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산업혁명 이미 시작됐다”
마르틴 예니케 교수는 “그린 뉴딜은 혁신에 초점을 맞춰야지 성장률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이른바 ‘스마트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87호] 2009년 05월 11일 (월) 15:27:28 신호철 기자 shin@sisain.co.kr

   
마르틴 예니케 교수(오른쪽)가 한국 정부의 그린 뉴딜 관련 예산을 살펴보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친환경 녹색경제가 발달한 나라라면 단연 독일이 꼽힌다.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종사하는 인구가 28만명(2008년 기준)에 이를 정도다. 독일의 녹색혁명을 성공케 한 주역으로 두 이론가가 있는데 한 명은 에른스트 울리히 폰 바이체커이며 다른 한 명은 마르틴 예니케 베를린 자유대학 석좌교수다.
예 니케 교수는 1982년 ‘생태적 현대화’(Ecological Modernization) 개념을 창안하고 이를 확산해 1980년대 이후 독일이 녹색의 길을 걷게 만든 주인공이다. 1974~1976년 독일 총리 자문위원, 1981~1983년 베를린 하원의원, 베를린 주 의회 하원의원을 지냈다. 1986년 환경정책연구소를 설립했으며 2000~2004년 독일 연방 환경자문위원회 의장 등을 역임하는 등 현실 정책 수립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의 초청을 받아 방한한 그는 5월6일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함께 녹색혁명을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박원순 변호사가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이 대담에서 예니케 교수는 우리가 제3의 산업혁명기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박원순:교수님은 지난 수십 년간 ‘생태적 현대화’ ‘에코 혁신’과 같은 개념을 제시해 이를 유행시켰습니다. 최근에 와서 교수님의 이 개념들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예니케:사실은 제가 이 말을 도입하기 이전부터 이런 개념은 존재했습니다. 뜻은 하나인데 단어가 여러 개였던 셈이죠. 생태적 현대화란 간단히 말하자면 지식 집약적이고 자원 절약적인 생산을 하자는 뜻인데요. 이미 1974년 일본 정부가 석유 위기에 대응하면서 내걸었던 말입니다. 그전까지 자원 집약적인 생산에 치중했던 것을 기술혁신을 통해 환경을 보호하는 생산구조로 바꾸자는 거죠. 이 독특한 아이디어는 지난 35년 동안 꾸준히 발전해왔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이 생각에 동의하고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화두가 되는 개념이 이미 1970년대에 나왔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만큼 시간을 허비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박:35 년 전에 주창된 개념인데도 그동안 실질적인 대응이 없었던 셈이군요. 교수님께서는 이런 개념들을 모아서 ‘3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로 요약했습니다. 요즘에는 오바마 대통령 같은 사람도 녹색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쓰던데요. 여기서 혁명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친환경 경제가 단순히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 정치구조까지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마르틴 예니케 교수(왼쪽)는 그린 뉴딜을 위해서는 유능하고 전략적인 정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니케:혁명이란 지금의 드라마틱한 상황과 드라마틱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드라마틱한 용어입니다. 생산 방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대량생산 시대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에너지 소스가 변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 1차, 2차 산업혁명을 보면 경제뿐 아니라 사회·정치 분야의 변화를 동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차 산업혁명 때 진보적인 법체계가 발전하고, 의회 체계와 함께 민주주의도 발전했습니다. 3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세금제도가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 노동에 부과하던 세금이 지금 자원 소비와 공해에 부과되고 있습니다.

박:19세기에 마르크스가 유럽에 유령이 떠돈다고 말했을 때도, 공산주의가 그렇게 빨리 도래할지는 예상하지 못했죠.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는 이런 변화가 얼마나 빨리 진행되고 있는지 알기 힘듭니다.
예 니케:3차 산업혁명은 1990년대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에너지 소스가 석탄과 석유에서 재생가능 에너지로 바뀌거나 고효율 에너지로 바뀝니다. 독일의 경우 석탄 전력발전소 7~8개가 문을 닫았습니다. 이런 변화에 맞춰서 국가의 역할도 재조정됩니다.

박:2004 년에 독일 남부 지방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환경운동을 하는 활동가들과 인터뷰를 하며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신재생 에너지 붐이 일어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독일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빨리 녹색경제 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저항은 없었습니까?

예니케:당연히 저항이 있지요. 2차 산업혁명 시기의 산업 영역, 이른바 ‘공룡’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낡은 산업 영역에서 저항이 심합니다. 저는 베를린 하원의원이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석탄 전력산업 쪽에서 로비가 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새로이 일어나는 산업계보다 과거부터 유지된 낡은 산업계 쪽이 더 로비의 힘이 강합니다. 여기서 로비라는 것은 꼭 돈의 문제만이 아니라 기관과 기관 사이의 인맥과 네트워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메르켈 총리조차 이런 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석탄과 원자력 업계의 저항에 비하면 엑손이나 셸, BP와 같은 석유업계는 독일에서는 오히려 저항이 크지 않았습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오른쪽)는 녹색혁명 과정에서 국가가 시민사회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변화를 주도했을 때 발생하는 부작용을 염려했다.
박:이런 로비와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예니케:정부의 구실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3차 산업혁명은 매우 높은 실행력을 가진 정치적 시스템을 요구합니다. 국가만큼 합법적인 권력과 책임을 가진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장기적 이익을 보고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높은 실행력을 가진 정치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때로 정부도 실수를 합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흔히 정부기구를 공격하고 정부가 만든 규제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규제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오히려 규제를 통해 기업은 명확한 사인을 받고 그에 맞추어 움직여나갈 수 있습니다. 좋은 규제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줍니다.

박:3차 산업혁명은 국가별로 다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교수님은 논문에서 유럽이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것이라고 예상하셨습니다. 그리고 중국과 인도도 언급하셨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에는 물음표를 붙이고 계십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습니까?

예니케:유럽이 녹색 기술혁명을 주도할 거라고 보는 이유는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EU)이 추구했던 헌법이 녹색헌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법체계가 환경 친화적입니다. 친환경 기술이 성장할 만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지금도 새로운 규제와 친환경 정책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에 적응하는 유럽 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집니다. 중국 역시 제3 산업혁명의 주요 플레이어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유럽이 강한 이유는 민주적이기 때문이고, 중국이 강한 이유는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주 흥미있는 경쟁 구도입니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요즘 중국은 독일을 모방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과 미국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없습니다. 일본은 오래된 올리가르히(재벌)들을 개혁하고 경제구조의 혁신을 이룰 수 있다면 기대해볼 만합니다.

박:한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예니케:한국은 때때로 무척 혁신적일 때가 있습니다. 1990년대 초에 만들어진 몇몇 계획은 야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은 국제적으로 녹색기술 분야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교수님은 중국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중국은 분명히 국가 주도로 변화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국가가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장차 걸림돌이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한국 같은 경우도 최근 정부가 녹색성장을 주도하는데, 시민사회 영역은 소외되고 있습니다. 사회 내에 반발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을 ‘녹색 독재자’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관료집단이 일방적으로 위에서 지시를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 네트워크와 함께 움직이는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사회적 네트워크는 중앙의 실수를 방지할 수 있는 구실을 합니다.유럽연합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박:교수님은 3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기술혁신을 강조하십니다. 과거 1, 2차 산업혁명의 역사를 보면 산업혁명 과정에서 기술 격차로 인해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정치적 패권으로도 이어졌습니다. 3차 산업혁명에도 이런 기술 격차가 가혹한 패권 경쟁으로 이어질까요?

예니케:친환경 기술을 개발하는 데 나라마다 딱히 조건이 크게 차이나는 것은 아닙니다. 자원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인도의 풍력 회사 수즈톤이 유럽 기업을 인수한 사례를 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나라마다 기술 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술 이전이 아니라 기술 협력을 뜻합니다. 또 기초 기술 개발이 값싼 비용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실현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정책적으로 조인트 벤처(joint venture)를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박: 녹색경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1,2차 산업혁명을 통해 대기업들이나 기업가들은 부를 창출했지만, 3차 산업혁명에서는 굴지 재벌의 탄생이나 막대한 부를 창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은 세계 최고의 신재생 에너지 발전 국가다. 왼쪽은 풍력발전기이고 오른쪽은 태양열 발전기.
예니케:아주 중요한 지적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저성장 시나리오를 인정해야 합니다. 유럽연합의 경우는 3% 실질성장률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박:일부 국가에서는 고성장을 지속하지 못할 경우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예니케:지금 우리를 둘러싼 경제 문제에 대한 해답은 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부의 재분배에 있습니다.2~3% 성장률은 언뜻 작아 보이지만,장기적으로 매우 큰 변화입니다.성장률이 작을수록 위기 대처는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똑똑한 성장(smart growth)’이라는 개념입니다. 똑똑한 성장이란 숫자상으로 드러나는 성장률은 작더라도 실제 혁신의 비율은 높은 상태를 말합니다. 노동생산성은 줄어들지만, 자원생산성은 더 높아지는 상태입니다.

박:현재 한국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예산 현황을 보면 4대강 개발과 원자력 개발에 많은 비용이 투자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먼저 4대강 사업은 토목공사에 집중되어 있는데 토목 건설 분야는 ‘창조적 혁신(creative innovation)’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니케:자료를 볼 수 있을까요? (도표를 본 후) 그렇군요. 이 정책은 성공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건축과 건설이 환경에 도움을 줄 수는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동물이 고속도로를 건널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일이라든지,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건설 공사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4대강 사업이 이런 유형의 것인지는 따져봐야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연료 효율성(fuel efficient)’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와 기술 경쟁을 하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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