 아무 의미 없이 하게 되는 것은 아깝지 않은가.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리뷰 자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어떤 대안학교든 마찬가지이지만 하자에서 하는 것들 또한 다 각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 것들의 의미를 얼마나 아는 건지 체크가 안 되었다. 또 물어봐도 각자가 생각하는 의미가 달라서 이것들을 다 같이 공유하고 나눠야할 필요가 매우 느껴졌다. 학교 만들기 팀이 아닌 이상, 우리들은 이미 짜여저 있는 곳에 들어온 것이니 지금 시점에서는 그 시스템에 각각에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질문해보고 우리는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 이야기를 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하자작업장학교 학생들이 행사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과연 정말 이 행사에 의미를,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들일까? 하는 것과 아쉬움들. 가끔씩은 공연만 하고 다 떠버리는 죽돌들을 보면서 행사가 개인에게 정말 의미가 없는 것인가? 라는 물음. 그렇지만 내가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꼬집는 역할이 되는 것도 싫고 이야기 할 자리도 마땅치 않아서 오도리 시간 에 한 번 이야기하고 끝냈던 것 같다. 필히 다른 죽돌들의 생각을 듣고 싶고 그런 이야기 시간은 정말 필요하다. 엉엉 1학기 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굵직한 생각들. _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가져가는 것이 다르다. 하자를 다니며 똑같은 수업을 해도 자신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하고, 얼마나 집중을 했냐에 따라 남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강요하지 않았다. 숙제 또한 자신이 가져가는 만큼이었다. 특히 글로비시가 그랬다. 수동적으로 배우는 하나의 영어수업. 이라고만 생각하면 매우 기본적인 숙제를 하고 그 시간에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였다. 그렇지만 함께 해가야 하는 globish라고 생각하면 모르는 단어 미리 찾아놓고 먼저 읽어보고 틀린 건 옮겨 적으며 할 것이 많았다. 집에 와서 수업정리, 공연팀 정리, globish준비, 앞으로 있을 수업 준비 등을 하고 있으면 엄마가 종종 물어봤다. “하자는 왜 이리 할 게 많니, 그게 다 해가야하는 숙제야?” 그럼 대답했다. “정해져있는 숙제 별로 없어, 필요할 것 같으니까 하는 거지.” 딱 이거였다. 하라 한 사람도 없고 확인하는 사람도 없다. 그걸 아는 사람도 자기인 것이고 도움이 되는 것도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일요일 월요일마다 나에게 다시 떠올랐었다. _ 일정을 넓게 보는 것. 하자의 일정은 정해진 것이 글로비시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무생각 없이 다니다간 일정에 끌려 다니기 일쑤였다. 조급해지지 않는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인 일정체크. 먼저 보고, 그걸 토대로 준비하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익숙하지가 않았다. 후에는 스케줄 표에 적어가며 노력을 하다보니 이번 1학기에는 완벽하게 되진 않았지만 2학기에는 내가 일정의 주인이다! 라는 말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_ 조급해지지 않는 것. 할 건 많고 시간은 없고 이러다보면 사람이 어쩌지 하며 발만 동동 구르다 일을 시작도 못 하고 ‘멘붕’ 상태가 오기마련. 인정하고 마음을 편안히 먹고 하나씩 짚어보자. 한 죽돌이 해준 말이었는데 당시 얼마나 콕콕 찔리던지. 많은 것들을 병행하고 정리하고 하다 보니 하면서 못하는 것들이 걱정이 되었었다. 그렇지만 걱정해도 바뀌는 것은 없고 그 상황에는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이 있었고 그걸 인정해야했다. ‘이왕이면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것보다 미리 시작해서 다 하는 것이 좋으니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시간이 날 때마다 미리미리 했고 이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마음도 더 편해지고. 그러다보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단 걸 알게 되었다. _ 절약도 좋지만 그 가치관에 내 시야가 좁아지지 말자. 탈핵파티 때 히옥스의 댓글을 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3.10을 생각해보니 그때 정신이 없긴 했지만 그 많은 쓰레기들을 뿐만 아닌 다른 것들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행사가 끝난 다음에도 남은 것들이 더 있었을 텐데 싶다. 앞에 있는 문제를 피하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이 자리가 생긴 이유나 우리 다뤄야 하는 것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했다. 불필요한 에너지를 보면 필요이상으로 불편해지는 것이 어디서 온건지, 왜 나는 유달리 더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 생각들을 투덜대는 것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힘 있는 것으로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_ 병행, 병행, 병행. 내가 하자와 함께 가져가야 할 것은 집과 네트워크였다. 집은 오래전에 일단 keep이었고 네트워크가 문제였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았고 둘은 함께 갈 수 있는 문제 같았다. 그런데 학기가 계속 되고 양쪽 다 바빠지면서 양쪽 다 만만치 않은 일정을 내가 함께하기 어려웠다. 네트워크 쪽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어서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나에게도 네트워크에게도 안 좋은 것 같아 몇 번 나오려 했지만 아직 그러지 못 했다. 그들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이 부담스럽기도 한데 계속 하면서 서로 이해해주는 문제려니 싶다. 하자를 지내면서 가족에게 미안했던 것이 많다. 내가 하는 패턴이 있다 보니 가족과 함께 할 시간, 진득히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 동생이랑 놀 시간이 없었고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대하지도 못했다. 조절을 하려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그러면서 가족들이 이런 날 이해해주길 바랬다. 소통이 계속 안 되다보니 갈등도 잦아지는 것 같다. 2학기가 되어서도 이것들은 병행을 해야 하는데 조금 더 계획적으로 신중하게 가져가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조금 틀어진 것 같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돌릴 수 있는 건지, 걱정이 된다. 4. 마무리 나의 세계(에세이 마무리) 같은 반 7명의 친구들은 각자 다른 세계로 가게 되었다. 대안학교를 간 친구, 일반학교를 간 친구, 혁신학교를 간 친구, home school을 하는 친구.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미세하지만, 분명 있고 아마 모두가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조금 달라진 모습들을 보면 낯설어서 당혹스럽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섭섭한 마음도 든다. 볍씨의 나, 볍씨의 친구들 그대로의 모습들을 유지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9년 동안 함께하며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원했던 것들을 잊지 않고 간직하며 그걸 함께 이어가기를 바란다. 9년 동안 아님 5년 동안 학교에서 배워온 것들이 인생의 걸림돌이고 필요 없었던 배움이 아닌, 그런 배움을 한 우리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과 보이는 것들을 찾아가며 다른 장소, 다른 사람들 속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되지 못해 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우리가 되었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을 각자의 길에서 자유롭게 펼쳤으면 좋겠다. 나또한 이번 1학기는 하자와 볍씨가 자꾸 맞는 부분을 찾는 것이었다면 2학기는 조금 더 넓은 시야와 다양한 방법으로 배움에 다가고 싶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듣고 책도 보고 히옥스의 말처럼 여러 루트를 통해 배움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만나야겠다. 1학기 때는 문제들을 아는 것이었다면 2학기에는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얻어서 나도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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