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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다들 동의하겠지- 답사는 정말로 먹고, 놀고, 자고의 반복이었고-
돌아다닐 땐 신나서 말 많다가도 회의시간만 되면 얼어버리는 우리의 모습, 다들 기억하겠지- 답사를 다녀온 다음 글로벌학교는 어땠을까? 글로벌학교 죽돌들이 고정희 시인, 그리고 해남 투어에 대해 갈피를 못잡고 있는 것 같다는 나의 걱정에, 유리와 히옥스는 장소에 직접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며, 해남에 직접 가보면 다를 거라고 대답하셨지만, 답사내내 놀기만 했던 것 같다며 이래도 되나? 싶었다던 반야를 보니 답사를 갔다 온 후 달라진 것도 없구나 싶기도 하고-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새로 느꼈는지, 글로벌학교 죽돌들에게 묻고 싶다- 도시에 비해 평지와 하늘만 보여 해남만 오면 하늘이 땅을 누르고 있는 것 같다는 유리의 말을 들으며, Daft punk가 음악이냐부터 시작, 보아와 고정희의 차이는?까지 이어진 히옥스의 질문세례를 들으며, 사랑나무가 있던 대흥사를 방문하고, 저 멀리 해와 바다가 보이는 미황사를 방문하며, 늦봄학교에서 그 곳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졌지만 다음엔 꼭 이길거라며 운동회 이야기를 열올리며, 고정희 시인의 묘에 방문하여 산이 쑥을 뽑기 시작하자 리사가, 렌죠가, 반야가 붙어 함께 쑥을 걸러내며, 유리와 히옥스가 먼저 차로 내려가자, 엉거주춤 묘 앞에 서서 잘 모르는 고정희에게 절을 올리고 또 오겠다고 말하며, 차만 타면 따뜻해서 잠이 오고, 잠만 깨면 뱃속의 거지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이었던 우리들은, 이러한 순간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던 걸까? 그런 이야기 듣고 싶고, 그런 이야기 투어 때 했으면 좋겠다- 투어에 관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는 거, 일주일 정도면 충분하겠지? 답사 리뷰 글을 토대로 계속해서 투어 컨셉 글이 되게끔 수정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일주일 뒤에는 각자의 컨셉글이 나왔으면 좋겠다- 글이 나오면 다들 빨리 움직였으면 좋겠다- 계속 수정해서 최종 스크립트 번역하고, 시뮬레이션도 돌리고 해야하니- :: My review :: 서울에서부터 어둑한 밤을 헤집고 강진에 겨우 도착했다- 강진숙소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까지 보였던 건 끝이 없던 좁고 어두운 길- 오른편에는 시골 집들이, 왼편에는 보리 같은 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도 숙소에 가까워지고 나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강진, 그리고 해남의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허나 다음날 아침 강진에서 해남을 향하면서, 온 주변이 모두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뒤덮여 놀랐다- 이 색깔은, 고요하면서도 편안한, 자연 그대로이면서도 인간의 흔적이 부분부분 남아있는, 단조로우면서도 '촌'스럽지않은, 어쨌든 마음이 편해지는 이 시각적인 광경을 만끽하며, 어중간한 저녁이 아닌 한밤중에 도착하여 몸이 피곤하여 해남을 유심히 관찰할 준비가 되지 않은 나에게로부터 이 광경을 꽁꽁 숨겨둔 어둠에 감사했다- 지리산에서 항상 봐왔던 광경이라 신기하지 않던 반야와는 대조되던 나는 나의 눈을 잠시라도 창 밖을 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된 일일까? 왜 이리 이 장소가 각별할까? 두 번째 온 해남이, 왜 첫 번 째로 왔을 때는 난 이 아름다움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러게, 전혀 생각 못 했는데 글 쓰다보니 두 번째로 온 해남이 꽤 아름다워 보였으며, 왜 이렇게 나에게 각별해 보이지?) 어쨌든 감질나게 먹고, 놀고, 잔 것 맞다- 별거 다 먹어서 장염따위 다 이겨냈고, 일도 하긴 했지만, 내가 가보고 싶었던 땅끝 가서 모노레일이나 타는 관광했었고, 일정에 대한 엄격함이 없어, 모두가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 시작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설렁설렁 답사를 한 것 같아도, 쉬는 시간과, 이동을 하는 차안에서의 공백, 또 유리와 히옥스의 :인물_고정희 고정희 시인은 나의 작업장학교 선배들이 자신의 롤모델로 나에게 소개해준 사람이다- 초반의 고정희 추모 여행 자료를 찾아보면 소녀들의 페미니즘 팀이 많이 언급이 되었으며,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답변을 고정희 시인을 통해 배우고, 위안을 삼으며, 그 질문에 답해온 듯 하다- 여성해방주의를 주장하던 시도 많이 썼던 이 시인을, 2009년 10대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다른 10대들에게 그를 어떻게 소개시킬 것인가? (앞으로는 어떻게 될 지 모르나 아직까지) 그는 나의 롤모델이 아니며, 그를 떠올릴 때 애틋한 감정이나 끈끈한 감정 같은 건 없다- 당시 소녀들의 페미니즘 팀이 그의 시를 통해 큰 영향을 받았던 것 같지만, 난 시를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이런 내가, 고정희를 통해 울컥하며 마음이 심하게 흔들려본 적이 한번 있다- 바로 그의 무덤을 처음 방문했을 때였다- 그 때 당시 나는 주니어를 수료했기 때문에, 작업장학교 죽돌로 항상 팀에 소속되어있다가 '인턴'이라는 나 혼자만의 경로를 만들어야 해서 굉장히 두려웠다- 나에게 익숙했던 환경이 바뀌어버리며 처음으로 하자를 나간다면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할지 고민이 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시기에 하짱(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항상 인터넷 기사에서 청소년의 자살을 접하다가 주위에 있던 사람이 정말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에게는 충격이었다)이 죽었다- 소속감으로 인해 많이 울적했던 시기,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훨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때 내가 썼던 한 학기 에세이에는, 청소년은 아무리 어른스럽거나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선택을 하는 순간이 오면 한순간의 감정에 많이 흔들려 어떤 선택이 이로운 선택인지 잘 판단하지 못하는 시기인 것 같다고 쓴 적이 있다- 청소년의 자살, 성매매, 가출 등은 한 순간의 감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순간 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나와 연결되어있으며, 선택을 하는 것이 두려워졌던 순간이 있다- 이 감정 또한, 확김에 모든 것을 연결시킴으로서 나는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청소년이라는 것이, 후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잘 못하는 나이라서, 아직까지 내가 하자를 졸업하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정확한 해답이 내려지지 않아서, 무척 두려웠다- 이러한 고민을 안고, 고정희 시인의 무덤에 갔을 때, 고정희의 삶과 시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채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울컥했었다- 나는 그 때 당시 이 키워드로 고정희와 나를 연결시켰으며, 잔디로 덮여있던 그의 무덤을 보는 순간, 그 무덤을 껴앉고 울며 위안을 받고 싶었다- 당신도 외로웠나요? 당신의 죽음은 어떠했나요? 당신도 나처럼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나한테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인터넷 기사를 읽으면서 우울해하는 것이 바보같은가요? 당신은, 거기서 행복한가요? 당신에게 일어난 일에, 억울하지 않나요? 그렇게 한 순간에 생을 마감하는 것이, 억울하지 않아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걸까요? 이번에 방문했던 고정희 시인의 무덤- 투어에서 고정희를 소개하고 싶은 부분은, 그의 일생을 이야기하며 다른 청소년들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시키고 싶다- : 장소_해남 : 매체_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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