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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음악글 수 566
<저, 할 말 있습니다.> 무브
‘가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다’는 속담이 있듯이 저는 받기 전에 주는 사람이 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번 학기에 제가 카메라를 든 것도, 이미지에 관심이 생겨 전시회에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영상을 읽고 할 말이 있게 된 것도 오래한 일은 아닙니다. 나도 상대에게 해줄 말이 있으려면 이미지에, 영상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저는 이렇게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알 수 있었던 큰 사실은 서로가 다른 매체로 무엇을, 어떻게 얘기하는지에 대해 잘 들여다보면 자신과 연결이 되는 접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고민이 모두의 고민이 될 수 있다’는 이번 학기 시작할 때 죽돌 개개인이 바라는 한 학기를 한 문장으로 풀어내서 말하는 시간 때 제가 외친 말입니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후변화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처럼 전체를 아우르는 고민을 뜻합니다. 또 하나는 자신의 고민이 다른 유사한 형태의 고민으로 가지고 있는 상대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통해서 개인의 문제 속에 스며있는 다수의, 사회적 문제들을 이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고민을 혼자서만 얽매여 어려워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유사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는 타인들과 함께 나누어 같이 나누고 공동의 해법을 모색하면서 고립되지 않고, 사회 속에, 그리고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그리고 있는 세계가 선명하게 드러날 수 도록 만드는, 그런 서로의 상호작용을 기대했습니다.
8월 말, 음악/공연팀은 ‘촌닭들’이라는 이름에서 'Festeza'라고 다시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포르투갈어로 축제(Festijo)와 슬픔(Tristeza)을 합친 신조어 ‘Festeza’를 창출했지요. 인재지변, 즉 천재지변같이 자연이 만들어낸 재앙과 재난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고통스럽고 슬픈 시대 속에서 다시 행복을 물으면서 살아가고 있지요. 저희 팀은 그 고통과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위로를 건네며 슬픔을 넘어 음악을, 애도와 즐거움을 불러오는 사람들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저에게 지난날에는 보이지 모습들이 드러나는 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평소 고민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고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여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진행하는 중 공감하는, 이해하는 능력이 발달되면서 시야가 점점 넓어지면서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상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민을 하는 사이에서도 대답을 내리는 연습을 하면서 지금의 자신의 위치가 무엇인지 자신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위해 하는 사람인지 질문을 던지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해 들여다보는 경험도 하면서 조금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습니다. 학기의 시작 전보다 더 필요성을 느끼고, 더 움직이기를 바라고, 더 생각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주변에 대한 감각을 열었을 때부터입니다. 강원도 정선에 <고한 사북 예술마을 프로젝트 Art in Village에 柴人(섶 시, 사람 인)으로서 참여했습니다. 저희는 그저 어디 산에서 자라나고 있을 풀로서 고한사북의 폐탄더미의 “경석산”에 자라난 잡목(柴)처럼 아무 꾸밈도 없이 예술가들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학기에 저는 ‘질문’과 ‘대화’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더 알고 싶고, 더 이야기를 나누어 서로에게 의미있는 질문이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상대에 대해 질문을 던질 때 내용에 대한 질문을 마구 던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나에게 돌아온 질문에는 종종 대답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그 궁금한 지점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생각하고 숙성시키지 못하여 중심이 바로 서있지는 않는 질문들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너의 질문을 통해서 무엇을?’이 돌아오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염두 하면서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질문과 대화를 중요시 여긴 시점에서부터 저는 힘겨워했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하고, 질문을 많이 가져가려는 하나의 욕심의 형태가 드러났습니다. 질문도 필요한 만큼 가져가서 대화로 풀어내는 것이 더 적당한 방법인데 질문과 대화를 어느 때보다 중요시 여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많이 서툴렀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행착오 속에서 또 다른 대안을 찾아내는 것을 경험한 것은 ‘시도’에도 연결이 됩니다.
이번 학기에 다각도로 탐구하고자 했던 키워드 중 하나인 ‘시민’은 매우 중요했으며 이번 시민문화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여러 시민들을 만나며 시민의 상像을 향해서 조금씩 다가가려 애를 썼습니다. 저는 사실 ‘시민의식’은 있었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꺼내 공부하고 더 나아가려고 해본 경험은 없었습니다. 제가 이해한 시민이란 시민사회에 참여할 수 있고, 참여할 줄 알고, 참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라는 단어는 많은 장소와 공간에서 사용이 가능합니다. 지금의 나는 음악을 하는 한 명의 시민입니다. Festeza속에서 음악을 매체삼아 표현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직 어떤 창작물을 만들어 표현하는 단계에는 다다르지 않았지만, 장르를 다룰 줄 알고 조합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지금은 음악을 하는 시민이라고 말을 하지만 매체는 구애받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언제 카메라를 쥐든 무엇을 쥐든 간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무엇을 표현할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시민들이 같은 것은 아니지요. 각기 다른 매체와 다른 위치에서 참여를 하는 사람들을 '시민‘이라고 일컫는 것 같습니다.
이번 학기를 되돌아보면서 어쩐지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부분들은 제가 다른 이들에게 따로 나눠 본 적 없는 이야기들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이번 학기를 시작 할 때 다짐했던 ‘조바심 내지 않으며 섣부르지 않고 느리지 않게’ 잘 지내왔을까요? 어느덧 벌써 3~4개월이 지났지요. “학기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라고 말을 꺼내는 것에 조심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학기말에는 허무하게 마무리가 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학기가 그렇게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지난 4개월을 참여했습니다. 에세이에는 자신이 이번 학기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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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9 20:33:16
저번에 공연팀끼리 모여서 에세이 진행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한 날 너에게 궁금한 점이 있었는데 시간상 바빴기 때문에 물어 보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때의 네 글에서는 못썼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 부분들중 토fk진 등대라고 되어있는 파트를 봤어. 이후에 생각해 봤는데, 네가 쓴 글에서는 찾기가 힘들어서 물어보려 했다가 생각난 김에 댓글로 달게... 아니면 따로 말해줘도 괜찮고,
2009.12.19 21:33:37
나는 상대에게 눈을 불을 키고(거의 노려보듯이-_-..뚫어져라)바라보는데
내가 이렇게 신호의 오고감을 원하는데도 상대쪽에서의 신호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었어 히옥스가 가끔 꺼내시는 말 중 "의자 접겠다"라는 말을 하잖아? 내가 보낸 신호에 돌아오는 것이 없어서, 나는 참을성 없이 토라졌다 이거지 신호가 돌아오지 않아도 등을 돌리지 않고 무관심한 등대, 토라진 등대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 등대는 상대 신호가 돌아오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서 불빛을 키고 있거든. 이 단어를 쓰기 시작한 이상, 나는 더 이상 토라지거나 등을 돌릴 수 없게 되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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