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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청소년…마지막 문자는?[2009년, 잊을 수 없는 사람들·⑤·끝] 죽어가는 청소년, 스러진 꿈기사입력 2009-12-30 오전 9:05:52 이제 헌 달력을 버릴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나쁜 기억은 씻어내고 좋은 기억만 남기리라 결심하곤 합니다. 올해가 유난스러웠던 걸까요. 버리려야 버릴 수 없는, 아니 두고두고 가슴에 담아두리라고 다짐하게 하는 기억들이 참 많습니다. 용산 참사,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서거, 정부의 방송 장악 시도 등이 그렇습니다. 새로운 달력을 걸어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2009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정리했습니다. <편집자> "전교 2등 정도 하는 아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착해서 친구도 많고 선생님도 좋아했다. 그런데 걔 부모님이 공부에 대한 압박을 심하게 했다고 하더라. 전과목에서 다섯 개를 틀려도 칭찬이 아니라 '왜 이 문제를 틀렸냐'며 혼내고. 일기장에 '아빠가 너무 싫다'며 온갖 욕을 써놓은 걸 걔 친구가 우연히 보고 엄청 놀랐다고 했다. 결국 1학기 기말고사 이틀 전, 아파트에서 떨어졌다. 죽기 전에 공부 잘해서 경쟁하던 자기 친구들한테 문자로 '뭐해?'라고 물어봤다던데…." "우리 학교가 워낙 많이 애들을 때리는데, 그 애 담임이 여자인데도 가장 지독했다. 수업 시간에 딴짓한다고 학생 얼굴에 펜으로 낙서를 하기도 하고, 애가 우는데도…. 걔도 선생님이 싫어서 전학 아니면 자퇴하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안 들어주니까, 다리가 부러지면 학교에 안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심하게 다쳐서 결국 죽었다." 2009년, 한국을 흔든 사건 중에는 유난히 '죽음'이 많았다. 많은 이들은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간 이들을 애도했다. 그러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죽음은 이미 무수히 많았다. 바로 매년 자살하는 청소년들이다. 매년 채 피지도 못한 채 내던져진 수많은 '꿈'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자살은 청소년 사망 원인 중 2위를 차지할 만큼, 이들에게 가까운 문제다. 올해도 학생들의 자살은 하루가 머다하고 이어졌다. 친구가 자살한 경험을 가진 두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통해 2009년 한국 청소년의 현실을 되짚어봤다. 수원, 18세, 여자, 고등학생 "고3? 오히려 기뻐요" "작년 학교 자율화 조치 뒤에 사설모의고사가 확 풀렸다(제한 지침이 없어졌다). 그 다음부터는 학교에서 한 달에 한 번, 많을 땐 두 번씩 모의고사를 본다. 원래도 몰래 보긴 했지만…. 4월엔 정말 심했다. 논술고사, 영어듣기, 중간고사까지 겹쳐서 그냥 매일 시험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2학기 때 다행이었던 건 신종플루로 휴교하는 날이 모의고사와 겹쳐서 안 봤다." 이은지(가명) 학생은 수원 A고등학교 2학년이다. 첫눈에 보기에도 밝아 보이는 이은지 학생은 "그나마 자신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끝없이 공부를 시키는 학교는 밝은 성격의 그의 숨까지 턱 막히게 한다. 오는 12월 31일은 이 학교의 방학식이 있는 날이다. 그렇지만 쉬는 날은 딱 사흘 뿐. 연휴가 끝난 내년 1월 4일부터 A고등학교 전교생은 보충 수업을 받으러 방학 내내 학교에 나가야 한다. 그나마 여름방학 때는 2주 정도 쉬었는데, 이번 방학은 신종플루 때문에 못 다한 2학기 보충 수업을 채워야 한다며 선생님들이 쉬는 날을 없앴다. "원래 1, 2학년은 방학 때 야자(야간 자율 학습)까지는 안 시켰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무조건 9시까지 야자를 하라며 (선택란에) 동그라미를 쳐야 했다. 빼려면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완전 힘들다." A고교는 올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사교육비 절반 공약을 실천하겠다며 야심차게 전개한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됐다. 학교에서는 수능 과목 위주로 보충 수업을 대폭 늘렸다. 그러나 이은지 학생은 "하나도 효과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나 같은 경우엔 학원을 다니면 오히려 성적이 떨어지는 편이다. 혼자 하면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굳이 학교에 나와서 맛없는 밥(급식) 먹고, 선생님들에게 욕먹어가면서 보충을 들어야 하는지…." 친구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학교에서는 '사교육 없는 학교' 프로그램 실시 이후 다니는 학원 갯수가 줄었는지 여부를 수시로 조사했다. 그러나 고3이 다가오면서 학원 갯수가 늘면 늘었지 학원을 완전히 끊거나 줄인 학생은 없다고 했다. 이 학생은 "솔직히 어차피 강제니까 듣기 싫은 과목도 인원수 맞추려 억지로 들어야 한다"며 "다들 수업에 들어가도 자거나 딴짓하지 누가 열심히 듣나"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은지 학생은 이제 입시 경쟁의 최전선인 '고3'이 된다. 그는 "슬프기도 하지만 330일만 있으면 이 생활이 끝난다는 해방감 때문에 기쁘다"고 말했다. 2010년, 그를 기다리는 것은 '무조건 0교시'와 매일밤 11시까지 이어지는 야자다.
서울, 18세, 남자, 고등학생 "학교? 그냥 맞으러 가죠" "교문 앞에서부터 맞기 시작하는 거다. 선생님 네 명이 지키고 서서 복장 검사를 한다. 단추 하나 풀려 있어도 맞고, 추워서 교복 위에 다른 옷을 껴입어도 맞는다." 김민석(가명) 학생은 서울 B고등학교 2학년생이다. 남자고등학교이자 사립학교인 이 학교는 인근 지역에서 대학 잘 보내기로 소문난 이른바 '명문고'다. 그러나 이 학교가 이름을 날리는 또 다른 분야가 있다. 바로 상식 밖의 생활 지도와 가혹한 체벌이다. 김민석 학생과 그의 친구 박진수(가명) 학생은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이 겪은 '체벌담'을 끝없이 털어놓았다. "복도에서 머리카락이 길다고 걸렸다. 잘랐다고 말하니까 그때부터 말대답 한다면서 따귀를 때리고 발로 찼다. 결국 데려가서 바리캉으로 밀어버렸다. 한 달에 한 번씩 두발 검사를 하는데, 머리를 각목으로 맞아서 피가 난 애도 있다." "비가 많이 온 날 어쩔 수 없이 신발을 신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다 선생님을 만났는데, 흙이 다 묻은 젖은 신발로 머리를 계속 때리더니 결국 신발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5층이었는데…. 비오는 날에 신발 찾아다니느라 죽는 줄 알았다." 이 학교의 과도한 체벌 문제는 간간히 언론에서 기사화됐다. 김 학생과 박 학생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교육청에 진정이 들어간 적도 수차례였다고 했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됐다. '체벌 4인방'으로 꼽히는 교사 중 한 명은 몇 번이나 고발을 당했다고 소문이 났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학생 사이에서는 '신고해도 안 된다'는 패배감이 커졌다. 김민석 학생은 "남자애들은 사실 맞고 상처가 나도 부모에게 잘 말하지 않는다"며 "지난번에 60대를 맞은 적이 있는데, 아버지가 목욕탕에 같이 갔다가 시퍼렇게 멍이 든 걸 본 다음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또 체벌 사실을 안다고 해도 '좋은 대학 보내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아 학교 문화를 바꾸기가 어렵다고 했다. 학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자퇴나 전학을 선택하는 친구도 많았다. 김 학생 역시 전학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2년이나 버텼는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계속 다니겠다고 결정했다. 고3이 되는 2010년 역시 학교는 지금과 똑같을 확률이 99.9%이다. 그는 "하도 맞으니까, 이제 안 무섭다. 학교에 그냥 맞으러 간다"고 말했다. "선생님들이 죽은 애 보고 '그런 XX랑 놀지 말라'더라" 이은지 학생과 김민석 학생에게는 공통된 경험이 있다. 같은 학교, 같은 학년에 재학 중이던 친구가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은지 학생의 친구가 자살을 한 것은 3년 전,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던 옆반 친구였다. 처음에 인터넷 메신저로 소문이 돌았을 땐 장난이려니 했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 전체가 웅성거렸고 곧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많이 친한 애는 아니었지만 착하고 재미있고 공부도 잘 해서 학교 생활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부모님의 압박이 심했다. 일기장에 부모님에 대한 욕을 써놓았던 게 죽기 1년 전이었고, 그것 말고는 자살 이유가 없었다. 나름대로 활기차게 놀 시기인데 공부만 시키고, 경쟁하는 분위기가 싫었다고 하더라." 친구의 자살에 충격을 받았던 이 학생과 친구들은 이후 선생님들의 대응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학교에서 매우 쉬쉬하는 분위기였다"며 "기자들에게 절대 인터뷰해주지 말라고, 하면 혼날거라고 해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고 말했다. 김민석 학생의 학교에서 친구가 죽은 때는 지난 6월 경이었다. 끝없는 교사들의 체벌에 시달리던 같은 학년 다른 반의 친구는 5층 높이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다리를 다치게 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다. 김 학생 역시 친구의 자살을 대하는 학교의 태도를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선생님들이 돌아다니면서 '이 정도도 못 버티는 그런 XX랑 놀지 말라'는 식으로 훈계를 했다"며 "아무리 그래도 죽은 앤데, 그러면 안 되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꿈? 이러다가 없어질 것 같아 무섭다"
"주변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게 미안했다. 그 친구가 죽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니 그런 애들이 굉장히 많더라. 사람이 죽는 교육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 받은 충격은 지난해 발표된 학교 자율화 조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이은지 학생은 청소년인권단체 수원지부를 만들어 활동했고, 올해는 경기도교육청에서 만드는 학생인권조례에 의견을 냈다. 이제 19살이 되는 이은지 학생. 그는 자신의 십대를 돌이켜보면 "너무 억울하고, 황당하다"고 했다. 10년을 통틀어 남은 기억이란 오직 '공부'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도 않는다고들 한다. 그런데 매일 공부만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어도 공부 얘기만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가끔은 장관을 찾아가 '내 인생 물어내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어른들, 심지어 친구들도 '네가 너무 순진하다',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우선 공부를 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어차피 좋은 대학에 가도 경쟁에서 해방될 수 없는 것 똑같은데? 안 그런가." 이은지 학생이 어렸을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특히 국사는 그가 꾸준히 관심이 있는 분야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입시 학원 이외에 다른 학원은 포기해야 했다. 선생님들은 "서울대 갈 애들만 국사를 선택하라"고 했다. 이은지 학생은 "대학에 가서도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아는데, 하고 싶었던 공부는 대체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입시 걱정이 없다고 하면 십대야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라며 "자꾸 미뤄지니까 나중에는 정말 꿈이 없어질 것 같아서 무섭다"고 말했다. 한편, 김민석 학생과 박진수 학생이 지금 바라는 것은? 간단했다. 하루빨리 '재수 없으면 두드려 맞는 교도소 같은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다. "우리 애들만은…" 이들이 바라본 한국 교육의 미래는 어떨까? 이들은 "분명한 것은 내 아이가 이런 교육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지 학생은 "한국 교육이 바뀌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사실 어머니와 얘기를 해보면, 어머니도 어렸을 때 나처럼 '내 자식은 이런 교육을 안 받겠지' 생각했는데 달라진 게 없었다고 하더라"며 "그렇지만 내 후배나 내가 낳는 자식들은 절대 이런 교육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민석 학생은 "제 과외 선생님도 우리 고등학교를 나왔다"며 "그때도 지금과 똑같았고, 결국 한번은 너무 화가 나서 체벌한 선생님의 차를 긁어버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아들을 낳으면 절대 우리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자신이 받는 교육이 대물림되지 않길 바라는 학생들, 우리는 이들에게서 그나마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2009년 한국의 슬픈 아이러니다. 한해동안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간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강이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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