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옛날 장수 촌구석에 들풀이라는 중학생이 살았어요. 비교적 반듯하게 학교생활 잘하는 평범한 소년이었죠. 다른 애들과 다른 점이 딱 하나 있다면, 들풀은 랩을 한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들풀은 자기가 랩을 한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두었죠. 비웃음 당할까봐 학교친구들에겐 랩을 잘하게 되면 보여주고 싶었어요. 녹음한 랩을 들려주었던건 제일 친한 친구 몇몇뿐 이었어요.
지금은 '칭찬을 들었더라면 자만하고서는 그대로 썩어버렸겠지' 하는 생각도 하고 그 때 녹음물을 다시 들어보면 '친구들이 정말 표현을 조심해가며 피드백을 해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을 정도로 거지같지만 그 당시의 들풀은 정말 스트레스 받았어요. 하나같이 넌 안될거같다, MC몽이 더 잘한다, 너 박치냐 하는 말들 속에서 그래도 꿋꿋이 '나도 똑같이 태어났어. 그러니 나도 할 수 있어. 재능같은거 없어도 돼' 라 되뇌이며 계속 랩질을 이어갔어요.
집에서 후진 마이크 컴퓨터에 연결해놓고 열심히 녹음해서 나좀 평가해주세요 하고 여러 사이트들에 올렸어요. 그 당시에는 열심히 하고있다고 느꼈는데 지금보면은 엄청 게을러터진 놈이었어요. 그래도 추억은 많았었던거 같아요. 피드백 달리면 기분좋고,악플달리면 밤에 잠못자고.. 12월 31일에 올리고 새해아침에 보니 악플달려있었고. 크크크
이건 하자 일취월짱에서 작년 12월에 열은 쇼하자공연인데요. 엄청 기대하며 칼바람을 맞으며 한시간동안 길못찾고 헤매다가 겨우 하자에 왔는데 공연이 기대하던 퀄리티에 못미쳐서 좀 실망했어요. 내가 얘네보단 잘하겠다 하는 생각도 했고. 그때 실력으론 걔네나 나나 도찐개찐이었는데 말이죠. 방구석에만 처박혀 낯가리며 랩하는 놈이 할 소리가 아니었어요.
여기는 아마추어.. 다 똑같애.. 지루해 해던 어느날, 어떤 사람을 네이트온 통해 알게됬는데 어! 잘하는거에요! 학교는 안다니고 음악만 하고 있다 하는 고등학생 탬누나. 내가 원래 그런 놈인건지 아님 그 나잇대 애들이 다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탬누나를 우상화시켰죠. (쇼하자때 쳤던 동녘드립은 농담반진담반이었지만 이건 100% 진심.)
정말 밥먹듯이, 하루에 투데이를 몇개를 올려준건지 모를정도로 드나들었던 미니홈피 입니다. 탬누나 다이어리를 보면서 '와, 이 누나 혼자서 진짜 어렵게 살면서도 포기하지않고 꿋꿋이 음악하는구나. 멋지다.' 하는 생각을 하게되고, 이제 멍청한 꿈을 꾸게 됩니다. 힙합을 할거야.. 배고파질거야.. 으잌
이런 생각을 하게된 데에는 이센스도 한몫했죠. 지금에야 슈프림팀으로 잘나가지만 예전에는 영등포 옥탑방에 4명이 살면서 자장면으로 끼니때우고 공연장에서 나눠주는 티 입고다니던 시절이 있었어요.그러면서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독하게 음악했던 모습들을 보며 '가난에도 굴하지 않고 음악하는 모습과 실력! 가짜가 되느니 굶겠다는 저 태도! 와 저게 진짜 당당하고 멋진 청춘이구나' 했어요.
멋지죠. 근데 자진해서 가난에 뛰어들겠다 하는건 정말 뭘 모르는 말이었어요.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 다가오고, 이제 어떤 형태이든 앞으로의 길을 정해야할 때가 되었을때, 서울에 가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어요. 어떻게 생활할거냐, 하고 물으시니 고시원방값만 내줘라, 내가 알바해서 생활비 벌겠다 라고 했죠. 그리고 된통 혼나고. 히히. 탬누나도 넋빠진 소리 하지 말라 하더라고요.
그렇게 한두달이 지나고, 생각이 많이 바뀌어 하자센터에 가겠다고 결정했어요. 예전에 세상물정 모르고 얕은 생각으로 말을 내뱉은 걸 후회했고, 많은 것들을 배우며 좀 더 큰 삶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건 이전까지 설명이 없다가 툭 튀어나와서 뜬금없을 수 도 있겠는데, 그 전까진 꼭 스무살에 성공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목표라고 하면 너무 밝게만 보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할 정도로 그거에 묶여 있었단 생각이 드는데. 하지만 어떻게 된건지 그게 저절로 천천히 사라졌고, 그 덕분에 하자센터에 갈 생각을 하게 된거 같아요.
하자센터는 정말 즐거웠지만 여전히 문제거리는 있었어요. 스무살에 성공하겠다는 목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음악을 하고 싶었고, 점점 내 또래에도 잘하는 놈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난 10 to 10 일정에 정신없는 생활을 하고있고. 여태껏 많은 저같은 죽돌들이 했을 고민이었겠죠.
어찌어찌 몇개월이 지나고나니 좀 졸긴하지만 하자의 스케쥴에도 좀 적응이 되는거 같았고, 이전까지의 내가 얼마나 바쁜 스케쥴 핑계를 대며 게으름을 피워왔는지 깨닫게 되었어요.랩 역시 편한 형편은 아니지만 랩 하는게 비보이처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는 일도 아니고. 또 조금더 열심히 한다면 닿을 수 있는 관계들의 기회가 상당히 많다는, 랩하는 청소년으로써 하자라는 공간은 상당히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도 들고.
또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브라질음악의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오기전에는 작업장학교에는 왜 브라질음악만 할까 하고 아쉬워했는데 이렇게 재밌는건지 전혀 몰랐습니다. 되게 즐거웠는데, 즐거운 것이 음악을 하기 때문인지 함께있기 때문인지 헷갈리지만, 할튼 좋습니다. 이놈의 빈곤한 표현력..
한 때 로망이었던 영등포옥탑방. 부글대던 거품이 빠지고 이제 좀 모습이 온전히 보이는 듯 합니다. 겉으로는 멋있는 모습만 보이지만 사실 이센스도 돈문제, 생활문제에 고민했고, (한국의 대다수 랩퍼들, 다수의 뮤지션들이 그렇지만) 나에 의해 우상화되어있던 탬누나의 뒷편엔 밀린 방세 걱정이 있었습니다. 멋진 겉모습만 보고 '나도 그렇게 될거야!' 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제일 첫째로 들고, 멍청하면서도 순수했다고 생각됩니다. 철모르는 동생같이.
자. 이제 깔끔하게 다 부숴졌으니 새 집짓기를 시작해야겠죠. 이젠 탬누나 흉내도이센스 흉내도 아닌 나만의 길을 가야겠습니다. 거기서도 솔직하고 당당하고 열심히 살아서, 내가 어디엔가 있을 나같은 놈의 이센스와 탬누나가 된다면 기분 좋을거 같아요.
옥탑방 얘기를 하면서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전 아직 젊으니까요.' 란 말이었어요. 히옥스와 5분미팅을 할 때도 역시 그 말이 나왔는데, 젊음이니까 당당하게 가난과 맞서 싸우고 열정을 가지고 살아간다는건 좋은거지만 그 말이 내 앞에 마주한 문제를 회피하는데에 사용되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힙합의 성향중에는 자기과시, 자수성가, 같은 것들이 있어요. 빈민가 흑인들에게서부터 시작된 문화이니만큼 절망적인 삶을 벗어나 떵떵거리며 사는게 굉장히 큰 의미가 될 수 밖에 없었죠. 물론 음악적으로 최고가 되는건 항상 생각하고 있지만 전 스타라고는 상상해본적 없고 이렇게 물질적인 것들을 향유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네요. 되게 매력적인 것들이지만 아직까진 좀 그렇습니다.
그냥 전 제 음악 똑바로 멋지게 하면서 살고싶어요.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건 좋지만 싸구려를 하느니 좀 덜 벌고 마는. 오른쪽 위의 드레이크는 엄청 잘나가는 부자뮤지션이지만 최근에 나온 인터뷰 중 '음원유출을 막지마라. 난 레코드사를 위해서 음악하는 게 아니라 리스너들을 위해서 음악한다. 들어주면 고맙다.' 라고 하는 걸 보고 저게 정말 빌보드를 밥먹듯이 올라가는 뮤지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인가 하고 놀랐어요.
왼쪽은 데미안 말리라고 밥말리의 아들이면서 잘은 모르겠지만 레게쪽에서 겁나 잘나가는 사람이고, 오른쪽은 나스라고 힙합짱이에요. 이렇게 둘이 합작앨범을 냈는데, 대충 요약하자면 아프리카와 흑인으로서의 자부심, 멀리떨어져있지만 이세상은 모두 형제다 하는 메시지를 담고있어요.
이 사람들처럼 제게 있어 중요한 것들 - 작업장학교에서 찾게된 것들 - 을 가지고 의미있는 음악을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기위해서는 공부와 음악적인 테크닉이 함께 가야겠죠. 이 사람들이 어디 삼류뮤지션이었다면 이들의 음악이 이렇게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기술자여서는 안되지만 표의만 가지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랩이 '잘하는 것' 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요. 처음 가사를 썼을 때 부터 지금까지 랩은 '하고싶은 것' 이죠. '내가 잘하는 건 뭘까?', 그 학교 교장은 당장 내쫓아야 될 사람이고요. 잘하는 것, 정해진 것, 안정적인 것을 하는 것보다는 하고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쫓는게 올바른 젊은이라고 생각해요. 페차쿠차 내용이 좀 일관되지 못한 감도 조금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