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22일 (화) 21:40  한겨레

[이사람] 덜 가져도 더 행복할 수 있다

[한겨레] '느린 삶 운동가' 쓰지 신이치 교수 방한 

"숲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숲 동물들이 다투어 도망갔지만, 오직 벌새 한 마리가 그 작은 부리로 강에서 물을 한 방울씩 떠다 그 산불 위에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대체 그리 해서 어쩌겠단 거야?' 다른 동물들이 모두 비웃었지요. 벌새는 답합니다. '나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요." 

최초로 '슬로 라이프'라는 말을 고안해내고 느린 삶 운동을 10여년째 펼쳐온 쓰지 신이치(57·한국명 이규·메이지학원대학 국제학부)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22일 기자들과 만난 그는 자신의 남미 원주민 친구에게서 들었다는 '벌새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미국·남미 등 원주민·공동체 체험이 밑거름 
11년 전부터 환경단체 활동·저서집필 해와 
"국가체계 변경 힘들어…생활 속 실천 중요" 


쓰지 교수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일본인으로, 1998년부터 일본과 세계를 넘나들며 슬로 라이프 운동을 펼쳐왔다. 2001년 < 슬로 이스 뷰티풀 > 을 시작으로 < 슬로 라이프 > < 벌새의 물 한방울 > 등 왕성한 집필활동과 함께 나무늘보클럽이라는 환경단체를 만들어 '느린 삶'을 실천해 오고 있다. 그는 지금껏 세계를 지배해온 인간중심주의 서양문명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확신을 인터뷰 내내 피력했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를 기점으로 새로운 세계를 위한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나갈 희망이 돋아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연과 자원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세계관이 에너지 위기, 환경 위기를 불렀다면, 이제 거기에 대응하는 것이 옛 동아시아에서 발상한, 사람과 환경이 융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사상이라는 논지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부와 행복을 한묶음으로 생각해왔다면, 이제 떼어서 생각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는 이번에 국내에 번역출간된 < 행복의 경제학 > (서해문집)에서 경제와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풍요를 위한 덧셈의 경제가 아니라 조금씩 덜 쓰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뺄셈의 경제를 제안한다. 이제 경제학은 부와 풍요를 추구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한 '행복의 경제학'으로 새로이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앞에서 나온 그 벌새는 무섭게 번지고 있는 산불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쓰지 교수의 답은 뜻밖에도 비관적이다. "우리는 이미 늦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불을 끄기 위해 조금씩,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벌새가 되어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경제 고도성장기에 어린 시절을 통과한 그는 20대 중반이던 70년대 후반에 일본을 떠나 캐나다, 미국, 남미 등지에서 16년간 생활하며 그곳의 원주민들, 비주류 공동체 사람들을 만났다. 그 체험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선진국 사람들이 '슬로 다운'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런 믿음으로 일본으로 되돌아와서 98년 슬로라이프 운동을 시작했다. 

"어디에서 '내려온다'는 건 힘든 일이지요. 중요한 건 이런 경제시스템에서 조금씩 내려온다는 것이죠. 작은 공동체에서 사회, 국가 단위까지 각각의 단위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령 국가 차원에서 현 시스템을 완전히 뒤바꾸는 것은 긴 시간이 걸릴 겁니다.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우리 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것들부터 해야 합니다." 

그가 대표로 있는 시민단체 나무늘보클럽이 펴고 있는 나무젓가락 안쓰기, 자판기 안쓰기 등 '~사용 않고 살기 운동('즈니 운동')은 조용히 붐을 일으키고 있다 한다. 전압 암페어 낮추기 운동과 전기제품 쓰지 않기,원자력발전소 반대운동도 벌이고 있다. 

글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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