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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서 실천으로 ...............................................3학기, 공연음악팀, 신상(신상현) 3학기로서 내가 3학기를 접어들면서 했었던 다짐들과 약속들이 있었다. 일단 가장 큰 목표 혹은 다짐은 ‘나서기’이었다. 언제나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고, 거의 언제나 의견이 없는 사람처럼 지냈기 때문에 한발 앞으로 나가 죽돌들과 의견을 맞추며 지내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약속이기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에서 생각해보면 3학기는 되게 어설펐고, 무언가를 해나가야 하는 것이 조금 지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자꾸만 피하게 되었다. 내가 정해놨던 약속들, 다짐들 모두 어설프게 마무리가 되어간다. 3학기 시작부터 지금까지 학교생활을 못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짜증을 느낀 적은 없다. 그냥 지쳤고, 지친 상태에서 무엇을 하려하니까 짜증이 났다. 사실 이렇게 이번 학기를 돌아보면 정말 어설프고, 좋지 못한 생활이었지만, 3학기 미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괜찮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3.10 탈핵행사까지 내가 3학기를 들어서면서 가졌던 다짐들과 약속들을 생각하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했었다. 그게 잘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나름 노력하고 그렇게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생각하며, 3.10 행사 이후에도 노력하며 학교생활을 했어야 했는데, 완전히 다 놓아버렸다. 놓아버렸다는 사실도 미팅을 하지 않았더라면 잘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지구를 위한 일, 정말 실현 가능할까? 1년 반 동안 탈핵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은 ‘할 수 있을까?’ 이었다. 학교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혼자서 탈핵에 대해 생각한다면 탈핵은 아직까지도 나에겐 가능하지 않는 일로 다가온다. 탈핵을 지지하지만 언제나 마음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쪽에 있다. 살면서 혼자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아니어야 하지만 사실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단순히 탈핵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쉽게 정의를 내렸기에 가볍게 생각하며 탈핵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을 했던 마음들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것 같다. 그렇게 어설프게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 탈핵 공부를 해오고 있다. 나는 살면서 ‘왜?’라는 질문을 그렇게 많이 하고 살아오지 않았다. 탈핵에 대해서 공부를 할 때도 당연히 마찬가지였다. 매 학기마다 ‘왜?’라는 질문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매 학기마다가 아니라 모든 수업 그리고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나는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궁금해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하게 된 일로 시작하다 지금은 해야 하는 일로 가게 되었다. 지금은 처음 공부를 시작했던 것과 달리 많은 정보들 그리고 사람들을 알게 되어 탈핵파에게 힘을 보태어주는 어쩌면 보태어주어야 하는 사람이 됐다. 사실 내가 하는 행동들 때문에 헷갈릴 때가 많다. 학교에서 하는 행동들과 집에서 하는 행동들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장난을 치다가 다른 죽돌들이랑 나는 집과 학교에서 하는 행동들이 다르다고 말하니 다른 죽돌들도 맞아 맞아하며 같이 맞장구를 쳐줬다. 편안함보다는 불편함 쪽에 손을 들자고 하는 나이지만, 정작 편안함을 버리지 못하고 생활하고 있고, 편하게 사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제까지 탈핵 공부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요즘 세대의 어린이들 혹은 젊은이들은 불편함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말을 가장 먼저 들었을 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에 공감을 했었다. 그렇지만 그 말을 들었다고 편안함에 찌들어져 있는 나의 생활을 완전히 리모델링할 수는 없었다. 언제까지나 공감에 그쳤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헷갈리기 시작했다. 학교라는 장소가 없다면 탈핵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이번에 했던 3.10 행사나 지구를 위한 한 시간 같은 행사에 내가 과연 참여할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이번 3.10 탈핵 행사나 지구를 위한 한 시간은 개인적으로 좋았던 시간이었다. 행사에 참여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한 것도 아니고 참여하기 전 어떤 마음으로 참여해야 하는지도 별로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참여를 했었지만, 그냥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좋았다. 지금까지 많은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했지만, 이번 행사만큼이나 감사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3.10 탈핵 행사 때 대략 10.000명의 사람들이 행사에 참여를 했다. 작업장학교에 있으면서 강의를 듣던 어느 행사에 참여를 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래서 3.10 때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올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에 집중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했었고 그저 참여만으로 우리는 힘을 얻었었다. 전체를 생각해보았을 때는 적은 숫자지만 하나하나 씩 해나가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하자작업장학교라는 장소 안에서는 할 수 있는 일처럼 다가온다. 소속된 곳에 휩쓸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좋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탈핵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탈핵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조금 막막하기도 하고,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어설프게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의 구체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정말 간단하게지만, 탈핵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탈핵을 해야 하는 이유를 조금 정리하게 된 것 같다. 이제는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하게 되었다. 학교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을 때가 아닌 그냥 나 혼자 있었을 때 말이다. 함께한다는 것에 길들여져 있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너무 좁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보를 공유하며 탈핵에 대해 알아갈 것이지만, 지금부터 다음 학기까지 혼자서 어떻게 배움을 이어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문제가 되는 점들을 풀어봐야겠다. 조심스러운 시작 이번 학기는 ‘현미 네 홉’이라는 제목으로 농사 수업을 했다. 탈핵을 하기 위한 혹은 탈핵과 비슷하게 지구를 위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농사를 하게 되면 언제나 중학교 때가 떠올라 몸이 먼저 농사를 거부하게 된다. 오후 2시 햇빛 쨍쨍할 때 농사를 했었고, 거의 강제적으로 일을 시켰기에 농사는 무조건 힘들다고 생각하고 자꾸만 피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농사 자체가 싫어진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농사는 지구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크게 본다면 이번 현미 네 홉도 지구를 위하는 일을 하려 했던 것 아닐까 생각한다. 결과만을 바라보지 않고, 농사를 하는 과정들을 보며 일했고, 정석으로 농사를 한다기보다는 풀뿌리 하나하나 씩 뽑아가며 농사를 배우는 그런 수업이었다. 수업을 하면서 ‘실험적’으로라는 말이 많이 나왔었다. 이론이나 실습이나 실험적으로 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보통의 농사수업과는 달리 심는 방법이나 비료, 퇴비 등등 하나하나 직접 만들고 관리하며 농사를 했다. 모든 것을 직접 만들고 관리하는 것 자체가 ‘실험’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어설프게 끝난 것이 있기는 하지만 처음 하는 도시농업 치고는 괜찮게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자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중학교 때와는 다르게 ‘먹을 것’이라는 생각을 별로 안하려고 애를 썼다. 단순히 먹기 위해 키우기보다는 작물을 키우고, 그 작물이 커가는 과정을 보는 것에 집중하려 했지만, 그렇게 집중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현미 네 홉은 순환의 고리 또는 자립, 소비 등등 몇 가지의 키워드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현미 네 홉만의 키워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자립이라든지 소비라든지 이런 단어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가장 핫이슈 한 단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크게 보면 어떻게 살까에 대한 문제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현미 네 홉을 하면서 현미 네 홉이 우리에게 무엇을 바랬는지 혹은 현미 네 홉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론이나 실습을 하면서 나는 단순히 농사를 한다는 생각이었고 정보를 알아가는 것에만 그쳤다. 이 수업을 한다고 했을 때는 내가 중학교 때 했었던 농사와는 다른 농사를 하고 배우겠지, 우리가 배우고 있는 공부의 내용들이랑 어떻게 엮어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을 하며 기대하고 또 불안해했었다. 하자에서 농사를 한다고 했을 때 조금 섣부른 것 아닐까, 하자에서 농사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우리가 배워오고 있는 공부의 내용들이나 방향들로 보았을 때는 농사라는 수업이 없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지만 괜히 했다가 어설프게 끝날 것 같아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았다. 어떤 생각을 하던 간에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만 정작 나는 자신감이 없었다. 그리고 꼭 농사일 필요는 없다고 느꼈었다. 나랑 같이 대안학교 나온 친구들과 농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 다들 절레절레 고개부터 흔든다. 일반학교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다. (그렇다고 일반학교를 나온 분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단순히 농사라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하자 안에서의 농사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은 아니다. 한 번에 너무 큰일로 뛰어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농사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공존하며 살자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일로 사람들은 농사를 많이 말한다. 가장 대표적이고 자연을 위한 일인 농사가 도시 안에서 게다가 학교라는 곳에서 잘 이루어 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현미 네 홉을 한다고 했을 때 가지고 있었던 나의 불안함의 이유 중 하나였다. 내가 느끼기에는 현미 네 홉이라는 수업의 의미와 목표 혹은 수업의 방향들은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어설프게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태도의 문제였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 그리고 질문들이 많아 하나하나 이해하며 갈 수 없었다. 오창균 선생님의 말씀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때나 현미 네 홉에 대한 생각들에 대한 얘기와 현미 네 홉을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다양한 얘기들을 들었을 때 복잡했다. 지금도 물론 복잡하지만 현미 네 홉을 하기 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일단은 뒤늦게 찝찝한 기분을 벗어났고 걱정보다는 앞으로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다. 일단은 현미 네 홉이 있을 텐데 현미 네 홉부터 차근차근 해야 할지 혹은 도울 수 있는 일들 아니면 현미 네 홉과 같은 일들을 더 해볼까 하는 생각들, 앞으로 어떤 실험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하는지 그로인해 우리는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임해야 하는지. 뭔가 새 출발을 하는 그런 기분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짜여있는 틀 밖에서 생활하기 이번 자공공 포럼 때 3만엔 비즈니스라는 하나의 아이템을 후지무라 야스유키 선생님께서 들고 나오셨다. 돈을 목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닌, 한 달에 3만엔 이상의 돈을 벌지 않기, 5일은 공부하고, 하고 싶은 일하고, 쉬고 2일만 일하기 등등 지친 회사원들에게는 피로회복제 같을 이야기를 들고 나오셨다. 솔직히 이야기로만 들었을 때는 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자세히 파고 들어가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돈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미쳤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솔직히 할 수 있을까? 난 못할 것 같다. 착한 사람만 할 수 있다는 3만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돈의 기준치, 동료 수의 기준치 등등 기준치를 정해 놓기 때문에 못할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곧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할 때가 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지금 이런 생각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말하는 3만엔 비즈니스는 나 같은 사람을 약 올리게 만든다. 나쁜 의미에서 약 올린다가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 약 올린다다. 하루에 5일을 일하고 나머지 2일은 쉬는, 지금 이 시대의 삶이랑 정반대인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3만엔 비즈니스가 정말 가능할까? 돈을 많이 벌수록 좋은 지금 이 시대에서 지금과 정반대인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고 말해주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관심만 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3만엔 비즈니스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이 비즈니스의 맥락과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쓰지 신이치 선생님이 말씀하신 슬로우 라이프다. 빡빡한 일상이 아닌 여유롭고, 천천히 그리고 편함보다는 불편함 쪽에 손을 드는 것 등등 말 그대로 ‘느리게 사는 것’을 말한다. 3만엔 비즈니스와 슬로우 라이프 이 둘의 공통점은 ‘바쁘게 살지 않는 것 아닐까?’ 또 그것들이 ‘이 두 개의 일들의 키워드가 아닐까?’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돈 버는 일 또는 해야만 하는 일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간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차 생기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한다. 미래를 꾸며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단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3만엔 비즈니스나 슬로우 라이프는 바쁜 사회 속에서 느끼지 못하고, 놓치게 된 일상의 행복들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의미들이 담겨져 있겠지만, 삶의 템포를 줄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한층 더 낮게 잡아본다면 세상에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삶의 가치가 없다고 떠들어 대는 인간들한테 보여주었으면 한다. 아직 2년이나 남았지만, 나는 2년 뒤 면 20살이 된다. 20살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미성년자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 외엔 나에게 이득이 될 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20살이 되면 실컷 놀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자유롭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제는 지금까지 나중의 일이라고 미뤄두었던 것들을 생각해봐야 할 때이고 이제 20살이 된다면 직장을 갖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될 텐데, 아직 취업이라든지 일을 한다는 개념을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기에 나 같은 사람들이 20살 넘게 나이를 먹어도 혹은 서른 살이 되어도 취업이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 일까? 혹은 자급력이 없기 때문에 도망쳐 나오는 것일까? 자급이라는 단어는 3만엔 비즈니스의 키워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도 그만한 자급력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아니면 하고 싶은 일로 자급력을 키우거나. 요즘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시간 날 때면 잠을 자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TV를 보는 잉여로운 삶을 살고 있다. 상상만 해도 편해 보이지만, 그러고 한 달을 살게 되면 그것은 결코 편한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렇다고 3만엔 비즈니스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3만엔 비즈니스를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게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동료를 만들며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지금부터 계속해서 3만엔 비즈니스 마인드로 생활해야 하지만 그렇게 해도 미래의 삶이 3만엔 비즈니스가 아니라 회사원 혹은 백수로 살아간다면 정말 안타깝겠다. 어른들이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역할 이번 학기 공연 팀은 나에게 가장 하기 힘든 일 중에 하나로 다가왔다. 특히 풀과 같이 박수를 진행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그냥 간편한 마음으로 박수를 진행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진행자가 되어 누군가를 가르치고 누구의 앞에 나선다는 것은 정말 하기 싫은 일 중에 하나였다. 3학기 목표를 ‘나서자’로 정해서 박수를 가지고 잘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평소에 습관이 들지 않았던 것을 갑자기 하기에 힘들었고, 누군가에 앞에 서서 뭘 가르쳐 준다는 것이 정말 싫었다. 공연 팀에서 악기를 가르쳐주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뒤로 숨고 싶었지만 목표를 정해 놓은 것과 3학기로서 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히옥스와 얘기를 나눈 것들이 생각나면서 박수진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박수진행을 하게 되면서 오도리 진행과도 연결되었고 자연스레 3학기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서로의 의견들을 말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페스테자에 기대고 있다가 우리끼리 하려니 안 되는 점들이 있었지만 일단 우리끼리 해보자라는 생각이 우리 안에 있었기에 안 되어도 불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점점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나중에는 아예 안 모이게 되었다. 나 같은 경우는 나중에 가면 갈수록 모이는 의미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귀찮고 지루했다. 그리고 3학기들끼리 하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하는 막막함도 있었다. 푸른이나 아이나 풀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에서는 그랬다. 그래서 분명히 나 때문에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박수를 시작할 때 즈음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도 내고 3학기들끼리 논의도 하며 얼추 짜여 있는 모습이었다. 일단 공연 팀을 하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했던 것도 박수였고, 박수진행에 많은 시간을 냈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박수진행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질 때 나는 답답해했다. 사실 우리 안에서도 막막해했다. 박수는 박수 나름대로, 오도리는 오도리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박수에 대한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 아이디어 혹은 박수 커리큘럼을 하루하루마다 생각해야 한다는 것들이 너무 답답하고 그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아이디어만 생각했고, 오늘은 또 어떤 식으로, 내일은 또 어떻게 할까하며 주구장창 아이디어만 생각했다. 박수와 오도리에 대한 3학기들의 모임이 없어지면서 박수도 거의 하지 않게 됐다.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끝이 났다. 지난 학기와 다른 점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거의 없다고 말할 것 같다. 있다면 지난 학기보다는 일을 능숙하게 한다. 3학기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내가 여기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것인지 속으로 많이 생각했다. 박수를 진행하거나 오도리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공연 팀 안에서 3학기들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게 된 것이 어떻게 보면 한 학기동안 내 공연 팀 안에서의 생활에 도움을 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3학기를 지내면서 가장 듣기 힘들고 싫었던 말은 ‘3학기다운 모습을 보여라, 3학기로서 이것저것 좀 해봐라’ 라는 얘기였다. 거기서 말한 3학기는 정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들이 공연 팀 활동을 하면서 들었었다. 공연 팀 안 3학기의 역할은 페스테자와 1학기들의 중간에서 잘 도와주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이번 학기는 전체적으로 어설프게 끝난 것 같다. 그렇다고 다음 학기에는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든다. 사실 더 두렵다. ‘지금도 잘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게 된다. 잘 안 되는 점은 무엇일까? 그 동안 공연 팀을 대하는 나의 태도 문제였던 것 같다. 그동안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기회들이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분명 박수진행을 더 잘했더라면 내가 3학기를 들어서면서 정했던 목표도 달성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푸른이 공연 팀 잠정적 은퇴를 선언한 이유로 나와 풀 그리고 아이 이렇게 셋이서 할 수 있을까? 박수와 오도리 얘기를 하면서 다른 생각은 안 든다.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안 되었기 때문에 더 더욱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든다. 이후의 생각 이제 와서 내가 정할 수 있는 다짐들과 약속은 얼마나 있을까? 똑같은 얘기를 1년 반 동안 들었고, 1년 동안 그것을 고친다고 말만 하고 다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생각만 한다. 생각의 정리(답)없이 1년 반 동안 살았다. 타인을 통해 정보를 알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나였기에 나는 완전히 수동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어떤 수업이든 간에 말이다. 어쩌면 생각들도 다른 사람들이 정리해주었으면 하는 것일지도 모른 생각에 겁난다. 그리고 내 자신이 변화 하지 않는 것(못하는 것)은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많은 어른들이 사람은 실패하면서 크는 거라고 말한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패는 꼭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더 무섭고 두렵다. 정작 많은 어른들도 그러지 않나? 그래서 평범한 회사원을 하면서, 그냥 한 달 정도 살아갈 수 있는 돈 받아가면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그래놓고선 자신의 자녀들은 그렇게 살게 바라지 않는다. 왠지 나도 그럴 것만 같다. 그러지 싶지 않지만 실패라는 것은 쪽팔리고 무섭고 두렵다. 지금까지는 그냥 나서자 라는 말만 하면서 지냈다. 그것이 안 되는 이유나 원인을 살펴보지 않은 채 말이다. 어떤 공부든 혹은 어떤 다짐이든 간에 나의 문제였던 두려움을 떨쳐내야 나 자신에게 약속하고 공부하고 다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용기가 없지만, 용기 있게 이 일을 마무리 하고 싶다. 그렇지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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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실수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런 의미를 담은 새 연습장을 완벽히 완성해낼 수는 없다. 어쩌면 실수로 처음부터 글자를 틀려버려서 첫 페이지 전체를 뜯어내게 될지도 모른다. 99%는 새 것이라서 여전히 수 백 자의 글씨를 적 어 넣을 수 있는 종이를 찢어내어 쓰레기통에 집어넣게 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결국 연습장 전체가 지저분하고 가치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만일 스프링제본식이 아닌 고급노트라면 그 첫 페이지가 찢겨나간 흉한 흔적 때문에 책 전체가 실망감의 덩어리가 될 수도 있다.
실수를 죽이려 하면 모든 것이 죽고 만다
어떤 종이든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어떤 것은 다빈치의 노트처럼 비밀을 담을 수도 있고, 어떤 것은 삶을 바꿔놓는 한 수의 시를 적어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한 가능성 중에는 시행착오의 가능성도 있다. 거기서 시행착오의 가능성을 완전 차단하려는 시도는 묘하게도 나머지 모든 것의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실수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그의 무한한 발상력에 찬사를 보낸다.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이처럼 미지의 영역을 넘나드는 그를 불가사의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그의 모습에서 발견되는 것 하나가 있다면, 그는 한 장의 종이에 완벽한 내용을 적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학문의 발전
역사상 유례없는 천재들이 매우 일리 있는 이론을 제시한 경우는 많으나, 그것이 수정?보완되지 않은 적은 없다. 그 사실은 학문의 역사가 시행착오의 역사를 지나 왔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모든 학자는 완성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위한 삶을 살았다.
자유의 성분 중 하나
실패의 자유를 박탈당했을 때, 인간은 한 장의 종이도 완성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한 권의 다이어리 전체를 오류 없이 완성하겠다는 결심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면 인간에게 가능한 유일한 것은 자유롭게 실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