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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뉴욕시 도심 시그램빌딩 , 레버하우스 등등 아름다운 건물들을 잘 구경하고 버스투어에 올라서는, 80번가인지 90번가인지를 지나자 도시가 갑자기 누추하고 지저분한 도시로 둔갑해 버린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생각했지요, 스칸디나비아에서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미국에서는 왜? 이 돈 많고 힘센 나라에서 왜, 맨해튼 파크애비뉴에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즐비한데, 1마일만 나가도 믿기지 않는 이 빈곤과 비루함이 있단 말인가? 사회가 어떻게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은 디자인과 국가의 책임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는 모든 국민을 위해 정말 잘, 영리하게 디자인된 시설을 제공할 책임이 있습니다. 납세자의 세금이 지출되는 모든 사업과 결과물에 대해 국가는 책임을 지고 최고의 결과, 최고의 디자인이 나오게 해야 합니다.
현실적이지 않으면 디자인이 아니다
나는 운이 매우 좋았습니다. 한창 전쟁중일 때 나는 십대였고, 곳곳에서 파괴를 목격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디자인학교에 들어가자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이 전 사회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욕망은 일종의 낙관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슴 벅찬 시기였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돈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요즘 학생들이랑 주고받는 얘기가 재미있습니다. “교수님 학교 다니실 때 파티는 어땠어요?” “파티가 없었어.” 돈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마실 술도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수입해 온 끔직한 스팸이란 게 있었지요. 스팸샌드위치와 스팸튀김으로 연명했습니다. 주변 모든 것이 폐허가 되었고, 의식주는 배급으로 해결했습니다. 제대로 된 식사 한 번 할 수 없었고, 재료도 구할 수 없었고, 제대로 디자인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꿀 기회가 왔습니다.
장 프루베 는 말했습니다. “어떻게 만들지 모르는 것은 디자인하지 말라.” 너무나 많은 디자이너들이 펠트펜 한 자루 들고 다수 대중의 삶과는 아무 상관없는 백일몽을, 머리까지 쥐어짜며 스케치하는 것을 봅니다. 한번 물어볼까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만들 건데? 재료는 무엇을 쓸 건가? 어떻게 실용적으로 만들 거지? 어디다 팔려고? 비용은 얼마나 들까?” 나는 가격이 현실적인 디자인의 중요성을 오랫동안 강력하게 주창해 왔습니다. 디자인이 겨냥하는 시장에서의 가격현실성은 영리한 디자인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을 할 때는 제품이 누구, 어느 지역사회를 겨냥한 것인지, 거기 사람들의 소득 수준은 어떤지, 취향은 어떻고, 나의 제안을 사람들이 좋아해야만 하는 이유 등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소비자를 잘 알아야지요. 디자이너에게는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다른 디자이너들을 위해 디자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렇습니다. 학생들은 필리프 스타르크 가 되고 싶어 하고, 슈퍼스타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것도 한 시라도 빨리. 겉만 번지르르한 디자인을 제출하면 언론의 주목과 지면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물어봅니다. “이 상품이 실제 시장에서 팔리고 있나?” 대답은 십중팔구 “아니요”입니다. 그런 디자인은 잡지와 미디어를 먹여살릴 뿐 참으로 실용성에 뿌리박은 것이 아닙니다.
디자이너의 99퍼센트는 환경에 대한 책임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탄소를 배출하는 제조방식이라든가 석유 기반 제품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대나무로 제품을 만들 길이 없을까 궁리중입니다. 대나무는 자라고 자라고 자라고…… 한없이 자라거든요. 시골에 목공소를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지속 가능한 태도와 쓰레기 줄이기로 상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공장 난방은 폐목재로 하고, 목재는 절대로…… 예를 들어 성장기간이 아주 길고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티크목은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려운 문제이고, 물론 우리 공장이 전기를 너무 많이 쓴다고 비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이것이야 말로 할 수 있는 최선 아니겠습니까.
아주 재미있는 문제네요, 그렇죠? 우리 디자이너들 대다수는 나이를 먹는 물건을, 나이를 먹을수록 기품과 매력을 더하는 물건을 디자인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한편, 일거리가 없어 아무도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최악이지요. 전세계에 걸쳐 사람들의 일손이 놀지 않고 바쁘게 만들겠다는 이런 욕망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평생을 쓰고도 버틸 정도로 오래간다면 일자리는 어디로 갈까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에 우리 모두가 만족한다면, 신발이고 셔츠고 자동차고 집이고 새로 살 필요가 없어진다면, 고용창출의 동력은 어떻게 만들어 낼까요? 진퇴양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