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지요? 오랜만이에요. 보름 전에 떠났던 이곳 정읍으로 어제서야 돌아왔습니다. 떠나 있는 동안 주변의 산과 들에서 호숫가에서 길 위에서 호흡 중이던 많은 꽃과 풀과 나무들이 빛깔과 모양새를 달리한 채 저물었던가 봅니다. 떠나기 전과는 사뭇 달라진 풍경, 시나브로 이울고 사위는 계절의 경계 너머로 곧 겨울이 닥칠 테지요. 모두들 맘과 몸의 옷깃 - 단단히 여미시길, 모쪼록 따숩게 겨울을 맞이하고 떠나보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늦은 인사를 드립니다.

나는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지난 시월의 마지막 주를 보냈습니다. 이곳에서 보낸 며칠간을 얼마간 게으른 '관찰자'의 자리에서 서성이다가 오고 말았지만 적지 않은 자극을 받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대안학교 개교 준비 중에 무언가 ‘벤치마킹’할 것이 없나,하고 발을 들여놓았다기보다는 부딪치고 느끼고 배움의 과정을 통한 개인적인 성장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된 측면이 더 컸던 이번 '수업 참관'이 이렇게 내겐 꽤나 의미있게 마무리되었던 것입니다. 무릇 모든 곳에서 모든 존재로부터 느끼고 배우게 되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오고 있지만, 느끼고 배운다는 것이 실천과 삶으로 이어질 만큼 자극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은 듯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곳에서 어쩌면 짧디 짧았던 나흘 동안 무엇을 보고 배우고 느꼈으며, 내 삶에 그 자극들이 스미게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던 것일까요?

말하자면 이런 것들 - 자율, 영감, 배우고 가르칠 의무가 아닌 권리, 건강한 유연함, 지긋한 치열함, 또는 애정을 품고 집중하기, '누구도 네 생각과 같지 않아', 집과 학교와 거리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 내 학습을 내가 주도하기, 그러는 중에 서로의 성장을 돕기, 그러니까 자극하고 자극 받기.

뭐 이런 것들 - 문화를 대하고 나누는 방식에 대한 고민, 인문적 삶과 평화의 상관관계에 대한 실천적 의미, 지구적 연대와 소통의 당위에 관한 질문과 답, "재미를 운운하기엔 이 세상엔 슬픔과 고통이 너무 많아!"(율리아)
창조와 창작과 재탄생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조금쯤 더 밀도 있는 이해,  "다닐 만큼 다니고 볼 만큼 본 후에는 '내 것'을 만들어라. 만들 시기를 발견/개발/마련하라."(최정현 선생님)

그밖에 내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말을 걸어온 많은 영감들이 있었던 듯해요. 앞으로 살아가게 될 날들 동안 불쑥불쑥 떠오르기도 하겠지요.

문득문득 툭 툭 한마디씩 말을 걸어주어 반갑고 기뻤어요. 난 오래 전에 물리적 '어른'이 되었지만 이 사회가 요구하는 어른의 규범에 맞춰 살아오지 못한 까닭인지 어쩐지 여전히 이 세상이 버겁고, 때로 사람들이 두렵고, 어릴 적과 별반 다르지 않게 낯선 환경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일을 힘들어 하지요.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부분을 깨기 위한 노력을 조금씩 꾸준히 해오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 시공간을 다녀온 후, 빠뜨리는 날도 있지만 '오늘의 문장'을 끄적거리거나 웅얼웅얼 되뇌어보게 되었고, '워크북'으로 쓸 노트를 마련했으며, 이번 주 일요일에는 다음의 집회(http://pal.or.kr/xe/141056#3)에 함께해야겠다고 생각 중이지요.

히게오, 홍조, 호사Hosa, 자네, 율리아, 영환, 오피, 씨오진, sen, 쇼, 빈, 무브, 망구, 동녘, 너울, 구나
그리고 히옥스 선생님, 떠비 선생님, 날개 선생님
초대해주어 고마웠어요. 언젠가, 어디선가 마주치게 되면 기쁘게 인사 나눌 수 있길요!

* 사진 몇 컷 올릴게요. 마지막 두 컷은 쇼Show의 시골집 - 엄밀히 말하면 쇼의 어머니가 사시는 집 - 툇마루(에 내걸린 곶감으로 탈바꿈 중인 감) 풍경이에요. 이 게시판에 올려달라고 하셨지요. 놀러들 오래요. 와서 곶감도 먹고 가고 그러라고 하셨어요. 나도 어제 먹었는데 말랑말랑하고 쫄깃쫄깃하니 맛있었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들려주고 싶었던 메리 올리버라는 시인의 '기러기'라는 시도 함께 남겨요. 소설가 김연수 씨가 자신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소개한 바가 있는데, 이 소설의 제목은 이 시에서 따온 것이었다지요. Specially, I would like to inform this poem for H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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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Wild Geese

착하지 않아도 괜찮아.
참회하며 백 마일이나 되는 사막길을
무릎으로 기어가지 않아도 괜찮아.
다만 네 몸 안의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것을
그대로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될 터.
절망에 대해 말해 보렴, 너의 절망을. 그럼 나도 내 절망을
들려줄 테니.
그러는 동안에도 세상은 돌아가고
그러는 동안에도 태양과 선명한 빗방울들은
풍경을 가르며 지나간다네.
대초원 너머, 우거진 수풀 너머, 산과 강 너머로.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는 맑고 깨끗한 저 하늘 높이에서
다시 집을 향해 날아간다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력에 스스로를 내밀며
신이 난 야생의 기러기처럼 네게 소리치고 있네,
온갖 사물들 속에 너의 자리가 있음을
거듭해서 일깨워주며.

You do not have to be good.
You do not have to walk on your knees
for a hundred miles through the desert repenting.
You only have to let the soft animal of your body
love what it loves.
Tell me about despair, yours, and I will tell you mine.
Meanwhile the world goes on.
Meanwhile the sun and the clear pebbles of the rain
are moving across the landscapes,
over the prairies and the deep trees,
the mountains and the rivers.
Meanwhile the wild geese, high in the clean blue air,
are heading home again.
Whoever you are, no matter how lonely,
the world offers itself to your imagination,
calls to you like the wild geese, harsh and exciting
over and over announcing your place
in the family of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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