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책]열심히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다면?

경향신문 | 2009-10-30 10:13:05

ㆍ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저자는 미국의 '워킹 푸어'에 대한 해법으로 '정부와 기업을 통한 사회적 의무와 노동 및 가족을 통한 개인적 의무의 통합'을 제시했다. 뼈가 부서지도록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워킹 푸어(working poor)'라 부른다. 이들은 "대부분 분노할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하루하루 힘겹게 반복되는 일상과 싸우느라 지쳐 있는 사람들이다. 받고 있는 임금만으로는 도저히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현재의 삶이 미래를 위한 삶이 되지 못하고 가난의 덫을 더욱 강화시키고 마는 사람들이다". 미국인들이 지닌 신화는 '최하층에서 태어나더라도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한다. 그런데 열심히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다면? 이 반(反)신화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퓰리처상을 받은 탁월한 저널리스트 출신의 저자인 데이비드 K 쉬플러는 복합성과 인과율로 정리한다. '워킹 푸어'는 "서로 상승작용하는 일련의 장애들이 모여 생겨나는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저임금이면서 저학력, 장래성 없는 직업에다 제한된 능력, 넉넉지 못한 저축과 더불어 현명하지 못한 지출, 나쁜 주거 환경과 더불어 악순환의 고리를 강화시키는 부실한 자녀 교육, 낮은 의료보험 가입률과 더불어 건강하지 못한 가정 상황 등이 촘촘한 그물망으로 연결된다. 여기에 정치·경제적 권력 구조에 존재하는 제도적 문제와 사생활 및 가정생활에 존재하는 개인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인 이민자도 '워킹 푸어'다. 한국에서 은행 창구 직원으로 일한 이정희는 1995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남편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고자 학생비자를 받았고, 그녀도 공부할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집을 팔고 온 돈은 1년만에 바닥이 났다. 한국에서는 침실 3, 화장실 2개의 집에서 살았지만 LA에서는 침실이 하나만 있는 집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는 아이 둘이 잤기 때문에 부부는 바닥에서 잠을 잤다. 미국에 올 때 품은 야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남편은 봉제 하청업체의 매니저로 일하고, 그녀는 한국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 수입은 모두 지출되고 저금으로 돌릴 돈은 없다. 그녀와 남편은 문제가 많다. 서로 대화할 시간도 없고, 공통된 화제도 없다. 자주 다툰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계 이민자는 미국에 동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계 이민자의 이혼율이 거의 50%에 이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워킹 푸어'다. 이렇듯 "희망에 지쳐 꿈도 사라진" 이들의 일상을 추적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문제는 남 이야기할 새가 어디 있냐는 것이다. '워킹 푸어'가 우리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학진학률은 세계 1위를 넘나들지만 학비는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청년실업률은 곱절로 늘었다. 사교육비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다. 의료비의 민간지출분 역시 OECD 국가에서 최상위권이다. 수도권에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2, 13년이 넘도록 모아야만 한다. 그래서 내 집 마련이나 노후보장은 영원한 로망에 불과하다. 미국은 그래도 '워킹 푸어'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냥 '푸어'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부의 편중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는 또 다른 분단을 낳고, 시대는 역주행해 신분제봉건사회로 회귀 중이다. 저자는 미국의 '워킹 푸어'에 대한 해법으로 '정부와 기업을 통한 사회적 의무와 노동 및 가족을 통한 개인적 의무의 통합'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해법은? 먼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고통과 연민의 정을 느껴야 한다. 염치가 있어야 한다. 이 책의 끝 문장이 이렇다. "이제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되었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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