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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렇게 강한 척하며 살아가는 걸까. 강해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살아남는다고, 약한 모습 따위는 보여서는 안 된다고 되뇌며 사는 삶. 그래서 결국 우리는 약한 이들을 제도적으로, 심적으로도 차별하고 격리한다. 그리고 언젠가 사회로 '복귀'해야만 하는 비정상적인 존재로 규정한다.(…) 이깟 '사회'로 좀 돌아오지 않으면 어때서? 여기서 이렇게 어떻게든 살아가는데. 평생 병을 끌어안고 살면 또 어때? 이렇게나 멋진 사람들인데." 



초대의 말씀


일본의 홋카이도, 우라카와라는 가난한 어촌마을에 있는 ‘베델의 집’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이 마을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들 가운데 몇 분이 이 마을에 다녀와서 들려준 이야기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다양한 정신장애를 겪으며 고생에 고생을 거듭하는 사람들, 그래서 약하기만 한 존재, 그리고 약함을 통해 만들어지는 '연대' …….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의 중증장애인 극단인 타이헨과 협력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극단의 대표이고 연출자이자 대단한 배우이기도 했던 김만리 선생은 아주 독특한 연극미학을 가진 분이셨지요. 김만리 선생은 중증장애인 배우들에게 레오타드(흔히 무용수들이 전신타이즈와 같은 옷)를 입도록 하여, 배우들이 가진 신체의 연약함과 뒤틀어짐, 행위의 통제/조종 불가능함, 무력함 같은 것들을 그대로 내보이게 했습니다. 그러한 파격적인 연출로 기존의 미학이 주는 것과는 아주 다른 차원의 미적 감동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 연극에 참여한 한국인 배우들과 그들을 도왔던 하자작업장학교 학생들은 협력작업을 통해 이러한 미적 경험과는 다른 것도 경험했습니다. 학생들은 구로코(黑子) 역할을 맡았습니다. 구로코들은 검은 옷을 입고 머리, 얼굴 그리고 손을 가립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존재를 지우고, 무대에서 배우들을 이동시키거나, 무대 세트를 바꾸거나, 연기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일본의 전통극인 가부키나 노에서는 낯설지 않은 무대 스태프들이지요. 무대 아래에서는 중증장애인들이 배우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존재형식을 바꾸는 일도 도와야했습니다. 학생들은 중증장애인들에게 묻습니다. 이제 배우가 되실 준비가 되었습니까? 옷을 갈아입혀 드릴까요? 레오타드로 갈아입는 일은 하나의 ‘의례’였습니다. 의상을 입은 배우들은 우리 사회에서는 비가시적 존재로 차별받고 격리되지만, 무대에서만큼은 문자 그대로 ‘배우’들일 뿐이었습니다. 반면에 비장애인들인 학생들은 비가시화되었을 때만 무대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들이나 학생들이나 전도된 세계를 경험한 것입니다.  


저희 학교 학생들은 봉사점수와 같은 제도덕분인지 ‘자원봉사’ 경험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협력작업을 하면서 전에 배웠던 ‘지침’대로 장애인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놀랐고, 대화하고 신뢰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가는 파트너가 된다는 것이 신기하고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중증장애인들과 학생들을 연결한 이 ‘예술적 관계’란 일상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조금 다른 사회적 관계였습니다. 이 ‘예술적 관계’속에서 조심스럽게 관계의 형식을 더듬어 가는 일은 무척 뜻 깊고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그리고 타이헨극단이 떠난 뒤 이 예술적 관계를 지속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 당황스러웠습니다. 친구가 되고 우정을 나누자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사적인 친교 를 나누는 것 이상의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배우들과 구로코들 사이에서 ‘타이헨 코리아’를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고, 조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2년의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베델의 집은 타이헨극단처럼 조금 다른 공간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타이헨극단이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처럼 베델의 집도 우라카와 마을로 ‘들어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얽혀 살고 있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고 ‘고생의 연속’이지만 베델의 집 사람들은 유머러스하게 넘어가자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 분들의 고생을 덜하려면 베델의 집뿐 아니라, 우라카와 마을에서도 베델의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함께 살기라는 건, 단 한 가지의 삶의 형식을 강요하지 않는 다양한 삶의 형식을 전제로 너와 나 사이에 제3의 형식을 떠올려야 하는 것이고, 그 제3의 삶의 형식이 가능한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공유지를 만들어내는 일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베델의 집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마침 베델의 집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이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의 ‘고생담’에 귀 기울이면서, 각자 자신의 삶의 ‘약함’을 들여다보면서, 약함으로부터 엮어나가는 조금 다른 사회를 꿈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2013년 5월 22일

하자작업장학교 김희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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