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마지막 문단은 아직 넣을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마무리 구체적으로 하는 것까지 내일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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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학기 중간 정리 에세이

‘나와 그들’에서 ‘우리의 Empower’가 되기까지

하자작업장학교는 지난 11월 2일부터 일주일간 공공미술팀의 Art in Village <예술마을 사북·고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는 과거 사북·고한읍의 석탄마을이라는 정체성이 현재의 카지노마을로 급변하며 빚어진 이물감을 포착, 지역에 직접 들어가 마을의 정체성을 함께 고민하고 그것을 작업으로 풀어냈다.

나는 한 명의 작업자로서 마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통해 나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함께 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작업으로 계획한 것은 지역의 일시적 거주자(TAZ)와 마을 원주민을 연결하는 ‘Daily Webzine’이었다. 하지만 마을에 직접 들어가니, 웹진의 역할보다는 시선이 간 것으로 인해 계획을 미루고 나의 정체성과 더불어 사는 것,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고민을 끄집어내게 되었다.

1-1. 정체성, 나를 포함한 주변과 대화를 준비하기

주체로 거울을 마주하는 것

사북의 동원탄좌를 돌고, 경석산을 오르는 일정이 있었다. 동원탄좌에서, 나는 처음엔 작가들의 전시 관람을 목적으로 출발했으나, 현재 만들어진 작품보다 과거 보존되어오던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동안 1층 탈의실을 중심으로 캐비닛을 뒤적이고, 사무실의 책상 서랍을 열어보았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그 장소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상상하며 혼자만의 짧은 여행을 했다. 이후 경석산을 오를 때 마을에서 본 산과 산에서 본 마을을 비교해보았다. 40년간 석탄의 증거물로 보존되어온 토박이 경석산이 어쩌면 마을에서 가장 이물감을 주는 존재가 아닐지 생각해보았다. 짧은 감상을 뒤로 하고 이틀간의 개인탐사 시간을 갖게 되었다.

탐사 당시, 나는 내 안의 ‘나들’을 마주하는 게 힘들고 괴로웠다. 받은 피해에만 집중하는 나의 소인배스러움이, 대화를 원하지만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 노력하지 않은 자기중심적 사고가 나 스스로를 미워하게 했다. 그래서 내가 과연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지, 내가 과연 다른 사람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이나 할지 자기비하를 많이 했다. 이기심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머리는 땅을 파고 들어가는데 몸은 계속 탄좌를 향해 걷고 있었다.

개인탐사 첫날 가장 심도 있게 생각한 것은 광부의 삶이었다. 뿌리관에서 잠시 엿본 3.3항쟁의 역사가 광부의 모습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돈을 벌기 위해 생사의 갈림길에서 폭탄을 터뜨려야 했던 산업전사 광부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을까? 나는 탄광마을의 사실적인 모습을 보여준 한 다큐에서 조금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탄좌가 들어서기 전, 몇 가구 없는 작은 마을이었던 사북·고한은 그 때에도 생존을 위한 욕구가 강했다. 살기 위해 뭉칠 수밖에 없던 마을이 거대한 탄광으로 빠르게 변했고, 너도나도 몰려든 인파 속에서 마을 주민들은 옆집이 옆방 같은 환경에서 살았다. 석탄 산업은 열악한 조건이었으나 불황 속에서 검은 황금을 캐던 광부들은 신나게 일할 수 있었다. 동료가 갑작스레 죽어도 가족을 위해, 남은 사람을 위해 웃을 수 있었으리라.

때문에 동원탄좌 탈의실에 붙은 손바닥만 한 거울은 광부에게 꼭 필요했다. 무섭고 냄새나고 목이 턱턱 막혀도, 석탄 떼를 물로 씻어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족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3.3항쟁 당시 광부의 적은 급격하게 변하는 산업구조였고, 삶에 대한 목표와 의지가 확고했기에 필요한 것을 떳떳하게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과거의 광부는 거울 속 자신을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었고, 현재의 마을은 3.3항쟁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을은 석탄의 역사 또한 하나의 업적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고한고교에서의 사색

사북에서 과거 석탄마을로 거슬러 올라갔다면, 고한에서는 마을의 현재를 직접적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고한은 사북보다 훨씬 도시화되었고, 지나가는 사람도 비교적으로 많았다. 편의점, 상가, 모노레일, 잘 정비된 도로와 인도, 통일된 시장의 전경은 마을을 충분히 ‘도시스럽게’ 만들었다.

고한에 가면 모노레일부터 타보라는 몇몇 사람들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날씨가 꽤 더워서 모노레일 안은 거의 찜질방 수준이었다. 모노레일 안에서 마을 아주머니들을 만났는데, 수다 떠는 걸 듣고, 잠깐 얘기도 해보았다. 건설에 쓰인 돈만큼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야기와, 시장의 활성화를 바라는 내용이었다. 서울 지하철 옆에 앉은 아주머니들의 수다와 큰 차이가 없던 건 ‘어쨌든 정부에서 알아서 할 거야’였다. 뿌리관에서 느낀 투쟁의 역사와 크게 대조되어 묘했다. 지금 마을은 투쟁보다는 합의가 우선이 된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아주머니들과 인사를 하고 고한고등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니어 1학기 때부터 내 주변의 환경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큰 키워드는 돈과 10대였다. 나의 가정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그 어떤 고민보다 현실적이었으며, 그만둘 수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지금의 10대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 충분히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인 돈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질문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의 10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정현씨의 말대로 레저 산업에 몸을 담거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로 가는 것만이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까? 나와 그 아이들은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설레면서 답답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아쉽게도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4시였고, 이어서 바로 야자를 한다는 소식에 몸도 마음도 무거워졌다.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학교 운동장에 ‘너넨 꿈이 뭐니?’라고 크게 적었다. 학교 밖으로 나와 쉬고 있는데 종이 쳤고, 교실 안에서 종이비행기 하나가 운동장으로 툭 떨어졌다. 확인해보니 그냥 이면지를 접어 날린 거였다. 실망 섞인 한숨이 나왔다. 그 상황 자체가 내겐 너무 암담하고 우울했다. 그리고 하자 밖 청소년들과 대화할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얘기를 제외한 얘기를 주로 하는데, 내가 고민 얘기를 하면 지루할 게 빤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실제로 얘기했을 때 대부분 ‘아 그래’라며 얘기를 빨리 끝내고 싶어 했고, 나는 내 얘기에 하품하는 분위기가 싫어, 하자 밖에선 고민 얘기를 피했다. 하지만 나는 10대들과 함께 페미니즘 공부를 통해 배운 ‘대화를 통한 재창조’를 하고 싶었다. 결국 대화할 준비가 된 소수의 사람들하고만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결론적으로 정선에서 나는 하자 밖 10대들과 얘기하지 못했다. 대화는 준비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계속 텁텁함이 남아있다. 앞으로도 계속 10대를 얘기할 것인데, 이 고민을 계속 가져가고 싶다.

1-2.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해석, Public+Art

그렇다면 나는 공공미술(public art) 프로젝트 팀이 마을과 대화했는지 질문하게 된다. 공공미술을 처음 접했을 때 던진 질문은 “어떻게 미술에 공공이 붙는가?”였다. 나에게 미술은 난해하고 먼, 때로는 자위행위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부자들의 티타임 같은 거였다. 하자에 들어와서 작업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뒤에야 점점 친근해지고 있으나, 아직도 내게는 멀다. 강제욱 작가는 사진 아틀리에에서 “아마추어는 사진을 찍을 때 예쁘게만 찍으려고 한다.”고 했다. 나는 카메라를 처음 잡았을 때, 피사체가 보여 지는 모습을 신경 쓰며 찍었다. 그게 ‘예쁘다’는 거라면, 나도 예쁘게 찍으려고 한다. 의도된 ‘못남’이 아닌 이상, 누가 찍고 싶은 걸 아무렇게나 찍겠는가.

그런데 시각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예쁘다’를 전문적으로 훈련했기 때문에, 무언가를 찍을 때 예쁘게 찍는 것을 기반으로 내용을 담는다. 그래서 일반 대중들에게 미술은 예쁜 것이다. 또한 사진이나 그림 하나에 작가의 방대한 생각을 다 담아도, 줄줄이 설명해주지 않는 이상 미술은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문화생활 중 하나로 여겨진다고 생각한다.

공공미술 팀은 마을에 직접 들어가는 행위를 통해 기존의 작업들과 차이를 두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생각한 건, 마을 안에 전시된, 걸려있는, 설치된 작품들은 누군가 치우지 않는 이상 계속 그 자리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과정을 지켜보고, 지금 당장 마을 안에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을 담은 그 작품들은 10년이고 20년이고 꾸준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예술 작품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겨주는 것에 있어 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11월에 설치된 작품이 시간이 지나며 계속해서 다른 해석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에서 또다시 더 큰 가능성을 보았다. 기획자 토크에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사업 계획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 질문에 매우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잠시 엿본 가능성들이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짧은 시간이라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예술마을 사북·고한 프로젝트가 의도한 생각이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면,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한 기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2-1. 욕심을 덜어내기

학기 내내 고민한 것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이미지였다. 작업함에 있어서는 적어도 재미없거나 할 말 없는 사람이 아니길 바랐기 때문에, 심도 있는 생각과 주제가 생기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놓친 게 있다면 평소의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글과 말하는 것 혹은 회의할 때와 평상시의 차이가 크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내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나누고 있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

성보씨와 함께한 시나리오 워크숍에서 나는 잠깐이었지만 나의 공·사가 맞닿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장난으로 시작한, 조금 과장된 것 빼고는 사실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가 비록 한 씬이었지만 영상으로 제작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작업에 있어 무거운 사람이고 싶었는데 별다른 의도 없이 쓴 거라, 혹 다른 사람들이 결과를 보고 내가 생각이나 고민을 가볍게 한다고 오해할까 걱정됐다. 하지만 순조롭게, 그리고 2학기 때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찍었다.

머리를 무겁게 써서 그런지 작업하기 전에는 늘 걱정되는 게 많았다. ‘내가 의도한 것이 드러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가 고민한 이야기들이 다 담기지 않으면 안 되는데’ 같은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져서 행동이 느려졌다. 내 욕심이 컸던 것 같다. 진지하게 생각하기는 중요하고 필요한 거지만, 머리가 무겁다고 몸이 가벼우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담만찬>은 내 일상적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앞으로의 작업은 행동력을 좀 더 신경 쓰며 하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부담만찬>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찍고 싶다.

2-2. 페미니즘, 누구로 살 것인가?

사색에서 학습으로

죽돌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 중에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가 있다. 일전에 작당 MT에 갔을 때 리사가 공부에 대하여 발표에서,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함께 해야 하는 것이며, 머리고 공부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제대로 된 공부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공감했다. 하지만 작업할 때마다 매번 막히는 지점이 있었는데,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내 문제의식이 지극히 사적인 것에서 나타났기 때문에, 제대로 설득하지 않는 이상 상대방과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때문에 나는 설득력을 갖기 위해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첫 번째 교과서로 정희진 씨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집어 들었다.

나는 내가 이토록 정치에 갈망하는 줄 꿈에도 몰랐다.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정치는 무관하다고 생각했고, 나와 정치는 굉장히 동떨어진, 386세대와 남자들만 흥미로워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 안에 가장 뿌리 깊게 박힌 성차별이었다.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을 주제로 쓰인 이 책은, 나에게 신세계를 보여주었다. 읽는 내내 내가 해왔던 말이 반복되긴 하였으나, 한 문장으로 정확하게 콕콕 집어주는 저자의 문장력에 감탄하기도 했고, 참고 도서목록을 보고 ‘내가 저기 있는 책을 다 읽을 수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고작 한 페이지 남짓 되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 책 한 권을 읽은 열의에 감탄했다. 아, 이게 바로 공부구나, 내가 해왔던 건 공부가 아니라 그냥 사색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는데 꼬박 두 달이 걸렸다. 들어보긴 했는데 정확한 뜻을 모르는 단어나, 정확한 설명이 없는 시대적 배경에 대한 공부도 병행해야 했다. 네이버 백과사전 검색으로 짧은 지식을 얻으며 앞으로 100권이 넘는 책을 읽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내가 책을 통해 다시 돌아보게 된 주제는 ‘평등’이었다. 하자 안에서 꾸준히 얘기되어오는 평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용산참사도, 나르마다 댐 건설도, 그 외에 다른 이야기들에서도 인간의 범주와 바라보는 기준의 불합리가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바라보기와 행동 사이의 충돌

연구주제 발표가 끝나고 나는 책이 나온 2003년에서 2009년의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지금 쓰이고, 지금 얘기되는 것들에 시선을 돌려야 했다. 페미니즘의 기본적인 관점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기도 했지만, 사실 피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내가 공부하고 얘기한 ‘공정한 평등’이나 ‘대화를 통한 재창조’가 현실에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페미니즘을 공부하기로 다짐한 이유 중 가사노동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대략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전을 부쳤고, 삼촌들은 계속 집어먹었다. 그 때부터 남자와 여자는 해야 할 일이 다르다는 걸 알았고, 중학교 때까지 입을 비죽 내밀고 음식을 준비했다.

그 불평등이 10여 년간 나를 괴롭혀왔고 이제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는데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번은 “삼촌들한테 애교도 떨고 그래.”라는 얘길 듣고 “내가 왜?”라는 질문을 했다. 단순히 막내이고 여자라서 그렇다는 대답을 들었는데, 내가 여자면 왜 애교를 떨어야 하는지는 질문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해도 못할텐데’라는 매우매우 위험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 고정관념 때문에 하자에 이야기를 꺼냈다. 하자 안에서 이제 슬슬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다. 긍정적이다. 하지만 내가 등 돌린 가정에서의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고한고교에서 생각한 것과 함께 연결해 고민하고 싶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여성영화 감독들의 영화를 참고할 것이다.

Epilogue. EMPOWER!

학습계약서에 쓴 목표는 ‘이상적인 관계를 상상하고 구현한다’이며, 마인드맵에는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살기’를 썼다. 지금 보면 굉장히 오글거리지만 아직도 하고 있는 고민이다. 사실 그 ‘혼자서도’와 ‘관계’ 때문에 매번 슬럼프를 겪곤 한다. 관계라고 하면 누군가에 의한 트러블인 것 같지만, 나는 내 안에서 거의 모든 슬럼프가 왔다갔다 반복한다. 그래서 11월에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다시 붙잡고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대화’나 ‘평등’을 꺼낼 줄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마을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아직도 기후변화시대를 내 고민의 하나로 가져가지 못하고 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과정 안에서 이상적인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이상적인 관계는 1대1, ‘너’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상적인 관계가 개인과 개인의 만남에서 이루어질 거라는 좁은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더 넓게 보고 있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나는 살기 위해 대화를 하고,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세계화시대에 접어들며, 동네나 마을의 의미는 이미 땅덩어리의 크기로만 계산하거나 가늠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다. 혼자만의 empower는 없다. 지구의 시민들 모두 함께하는 empower를 소망해본다.

이 생각을 통해 나는 내가 작업하는 것에 있어 형체가 없는 적을 만들어왔다는 걸 깨달았다. 찍었던 영화도, 공부하고 싶은 주제도 모두 ‘내가 불평하게 된 것’에서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문제의식이라고 불렀다. 물론 내가 실제로 입은 피해가 사회의 한 문제이기도 했지만, 나는 실체 없는 적에게 계속 창을 던지고 원망했다. 그러므로 분출한 원망은 그 어떤 결과로도 돌아오질 않았고, 나는 계속 나를 타자화하고 스스로를 조각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나를 타자화하고 파편화했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실제로 존재하고 움직이는 나라는 주체로서 살아가고 싶다. 더 이상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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