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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약간은 힘들고 괴로웠지만 질문들을 많이 남긴 짦고 깊은 여정이 끝났다. 부담스러운 질문들이 마구 쌓여 버려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래도 일단은 다녀온 것을 차근 차근 재구성 해보는 것이 순서이겠지 싶다.
여행길에 오르기전 사실은 홍콩도 갔어야 하는 것이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압박감에 휩쌓여 시민문화 워크숍 때에 제닥이 이야기했던 백수의 일상을 반복하던 나는 그날이 몇일인지 몇시인지도 잊어버리고 나는 뭐하는 사람인지 뭘하고 있는지도 잊어버린체 잠속으로 끝없이 빠져들었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고 근거없는 이상한 안도감이 나를 이불속에서 떠나지 못하게 계속 잡아두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었고 대화를 하기도 싫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가는 당연히 나일 테지만 나의 어떤 것이 그렇게 만들었는가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20살이 되었고 경제적인 독립을 해야할 시기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고싶었고 그렇다면 앞으로 무었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굉장히 막막했고 사실 지금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혼자있으니 할 일은 알바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고 여지껏 하자에서 보낸 시간들은 혼자 정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단순히 경제적, 자주적 독립의시기가 가져오는 불안감과 압박감이라기 보다 앞으로 살아야하는 삶에대한 의지가 점점 희미해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취해온 여태까지의 추상적 삶의태도에 대한 회의이기도 했다. 하자에선 3년 정도를 있었고 3년동안 나에겐 굉장히 많은 패닉과 그것을 지우려는 다짐들이 있었다. 패닉과 다짐들은 학기가 시작할 때 즘 다짐하고 학기가 마칠 때 즈음에 나타나 일정한 주기를 띄었고 학기가 지나 갈수록 나에겐 '불성실' '도피' '나 자신을 놓는것' '이곳(하자)에 와있지않다.' '기본이 없다' '꿈이없다' 등 내가 하자에 있는 것을 부정하는 많은 단어와 문장이 언제나 밑바닥에서 나를 긁어댔다. 주니어 4학기 수료 시니어 1학기를 보내면서도 여전히 꺽지 못했던 3년간의 엄청난 트러블이었기에 결국 이번방학이 지나면서 그 질문들에 먹혀버리게 되었고, 3년 동안 쌓았던 질문들과 답들 공부했던 모든 것들을 망각한체로 지저분한 방한구석에 던져버리고 위에서 말했던 백수의 일상을 반복하게 되었다. 그러던중 결국 죽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갔고 죽기로 결심한 날 아침 뜬금없이 00의 이상한 문자 한통이 날아왔다. 그 내용은 즉슨 나와 같은 결심을 하고 "지금 간다. 잘있어라 정말로 마음 줬었다. 내가 죽으면 넌 더 열심히 살아야해 만약 내가 살아남으면 더 뜨겁게 살아보자" 라는 엄청난 문자였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귓속에서 삐----하는 노이즈가 들리면서 내가 알고있는 00의 지인들에게 몽땅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나갈 채비를 하는 순간, 00의 지인에게서 00이 집에서 자고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머리가 아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죽는것도 사는것도 잃는것도 갇는것도 모든게 두렵고 점점 막막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희옥스를 몇차례 늦은밤에 만나고 혼자 강화를 다녀오고 산이,희옥스와 재천을 다녀오고, 산이와 많은 얘기를 하고 출국 바로 전 날밤이 되서야 나는 메솟으로 떠나는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그 마음도 여전히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고 그곳에 왜가는지, 가서 뭘 하고 애들은 어떻게 볼 것이며 다녀온 후에 나는 어떨지 답답하기는 했다. 그러나 메솟으로 떠나는 마음을 정할 때 나는 가서 앞으로 죽지 않을것이니 잘 살아야 하는 것과 그렇기 위해 '동시대속 절박한 삶속'이라 말하는 것에 뛰어들어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내 마음을 만들어 와야한다고 생각하며 여행을 시도했다. 1월 28일 AM7:00 홍대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전날밤 cold play의 in my place 란 노래가사에 이상하게 마음이 동해 그냥 시간을 기다리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다. 7시 반쯤 희옥스가 산이와 나를 데리러 오셨고 우리는 희옥스의 차에 올랐다. 홍대를 벗어나 인천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차가 들어서고 차가운 아스팔트가 마치 아지랑이를 피울 것 처럼 쫘악 펼쳐지자 차안은 조용해졌다.(아마 이야기중 이었지만 내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스피커에선 in my place 의 기타 솔로 부분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나는 문득 생각을 지우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재천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자던 희옥스의 말이 떠오르면서, 산이의 도전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그리고 그 전날밤의 나의 갈등이 떠오르면서, 그 사이에서 또 다시 갈등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이 다른음악으로 바뀌어도 내 머릿속에는 그 기타선율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인천 공항에 내려 사뭇 가벼운 마음으로 전환을 하고 기타선율도 지웠다. 결국 희옥스의 말을 선택한 것일까 어쨋든 카트를 밀면서 지금 무언가를 고민하고 많은 시선을 채워가봣자 도움될게 없다고 믿었다. 가서 하나하나 마주하면서 생각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실수였다. 시선의 고정 - 보라색과 노란색의 소용돌이 꽤나 오랜시간 처음으로 그렇게 긴 비행을 하고 메솟으로 가면서 내 시선은 tai항공이 보여주는 최상의 서비스에, 그러니까 밥 가져다주고 손닦으라고 타올주고 자고있다보면 음료수 가져다주는 등..비행기 안에서 공항안에서 자동차 안으로 계속 실내에서의 이동만을 했고숙소마저도 담이 빙 둘러있어 주위가 안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메솟에 와있다는 것을 알게한 것은 날씨와 언어,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 그리고 조금의 환경이 그것을 알게했다. 푹 잔 후에 아침에 일어나 밥을 잘 먹고 별 불편함 없이 씻고 오랜만의 상쾌함도 느꼇다. CDC학생들을 만나고 AAPP사람들을 만나고 그곳의 전시물들을 보고 그들이 겪어온 고통의 세월들을 들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 시작되었다. 위에서 말했던 '최상의 서비스' 혹은 '실내에서 실내로의 이동' 이 가져온 시선의 고정일까 내 귀들은 막혀있었고 그들을 보면서 그곳들을 돌아다니면서도 마치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는것 과 흡사한 느낌을 계속해서 받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느낌을 받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왜 이런 것일까, 또 난 저 이야기들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를 계속 고민했고 이런 저런 생각으로 고민은 계속해서 옮겨 가기 시작했다. 이곳 아이들과 나의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것에서 부터,내가 그들을 보면서 느끼는 연민(?), 지나오면서 본 광고문구, 나의 삶, 이타주의, 숙명소명call ring, 구르는 돌 등등 배우고 익혔던 개념들 보고들었던 단어들 경험했던 학습들이 두서없이 마구마구 꼬리를 물게 되었고 점점 그 덩치는 커져가다. 소용돌이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의 괴물화 & 괴물의 실체 - 파편화된 서로의 삶 나는 결국 꼬리의 꼬리를 물어 거대해져 버린 그것에 짓눌려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었고 뭐지뭐지뭐지 하는 퀘스천 마크는 늘어만갔다. 생각은 정지하고 내 앞의 거대함은 그저 검은색의 빨간 눈을 한 덩치큰 괴물일 뿐이었다. 머리속에선 다시 콜드플레이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듯 했고 메솟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멜라캠프로 들어간 첫날엔 알수없는 이상한 이미지와 사운드에 시달리며 어이없게도 '덮칠 것 같다' '이곳은 무서운 곳이다' 라는 상상을 하였다. 그리고는, 몽롱한 정신에 이끌려 하루를 생활하고 급기야 리뷰모임에서 "덮칠 것 같다." 라는 발언을 했다. 제대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말이 "덮침" "공포" 를 생각한 말이었다고 기억은 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고 싶었던 이유는 뭐였을까. 글을 이어가기에 앞서 우선, 그렇게 생각하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 작업장학교에 있는 사람들과 LMTC, 내가 만난 멜라캠프와 메솟의 모든사람들에게 죄송하다. 결국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발언과 생각은 나에게, 작업장 학교에 있는 사람들에게, "날 덮칠꺼냐!" 라고 이야기 하는것과 같았다... 다시 글을 잇자면 결국 소용돌이의 중심에 갇혀 멜라에서 있는 마지막날이 왔고 리사와 리타를 그리워 하던 한 LMTC학생(화이트말고 한사람) 이"여기있는건 유태인 수용소에 있는것 같아 넌 여기가 유태인 수용소 같이 안느껴져?" 라고물었다. 나는 또다시 빨간눈의 괴물과 마주하게 되었고 그 아이의 그말에 괴물로 부터 도망가지 않기로 했다. 그 날밤 그 빨간눈의 괴물과 마주했다 도망갔다를 몇번 이나 반복하고 있는데 순간, 마치 그 괴물앞으로 아주 작은돌이 하나 굴러가는 것처럼 (하자,Love&Peace,Work Love art, 남을 위한 삶, 절박함, 그것은 사랑이었네,숙명,소명,정의,정신,믿음,대안등) 단어들이 내 머릿속을 굴러갔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그것이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괴물의 실체는 하나하나 파편화 되어있는 서로의 삶들이었던 것이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 경계의 강에 서다.- 남을 위한 삶 우주적 마음,관점(ps(?)아직 뭔가 정리가 안되어 가는것같다) 메솟에서 한국으로 떠나기전 마웅저선생님의 집에서 마지막 회의를 가지면서 나는 내가 느꼇던 거대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파편화된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노트를 그대로 옮겨 보자면 "맞닥드리는 순간/고민이 이어지고/방법을 탐색한다. running by doing/ 학습이라는 것은 사실 어떤식으로든 맞닿아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 그것을 이해하고 하나,하나 파편화 되어있는 단상들을 커다란 판으로 연결시켜 보는 작업이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의 일부분 들이며 각자가 살아온 루트가 그것이 현실,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 그래서 인문학은 나와 그들이 살고있는 파편화된 삶을 이어 꼴라쥬 작업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렌즈와도 같은 것일 거다. 이제껏 내가 만나온 사람들의 삶은 언젠가 부터 자유라는 개념에서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그것은 조금 떨어져 보았던 나도 그러했고 메솟, 멜라난민캠프, 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그러했다. 근본적으로 말이다" 우리는 파편화된 서로의 삶을 끌어안기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돌봐야하고 소통해야하며 머리를 맞대야한다. 메솟에 있을 때 국경을 보러간적이 있었다. 그곳엔 태양빛이 비춰 반짝반짝 거리는 기다란 강이 흐르고 있었고 그강 자체가 국경이었다. 그안에서 애들은 발가벗고 뛰놀고 있었고 그 뒤로는 시장이있어 강을 중심으로한 사람들의 삶터를 이루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그곳에서 연민 동포애 이런 말들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느꼇는데 아직까지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다만 다시 그 풍경을 떠올리며 찾은 것이 있다면 '이타주의, 우주적인 관점과마음'의 실마리와 '일시적 자유,자율 공간' 에 대한 감사, 그리고 그 공간안에서 우리가 하고있는 것에 대한 실마리 였다. 에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만약 세계는 나고 내가 곧 세계라면, 그리고 정말 모두가 같은 고통에 처해있지만 서로가 파편화 되어있다면 남을 위해 사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삶일 것이고 나를 위한 삶을 사는것도 결국 남을 위한 삶일 것이다. 경계의 강, 그것은 현재 하자작업장학교나 다른 대안학교 그리고 '마을'을 말하는 여러 하자의 사람들과 그밖의 사람들 이 지금 서있는 곳일 것이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다보면 라일라와 그의 아버지가 그들의 고향 카불에서 쫒겨나는 장면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이런 시를 떠올린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수도 없었고 / 벽 뒤에 숨은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다 셀수도 없다네' 천개의 찬란한 태양, 우리는 지금 셀수도 없는 천개의 찬란한 태양앞의 강에 서있다. 태양은 너무 눈이 부셔 똑바로 볼 수 없고 가끔 그 앞에 거대한 벽이 나타나 우리는 그 천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상상해야 한다. 너무도 막막하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우리 앞에 있다면 우리가 서있는 경계의 강은 너무도 아름답지 않을까 ![]()
2010.02.09 19:25:16
아,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었구나. (나도 이 소설 매우 좋아한다.)
참고로 이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연을 쫓는 아이"도 좋다. 두 소년의 성장기인데 어쩌면 너가 이 소설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도 이번 긴 여정에 대해 많이 생각중인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로드"라는 단어를 많이 떠올렸다.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 생각들 말이다. 너가 전에 몸서리 쳤던 '더 로드'라는 소설처럼 묵시록적 메시지들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멈추지 알고 구르면서 죽지않고 숨 쉬는 틈을 만들어가면서 사는 사람들 말이다. country road를 불렀을 때 짠하게 다가오는 바람결이 나는 아주 기억에 많이 남는다. 몇 년 전 내 친구가 만들었던 곡 "The road going home"이라는 제목의 노래도 생각났다. 집으로, 고향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잠시 동행하면서 무슨 생각들을 나눴을까. 어제, 집에서 "웰컴"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라크와 터키 분쟁지역에서 사는 17살 소년이 영국으로 가기위해 프랑스 항구지역에서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과 지내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예고있는 결말을 주지만, 그 여정을 따라가면서 마음이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투르크부터 프랑스까지 400Km을 걸어서 도착했는데, 영국 도버해협을 헤엄쳐서 건너려는 좀 대담하고 황당한 계획을 갖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물살이 너무 거세서 바람이 실려서 몸이 동동 떠오르는데 국경지역에서 봤던 강물이 생각났다. 내가 그 때 그 물살에 비친 햇살이 너무 철없이 느껴졌다고 말했던 것 기억나냐? 이 영화속의 바다 이미지는 그것보다 훨씬 강인하고, 삶의 기운이 느껴진다. 너무 끔찍하게 슬픈 결론에 다다르지만 그 물살에 몸을 깊이 담그고 쉴새없이 헤엄치던 소년의 얼굴이 생각난다. 어쩌면 구르는 돌처럼, 자신의 몸을 밀고 또 밀어내서 "어딘가"로 가려는 거겠지. 이 얘기 계속 해보고 싶다. 나도 좀 더 써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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