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로버트 패브리컨트(프로그 디자인 부사장)
 영화 <프로젝트 H>의 한 장면
이제 질문을 던질 때다. 그것도 소소한 질문이 아니라, 거창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현재 우리가 직면한 전지구적인 위기 상황에 과연 디자인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지금의 이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디자이너들을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며 할 것인가? 지난 몇 달간 여러 지면을 통해, 영향력 있는 디자인 논객들이 혁신과 디자인 사고의 효과에 대해 질문을 던진 바 있다. ‘혁신’과 ‘디자인 사고’는 오늘날의 디자인 현장 및 업계에서 가장 유행하는 두 가지 요소이다. 필자는 이미 이전 글에서 여러 디자이너들이 펼치고 있는 직접적인 사회 참여의 움직임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특히 에인트호벤 공과대학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 H> 같은 디자인 관련 영화에서 보듯, 젊은 디자이너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보다 적극적인 참여 활동과 그 결과를 통해 이들 디자이너들은 아마도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듯하다. 즉 ‘사용자중심 디자인’(이하 UCD)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바꾸고, 현 디자인 작업의 토대를 재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요즘과 같은 시대에 이런 발상은 불경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사회의 제 영역에서 많은 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디자이너들의 노력에 주목하는 편이 더욱 중요할 지도 모른다. 필자 역시 UCD라는 방법론을 전면적으로 폐기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UCD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과연 UCD는 우리에게 필요한 대대적인 사회 변화의 길로 안내해줄 올바른 나침반일까? 필자가 이제까지 줄곧 목격한 바에 의하면, UCD는 ‘편리함(convenience)’이라는 경험의 이점을 여타의 중요한 사회적 가치보다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살인적인 경쟁의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은 필자와 같은 디자이너들에게 채워지지 않은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라고 촉구한다. 그리하여 자사의 제품을 차별화하고, 소비와 폐기라는 친숙한 순환 주기를 더욱 가속화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는 그저 공장에서 찍어내듯 생성된 것이 아니다. ‘사용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욕구는 자기 표현의 욕구 및 개인적인 만족감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복잡한 제품일수록 특히 그렇다.  전형적인 일본 상점의 모습. 각종 휴대폰들이 고객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care of Aldas Kirvaitis
현재 디자이너들이 상정한 주요 과제란, 품질 높은 제품과 보다 유의미한 경험을 통해 사용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자고 기업을 설득하는 일이다. 하지만 ‘사용자들’ 자체가 문제라면 어떨까? 사용자의 요구가 일관된 것이 아니라 갖가지 욕망과 영향이 엉망으로 뒤섞인 것이라면?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욕망들을 자세히 살펴 디자인의 올바른 방향을 추동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가 어떠한 역할은 수행해야 할까? 직관이 아닌 일정한 틀로써 이러한 판단을 견인할 수 있을까?
변화의 힘 이러한 질문들에 손쉬운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순전히 사용자들의 욕구를 ‘지원’해주는 것이라고 규정하곤 한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불편부당의 존재라는 신화를 유지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앞서 던진 질문들은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부분적으로나마 이러한 시각의 변화가 ‘행동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의 대중화를 통해 추동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이나 <상식 밖의 경제학> 같은 책이 기여한 바도 크다.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이 같은 책에서는 웹페이지의 문제나 커피의 사례를 통해, 인간 경험의 가장 중요한 측면들이 전통적인 UCD 공정에서 간과되고 있음을 얘기해 준다. 특히 <디자인 불변의 법칙 100가지> 같은 책들은, 기존의 디자인 교육을 저버리는 일련의 법칙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테면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현상과 같은 사회과학의 법칙이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는데, 공공요금 고지서에 스마일 마크(smiley face)를 이용할 경우 에너지 소비를 20% 절감시키는 동기부여 효과가 있다는 실례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전통적인 디자인 전략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새로운 스타일의 공공요금 고지서. 타 가구와의 비교를 통해 사용자에게 영향을 주고자 하는 형식이다.
이제 디자이너들이 인정하기 시작한 사실은, 사용자의 행위란 언제나 어느 정도 외부의 영향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부의 영향을 제거해서 사용자들이 별다른 구속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욕구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소임이라 전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용자란 시스템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자급자족의 행위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외부의 영향에 대거 노출되어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일반적으로 사용자 스스로는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디자이너의 결정은 범주가 다르지 않은 수많은 외부의 영향 중 하나일 뿐이며, 사용자가 자신이 원한 바를 성취하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효과적인 영향도 대개 발휘하지 못한다. 개인에서 공동체로
‘최종 수요자(end user)’라는 개념이 점점 모호해지면서 문제의 초점 역시 변화하고 있다. 디자인이라는 작업에 있어 껴안아야 할 다양한 형태의 영향을 결정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디자이너들이 이러한 결정을 위해 일종의 나침반을 찾으려 할 때, 아마도 그 초점은 개인에서 공동체로, 개인적 욕구에서 사회적 교환으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제스 맥멀린(Jess McMullin)은 이러한 흐름을 다음과 같이 정확히 지적한 바 있다. “집단과 개인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집단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곧 개인을 납득시켜야 하며, 개인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곧 집단을 납득시켜야 한다. 어떤 대상과 환경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아는 것이야말로,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자 할 때 답해야 할 핵심적인 질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에너지나 보건 문제처럼 디자인계의 관심이 점점 증대되고 있는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자 하는 디자이너들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이처럼 생태계라는 보다 넓은 환경에 유의미한 효과를 미치고 싶다면, 개인의 욕구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위한 디자인 작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이러한 디자인 작업은 개인적 만족이 폭넓은 사회적 가치와 활발히 교차할 수 있는 협조적 체계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개인의 의사 결정은 그 이상의 ‘규모의 효과’를 이룰 수 있게 된다. 이와 관련해 존 타카라(John Thackara) 는 다음과 같은 말로 디자이너들의 주위를 환기시킨다. “디자인 솔루션에 대한 연구와 투자의 역량이 발휘되어야 할 대상은 개인이 아닌, 집단과 공동체와 지역사회이다.”  영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토지 공유(Landsharing) 캠페인
하지만 공동체에의 참여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일이다. 이는 단순히 ‘사용자’라는 하나의 중심을 ‘집단’이라는 또 하나의 중심으로 치환하는 작업이 아니다. 공동체에 있어 참여와 영향의 방식은 개인이라는 범위가 아닌 참여자들 간의 관계 내에 존재하는 것이다. 협동 활동을 통해 역동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공유하며, 이 때의 협동 활동이란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 발현되는 것이다.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상식 밖의 경제학>에서 시장의 교환은 사회적 교환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두 개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하나는 사회적 교환의 세계이며, 다른 하나는 시장의 교환이라는 세계이다. 그리고 이 두 종류의 관계에는 서로 다른 규범이 적용된다.” 여기서 어느 한쪽의 법칙을 다른 쪽에 적용할 때, 역효과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지위나 평판처럼) 공동체가 지닌 외면적 상징 요소를 눈여겨본다고 해도, 참여 없이 사회적 행위의 함의를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런 정도로는 효과적인 디자인 솔루션을 지속할 수 없으며, 공동체의 내부로부터 모델을 이끌어내야 한다. 즉 참여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운 맥락 하에서 지금 현재 어떠한 형태의 실천적인 디자인 활동들이 출현하고 있을까?
촉매로서의 디자인 디자이너의 역할이 가치중립적이지 않다고 전제할 때, 디자이너들이 외부자로서의 시각을 부과하지 않고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새로운 가능성을 펼치고 또 구성원들의 행동 양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참여적 디자인은 이전부터 얼마간 통용되고 있는 하나의 흐름이다. 공동체에 연계된 참여적 디자인이란, 곧 디자이너와 사용자 간의 역할 변화를 의미한다. 에치오 만치니(Ezio Manzini)가 지적한 대로, “네트워크 시대의 사회적 혁신이란, 당면 과제에 연관된 행위자들이 직접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해내는 변화의 과정이다.” 참여적 디자인은 표준적인 UCD 공정의 한 기법으로 이용될 수 있는 한편, 이제 사회 전반의 미디어 기술을 통해 더욱 혁신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지속가능한 디자인의 전문가이자, 프로그 디자인의 전 멤버였던 제니퍼 밴더 미어(Jen Van Der Meer)의 얘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노키아의 디자인 연구가로 잘 알려진 얀 칩체이스(Jan Chipchase)의 활동이나, 모바일 메트릭스의 창설자인 멜라니 에드워즈(Melanie Edwards)의 경우 역시 이를 잘 보여준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이 세 사람 모두 공동체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참여적 디자인 방식을 이용해 공동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하고 있다. 위대한 변화를 위한 촉매제가 된 것이다. 적극적인 공동체 참여 활동을 보여주는 노키아의 ‘오픈 스튜디오’ 프로젝트 With kind permission Jan Chipchase, Younghee Jung & Nokia
얀 칩체이스와 그의 연구 팀은 모바일 테크놀로지와 관련된 새로운 인간 행동에 대해 민족지학적 연구를 전개하고 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진행되는 이 연구에서는 새로운 연구 기법이 시도되었다. 오픈 스튜디오(Open Studios) 라는 이름으로 진행중인 이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민족지학적 연구 모델을 뒤집었다. 즉 해당 지역사회에서 사용자들을 무작위적으로 모집하는 게 아니라, 오픈 스튜디오의 운영 팀이 참여적 디자인을 공동체 속 적극적인 참여 형태로 펼쳐내는 것이다. 이들은 각종 포스터와 이벤트, 포상 등을 활용해 해당 지역 전체의 관심을 최대한 유인하였다. 이 과정 속에서 의미 있는 네트워크가 창출되고, 그 결과 일종의 사회적 결속을 이루어 냄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의 탐색과 미래의 추구에 대한 공동체적 합의를 구축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활동의 주 목적 중 하나는 노키아의 제품 디자인 및 서비스를 알리는 것이긴 하다. 그렇긴 해도 이는 실로 그 목적이 실현되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장기적인 프로젝트이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마인드의 변화를 통해 지역 사회에 보다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게 된다. 얀 칩체이스의 연구 팀은 (모바일 테크놀로지의 영역에 있어) 새로운 사회적 실천의 출현을 위한 기름진 토양을 일구어내고 있는 것이다. 멜라니 에드워즈는 이러한 발상을 한발 더 밀고 나갔다. 변화의 ‘동인’이 될 일군의 인원을 모집해 해당 지역사회 내에 장기간 거주하면서, 지역민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인식을 제고하는 한편, 그들의 행위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측정한 것이다. 얀 칩체이스가 노키아를 위해 창안한 게릴라 방식의 디자인 이벤트들은 이제 해당 지역사회의 현재진행형 활동으로 자리잡았다. 반대로 멜라니 에드워즈의 경우는, 이러한 기반 위에서 지역민들이 개인의 행동 및 사회적 관행에 변화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최근 그녀는 브라질 빈민가에서 뎅기열을 퇴치하기 위해 이러한 접근법을 적용했고, 몇 가지 중요한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남아프리카에서의 HIV 진단 솔루션을 찾기 위한 마실룰레케 프로젝트. 디자인 공정에 남아프리카 남성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프로그 디자인은 마실룰레케 프로젝트(Project Masiluleke) 를 통해, 디자인이 지역 사회의 변화를 어떻게 촉진시킬 수 있는지 직접 목격하였다. 마실룰레케 프로젝트는 모바일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남아프리카 지역의 높은 HIV 감염률과 싸우기 위한 노력이다. 이 가정용 HIV 진단 키트의 디자인 공정에서, 우리는 HIV 자가 진단을 위한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해, 남아프리카 여러 지역의 젊은 남성들을 모집하였다. 단순히 더 나은 진단 방식의 구상에서 벗어나, 참여적인 시스템의 디자인을 시도한 것이다. 과거의 디자인 리서치 활동에서 경험한 바처럼, 참여적 방식은 더 많은 열의와 효과를 낳는다. 마실룰레케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역시 긍정적인 성과들이 엿보인다. 테스트를 적극 고려하는 참여호응도가 더욱 증가하였다. 특히 감염률이 40%에 육박하는데도 아직까지 HIV 테스트를 받아본 적이 없는 몇몇 지역의 남성 호응이 특히 높았다. 또한 모바일 장비의 보급률이 90%에 이르는 남아프리카의 지역적 특성상, 소집단의 적극적인 참여만으로도 이러한 소식이 신속히 퍼지는 효과가 있었다. 트위트럭, 트위츠기빙, 포스퀘어나, 남아프리카 변방에서는 믹스잇 같은 서비스를 통해 이러한 효과가 더욱 확대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프로젝트는 디자인 공정 자체에서 직접 도출된 효과가 사회적 채널을 통해 널리 확산된 경우이다. 어떤 신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에 도입되기 훨씬 이전에 새로운 가능성들이 지역 사회에서 증식하게 되는 것이다. 퍼포먼스로서의 디자인
디자인의 영향력은 촉매라는 ‘개념’을 넘어 확장된다. 공동체에서 도출된 새로운 가능성이 디자이너에 의해 형태를 부여 받는 것이다. 이젠 수많은 디자인 툴을 통해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가릴 것 없이, 상업적인 제품 및 서비스를 대신할 만한 믿을 수 있는 유의미한 대용품을 신속 정확하게 생산할 수 있다. 이러한 산물이 기존과 다른 사회적 ‘증거’를 제공하며, 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오브제들의 효과는 단지 분산된 결정사항들을 디자인이란 형태로 완성해내는 기능에 그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그 가촉성(tangibility), 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그 존재에 있다. 물리적 현존에 의해 새로운 리얼리티를 제시하는 것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새로운 가치의 원천을 만들어냄으로써, 공동체 내에서 사회적 실천을 위한 대안적인 가능성들을 좀 더 신뢰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대상으로 구현하게 된다.  모우나 안드라오스의 이동식 휴대폰 충전소. 공동체에 대한 디자인의 개입 행위를 보여준다.
디자이너들은 이처럼 유형의(tangible) 오브제를 만들기 위해 (혹은 만들지 않기 위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디자인 작업의 툴이 매우 정교화됨에 따라, 이러한 오브제들의 리얼리티는 점점 확산되고 사람들의 의식 및 행동에 대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자제품을 주로 다루는 인터랙티브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인 모우나 안드라오스(Mouna Andraos)의 작업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이동식 휴대폰 충전소를 손수 제작해 19세기의 행상처럼 도심의 거리로 밀고 나가는 프로젝트를 실시하였다. 주위의 이목을 끄는 그녀의 이 손수레로 어느새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은 차례차례 자신의 휴대폰을 충전하였다. 이러한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전기 코드와 어댑터를 공유할 뿐 아니라, 서로 이야기까지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 안드라오스는 디자인의 직접적인 개입 행위를 통해, 공공 장소에서 사람들간의 협력과 담론을 이끌어내었다. 또한 이를 통해 사회적 역학관계에 변화를 주고, 구체적인 현장에 새로운 가능성의 기회를 도입해냈다. 안드라오스가 디자인한 하나의 오브제가 새로운 형태의 협동 행위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효과의 지속 이러한 사례들에서 보듯 이제 디자이너들은 공평무사한 존재하는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사회적 맥락 내에서 해법들을 만들어가는 데 적극적인 참여자로 활동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디자이너들의 기여는 공동체의 아이디어 및 활동에 보조를 맞추는 위치에 있다. 디자이너란 하나의 기여자일 뿐 지휘자는 아닌 것이다. 지휘자의 연단이 아닌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석에 자리잡은 존재로서, 존 타카라의 지적처럼 “이제 디자이너나 엔지니어들은 자신이 선두에 서서 모든 결정을 해야 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간 소비자란 이름으로 불리었던 동시대 시민들의 창의성을 뒷받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다음과 같은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디자이너의 기여도가 보다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고 그 역할 역시 특권적인 것이 아니라면, 앞서 말한 새로운 실천의 효과를 어떻게 지속시킬 수 있을까? ‘참여’와 ‘북돋움’이라는 두 가지 일 모두를 디자이너는 할 수 있을까? 최근 디자인계가 거둔 가장 발전적인 측면 중 하나는 시스템과 플랫폼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이해가 더욱 정교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의 바람은 디자이너들이 더 많은 참여를 기꺼이 수용하고 이러한 협력 활동을 통해 도출된 아이디어의 효과를 더욱 넓혀가는 것이다. 에치오 만치니의 말처럼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변화와 디자인에 의한 시스템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디자인에 의한 시스템이 더욱 강할 뿐 아니라 복제하기도 훨씬 쉽다. 디자이너란 아이디어를 실천으로 탈바꿈시키는 존재이다.”  라이브워크의 콘셉트 카드. 영국의 국민건강보험(National Health Service)과 함께 다발성경화증 환자들을 위한 혁신적인 의료 서비스를 마련하였다.
실제 디자이너의 활동에서 이러한 말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요즘 들어 종종 디자이너들이 ‘플랫폼(platform)’을 해법으로 삼고자 한다는 얘길 듣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몸을 움찔하게 된다. 필자의 소견으로 이는 직접적인 참여와 디자이너로서 내려야 할 힘든 선택을 피해가기 위한 변명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플랫폼 전략’은 단일 산업이나 공동체 내에서 참여적 접근 및 장기적인 노력의 투여와 결합될 때 비로소 실천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공익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온 영국 기업 라이브워크가 공공의료 서비스를 위해 보여준 최근의 활동이 바로 그 좋은 사례이다. 이들에게 ‘플랫폼’은 안전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변명이 아닌, 참여에 대한 요청인 것이다. 이러한 요청에 보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응답함으로써 위대한 효과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
로버트 패브리컨트 프로그 디자인의 부사장으로, 디자인의 역량을 새로운 시장 및 산업 분야로 확장하려는 중이다. 사회적 혁신 디자인 분야의 전문가로서, 그는 ‘마실룰레케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기도 하다. 마실루렐케 프로젝트는 모바일 테크놀로지의 힘을 이용해, 남아프리카 콰줄루 나탈 지역에 최악의 수준으로 퍼져 있는 HIV 및 AIDS와 싸워나가기 위한 사업이다. 로버트 패브리컨트는 NYU 티쉬 아트스쿨의 겸임교수로, 인터랙션 디자인의 기초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부터 뉴욕 SVA의 교수로도 재직하고 있으며, 현재 팝!테크 사회혁신 연구과정의 일원이기도 하다. 각종 컨퍼런스 및 이벤트의 단골 연사인 그는 2009 IxDA 인터렉션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바 있다. <I.D. 매거진> <월스트리트 저널> <와이어드> 등 다양한 지면을 통해 그의 작업이 소개되었으며, <패스트 컴퍼니>지의 객원 블로거로도 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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