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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탈경계 인문학글 수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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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7 08:09:34
2013년 5월 2일 목요일 영상인문학 강의 리뷰 :신에게서 인간에로?! - 기독교철학의 전환
우선 이름표도 준비해주시고, 두 시간동안 서서 좋은 강의를 해주신 아로미께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어요. 강의를 들으면서 신의 언어,인간의 언어같은 이야기가 어떤 뜻으로 사용되었던 것인지, 영화의 배경인 중세사회가 어떤 곳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어서 전체적으로 정리가 되었던 것 같아요.
우선 문명은 "점진적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교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생각이 났어요. 영화에서도 그러했지만 한 문명이 만들어지고, 발전되고, 모든 폐악을 다 경험한 후 멸망하는 모습들 중 우리는 어디에 서있을까? 나비문명을 생각한다면 이 문명의 후반부 쯤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입시와 취직 등 다 돈을 더 잘 벌기 위해서 일어나는 일들 같고 실제로 먹고사는 문제와 돈은 항상 직결되어 있으니까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 사이의 선을 그어버리는 일들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종교또한 그래야 한다는 이야기 를 들으면서, 그러면 돈이 있고, 없음 또한 차별에 속할 수 있을까? 그것으로 인해 사회적약자가 되기도 하고, 죽음에 몰리기도 하는 이 시대에 발리안이 있다면 어땠을까? 하면서 마을이나 3만엔비즈니스처럼 우리가 하는 공부들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이성의 중요성은 알고있었지만 스스로가 유한하다고는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물론 인간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신 앞에서 작아지는 존재. 라고 여겨본 적은 없는 것 같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스러움"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고, 꼭 종교적인 표현이 아니더라도 신의 언어를 사용하는, 기사의 정신이 살아있는 모습에 사용할 수 있구나싶고 그 단어와 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듭니다. 더 나은세계를 위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좋았던 영화였던 것 같고,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질문) 혹시 사제가 발리안에게 십자군에 참여하라고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사제는 왜 그랬을까요?
2013.05.09 01:52:19
그럼요~ 특별한 이유가 있죠. 강의 전반부에 아주 살짝 이야기한 것 같은데... 예루살렘이 이교도들 즉 이슬람교도들에게 점령당해 있다는 사실은 <신앙적 명분>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교황과 사제들에게는 참으로 치욕스러운 일이었을 테니까요. 자신들의 종교인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심을 가지고 있고, 그 예수가 말씀을 선포하고 고난받고 십자가에 처형된 곳도 그곳이죠. 물론 그 이전에 유대교 성전이 있었던 곳인데, 기독교의 경전은 신약성서(예수와 그의 제자들, 처음의 교회 이야기가 담긴 책들) 이외에도 구약성서라 하여 유대인들의 신앙도 같은 하나님 신앙으로 여기거든요. 그런 성지를 이교도들이 점령하고 그 위에 회교도 사원을 지었다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신성모독>이죠. 때문에 단순히 발리안에게만이 아니라 당시 유럽의 사제들은 교황의 선포에 따라(즉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한 성스러운 군인들, 즉 십자군을 모집하는 선언) 유럽 각 지역에서 십자군에 참여하라고 했어요. 각 지역의 사제들이 일종의 '리쿠르트' 작업에 열심히 참여했던 것은 당연했겠죠?(우리 <문화적 당연> 이야기 했죠?)
2013.05.12 07:43:34
궁금한 점 : 1.실제로 이 영화는 기독교 측에게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아로미 선생님은 기독교 신자이신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영화를 감명깊게 볼 수 있었고 편안하게 받아들일수 있으셨어요? 동성애 차별방지 법안을 반대하고 있는 일부 보수 한기총 분들이 선생님같이 열린 생각을 할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열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지금보다 한결 나은 세상이 될 것 같아요. 결론은 선생님은 그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받아들이셨나가 궁금합니다.
2. "인간의 가능성, 창조적 자유 포기한다는 건 죄"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2013.05.14 00:05:35
<호조> 1번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 그래요. 전수받은 신앙 교리가 기독교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그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는 <근본주의적fundamentalist> 기독교인들은 이 영화를 싫어하겠죠. 이슬람은 무조건 이교도요, 우상숭배자들이요, 반하나님적인 존재로 <그려져야 하는데> 살라딘은 상당히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오니까요. 반면 상당수의 가톨릭 사제들은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찬 사람들로 그려지고... 마치 '친'이슬람적 영화가 아닌가 생각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정 신이 원하는 것 즉 <약자들을 보호하고 정의를 행하는 일>에 죽기까지 최선을 다한 신앙인들(예를 들면 예루살렘의 왕, 발리안의 아버지 고프리, 그리고 '죽지는 않았지만' 발리안도)도 있었죠. 한편 이슬람권에서도 잔인하고 배타적이며 특수주의에 사로잡힌 신앙인들도 있었구요. 우리 강의하면서... <성스러움>은 어느 특정 인간그룹이 독점할 수 없는 <모두의 것>이면서 <모두를 초월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 기억나요? 그 <성스러움>은 결코 어느 한 인간이나 인간집단의 특권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 없다고... 그건 중세말기적 형태의 가톨릭이나, 현재 근본주의적 개신교 신앙인들의 신앙고백에도 적용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기독교에 우호적인 영화는 감명적이고 좋은 영화이고, 이슬람에 우호적이면 반하나님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을까요? 결론은...ㅎㅎ 저는 신앙에도 합리성을 적용하는 liberalist(자유주의적 신앙인들 이야기 했죠?) 신학 전통을 거쳐서 정립된 제 신앙을 <기독교 실존주의>Christian Existentialist 전통 안에다 위치 짓고 있어요. 제가 속한 입장에서는 자기 종교 전통 안에서의 신앙고백을 소중히 여기지만, 하나님은 우리 전통 안에서만 역사하시는 편협하고 닫히고 제한된 분이 아니라고 고백하죠.(후자는 이성적인 고백). 따라서 기독교 안에 바른 신앙인과 그릇된 신앙인이 있을 수 있듯이, 타종교에도 그럴 수 있다고 믿어요. 실제로 역사적으로 살라딘은 예루살렘 탈환시 민간인들을 살육하지 않았어요. 그 이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던 가톨릭 십자군이 양민까지 모두 학살한 경우와는 비교가 되죠. 그 일화를 영화가 지적하였다하여 <친>이슬람적이라고 영화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신앙인이라면 자신의 행위가 진정으로 <친>하나님적인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것이겠죠. 그 영화에서 <하나님 신앙>을 가지고 자신의 삶 가운데서 머리와 가슴으로 끊임없이 물으며 양심있는 행동을 했던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든 이슬람인이든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그들이 진정 자신들의 <인간다움> 안에서 <성스러움>을 소유한 사람들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그 영화를 그리 잘~ 감상했던 거구요.^^
2013.05.14 00:14:35
<호조>의 2번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
창조적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죄다! 그건 현대신학자 Paul Tillich의 입장이에요. 이 신학자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자유주의적>인, 즉 신앙에 이성적 성찰을 반영하는, 위험한 인물이죠. 틸리히는 인간 실존을 finite freedom이라고 했다고 했죠? 이 설명은 위에 맨 처음의 내 이야기에 설명했어요. 전지전능하여 infinite한 신과는 달리, 인간은 육체를 지니고 있고 유한한 정신을 지닌, 그래서 결국은 죽고 그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finite한 존재입니다. 그런 인간이 자신의 생명이나 권한, 지위나 소유를 무한하게 만들려는 모든 시도는, 틸리히가 이해하는 기독교적 신앙고백 안에서는 명백한 죄입니다. 그야말로 <우상숭배>!! 대부분 이 부분의 죄성은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인들도 인정하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뒷부분, 호조가 물어본 창조적 가능성을 포기하는 죄에 대해서 대부분의 기독교 전통은 침묵합니다.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인들, 그리고 복음주의적인 기독교인들에게 인간은 도무지 자기 의지로는 선을 행할 수도, 무언가 선한 것을 만들어낼 수도 없는 전적 타락의 존재라고 고백해요.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하지만 인간이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자유주의적인 기독교인들은 그 이성이 완벽하다고는 인정하지 않지만, 그 이성의 발현을 통해 인간이 창조적으로 무엇인가를 선하게 지어낼 수 있다고 믿어요. 인문...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은... 결국 인간의 타고난 능력, 즉 <지어낼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해 존재하게 된 거잖아요? 바로 이 창조적인 능력을 살아가는 동안 자유롭게 발휘하는 것... 틸리히는 이것이 인간의 사명이요 의무라고 보았어요. 때문에 자신의 창조성이든 남의 창조성이든 이 창조성의 자유로운 발현을 저해하는 행동이나 가르침, 제도 등은 악하다고 본 거예요. 이 뒷 부분의 이야기가 현재 주류 기독교에서는 상당히 약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가르침의 핵심중 중요한 부분이라고, 틸리히도 그리고 저도 그리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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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까르, 서키, 고다, 고요, 푸른, 별, 신나, 션, 쿡, 비노, 꼬마, 떠비, 벗아, 푸, 핑두, 온, 굴, 나나, 마루,.... 만나서 반가웠어요.^^ 페북을 안하는 관계로 여러분의 영화감상후기 및 질문들을 너무 늦게 읽어서 미안했지만... 강의 끝나고 돌아와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아마도... 많은 질문들이 강의를 들으며 어느 정도 대답이 되었겠다 싶어요. 그래도 혹 더 궁금한 것이 있거나 함께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여기서[페북에서 나눈다면 여기로 옮겨주고요.^^;] 마음껏 나누어 주세요. 저도 한 일~이주일 정도는 자주 들어와서 흔적을 남길게요.^^
초롱초롱 눈에서 빛을 내고, 발랄하게 웃고, 서슴없이 말하던... 여러분의 예쁜 모습이... 오래토록 기억날 것 같아요. 말했죠? 자주는 못하겠지만... 위하여 기도할게요. 우리가 공유하는 공통 능력인 '성스러움'과 소통하며 만들어내는 여러분'만'의 '인간다움'이 이 땅에서 아름답게, 선하게, 의롭게 발현되도록... 발리안의 대장간 문구를 기억합시다.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그게... 사람입니까? ㅎㅎ
또, 여러분이 사는 동안 여러분'만'의 '성지'(The Kingdom of Heaven)를 찾아나서길 기도해요. 영화 마지막에 발리안이 영국왕 리처드(사자왕이라고 하죠)의 3차 십자군 원정을 거절하고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떠났던 것, 기억하죠? 분명 그는 예쁜 여왕님과 둘이서'만' '잘 먹고 잘 살러' 사라진 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후에도 발리안의 머리와 가슴은 사는 동안 치열하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느꼈을 거라고... 믿어요. 그가 사는 동안 그가 딛고 살아가는 세계와 그가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특히 the helpless)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도록... 다른 사람들과 자연을 타자화시키고 정복하고 지배하는 방식으로 '이기적인 자기를 확장'하는 인간 욕망이 아니라, <생명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그것>[꼬마의 '성스러움' 정의 ㅎㅎ], 그 하나[그래서 많은 종교들이 신의 이름을 '하나'(님)라고 부르죠.]를 내 안에서 찾아내고 나의 삶에서 표현하고 공동체의 삶의 방식에서 체현시키려 하는 그 '인간다움'이 이 땅을 '천상의 왕국'으로 만들어갈 거예요. 영화 마지막에 그랬죠? 아직도 그 땅에는 평화가 도래하지 않았다고... 우리의 몫이겠죠?
Finite Freedom!!! 우리의 유한성과 가능성 사이에서... 우리도 사는 동안 치열하게 생각하고 느끼며 우리의 삶을, 이웃의 삶을, 우리가 사는 공간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 갑시다! 그게 <성스러움>과 <인간다움>의 관계성을 말하면서 제가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였어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인간에게... '완성'은 없어요. 우리의 '유한성' 때문이죠. 그걸 잊은 많은 사람들이 중세 말기의 가톨릭 사제들처럼 <God Wills>를 외치면, 어느덧 자신들의 주장을 교리화, 절대화하게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그 가능성을, 인간의 창조적 자유를 포기하는 것도 '심각한 죄'라 합니다.^^''[아, 물론 근대적 전환을 한 뒤의 liberalism 계열의 주장~] 예루살렘 왕이 그랬죠? 나중에 죽어서 하나님을 만나러 가서 "They said..." 그렇게 자신의 삶의 이유를 남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거라고... 여러분이 신을 믿지 않더라고... 그건 여전히 유효합니다. 인간이 '창조적 가능성'을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인 한... '남들이 그랬어요'[그 어떤 존경스러운 '남들'이라도...]는 여러분의 삶을 설명하지 못할 거예요. "We can find out together!" 어른들과, 선생님들과, 지식인들의 몫이 있다면 고프리가 말했던 그 한 마디에 다 담겨있지 싶어요. 그렇게 여러분이 스스로 찾아가는 <인간다움>의 여정에, 길동무로... 격려자로... 그리고 필요하다면 보호자로... 그렇게 곁에 있는 사람들중 하나가 되도록, 저 또한 노력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