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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디자이너의 무수한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디자이너의 선택은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지금까지 디자이너들의 모든 선택은 ‘성공’에 집중돼 있었다. 보다 매력적인 디자인을 ‘뽑을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에 집중돼 있던 디자이너의 노력이 최근 달라지고 있다. ‘more charming’에서 ‘more nice’로 선택의 진로를 바꾸는 디자이너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 일어나게 되는 변화는 디자인의 흐름을 매력적인 디자인에서 지구를 살리고 사람을 돕는 ‘착한’ 디자인으로 바꾸어 놓았다. ‘착한 디자인은 00다’라고 하나의 답을 내놓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래서 이번 기획 특집에서는 다양한 모습의 ‘착한 디자인’을 선보이기로 했다. 저마다 다른 ‘착한 디자인’에 대한 정의부터, 자연과 가까워질 수 있게 도와주는 착한 디자인과 제3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착한 디자인, 그리고 어려운 이들에게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기꺼이 내어 놓는 착한 디자이너, 그리고 공정한 무역으로 착한 소비를 도와주는 사람들까지 착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디자인을 한데 모았다. 이것으로 수천, 수만 개의 착한 디자인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착한 디자인으로부터 일어나게 될 변화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획 및 진행 | 월간 정글 편집부 사진 | 스튜디오 salt |
제1회 착한 디자인 찾기 프로젝트 (2009-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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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지구와 ‘절친’되기 ① (2009-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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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주관과 기준에 따라, 생활 속 착한 디자인 사례를 찾아 나섰다. 당신도 착한 디자인 찾기 프로젝트에 동참해보자. 착한 디자인을 찾는 길에서, 사고와 행동은 차츰 달라질 것이다. 정글 기자들도 함께 했다.
에디터 | 이상현(shlee@jungle.co.kr, 타이틀 사진 | 스튜디오 sa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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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디자인에 대한 이해에 앞서, 착한 디자인을 찾는다는 것의 시작점은, 현재의 디자인은 견고하게 제품을 팔기 위한 전략과 상술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일 것이다. 마케팅과 디자인, 디자인 경영 속에서 숱하게 등장하는 그 ‘디자인’이란 어찌 다르게 생각해 보면 교묘하게 잘 짜여진 각본대로 얼굴에 화장을 두텁게 바른 희극배우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한풀 꺾인 ‘친환경주의’ 디자인들도 사실 그것을 소비 하고자 하는 대중들이 만들어 낸 허상 혹은 오마주일 것이다. 진정한 친환경이 아니라 ‘친환경주의 이미지를 소비한다’라고 하는 편이 맞다. 진보적인 몇몇의 디자이너들은 세상의 모든 디자이너들이 쓸데 없는 것을 디자인 하는 것과 단순히 팔기 위해 잘 포장된 겉모습을 디자인하는 것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우리 디자이너들이 착하게 디자인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은 새로운 형태에 대한 집착, 또는 제품의 ‘MS(market share)’가 아니라,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 컴퓨터와 TV를 당장 끄고 집 앞 길거리로 나가보라. 세상에 버려진 물건들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과 그 흐뭇한 위트를 즐겨보자. 여기 이 이미지는 기존에 존재하는 2가지 이상의 물건들을 사용자의 편의에 맞게 조합된 것이다. 이미 각각의 구성물들은 이미 그 역할을 다 했거나 여전히 구실을 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구성물과의 조합으로 전혀 새로운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합이 조금은 어색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화장을 덕지덕지 하고 나온 신상이 넘쳐나는 요즘에 정말 착하디 착한 디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송봉규 SDESIGNUNIT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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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에서 감동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이라고 ‘이노디자인’의 김영세 대표는 말합니다. 이 분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디자인 행위 그 차체는 누군가를 위한 사랑과 배려입니다. 생활 속에서 편리함은 물론 아름다움을 찾아 가는 착한 행위임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이런 착한 짓 중에 약자나 소수인을 위한 디자인은 디자이너로써 도움을 줄 수 있고,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는, 게다가 디자인을 부각 시킬 수 있는 행복한 짓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이전에 없었던 것을 새로 고민하고, 더 편리한 디자인 제품을 만들고 또 무언가 그들을 위하여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가 늘 찾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꼭 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을 하지 않더라도 디자이너가 착하지 않은 마음씨와 행실로 디자인 행위를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궁금하군요.
사진은 일본 벳부의 거리에 있는 맨홀 뚜껑입니다.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장애우를 위한 섬세한 배려, 따뜻한 마음씨가 엿 보입니다. 맨홀 뚜껑은 잠시 접어두고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을 우선하여 착하게도 연결 시켰습니다. 아마 누군가 지시했는지, 규정에 따랐는지도 모르지만, 어느 장애우가 혹시나 당황하거나 헤매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서 저런 착한 짓을 저질렀을 것입니다. 모름지기 디자이너가 이런 마음과 행동으로 실천한다면 그래픽디자이너도 아닌 웹디자이너도 아닌 그 이상을 넘어서는, 누군가 말한 ‘소셜 디자이너’가 되지 않을까요.
박석하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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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es for a happy planet - 행복한 지구를 위한 신발’이라는 슬로건을 가진 신발제조사 Simple은, 지구 환경에 대한 최선의 요구, 노동 조건 개선, 기업의 도덕성에 대한 경고라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현재 수준의 가장 그럴듯한 답을 보여준다. 재생가능 재료만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은 포장재의 인쇄 하나에까지 환경친화적 재료를 사용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바로 신발의 디자인 자체에서 이들의 문제의식을 뿌리깊게 읽어낼 수 있다는 데 있다.
최근 신발 산업은 '편안한 발', '가벼운 보행'이라는 문제에 관해 스포츠화가 주도해 온 해결책인 인체공학과 첨단기술에 과다하게 의존하지 않고 보다 간단하고 원초적인 (주로 샌들에 기반을 둔) 구조를 새롭게 시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Simple은 글자의 형태 자체에서부터 옆으로 본 신발의 윤곽선을 그리고 있는데, 부드러운 천과 자연 소재 등을 이용해서 발 모양대로 감싸는 패턴을 보인다. 신었을 때나 걸을 때 신발의 어느 부위도 발을 압박하거나 불편하게 하지 않으며, 바닥 면의 탄성도 매우 적절하게 조절되어 있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신발 제조 방식과 로우테크 소재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인체공학을 시도하는 것이다.
빛나는 미래를 약속했던 기술문명이 인간에게 오히려 생존의 위협이 되어 돌아왔다고 한다면, 우리는 다시 근대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그러나 이미 우리는 짚신, 나막신을 신고 살아갈 수는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최소한의 소비와 친자연적인 생활을 꿈꾼다고 해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과거의 체제 자체로 회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새로운 미래상 속에 현재의 기술을 발전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Simple이 보여주는 가능성처럼 말이다.
이정혜 베가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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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어질다라고 표기된다. 즉 착한 디자인이란, 너그럽고 착하며 덕행이 높은 디자인이란다. 예쁜 디자인이나 멋진 디자인과는 의미가 다르다. 멋진 녀석과 착한 녀석은 엄연히 다르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착한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주위에는 온통 멋지고 예쁜 디자인으로 넘쳐나지만 정말 착한 디자인은 어디서 발견해야 하는가? 나의 눈이 이상해진 걸까? 아니다. 시대는 모두 착한 디자인보다는 눈에 띄는 멋지고 예쁜 디자인에만 주목 받는 세상이니, 더욱이 더 착한 디자인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인 듯싶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Super Normal』(후카사와 나오토 • 재스퍼모리슨 지음)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 “정말 평범해서 모든 성질을 평범함으로 응축하여 특별한 평범함으로 표출하는 것.”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해서 새롭고 특별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 슈퍼 노멀, 결국 굿 디자인, 즉 착한 디자인인 셈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주위에 있는 너무도 평범하고 익숙한 물건들에서 착한 디자인을 의외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빨래집게, 주전자, 종이클립, 커터, 욕실의자 등등….
예전 헬싱키에 갔을 때 벼룩시장에서 눈에 띄는 물건을 발견했다. 펠트 속버선이었다. 추운북유럽 사람들에겐 친숙한 이 버선은 양말처럼 고무부추 안에 신도록 만들었는데 펠트시트는 워낙 판판한 소재인지라 보온과 땀의 흡수 등 기능적인 요소뿐 아니라 신축성과 방수에도 탁월하다. 특히 버선의 중간에 트임으로 사용자의 발의 형태에 따라 자연스럽게 신을 수 있게 한 점은 단순함에 기능을 최대한 부각시킨 진정 착한 디자인이었다. 여기에 시각적인 컬러풀함은 멋스런 느낌까지 주니 착한데다 멋지기까지 하다. 이는 Super(최고) Normal(평범)한 디자인이 곧 가장 착한 디자인의 또 다른 예이다. 즉 본질을 알고 그것이 가장 익숙해진 디자인, 분명 생활 속에 자신의 기능을 충분히 실행하면서도 미적으로 만족을 주는 것 이것이 진정 착한 디자인인 것이다.
박명환 디자인뮤제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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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탈것’은 소유자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지금 내 나이 또래의 남자들이 돈을 모으는 이유는 ‘자동차를 사기 위해서’인 경우가 무척 많은데, 이는 결국 ‘자동차를 소유한 한국 남자들의 모임’에 일단 편입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오늘날 한국의 자동차는 안타깝게도 ‘소유자의 개성을 보여주는 기능’이 무척 약하다. ‘어느 서열 이상의 자동차 모임 = 어느 가격 이상의 자동차 모임’이지, ‘어느 디자인 콘셉트의 자동차 모임’이거나 ‘어느 혁신적 자동차의 모임’이지는 않는다.
내가 일명 ‘픽시’라고 불리는 ‘픽시드 바이크’를 처음 본 것은 작년, 압구정동에서였다. 그날도 여지없이 덩치 크고 무섭게 생긴 검은색 수입 자동차들이 압구정동의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그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날렵하게 생긴 자전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좁은 도로 위에 뒤엉켜 옴짝달싹 못하는 자동차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자전거 주인은 휘파람까지 불어대며 도로를 달리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자전거란 대부분은 나처럼 자동차를 살 수 없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자동차를 소유한 한국 남자들의 모임’에 가입하지 않은 채로 자전거만 타는 처지는 누군가에게 절대 들켜서는 안 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픽시’와 ‘픽시’를 타는 사람들의 발견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현재 서울에만 수십 개의 관련 동호회와 숍이 생겨났고, 이를 앞세운 거리 페스티발이 심심찮게 개최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비엔날레 규모의 축제나 영화제도 열릴 정도라고 하니, 이 자전거는 이미 ‘기능으로서의 탈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아이콘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무엇보다 ‘가격 외의 조건으로 사물의 가치를 판단해보는 경험’을 제공해 준 녀석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후 성수대교에서 서강대교까지를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시작한 나는 월 교통비를 4만 원 가량 절감했고, 하체 근육을 얻어내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으나 그보다 30살을 목전에 둔 남자가 운전면허조차 없냐며 핀잔을 주던 주변 사람들 중에 나를 쫓아 자동차를 처분하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야 말로 착한 자전거 디자인의 승리였다고 생각한다.
차백산 시민문화네워크 티팟 공간문화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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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약자의 고통과 슬픔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그것을 생산하는 사회의 구조적인 부조리에 불만과 분노를 느낀 적이 있나요? 시민불복종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합리적 자유를 구속하고 부정적 규율을 강제하는 사악한 제도와 법률을 도덕적인 신념과 양심에 근거하여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최대한의 비폭력을 지향하며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절차적 한계를 해결하고자 정치적인 의사를 직접 표출함으로써 사회적 부당성을 공개적으로 공론화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인 것입니다. 시민불족종은 역사적으로 정의를 구현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백인의 차별대우에 흑인이 불복종하여 인권을 획득하게 되었고, 남성의 폭력에 여성이 불복종하여 참정권을 쟁취하게 되었고, 독재자의 학정에 민중들이 불복종하여 자유를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구조는 기득권의 타락 가능성을 항상 내재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자정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저항은 시민으로써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또한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그런 소수자의 용기있는 불복종을 무시하거나 일방적으로 거부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 상황의 여러 면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증오하게 하는 편견과 갈등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그 균열을 관용과 화해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자율적 주체들이 연대하며 적극적인 항거와 개선과 소통의지로 시민불복종하며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도와주는 표현도구로써의 디자인인 촛불, 풍선, 팻말, 깃발들도 우리사회의 도덕과 정의를 구현하는데 일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배현진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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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 때문에 대전을 방문했다. 커피 한잔 하라며 이 잔에 ‘봉지커피’를 타 주신다. 이 사무실에서는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는구나 잠시 생각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나에게 물으시길 서울에서도 해결할 수 있을 텐데 모하러 대전까지 왔냐고 하신다. 기차를 타고 오는 시간이 여행하는 기분이라 좋다고 하니 웃으시며 잠시 일어나셨다. 기다리면서 아까 그 컵이 눈에 들어와 다시 보니 이러한 메시지가 적혀 있다. ‘三不운동, 부족하게, 불편하게, 불결하게’, ‘이 땅에서 종이컵을 몰아냅시다’. 지금껏 경험해본 가장 유쾌한 환경메시지였다. 누가 만든 컵이냐고 묻자 함께 계신 선생님이라며 그분의 방으로 안내하고 아들과 함께 하는 지구행군 캠페인 사진들도 보여주신다. 아들과 함께 도시들을 걸어 이동하며 조금 불편하고 불결한 컵 사용을 실천하고, 여행의 만남을 통해 소중한 메시지를 나누고 계셨다. 양말을 며칠씩, 티셔츠도 냄새 날 때까지 입어 빨래를 최소화하는 나의 불결한 라이프스타일이 생태적인 착한 실천이라던 나의 변명에 힘을 실어 주셨다. 이번에도 감사히 나를 찾아 준 여행자의 행운이다. 만드는 이의 삶의 실천과 진실한 고민에서 비롯된 디자인은 조금 늦더라도 묵묵하게 전해진다. 그리고 마음을 움직인다. 아들과 지구행군을 하면서 환경운동을 하고 계신 재활용수학자 김창현선생님에 대한 정보는 이곳(www.imagemath.co.kr)에서 확인하자.
이장섭 프리랜스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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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어머니께서는 장을 보러 가실 때 시장가방을 꼭 가지고 가셨다. 시장가방은 필요하지 않으면 빈 가방을 거추장스럽게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시장가방을 접으면 핸드백, 지갑 속까지 들어가는 작은 크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펼치면 장을 본 물건들이 모두 들어갈 정도로 커진다. 어머니는 이런 가방 한 개를 마련하게 되면 적어도 5년 이상 사용하셨다. 만약 시장가방을 쓰지 않고 장 보실 때마다 비닐 봉투를 쓰셨더라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쓰레기가 생겨났을 것이다. 비닐 봉투는 썩는 시간만해도 50~80년의 시간이 걸리고 소각하면 다이옥신이라는 유독물질이 배출 되며 땅에 매립하면 토양 생태계를 오염시킨다. 알게 모르게 어머니들의 시장가방이 환경오염 방지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요즘 그린디자인이 유행이라고 해서 카페에서 일회용 컵 회수를 권장하고 에코백 판매운동도 활성화되고 있다. 이런 좋은 디자인들이 잠깐 빛을 보는 게 아니라 어머니들의 시장가방처럼 꾸준하게 사용됐으면 좋겠다. 기능적인 면도 갖추고 환경에도 기여하는 어머니들의 소소한 시장가방이 착한 디자인이 아닐까.
김은솔 서울여대 산업디자인과 학생
우연히 거리를 걷다 발견한 이 메모는, 생활 속의 아주 작은 실천이다. 우리 주변의 공간에서 사인 디자인, 픽토그램 디자인은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펜을 들고 그리고 설치하는데 1분이면 충분하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사용, 사물에 대한 의인화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달, 시점을 고려하여 가장 알맞은 높이에 디자인을 제작하였다. 결론적으로 다소 삭막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언어 전달을 ‘위트’있게 전달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가? 최소한의 디자인을 통해 이 근처에 쓰레기는 잘 보이질 않는다.
전진수 미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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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더위, 시원한 음료가 생각나는 계절 여름이 왔습니다. 저는 홀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카페에 자주 가곤 합니다. 어느 날 제가 간 카페에서 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는데 바로 뜨개질 컵 받침입니다. 컵 받침은 주로 병 주위에 서린 습기가 흘러 바닥에 고이는 물기를 흡수합니다. 컵이 미끄러지지 않게 해주거나 물방울이 무릎 위로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 까페에서는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것이 아닌 뜨개질(도일리)로 만들어진 컵받침을 사용했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 엄마가 직접 뜨개질로 만들어주신 추억의 목도리가 떠올랐습니다. 오랜만에 정성 들여 한 땀 한 땀 뜨개질로 만들어진 물건을 보니 참 반가웠습니다.차가운 음료를 받치고 있는 녹색의 컵 받침 도일리의 따뜻함과 포근함이 전해져 착하게 느껴집니다.
손미옥 프리랜스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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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만약’을 위해 동전을 먹이며 정성껏 기르고 있는 돼지 네 마리가 있다. 만약이란, 회사에서 잘리고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난데다 찬장도 텅텅 비어버리는 ‘만약’이다. 지극히 나만을 위한 저금인데, 이제 남을 위해서도 저금을 해 보자고 제법 착한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모든 것이 리싸이클 뱅크의 병마개 때문이다. 버려지는 유리병에 캡을 호환하여 저금통으로 재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이 물건으로 몸 바치고 버려지는 유리병을 구할 수 있게 된 것. 유제품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리병에 호환이 되기 때문에 맞을지 안 맞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개성 살리라고 데코 스티커도 넣어주니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다. 지인이 마시고 버리려는 사과주스 병을 구출해 놓고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세워둔 지 어언 1년 남짓. 마침내 사과주스 병도 일이 생겼다. 기념으로 지갑 속 동전과 굴러다니던 모두 털어 넣는다. 사과주스에 동전이 가득 채워지면 이 돈으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구해 볼 생각이다.
정윤희 디자인정글 기자
아직도 누군가는 ‘배후’를 의심하고 있지만, 이 그래픽디자인의 의도는 차라리 ‘너무’ 명백하여서 오히려 그 배덕자들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애도와 추모를 목적으로, ‘자의’에 의해 탄생한 이 디자인은 더 많은 사람들의 자의를 통해 신문 광고 면을 채우기도 했다. 디자인의 의도가 결국 더 많은 소비의 창출이었다면, 이 디자인의 의도를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이 착한 디자인은 ‘듀나의 영화낙서판(djuna.cine21.com)'의 valentine30 님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현 디자인정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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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동원리는 일반 자전거와 똑같습니다. 크랭크에서 받은 힘을 앞기어에서 뒷기어로 뒷기어가 바퀴로 힘을 전달하고.... 근데 일반 자전거와 픽시바이크가 크게 다른점이라하면 픽시바이크는 뒷기어가 바퀴에 고정이 되어있기때문에 쉴세 없이 페달질을 해야하고 페달질을 안하면 안가죠 또 고정이되어있기때문에 후진도 할수있습니다.' ...라고 지식인에 누가 올려주셨어요.
최근에 하자로 오는 방법으로 버스로 합정까지 간 다음 지하철 타고 오는 새로운 루트를 발견해서 자주 애용하는데,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면 지하철 요금이 굳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