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3학기, 공연음악팀, 별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


2012년이 되어 나는 3학기가 되었고, 이번에도 새로운 많은 신입생들과 함께 시작했다. 나는 이따금 우리가 함께 일하는 데에서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각자의 생각과 의견이 다른만큼 가끔은 누군가의 의견은 수렴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고, 네 의견은 별로..라고 직설적으로 말이 오고 가는 때가 있다. 처음엔 그런 분위기가 두렵고 싫었다. 하지만 우리는 학교 안에서 공부도 함께 하고 있고, 일상생활도 함께 하고 있다. 가끔은 프로틱한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무른 일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일을 할 때에 어떠한 결과물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 과정이란 것을 꼭 거치게 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적다. 

각자의 생각 진행속도도 다르고, 가지고 있는 자신의 견해의 밑바탕도 제각각이며 , 거기에 둥글게 말하려고 애쓰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가 옳고 그름을 판단 할 때도 있으며 어떤이는 그러한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때의 모습과 평소 생활 할 때의 모습에는 갭이 있는 모습도 가끔은 있어, 나는 혼란을 겪기도 한다. 많은 이들의 생각을 한데 모아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 것. 그 것들을 바탕으로 일을 진행해 가는 것. 그 것은 어렵다. 우리에게는 ‘자, 시작해 볼까.’ 라는 말을 누군가 하는 것이 필요하고 생각한다. 가끔 우리의 생활을 미루어 보면 나서는 이들이 적다고 생각되는 때가 있다. 

작은 순간순간의 상황들을 지나치고 외면할 때마다, 그리고 누군가 그 것을 나중에서야 꼬집어 말해주어야 내가 깨달을 때에는 나는 왜 섬세하지 못할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이는 가끔 공동작업을 할 때, ‘시간이 없으니..’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신중하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살면서는 여러번 나오는 것이기에, 게으름 피우면 안된 다고 나는 요새 느낀다. 그만큼 우리 중에서 멋대로 자기가 결정하고 혼자 나서서 다 해버리는 사람은 없다.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

함께 생활하면서 일을 하고 있으니 필요한 것이 있다. 서로의 방식을 이해 하는 것.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잘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가 있는가 하면, 몸으로 하는 귀찮은 일을 싫어해서 남에게 슬쩍 미루는 이가 있기도 하다. 나는 나에게 오는 혼란이 크게 느껴지고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신’ 이기도 하지만 ‘자신’만큼 또 다른 그만큼 큰 관심사는 ‘세상’이라는 커다란 단어라서, 다른 이에 대해 관심 가지고 살펴보는 것도 있다. 그만큼 그 사람들에 대해 각각 개인적인 감정이나 사실은 고정적인 관념도 있다. 그렇지만 나의 틀에 맞춰서 딱딱하게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면을 보면 우린 함께 하면서 ‘쟤 또 저런다.’ 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저런 점은 고치면 좋겠다. 라고 생각해서 ‘노력해 보지 않을래’ 하고 서로 끌어내는 것도 필요하고 , 이런 건 그 애가 관심이 있어서 잘 알고 있어 ! 라며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식으로의 함께 하는 것이 노력해 보면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 더 인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나는 세상의 일부고 많은 곳에 속해 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 해봐야 하고 또 할 일이 있다.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난민포럼을 열었었다. 그 날은 따비에와 작업장학교가 함께 메솟에서 하자센터 같은 곳을 만들기 위해서 계획해 온 것들을 함께 검토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었다. 나는 메솟에서 만난 경험을 어떻게 생각하고 다뤄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해왔다. 그 곳에서 관계를 맺은 청소년들을 나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사실 그 때에는 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다녀왔는지도 잘 몰랐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옛 역사의 어떠한 부분이 닮아있던 지금의 메솟, 버마에서 나의 또래 청소년들과 어쩌면 머나먼 미래. 좋은 세상을 만들자. 라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와서 조금 더 가까운 일들을 상상해 보려고 하니 어렵게 느껴졌다. HRAET School에서 온 라후라 씨를 만났다. 라후라 씨와의 만남에서 내 생각보다 인권은 넓고 큰 범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다시 메솟에 간다면 어떻게 친구라고 말한 청소년들과 어떤 마음으로 지내야 할까? 나는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그들은 메솟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어렵고 나는 그들과는 다르게 여기저기 이동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곳에 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좀 더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너의 꿈은 뭐니? 지금 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엄마 아빠가 많은 것들을 지원해 주었고 그래서 쭉 일반학교가 아닌 대안학교를 지금까지 다녀왔다.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시험에 대해 스트레스가 있다거나, 성적에 대한 고민은커녕 교과공부를 잘할 줄 모른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나는 그저 내 삶에 만족하고만 있던 느낌이었다. 그저 난 일반학교에 다니는 내 또래의 다른 애들과는 조금 다르다. 라는 생각에 취해 있어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더 넓은 세상을 보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하자 작업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지구 곳곳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고 있다. 나는 지구의 일부에 속해 있다고 몸소 느껴보진 않았지만 생각은 하게 되는 듯하다. 

우리는 이번 학기동안 저번에 해왔던 영상인문학을 계속 했다. 이번엔 역사 위주라고 해서 관심이 좀 있었다. 메솟에 다녀온 이후로 ‘역사’에 대한 생각이 마음속에서 조금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런데 생각보다 내가 흥미가 있던 부분 외의 부분이 나와서 좀 지루하게 느껴진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배우는 이야기들과 연결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항상 애매하게 생각해오던 분단문제나 전쟁에 대한 생각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눠보면서 좀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가는 군대. 군대를 가는 것이 직업으로 만들어 지면 , 돈 벌려고 군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좀 무섭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자신이 폭력적인 행위를 함으로서 일을 하는 것으로 처리 된다는게 정말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정말 가고 싶지 않지만 가야 해서 누군가 대상을 두고서 그를 해치는 훈련을 받는 것도 크나큰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평화로운 방법은 없는 걸까 ? 생각한다. 남과북에 대한 이야기에는 어렸을 때부터 통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전에 다니던 학교 때문이기도 했고, 평소 알고 지내는 어른들이 남과북은 통일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빨갱이라고 욕먹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세히는 몰라도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전쟁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 전쟁영화도 정말 싫어한다.

집 앞 광장에 6월25일만 되면 사진전시회를 해서 그냥 걸어가는 길에 폭력적인 사진을 자주 걸어 놓았다. 5월18일이 되도 그 광장에서 추모하는 천막을 쳐서 열사들의 영정사진을 걸어놓고 향을 피우거나, 우리집은 꽃집이라 자주 근조화환을 내놓거나 국화꽃을 놓기도 했다. 5.18전시 사진들도 군화에 짓밟혀 일그러진 얼굴 이라던가 갈기갈기 잘려지고 찢겨나간 ,신체라고도 알아볼수 없는 몸들 같은 사진들을 반 강제적으로 봤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걸려있는 사진들을 보면 아직도 큰 거부감이 느껴지고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정말 무섭다. 광주민주항쟁 이라던지, 6.25전쟁 하면 나는 민족성에 대해서 큰 견해도 없고 우리는 한민족이다 !라고 생각하거나 나의 소원은 통일이요. 라고 하는 뜨거운 열사의 마음이 크게 있지 않았지만. 접해온 것들의 영향이 있어서 그런지 어쩐지 그런 단어를 들으면 관심이 생기고 어쩐지 애틋한 마음이 되는 건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먼 세대가 겪은 일이지만 (내가 일반학교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할아버지 였는데 6.25당시에 어머니 등에 업혀 피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일들을 자손에 걸쳐 자신의 아픔을 잊지 말라고 이르며 알렸던 이야기들이 지금의 나에게 까지 이어온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그 일들을 또 일으키지 않기 위해 역사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은 있지만 달라진 점은 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 싸워야 한다 ! 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정말 싸워야만 일이 해결 될까? 한쪽이 한쪽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도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들인 것일까 ? 우리의 분단의 문제도 항상 생각하는 것은 싸워서 이긴쪽이 세력을 잡아 갈 것 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체제를 바라보는 나라를 다시 하나로 어떻게 모을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이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또 전쟁이 일어남으로서 이루어지는 세대가 생기는 이야기를 위주로 흥미롭게 들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칼, 검으로 하는 전쟁에서 총, 대포로 바뀌었고 이제는 디지털, 사이버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것을 망가트리는 전쟁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핵으로 자신이 적으로 생각하는 곳을 위협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우리가 좀 더 평화적으로 이야기 해볼 수 있는 요소는 없는 걸까 ? 


나는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할까

미래에 대한 일을 생각하면 희미하게 느껴져서 답답할 때가 있다. 딱히 ‘장래희망’같은 것들을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안학교에 다녀왔고 중학교 때부터 나는 커서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갑갑했다. 나도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보고 싶다. 라는 10대의 청춘에 젖은 단순한 생각도 언젠가는 잠깐 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도 나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 먹고사는 일이라고 하면 힘든 일이기 마련 일텐데, 그걸 알면서도 나에게 계속 해나가고 싶은 일이 어떤 일인지 모르겠다. 지금 시점에서 나는 아마 초조해 하는 것이겠지.

이번 학기에는 많은 선생님을 만났다. 이번에 만난 후지무라 선생님은 ‘3만엔 비즈니스’라는 제안을 가지고 오셨다. 3만엔 비즈니스는 빼앗지 않는 것이 약속인 비즈니스이다. 1달에 30만원을 벌 수 있고 좋은 일을 편하게, 그리고 한달에 딱 이틀만 일한다는 점이다. 어떤 것들을 가지고 일을 할지는 자신의 자유다. 예를 들면, 천연 염색 손수건 만들기 워크숍을 동료 한명을 구해 한달에 이틀만 나가서 일을 하면 된다. 그리고 그 수익은 동료와 나눠 가진다. 이틀에 해당 되지 않는 남은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내 텃밭을 가꿀 수도 있고 동료들과 집을 짓는 일을 시작해볼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자급률이 높아지고 지출이 줄어들도록 한다. 

그러나 나는 3만엔 비즈니스가 멀게 느껴졌다. 내 주변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3만엔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의 사회는 너무나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직장인들은 사장의 위에서 부터 내려오는 잘 짜여져 있는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을 한다. 그리고 대부분 휴일에는 자신이 일해서 번 돈을 소비 하는데에 쓴다. 집세를 내고 쇼핑을 하든 먹고 싶은 음식을 사먹든. 지금의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 시골은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없다. 내가 시골에서 살 때만 해도 내 주위 또래친구들은 다들 도시로 나가고 싶어 했고 시골은 구질구질하다고 그 곳의 어떤 청소년 들은 말했다. 지금은 무언가 바뀌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도시에 나왔다. 시골로 돌아간다는 일정은 내 삶의 계획 중에 속해 있었지만 나의 미래에 대해 더 넓고 길게 상상하는 것은 어려웠다. 3만엔 비즈니스가 있다면 정말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을까? 시골로 가서 어떤 일을 할 지도 나는 잘 모르지만 자급률이 높아지고 지출이 줄고, 또 남은시간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책에선 그저 멀게만 느껴졌던 이야기였지만, 계획을 잘 짜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함께할 수 있는 동료들도 내 주위에 있어야 겠지.

과학은 정말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후지무라 선생님은 ‘발명가’는. 그냥 물건을  창의적으로 발명해내는 사람이 아니고, 어디든 가서 문제해결을 고려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용기와 희망은 가장 베이스적인 요소들이고 이것들이 있어야 노력과 협력,궁리가 가능하다고도 말하셨다. 이번에 대체 에너지에 대해 여기저기 찾아가 보고 영상도 보게 되면서 생각보다 지구에는 발명가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실험도 해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가족이 다함께 에너지에 대해 고민해 보거나, 개인주택에 태양열 발전기를 달아보는 이들. 어떤 사람은 참는 게 아니라 발전시키는 자부심이 생겼고 자기가 하게 됨으로써 의식하게 되고 즐겁다고 이야기 했다. 그만큼 개인 개인이 작게라도 해볼 수 있는 발명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공동체로 갔으면 좋겠다. 

우리는 하자센터에서 함께 도시농사를 지어보는 ‘현미네홉’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센터안에 밭이 3개 있다. 앞마당에 있는 밭은 ‘비에도 지지 않고 밭’ 뒷마당에 있는 밭은 ‘ 바람에도 지지 않고 밭’ 마지막으로 옥상에 있는 밭은 ‘눈에도 지지 않고 밭’이다. 자급자족과 먹거리에 대해 생각해 보고 생태적인 라이프 스타일에 다가서려는 마음으로 접했던 프로젝트 이다. 흙과 농사는 참 주변 환경등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느꼈다. 모든 생명들도 다 그런 것이 아닐까? 생태계에서의 인간은 항상 위에 서려고 하는것도 생각이나고.

나는 흙을 자주 만졌었다. 농사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사에 관심이 많은 학교에 다녔고 내 주변 환경과 사람들도 농사와 가깝게 지냈었다. 늦봄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오줌을 발효시켜 작물에게 액체 비료로 쓰는 오줌액비나 냄새가 심하게 나는 목초액 같은 것들도 지금은 면역이 되어서 낯설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골에서 하는 작은시골 학교에서 꼼지락 대는 농사와 또 도시에서 하는 조그마한 텃밭농사는 조금 다른 점이 있을 것 같다. 먹을 수 있는 작물을 기른다는 것은 아무리 자연 농법이라고 해도 꾸준한 관리가 필요 한 것이다. 생각보다 학교생활을 동반하여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물을 주고 액비를 주고 또 어떤 작물이 어떤 상태인지 체크하며 수확도 해야 할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 한 하자 센터 안에서 센터 사람들과 함께하는 농사라고 인식되기도 어려웠던 것 같다. 아직은 시작단계 이기 때문에 더 노력이 필요한 부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여러 가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나갈지에 대해 여러 시도를 해보고 있다고 개인적으로도 생각한다. 어떤 가치들이 소중한 것들이고 어떤 일들을 나중에 해보면 좋을까 떠올려 볼 수도 있었 던 것 같다. 

1년 동안 디자인팀에 있다가 지금이라도 조금 더 마음이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공연음악팀으로 팀을 바꾸고 한학기가 지났다. 나는 매체라는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번 한 학기 동안 생각 하게 된 점은 크게 몇 가지 정도가 있다. 일단 나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렇게 불타오르는 마음은 아니라는 점. 주변사람들이 너 음악 좋아하잖아? 라고 나에 대해 말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 나는 그런 어투에서 부담감을 느끼고. 좋아하긴 하지만 내 생활에서 많은 부분은 차지하지 않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가끔 우리 엄마는 내가 커서 음악인이 되고 싶은 줄 아신다. 나는 그냥 즐기는 것이 좋을 뿐인데..그래서 매체로 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지금의 팀에서 하는 매체 활동은 전체적으로 즐겁게 하고 있는 편이라 생각된다. 또 생각한 점 중 다른 한 가지는 함께 하는 것은 어렵다. 라는 것. 공동작업을 통해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1학기와 3학기, 페스테자와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페스테자가 우리에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는 방식대로 하고 있다. 그 안에서 1학기의 분위기가 있고 3학기의 분위기가 있고 또 페스테자의 분위기가 있다. 1학기는 전체적으로 매체에 대한 마음이 강하고 , 자신에게 매체가 어떤 것인지 확실히 잡혀있지 않고 여러명이 따로 노는 분위기다. 아직 함께 한지 많이 되지 않았었고 매체수업 때의 감정이나 느낌 등이 잘 나누어 지지 않는 느낌.

3학기는 또 3학기만의 느낌이 있고 페스테자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입장이다. 지금의 분위기가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 졌다. 나는 이렇게 어딘가 나누어 지고 어떤 입장이 생겨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려면 당연히 생기는 것이지만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라는 존재는 이도저도 아닌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될까 하는 느낌..

악기는 치면 친다. 합주도 하면 한다. 그런데 돌아가면서 어떤 공연은 어떠했는가 공유하고 또 이번 워크숍은 어떠했는가 공유하는 자리에서 부담감을 느낀다. ‘리뷰’라는 딱딱한 것이 더 무겁게만 느껴졌다. 나의 포지셔닝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왕좌왕 하면서도 워크숍 회가 늘어날 때마다 음악이 이렇게 재미없는 것이었던가? 하고 느껴지게 되기도 했다.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학교 생활을 함께 하면서 매체활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어떤 표현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라고 생각해도 좋은 것일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어떤 것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인 것일까 ? 하지만 왜 디자인, 영상 , 공연음악 중 한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매체란 내가 어떤 감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에 더 흥미를 가지며 해나가고 마음을 붙일 수 있는 것인가. 는 아닐까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세상에는 평화를 위해 일하며 바쁘게 사는 사람도 있고 지금은 무엇보다 살아남는 생꼐가 눈 앞에 크게있는 사람이 있듯이 이곳저곳의 상황은 크게 다르기도 하고 슬픈 일도 많고 또 즐거운 일도 많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 큰 이유 중 하나는 죽을 수 가 없기 때문에 이지만, 그 안에서의 살아가는 이유나 의미는 많다. 내가 누군가에게 하는 작은 행동으로 그 누군가는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과 여러 그룹, 공동체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익혀온 나의 사소한 행동이나 버릇이 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 것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의 생물에게 영향을 주는 의미를 가진 움직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그 것을 의식 하기 시작하고 또 스스로 고쳐나가거나 진전시키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때로는 그 것이 자신을 부정당하는 일 처럼 느껴지며 힘든 생각에 잠기는 시련일 때도 있다. 그래도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

나는 남이 나에게 부정적인 일로 민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한다. 분명 나 처럼 느끼는 사람은 많다. 그러므로 나도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그 행동이 고의였든 무의식으로 행동해진 것이었든 신경써야 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말해주었던 적이 있다. 사람들은 서로 폐를 끼치며 살 수 밖에 없는게 아닐까? 하고. 그렇게 사람들은 살아간다. 나는 사람이든 다른 생물이든 중요하게 여기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기존의 나보다 조금더 곰곰이 생각 할 필요가 있는게 아닐까?

10대의 후반이 되어가는 지금의 시점에서, 여러 사람들이 내 주위에서 나를 어리다고 여기며 사회인과 학생. 두 개의 신분으로 나누어 나를 볼 때가 있다. 나는 그 사람이 경험해본 사회인 혹은 회사인의 바쁘고 힘든 경험은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조금 더 시선을 넓혀보고 가볍게 말하지도 않는, 어떤 것의 의미를 생각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
Please consider the planet before printing this post

hiiocks (hiiock kim)
e. hiiocks@gmail.com
w. http://productionschool.org, http://filltong.net
t. 070-4268-9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