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철아, 자전거 안 탈 거야?" "오늘은 공원에서 줄넘기만 하다 올 거야~" 어머니로 보이는 30대 여성은 어깨에 훌라후프를 메고, 한 손에 줄넘기를 감은 아이와 함께 간다. 또래 아이 대여섯과 이어폰을 낀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단지 입구에서 한 방향으로 향한다. 붉은 노을 기운이 가시고 땅거미가 깔리는 저녁 어스름녘, 10차로 대로변 도로 자전거주차장은 만차였다. 전구를 환하게 밝힌 자전거 도매점 앞에는 사람들이 두셋씩 서서 자전거 가격을 물었다. 도보 10분, 산책할만한 거리에 올림픽공원을 둔 강동구 둔촌동 둔촌 주공아파트 풍경이다.

강동대로를 사이에 두고 송파구와 어깨를 나란히 한 둔촌1동에는 둔촌 주공아파트밖에 없다. 둔촌주공 1,2,3,4단지 5,930가구가 둔촌1동 인구의 전부다. 지금은 10차선 대로변에 음식점이며 은행, 편의점 등이 늘어섰지만 30년 전만 해도 일대가 휑했다. 도심에서 동남쪽으로 15km, 하남시 경계와 맞닿은 서울의 동쪽 끝 벌판이었다. 그 벌판은 1970년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단지(1만 9,180가구)와 반포1단지(3786가구)공사를 시작하면서 한강 이남 개발 붐이 일 즈음, 새로운 주거단지 조성지로 꼽혔다. 둔촌단지도 거대한 공급계획의 일환이었다. 당시 주택공사의 목표는 ‘하루에 100가구씩 짓기’ 였다.


 

대단지 설계의 노하우를 담다

둔촌단지는 59만4000㎡ 대지 위에 5930가구를 건설했다. 벽돌로 지은 5층 아파트와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10층 건물이 들어섰고, 주택형은 전용 24~82㎡ 5가지 종류였다. 잠실 뉴타운 건설 때 시도된 대단지 경험을 녹이되, 단점은 보완했다. 잠실단지는 지나치게 소형평형만 지은데다 아파트 높이가 모두 같아 일(一)자 스카이라인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둔촌단지는 대로변에는 5층짜리 낮은 아파트를, 중심부에는 10층짜리 고층아파트를 배치했다. 덕분에 햇빛이 단지 안까지 고루 들고, 바람이 잘 통한다. 한 단지 내 여러 평형을 갖췄을 뿐 아니라, 한 동 안에도 서로 다른 평형을 섞어 주민간 소통을 도왔다. 약간 언덕진 원래 지반의 높이를 일부러 맞추지 않았고, 나무와 습지도 최대한 원형 그대로 두었다. 단지 안쪽으로 들어가보면 개포주공아파트나 반포주공아파트 등 다른 저층아파트에 비해 주동 사이 거리는 좁은 편이다. 주변에 일자산 자연공원 등 녹지가 많아 내부에 따로 녹지공간을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내 주거지 면적은 79%다. 10층짜리 고층아파트를 밖에서 보면 주동 측면에 튀어나온 작은 발코니가 도드라진다. 단독주택에서 볼 법한 凹 모양의 발코니는 그 자체로 주택공사 표지와 동 호수 말고는 아무 장식이 없는 주동에 장식 역할을 한다. 입주 시에는 입주자가 자유롭게 집 분위기를 바꿀 수 있도록 거실과 침실에는 무늬 없는 초배지(도배지를 바르기 전에 붙이는 하얀 종이)만 붙이기도 했다.


둔촌 주공아파트는 단지 내에서 모든 생활이 해결되도록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췄다. 단지 입구에 상가 등 생활편의시설을 집중 배치하고, 단지 내 통학거리를 고려해 초등학교는 위례초등학교와 둔촌초등학교로 나눠 넣었다. 인근 지역 학생들도 함께 이용하는 중고등학교는 단지의 바깥쪽에, 중심상가의 기능을 나누는 미니 상가는 단지 곳곳에 배치해 동선이 엉키지 않게 배려했다. 둔촌동 인근에는 이렇다 할 상가와 학교가 없었고, 천호동의 중심상가까지는 1km 가량 떨어져 둔촌 주공 단지 하나가 동네 역할을 해야 했다. 한꺼번에 많은 주택을 짓느라 건설비가 모자랐던 서울시에서는 1978~1979년 둔촌주공아파트 등 10개 아파트(7667가구)를 분양하면서 채권을 발행했다. 분양가 외에 추가로 채권 매입해 분양 받는 방식이다. ‘마이 홈’의 꿈에 부푼 사람들은 선뜻 주머니를 열었고, 250만~850만 원의 채권을 샀다. 덕분에 서울시는 단숨에 517억 원이라는 자금을 확보했다.

둔촌 주공아파트의 현재

둔촌동 주공아파트는 현재 재건축을 준비 중이다. 1~4단지가 함께 재건축을 추진해 향후 8000~1만 가구 이상의 대단지로 변신할 예정이다. 1982~1985년에 지어진 고덕동의 1만1050가구 주거단지, 고덕 주공아파트도 재건축을 준비하고 있다. 주변 녹지에 편안하게 안긴 듯한 나지막한 5층짜리 아파트의 추억이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