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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음악글 수 566
난 영어 제목을 좀 좋아하는걸지도 중간에세이 “나와 우리는 세계를 노래합니다. : Keep Telling, Hearing, Looking and Singing!” 동녘 공연/음악팀의 이름이 ‘촌닭들’에서 Festeza로 바뀌어 새로 출발하고, 그 사이에 나도 끼어서 주니어 1학기를 지낸 것이 벌써 4개월, 시즌2를 만들어가는 이번 8개월 학기의 경우에는 절반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이르렀다. 학기 시작 전부터 앞으로의 8개월이 힘든 학기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숨 가쁜 일정을 보내야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작업에 관한 고민과 작업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을 해야 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학습계약서를 쓰면서 나는 ‘마을의 음악가’로서, Festeza로서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공감하고 슬픔을 나눌 줄 아는 작업자가 되려 했다. 그 세상의 일들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만들어지는 마을 안에서 나는 누구와 함께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뮤지션이 되기 위해서는 주니어 과정을 시작하기 전, 나는 길찾기, 아니 그 전부터도 뮤지션의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회의 이야기들을 전하고 영향력을 가진 그런 사람을 꿈꿨다. 당연히 길찾기 때부터 주니어 코스를 시작한다면 공연팀인 ‘촌닭들’이 되고 싶었다. 나는 록이나 팝을 주로 듣고 연주하긴 했지만 딱히 싫어하는 음악이 있는 건 아니었고, 음악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에 소위 ‘월드뮤직’이라 불리는 것들도 잘 들었었다. 촌닭들은 주로 브라질리언 퍼커션을 연주하는 팀이었지만, 그때 아이리시 뮤직과 아일랜드 펍(Pub)의 자유롭고 훈훈한 분위기로 즉흥 세션을 하는 문화에 빠져있었고 그래서 공연팀을 경험하면서 분위기를 익히고 그 다음 학기에는 아이리시 뮤직을 해보자고 제안까지 할 작정이었다. 어쨌든 나는 프로페셔널한 전문 연주가보다는 사회를 말하고 참여하고 기여하는 뮤지션이 되기 위하여 하자작업장학교에 들어와 세상을 보는 눈과 말하는 목소리를 기르는, 나의 장래의 꿈을 향한 공부와 동시에 촌닭들이 연주했던 멋졌던 브라질 음악을 하고 싶어서 공연팀의 일원이 되기로 했다. 세계를 노래하는 마을의 음악가 나를 포함한 주니어 1학기들이 공연팀 멤버가 됨과 동시에 작업장학교의 시즌2를 열면서 공연팀도 새로운 이름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몇 번의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 최종적으로 축제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인 'Festejar'와 슬픔이라는 의미와 동시의 공연팀의 메인곡이기도 했던 'Tristeza'가 합쳐져 인재지변의 시대에 슬픔을 넘어서는 노래를 부르며 축제를 연다는 의미를 가진 'Festeza'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팀의 이름으로 삼고 출발하게 되었다. 나는 우리 팀의 이름이 가진 뜻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지향하고 있던 음악가가 되기 위한 나의 공부와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나는 항상 뮤지션이라는 말 앞에 ‘나중에’라는 말을 붙였다는 것이다. 지금을 사는 내가 보고 말하고 느끼는 것을 노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런 뮤지션들은 모두 동경의 대상이고 감히 공부도 덜 된 내가 함부로 노래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페스테자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의 슬픔과 그것을 넘어서는 축제에 대해 공부하고, ‘지금’노래하고 있다고 말하는 팀이 될 것이었다. 나는 항상 나중의 일이라고만 생각해오면서 대체 언제 시작할건지도 모르는 기한 없는 시간 미루기를 하면서 전혀 가사 없는 멜로디와 코드만 2년째 만들고 있었다. 그래왔기 때문에 이제는 나는 당장 나의 학습과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내가 한만큼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나누겠노라고 말했다. 마을이라는 것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된 것은 시민문화 워크숍이 계기였다.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이라는 이름으로 초청되신 각 시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오시며 이야기하시는 분들이었다. 그 시간들 동안에 나에게는 모두가 각자의 관점으로 세상, 마을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각자의 역할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생겼는데, 나의 주변과 마을은 어디까지로 볼 수 있는 것인지, 그 안에서 나는 '그 마을의 주민들'과 어떻게 관계하고 있었는지 질문이 생겼다. 이 질문은 개인연구를 진행하고 시민문화 워크숍의 일환으로 떠난 정선 사북고한 예술마을 프로젝트에서 보낸 6일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더욱 부풀어져갔다. 예술마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던 사북고한에서 나는 폐광된 동원탄좌에서 검정이 묻어있던 벽, 손을 타서 조금씩 닳아있는 곡괭이 자루, 때 묻은 개인사물함과 전시로 볼 수 있었던 그들의 어록, 그리고 그들의 노동으로 어느새 쌓아올려진 검은 석탄산을 보면서 광부들이 고된 노동과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버텨가며 외줄타기를 했던 삶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 느끼는 공감과 동조는 한순간 마치 내가 그 시대를 광부로 살아갔다는 착각이 들게 했다. 나는 그 시점을 가지고 노래를 지으려고 했었는데, 그 때 날아온‘그렇다면 현재에 살고 있고 이 마을에 있는 너는 어떤 시간을 보려고 하니?’라는 질문에 나는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내'가 보는 관점과 '시대를 노래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정선에서의 경험으로 쓴 노래인 '응시'는 고된 삶이지만 수십 년을 지켜온 자신의 일터를 잃고 새로이 들어선 리조트와 카지노, 시장, 혹은 도시로 떠난 광부들의 삶을 기리고, 위로하고자 하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마을의 음악가로서 나의 시선이 닿는, 공감할 수 있는 곳까지.’라는 것과 ‘내 작업이, 내 노래가 닿는 곳까지’를 나의 세계, 나의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일단락 지었다. 그것은 매우 유동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동조하고 공감하게 되는 사회의 문제, 그리고 그 사회 안에서 같이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내 문제라고 생각하며 거기에 가슴 아파할 수 있는 관계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북, 고한에서 보았던 폐광은 삶이 묻어온, 애정을 담은 공간의 안타까운 상실과 이주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나의 삶 안에서 그것은 하자 앞마당에서의 공사로 비추어져 보인다. 아침에 등교할 때마다 나는 일부러 조금 돌아서라도 하자의 앞마당을 가로질러서 비둘기들의 모임을 보고 잔디를 밟고 나무를 보며 하루를 시작했고, 점심 먹고 나서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놀고, 한번은 촛불들을 켜놓고 둘러앉아 다 같이 노래를 부르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 앞마당을 유스호스텔을 짓겠다고 파헤쳐 놓았고 이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깊은 크레이터가 되어버렸다. 나는 앞마당과 함께 빼앗긴 것에 대해 노래하며 그것들을 잘 떠나보내는 수밖에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으로 족할 지도 모르겠다. 이미 사라진 앞마당과 진행 중인 공사장을 어찌하겠는가. 다만 그 아픔들을 겪고 나서 후에 그것들을 이야기하기보다 가능한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내 역할에서 현재를 노래하는 것이다. 그것이 시민으로서, 마을 주민으로서, 음악가로서 나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저 하면 되는 행동이었다. '놀자판'과 슬픔, 축제 예술마을 프로젝트의 마지막 날, 정작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건네고자했던 Festeza는 자기 발에 걸려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정선 5일장을 방문하기로 한 우리는 파고지 악기를 가져가서 시장 한 쪽에 앉아 판을 벌려'놀려고' 했다. 그러나 시장 한복판에서는 사람이 엄청나게 몰린 행사가 진행 중이었고 그 쪽을 지나다가 우연히 우리 악기를 본 주최 측은 우리에게 공연하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했다. 우리끼리 잠시 모여서 논의를 하다가 엽이 공연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물었고, 이어서 솔직히 엽 자신은 사운드를 생각하면 기존 촌닭들의 멤버들과 같이 하고 싶다고 이야기해버렸다. 그것이 우리의 문제를 들추게 되었다. '활력을 팝니다'를 말하고 프로페셔널한 테크닉의 신나는 공연을 만들어온 촌닭들에서 테크니컬한 스킬보다는, 인재지변에 대해 공부하며 공감하고 위로하는 축제의 판을 벌이고자하는 Festeza로 넘어와서 재출발하게 되면서 공연이 가지는 퀄리티가 무엇인지에 있어서 촌닭들 때부터 있었던 단원들과 신입 1학기 단원들이 가져가는 부분이 달랐고, 그것이 충돌했다. Festeza를 이야기하면서, 악기의 스킬을 우선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서로 합의한 부분이 있었지만 주어진 악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으면서도 평소에 서로 악기를 치며 잘 놀지 못했던 우리는 아예 놀려고 갔던 곳에서도 그러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봐서 악기를 잘 치든, 못 치든 즐겁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이 우선이고,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더 잘 치고 싶으면 연습을 해서라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만큼 즐기고 있느냐'였다. 우리는 왜 지현과 함께 하는 보컬 워크숍에서 호흡과, 발성, 기교에 대해 배우기보다 매주 서로를 보며 일상을 나누고, 어떠한 느낌과 감정으로 노래를 즐기는 지 이야기하며 노래했었나? 우리는 이미 '페스테자의 노래'에 대해 배우고 느껴가는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슬픔을 넘어 축제를 연다는 우리가 스스로들의 놀자판조차 만들지 못하니 얼마만큼이나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만큼 오가는 이야기들이 없는 지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제연구 과제는 각자의 공부를 빌미로 삼아 서로가 어떠한 것들을 보고 있고 좋아하는 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음악을 놓고 보더라도 무브와 쇼와 내가 생각하는 맥락이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다르듯이, 슬봉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고 오피가 어떠한 주제를 주시하고 있으며 에이스가 '최 시인'으로 불리기까지를 알 수 있었고, 사실 그런 너무나도 '일상적인 이야기'를 일상에서 이야기하게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발표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도 나의 공부를 나누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그것은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되기도 했다. 나의 것으로 여겨야지만 좋은 질문을 할 수 있고, 그것이 일상에서 서로의 이야기와 논의를 잦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정선시장에서 그런 일이 있던 날 오후, 우리는 고한 시장에서 그다지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예술마을 프로젝트의 일단락에서 다음에는 잘되었으면 한다는, 우리도 그들의 비전에 공감한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의도를 '가졌어야 할' 공연을 하게 됐다. 낮에 그런 일이 있어서 잔뜩 우울해지고, 악기를 칠 기분이 아니었던 터라, 당연히 공연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우리가 좌절한 부분은 단순히 연주를 잘 못 했다는 것 뿐 만이 아니었다. 공연 전에, 한 번도 이야기 되지 않은 어떤 마음으로 공연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없었으며 우리는 스스로들의 이름조차 잊은 채 그저 악기만 쳤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재 필요로 하고 있는 이야기는 뭉뚱그려진 슬픔과 축제의 이야기들을 우리 안에서 먼저 어떻게 모으고 보일 것인지 이다. 흐릿한 이미지로 각 공연에 슬쩍 가져다 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들이 주시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제안을 하나 하자면, 나는 이미 노래를 쓰고 있지만 Festeza가 서로가 생각하는 슬픔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모두가 교가를 만들 때처럼 노래를 자주 지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시인들의 환영공연 등을 할 때, 매번 그에 맞는 의미들을 가진 노래들을 찾아서 부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Tristeza나 sohn meu 등이 제목에서 슬픔, 나의 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사실 우리는 포르투기즈를 전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한정된 노래들로 항상 환영에 맞는 이야기들을 갖다 맞추기만 했기에 논의가 덜 되었던 같다고도 생각한다. 습작과 실험의 키워드를 가지고 페스테자를 꾸려가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No More Negative, 실패한 것은 딛고 일어나고, 잘한 것은 인정해주자. 지난 번 사북고한에서의 일명 '사북사태'로 불리는 좌절이 한 차례 있은 후, 얼마나 우리들의 음악에 대해서 정성과 고민이 필요하며 어떤 상황이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지 깨달은 후에 이제는 더 이상 좌절하지 않겠다고, 네거티브에 빠지지 않겠노라고 스스로를 다지게 되었다. 그렇게 정선에서 돌아오고 한 달이 지나고 나서 작업장 학교는 4대강 사업이 착공된 낙동강을 찾았다. '초록의 공명 팀'과 합류하여 걷기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환경이 꼭 필요치 않은 인공물에 의하여 사라지고 피해 받는지, 중장비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낙동강 물길과 흙, 돌들은 얼마나 파헤쳐 지고 있는지 바라보면서 너무나 거대한 일에 슬퍼하면서도 그것을 당장 어찌할 수 없는 나는 무력감을 느끼고 침울했다. 출발 전날에 바투카다 연습을 하고, 그곳에서 판을 벌려서 오도리와 함께 거기서 만날 분들과 같이 어울리고 놀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시작 직전의 사람들은 '어디 해봐라'같은 관객의 얼굴들을 하고 계셨고, 대형도 마치 스테이지에서 공연하는 것처럼 서게 된 상태에서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뜩이나 탁 트인 야외라서 소리도 퍼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날 공연 후에 나는 사북사태 이후, 그것도 정말 잘해야겠다고 생각한 낙동강에서 관객들과 한데 어울리는 상상에 못 미치는, 관객과 공연자가 유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스스로 침울한 나머지 '공연'한다는 단어에 반감을 가지고 더 이상 우리가 공연팀이라고 불리기를 원치 않는다고까지 표현하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날 공연은 엽과 포디가 없는, 주니어 6명으로서의 첫 공연이자 무브의 프론트맨 데뷔였다. 사실 우리는 정말 잘 놀아보려고 애를 썼고, 불안정한 발판에서도 잘하려고 애썼고, 무브도 처음이고 당황스러웠겠지만 말도 잘 한 것 같고 프론트맨으로서 최대한 잘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기에 그렇게 실패적인 공연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도 나는 네거티브한 기운이 앞서서, 안 좋은 면만을 보고 동시에 그래도 잘한 것을 간과해버리고 인정해주지 않는 스스로와 우리에 대한 '무례함'을 보였다. 그리고 이 문제는 계속해서 나를 넘어뜨리고 쉽게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발에 걸린 것에 머물러 있다면 후회만이 있을 뿐, 더 이상 앞을 상상하지 못한다. 내 작업을 보여주고, 나누고 즐기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상상을 필요로 하고 이것은 즐거운 일들로부터 시작될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Thank you to 엽 2년 전, 내가 정말 힘든 환경에 처해있고, 외로웠을 때 가장 따듯했었고 즐거웠던 시절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처음으로 작곡한 노래를 페스테자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은 ‘자우림의 #1이라는 노래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각별한 의미였던 곡이었고 맹세코 나는 자우림의 #1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내 노래는 정말 내 안에서 나온 오리지널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큰 실의에 빠져서 한동안 그 곡을 치지 않았다. 그랬을 때 엽은 너의 노래와 목소리는 가짜가 아니라고, 너의 노래가 좋으니 계속 불러줬으면 좋겠다며 나의 열정에 자신도 힘을 얻는다고 나를 격려해주고 북돋아주었다. '응시'를 쓰고 난 뒤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르고 난 뒤에, 엽이 다가오더니 '너의 음악을 들으면 가슴 속의 무언가가 움직인다.'라고까지 말해주었던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사실 나는 내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불러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나의 노래에 자신이 없어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힘이 없다. 나의 음악을 사랑하기 이전에 내가 세계를 노래하고 공감할 수 있는지 불확실하지만 엽의 격려는 내 음악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게끔 나를 힘내게 해주었다. 고마워!
어깨에 힘을 빼자. 이번 학기는 밥딜런을 주제로 한 개인연구, 정선에서의 경험, 시민문화 워크숍을 통해 '마을의 음악가'로서 시대를 노래한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시대를 노래한다는 말은 아직까지는 나에게 꽤나 중압감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때문에 내가 짓는 노래들은 진지하고 무게 있어야했으며, 그 과정에서 나는 가사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 노래는 어떤 상태인가? 나는 광부들의 삶을 기린다는 것을 무겁고 엄숙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아직까지도 가사의 갈피를 못잡고 계속해서 바꾸고 있다. 개인연구주제를 '밥딜런'으로 정하면서 어쩐지 연구 제목을 '밥딜런의 기타와 중얼거림은 무엇을 말하려 했나'라고 정했다. 발표가 끝나고나서 땀이 왜 중얼거린다는 표현을 사용했느냐고 따로 물어왔지만 딱히 명확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영화 'I'm not there'에서 묘사된 그의 모습들을 보면 전혀 크게 무언가를 외치거나 적극적으로, 성실하게 답변하고 행동한다기보다는 심드렁하며 자기 노래에 관한 어떠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설명하지도 않는 것 같고 그냥 대충 얼버무리며 피하는 걸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이미 노래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기하가 1집을 발매하고 여기저기서 회자되었을 때, '싸구려 커피'나 '별일없이산다'같은 그의 대표곡을 들어보고 나는 곡은 좋지만 가사는 어딘가 모르게 그냥 참 재미있는 것 같다는 생각 말고는 별 다른 건 없었는데, 그의 음악을 곱씹어보면 어쩐지 리얼한 묘사와 약간은 무심한 듯한 가사 속에는 현재의 청년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담겨져 있었다. 별로 길지도 않은 가사에 단순하기 짝이 없는 노래이지만 주목할 것은 어깨에 힘을 빼고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 이번 학기의 나는 Poetry afternoon같은 마을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시간을 빌어 거의 매주 습작처럼 노래를 지어 부를 생각이었지만 절대로 가벼워서는, 장난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미루고 미뤘다. 가사를 쓴다고 했을 때 느껴지는 중압감에 못 이겨 심지어 몇 달 째 한 줄조차 쓰지 않았는데, 사실 그 중압감을 느끼는 원인인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전부 한 곡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지나친 성실이 오히려 '마을의 음악가'로서의 충실함을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이야기들을 한 노래에 모두 담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음악가이고 아주 많은 노래를 지을 테니까 말이다. 여러 노래에 나누어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한, 마을의 음악가라고 생각한다. 어깨에 힘을 빼고 가볍고 무겁지 않게, 많이 생각하지 말자. 즐거운 노래를 해야겠다. 이것은 페스테자가 열고자 하는 판에 가까운 이야기가 아닌가. 서로에게 말을 걸고, 들어주고, 주시하며 같이 노래하기를 멈추지 말자. 작지만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변화가 꾸준히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앞으로 나아가는,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더 나아진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하는 약진하는 데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기로 하자. Keep Telling, Hearing, Looking and Singing!
2009.12.19 21:59:38
하하 이곳에 답을 써놓았다는 거구나. 잘 읽었어. 나는 처음에 '중얼거린다' 라는 표현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밥 딜런은 의도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싶었어. 그저 그는 중얼거렸을 뿐인데 그 시대가 그 중얼거림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이끌린 것이라는 너의 해석인가? 생각했었지. 네가 곡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밥딜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노래' 라는 매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왜, 가사는 시와 같다고 하잖아. 시에 음을 붙이는 것이 노래라는 이야기도 있고, 실제로 시를 노래로 만든 곡들도 많고. 나는 노래가 다른 매체들 보다 사람들에게 퍼지고, 전달되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고 생각했어. 만약 밥딜런의 노래들이 노래가 아니라 그냥 시나 수필이었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줄줄 외울 수 없었겠지. 의식하는 것과 의식하지 않고 부르는 것은 다르겠지만 어쨌든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귀와 입에 달라붙고, 중얼거리게 된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큰 힘이라고 생각해. 네가 앞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했을 때 노래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잘 이용하고, 반대로 또 잘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가끔 나는 거리에서 계속해서 트는 이상한 노래가 귀에 익어서 나도 모르게 평소의 내 관점과는 너무 반대되는 가사들을 중얼거리고 있는 나를 인식했을 때 화가 나기도 하거든. 나는 네가 쓴 곡과 가사들이 좋아. 그 노래들이 내 입과 귀에 붙는 것은 매우 환영해. 네가 마을의 음악가로써 만들어내겠다고 하는 '즐거운' 노래들을 기대할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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