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는 왜 카다피의 몰락을 원하는가

(퍼옴: 하나만더의 library http://blog.naver.com/hanamander?Redirect=Log&logNo=110119259003 )

『녹색평론』(120호, 2011. 9~10월)

장-폴 푸갈라(Jean-Paul Pougala) - 카메룬 작가

이 글의 출처는 Dissident Voice 2011년 4월 21일자이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위해서 책정된 리비아의 자금, 미화 300억 달러를 동결시켰다. 오바마 행정부는 리비아의 정권교체를 위해 반군들에게 2500만 달러를 주었다. 리비아의 정권교체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맹세코 작정한 일이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는 반군 세력의 강화를 위해 군사 전문가들을 파견했다. 오바마는 3월 중순 리비아 공습이 시작되기 전 CIA의 은밀한 공작을 승인했다.

 

현대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 전역에 걸친 최초의 혁명을 제안한 것은 무아마르 카다피였다. 그 혁명은 아프리카 전역을 전화,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 전송의료(teleme dicine), 원격학습지도 같은 몇몇 새로운 기술적 장치들로써 연결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WMAX 라디오브리지 덕분에 아프리카대륙 전역(시골 지역도 포함한)에 걸친 연결망 구축은 값싼 비용으로 가능해질 수 있었다.

 

그 사업은 1992년에 시작되어다. 그때는 45개 아프리카 국가들이 RASCOM(Regional African Satellite Communication Organization 아프리카 위성통신기구)을 설립함으로써 아프리카가 자신의 위성을 가지고 대륙 내부에서의 통신비용을 감축시키고자 하던 때이다. 그것은 아프리카로부터 다른 대륙으로, 다른 대륙에서 아프리카로 통하는 전화요금이 세계에서 가장 비쌀 때였다. 왜냐하면 아프리카는 유럽의 위성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연간 5억 달러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비용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들은 자국 내의 통화비용도 엄청나게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자신이 통신위성을 설치한다면 그때는 설립 시의 비용 4억 달러말고는 더이상 매년 5억 달러를 지불할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어느 은행가가 그런 프로젝트에 융자를 해주지 않겠는가?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주인의 착취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노예들이 어떻게 그 자유를 얻기 위해서 주인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겠는가? 당연하게도, 세계은행과 IMF, 미국과 유럽은 14년 동안 오직 막연한 약속만을 해왔을 뿐이다.

 

카다피는 이 부질없는 청탁 행위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청탁은 실현된다면 엄청난 이자를 물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리비아는 3억 달러를 내 놓았다. 그리고 아프리카개발은행이 5000만 달러를, 서아프리카개발 은행이 또 2700만 달러를 보탰다. 그리하여 아프리카는 2007년 12월 26일 최초의 자기 통신위성을 갖게 되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뒤따라와 기술을 공유하면서, 남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앙골라, 알제리를 위한 위성 창설을 도왔다. 그리하여 제2의 아프리카 위성이 2010년 7월에 발사되었다. 전적으로 아프리카 자신의 힘으로 아프리카 땅(알제리)에서 건설되고 제조되는 최초의 위성은 2020년에 발사되기로 되어있다. 이 위성은 세계 최고 수준의 위성을 지향하면서도, 그 비용은 10배나 싼 것이 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단한 도전이라고 하지않을 수 없다.

 

이 이야기는 3억 달러라는 상징적 제스처가 한 대륙 전체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카다피의 리비아로 인해 서구세계는 손실을 입게 되었다. 그 손실은 연간 5억 달러가 사라지는 것만 뜻하는 게 아니다. 만약 위성 설치비용을 서구세계가 빌려주었다면 그 대부금으로 인한 수익은 장기간에 걸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을 것이며, 그럼으로써 아프리카대륙을 약탈할 수 있는 은밀한 시스템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프리카통화기금, 아프리카중앙은행, 아프리카투자은행

 

오바마가 동결시킨 300억 달러는 리비아 중앙은행에 속한 것으로, 그것은 세 개의 핵심적 프로젝트를 위한 리비아의 기여금으로 책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프로젝트들은 완성된다면 아프리카연방 수립의 최종단계가 될 것이다. 하나는 리비아 시르테에 위치한 아프리카투자은행, 둘째는 2011년에 420억 달러라는 자본금을 가지고 야오운데에서 설립하기로 된 아프리카통화기금, 셋째는 나이지리아 아부자에 본부를 두게 될 아프리카중앙은행이다. 아프리카 중앙은행이 설립되어 아프리카 토오하를 찍어내기 시작하면 그것은 CFA프랑(프랑스 재무부의 보증으로 서부 및 중앙아프리카 지역에서 통용되고 있는 통화 - 역주)의 죽음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는 이 CFA프랑을 통해서 지난 50년간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지배력을 계속 장악할 수 있었다. 지금 프랑스 정부가 카다피에 대해 격렬히 화를 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아프리카통화기금은 IMF(국제통화기금)의 아프리카에서의 활동을 전면적으로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IMF는 고작 250억 달러를 가지고 아프리카대륙 전체를 굴복시키고, 민영화와 같은 의심스러운 조치를 통하여 공공재산의 사적 소유를 강요해왔다. 2010년 12월 16~17일에 아프리카인들이 일치하여 서구 국가들의 아프리카통화기금에의 참가를 거부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 기구는 오로지 아프리카 국가들에게만 열려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구 연합군이 리비아를 공격하고 난 뒤에는 알제리를 공격할 것이라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왜냐하면 알제리는 방대한 에너지자원 이외에 약 1500억 유로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리비아를 공습하고 있는 국가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은 돈이다. 그 국가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사실상 파산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혼자만 하더라도 14조 달러라는 막대한 빚을 지고 있고,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는 각기 2조 달러의 공공부채를 갖고 있다. 이 금액은 아프리카 46개국 전부의 공공부채를 합친 4000억 달러에 비해 너무도 대조적이다.

 

서구 국가들은 이 전쟁이 끝없이 정체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자신들의 경제를 되살려줄 것을 희망하면서 아프리카에서 지금 가짜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행태는 사실상 1884년 '베를린회의'(아프리카대륙에 대한 제국주의적 착취의 규칙을 정한 구미 열강들의 회의 - 역주)에서 시작된 서구세계의 쇠퇴를 궁극적으로 촉진시킬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1865년에 링컨의 노예제 철폐를 공개적으로 지원하면서 예언했듯이, "흑인 노예제에 의존하는 국가의 경제는 어떤 국가든 흑인국가들이 각성하는 날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합중국 창설의 걸림돌로서의 지역통합

 

카다피 주도하에 아프리카합중국 건설을 향해 위험스럽게(서구의 입장에서 볼 때) 가고 있는 아프리카연합을 흔들고 파괴하기 위해서, 유럽연합은 우선 지중해국가연합을 창설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 지중해국가연합 구상에서는 북아프리카는 아프리카 여타 지역과 분리되는 게 마땅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 논리는 18~19세기에 닳도록 써먹은 상투어, 즉 아랍계 아프리카인들은 여타 아프리카인들보다 더 진화되고 문명화된 인종이라는 것이다. 이 시도가 실패한 것은 카다피가 그런 논리를 배격했기 때문이다. 카다피가 그런 논리를 배격했기 때문이다. 카다피는, 오직 한줌밖에 안되는 아프리카 국가들만이 아프리카연합에 알리지 않고 유럽연합 소속 27개 국가들과 함께 지중해연합국가에 참가하도록 초대되는 것을 보면서, 그 게임의 본질을 대뜸 알아챘던 것이다.

 

지중해국가연합 아이디어는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좌절되었다. 예정된 의장은 사르코지였고, 부의장은 무바라크였다. 프랑스 외교부장관 알랭 주페는 카다피의 몰락을 예견하면서 지금 다시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유럽연합이 계속해서 아프리카연합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한, 현상 체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러면 진정한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유럽연합은 아프리카가 지역적으로 나누어 군집을 맺도록 장려하고, 경제적 지원을 해온 것이다.

 

브뤼셀에 본부를 두고 그 대부분의 자금을 유럽연합에 의존하고 있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는 아프리카연방 결성을 반대하는 시끄러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것이 링컨이 미국에서 분리주의에 항거하여 싸웠던 까닭이다. 왜냐하면 한 그룹이 지역적 정치조직에 참가하는 순간, 그것은 주된 그룹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럽이 원하는 것이지만, 아프리카인들은 그 게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결과, 다양한 지역적 그룹들 - COMESA, UDEAC, SADC 그리고 '위대한 마그레브' 등을 형성하려고 해왔다. 그러나 진상을 알고 있었던 카다피 덕분에 '위대한 마그레브'는 성사되지 못했다.

 

 

카다피, 아파르트헤이트의 굴욕으로부터 아프리카를 정화한 아프리카인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에게 카다피는 관대한 사람, 휴머니스트 그리고 남아프리카 인종주의 정권에 대항하여 싸우는 투쟁을 아낌없이 지원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그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면, 그는 ANC를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서구인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까닭에 만델라는 27년간의 구금생활에서 풀려나자마자 유엔의 엠바고를 깨고 1997년 10월 23일에 리비아로 여행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 엠바고 때문에 5년이라는 장기간 동안 어떤 비행기도 리비아에 착륙할 수 없었다. 리비아로 가려면 튜니지아의 도시 제르바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거기서 5시간 동안 밴다르데인으로 도로여행을 한 다음, 국경을 넘어서 계속하여 3시간을 사막도로를 달려 트리폴리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른 방법은 말타를 통하는 방법으로, 정비가제대로 되지도 않은 배를 타고 밤중에 리비아 해안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단 한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강요당한 지옥 같은 여정이었다.

 

만델라는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자신의 이 여행을 두고 '환영할 수 없는 여행'이라고 말했을 때, 아무 망설임 없이 말했다. "어떤 나라도 세계의 경찰로 행세할 권리가 없고, 어떤 국가도 다른 나라에게 지시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어제 우리의 적의 친구였던 자들이 오늘 몰염치하게 나에게 나의 형제인 카다피를 방문하지 말라고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옛 친구의 은혜를 잊어버리라고 충고하고 있다."

 

실제로 서구세계는 여전히 남아프리카 인종주의자들을 자신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친구들로 여기고 있었다. 바로 그래서 넬슨 만델라를 포함한 ANC 멤버들은 여전히 위험한 테러분자들로 간주되고 있었던 것이다. 2008년 7월 2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미국 의회는 자신들의 블랙리스트에서 넬슨 만델라와 그의 ANC 동지들의 명단을 제거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그것은 그 명부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그들이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다.그들은 다만 만델라의 90회 생일을 기념하고자 했던 것이다. 서구세계가 진실로 만델라의 적들을 지원했던 자신들의 과오를 깨달았고 그들이 만델라의 이름을 따서 거리와 장소를 부를 때 정말 진심이었다면, 어떻게 그들은 계속해서 만델라와 그의 인민이 승리하도록 도왔던 사람에 대하여 전쟁을 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를 수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자인가?

 

그리고 만약에 카다피의 리비아가 미국, 프랑스, 영국 그리고 그 밖의 민주주의를 수출하기 위해 전쟁을 수행하는 나라들보다 더 민주적인 나라라면 어쩔 것인가? 2003년 3월 19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가져다준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공습하기 시작했다. 2011년 3월 19일, 그날로부터 정확히 8년이 지난 뒤, 이번에는 프랑스 대통령의 차례였다. 그는 또다시 민주주의를 가져다준다고 주장하면서 리비아에 대한 폭격을 소나기처럼 퍼붓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는 잠수함으로부터 크루즈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 독재자를 내쫓고, 민주주의를 도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최소한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묻지 않을 수  없는 게 있다 - 자신들이 민주주의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지금 리비아를 폭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프랑스, 영국, 미국, 이탈리아, 노르웨이, 덴마크가 진실로 민주주의국가인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들은 카다피의 리비아보다 더 민주주의적인가? 대답은 분명히 말하건대 '아니오'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유엔 기구들 대부분이 위치하고 있는 제네바가 고향인 사람의 이야기로부터 인용한 것이다. 그것은 1712년 제네바에서 태어난 장 자크 루소의 발언이다. 루소는 유명한 <사회계약론> 제3권 제4장에서 쓰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한번도 있어본 적도 없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루소는 한 나라가 민주주의라고 불릴 자격이 있으려면 다음 네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조건에 비추어 보건대, 카다피의 리비아는 미국, 프랑스 그리고 민주주의를 수출하겠다고 하는 기타 국가들보다 훨씬더 민주주의적이다.

 

1. 국가: 나라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민주주의가 되기 어렵다. 루소에 의하면, 국가는 극히 규모가 작아서 인민이 함께 어울리고, 서로 알고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투표하라고 하기 전에, 모든 사람이 모든 다른 사람을 알도록 되어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투표행위는 어떠한 민주적 기반도 없는 행위이며, 단순히 독재자를 뽑는 민주주의 모조품일 뿐이다.

리비아 국가는 부족적 충성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것은 우너칙상 작은 그룹 속에서 사람들이 어울려 지내는 구조이다. 민주적 정신은 규모가 큰 국가보다도 부족이나 마을 속에 더 많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잘 알고, 공통의 삶의 리듬을 나누면서 살고있기 대문이다. 거기서는 사람들 사이의 작용과 반작용이 그룹 전체에 끊임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자기규제 혹은 심지어 자기 검열이 작용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대, 리비아는 미국, 프랑스, 영국 그리고 고도로 도시화된 사회들보다도 훨씬더 루소의 조건에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고도로 도시화된 사회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웃사람들끼리 인사도 없이 지내며, 20년이나 옆집에 살면서도 서로를 모른다. 이러한 나라들은 그냥 다음 단계('투표')로 도약을 해버렸다. 투표는 투표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웃 시민들을 알지 못하는 한, 나라의 장래에 대해 투표를 한다는 행위가 쓸모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호도하는 장치가 되어왔다. 그리하여 투표권이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주어진다는 심히 우스꽝스러운 한계까지 와버렸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것은 선거에 앞선 여하한 민주적 토론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2. 습관과 행동패턴에서의 간소함도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규모의 복잡한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이해관계의 대립들을 다루기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법률적 절차를 논의하는 데 써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 국가들은 스스로를 복잡한 사회구조를 가진 문명사회로 여기면서, 리비아는 단순한 풍습을 가진 원시적 사회로 묘사한다. 이런 점도 또한 리비아가 루소의 민주주의적 기준에 더 잘 맞는 사회임을 가리킨다. 복잡한 사회의 갈등은 흔히 보다 많은 힘을 가진 자들의 승리로 귀결된다. 이것이 부유한 자들이 감옥에 잘 가지 않는 이유이다. 그들은 최고급 변호사들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자들은 국가에 의한 억압이, 은행을 망하게 한 금융 범죄자보다도 구멍가게에서 바나나를 훔친 자에게 향하도록 조종한다. 예를 들어, 뉴욕시에는 주민의 75%가 백인이고, 관리직의 80%가 백인이지만, 감옥에 수용된 인구의 20%만이 백인이다.

 

3. 지위와 부의 평등: <포브스> 2010년 리스트를 보면, 지금 리비아를 공격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최상위 부자들이 누구이며, 그들과 그 나라의 최하위 봉급자들 사이의 간격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그와 비슷한 통계를 리비아에 적용해본다면, 부의 분배라는 측면에서 리비아가 훨씬 더 모범적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루소의 기준을 사용하면, 리비아는 민주주의를 참칭하는 그런 나라들보다도 더 민주주의적이다. 미국에서는 인구의 5%가 전체 국부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하고 불균형한 사회가 되어있다.

 

4. 사치의 부재: 루소에 의하면, 민주주의를 하자면 사치는 금물이다. 사치는 부유함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고, 그러면 부 그 자체가 미덕이 된다. 모든 노력을 다해서 도달해야 할 목표는 인민의 복지이지 사치가 아니라고 루소는 말했다. "사치는 부자와 가난뱅이를 모두 타락시킨다. 부자는 소유를 통해서 타락하고, 가난뱅이는 질투를 통해서 타락한다. 사치는 나라를 유약하게 만들고, 허영의 노리개로 만들어버린다. 사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에서 멀어지게 하고, 사치는 사람들을 타인의 의견에 대한 노예가 되게 한다."

리비아보다도 프랑스에 사치가 더 많은 게 아닌가? 심지어 공영회사나 준공여오히사에서도 가혹한 노동조건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하는 피고용인들에 관한 보도는, 리비아가 아니라 서구세계에서 빈발하고 있다. 그 노동조건들은 모두 소수를 위한 이윤을 극대화하고, 그 소수의 사치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강요된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C. 라이트 밀즈는 1956년에 미국의 민주주의는 '엘리트 독재'라고 썼다. 밀즈에 의하면, 미국은 민주주의국가가 아니다. 왜냐하면 선거를 좌우하는 것은 돈이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시 부자 이후에 벌써 2012년 공화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더 젊은 부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막스 버버가 지적했듯이, 정치권력이 관료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4300만 명의 관료들과 군사인력을 가지고 있다. 이 선출된 바도 없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인민에게 책임도 지지 않는 자들이 국가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인간(부유한 인간)이 선거에서 뽑히지만, 진정한 권력은 대사, 장군, 기타 등등의 직책에 임명되는 부유한 계층에게 있는 것이다.

 

이 자칭 민주주의 국가들의 주민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페루의 헌법이 임기가 끝난 대통령의 연속적인 재임 추구를 금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과테말라에서는 임기 끝난 대통령의 재출마를 금지할 뿐만 아니라 그 대통령 가족 중의 어느 누구도 대통령직을 추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혹은 르완다가 국회의원의 56%가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2007년도 CIA 지표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잘 기능하고 있는 정부 중 4개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 가운데 수위 국가가 적도 기니로서, 이 나라의 공공부채는 GDP의 고작 1.14%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루소는 시민전쟁, 반란, 민중봉기가 민주주의 시작단계의 구성요건들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적 권리를 재확인하는 영구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인간의 자연적 권리는 온 세계에 걸쳐서 (예외 없이) 한줌도 안되는 남자와 여자들에 의해서 짓밟히고 있다. 이 소수의 남녀들은 인민의 권력을 가로채어 그들 자신의 지배력을 항구화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참칭하는 자들이 있다. 민주주의는 사람이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이상이 아니라, 타인들보다 목소리가 높은 자들에 의해 이용되는 라벨이나 구호가 되어버렸다. 만약 한 나라가 프랑스나 미국처럼 조용하다면, 즉 여하한 반란이나 봉기도 없다면, 그것은 루소의 관점으로 보면 독재체제가 너무나 강고한 나머지 어떠한 반란행위도 사전에 차단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리비아인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나쁜 것은 세계 전역에 걸쳐 억압적 시스템을 금욕적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일 것이다. 루소는 결론을 내렸다 - "만약 신들이 인간이라면, 그들은 민주적으로 스스로를 다스릴 것이다. 그러한 완전한 정부를 인간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리비아인들을 리비아인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죽인다는 주장은 사기다.

 

 

아프리카를 위한 교훈은 무엇?

 

서구세계와의 500년에 걸친 엄청난 불평등 관계를 생각하면, 우리에게 좋고 나쁜 것에 대한 공통한 척도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깊게 이해관계가 갈라져 있다. 사하라 이남 3개국(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 가봉)이 유엔의 '결의 1973호'(리비아 상공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이외에 리비아 정부에 대한 각종 제재조치를 규정한 2011년 3월 17일의 유엔안보리 결의 - 역주)에 대하여 찬성표를 던진 것을 어떻게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결의는 '인민 보호'라는 명분으로 최신 형태의 식민화를 개시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18세기 이래 유럽인들이 써먹었던 인종주의 이론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그 결의에 의하면 북아프리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고, 북아프리카는 여타 아프리카보다도 더 진화하고, 개명되고, 문명화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튜니지아,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는 아프리카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유엔조차도 아프리카연합의 역할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목적은 사하라 이남 국가들을 고립시켜 쉽게 통제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알제리(160억 달러)와 리비아(100억 달러)는 함께 아프리카 통화기금의 자본금 420억 달러의 63%를 기여하고 있다. 사하라이남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인 나이지리아와, 그 뒤를 잇는 남아프리카는 각기 30억 달러로 한참 뒤처져 있다.

 

위기에 대한 평화적 해결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살펴보지도 않고, 유엔 역사상 최초로 한 국민을 향한 전쟁이 선포되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는 서구세계가 요구하는 것에 대하여 무엇이든 찬성표를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가진 자리를 영구적으로 보장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약속을 순진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프랑스가 무엇이든 제공할 힘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잊고 있다. 만약 힘이 있다면, 미테랑이 벌써 오래전에 헬무트 콜의 독일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유엔 개혁은 현재 의제에 올라와 있지도 않다. 의미있는 방법은 중국식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즉 50개 아프리카 국가 전부가 유엔을 보이코트하고, 오직 아프리카의 숙원이 충족되었을 때 돌아가는 것이다. 그 숙원이란 전체 아프리카연방을 위한 안전보장이사회의 자리이다. 비폭력적 방법은 우리들처럼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정의 실현의 도구이다. 우리는 유엔을 보이코트해야 한다. 왜냐하면 유엔은 바로 그 구조와 위계질서 때문에 가장 힘있는 자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엔을 보이콧함으로써 힘없는 자들의 제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세계관을 거부해야 한다. 그들은 전과 다름없이 행동할 것이지만,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더이상 그들에게 가담하지 않게 될 것이다. 3월 19일에 했던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관점을 표현할 때에도, 즉 우리가 군사행동을 반대할 때에도, 우리의 의견은 간단히 무시되었고, 폭탄은 아프리카 인민들 위에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늘의 사태는 과거에 중국이 겪었던 사태를 상기시킨다. 지금 리비아의 반군 정부인 우아타라 정부를 승인하는 방식에는 마치 제2차 세계대전 후 중국을 소외시킨 방식과 비슷한 데가 있다. 소위 국제사회는 모택동의 중국이 아니라 대만을 중국 인민의 유일한 대표로 승인했던 것이다. 유엔이 결의 2758호를 통과시킨 1971년 10월 25일까지 2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이 결의문은 인간의 어리석음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모든 아프리카인이 읽어보아야 한다. 중국은 그 결의에 의해서 받아들여졌고, 그것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받아들여졌다. 중국은 자신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 유엔회원국이 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아프리카가 강경한 자세를 취하지 않고 어떻게 유엔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를 희망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코트디부아르에서 유엔 관료가 자신이 그 나라 헌법보다 상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노예처럼 행동할 것에 동의하면서 유엔에 들어갔다. 우리가 우리의 상전과 같은 식탁에서, 우리 자신이 씻은 접시로, 식사를 하도록 초대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은, 단지 우리가 속임수에 잘 넘어간다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우둔하다는 것을 뜻한다.

 

아프리카연합이 우아타라의 승리를 승인하고, 우리의 옛 상전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여러 상반된 현지 보고들을 무시할 때에, 과연 우리가 어떻게 존경받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남아프리카 대통령 주마는 우아타라가 선거에서 승리한 적이 없다고 선언했다. 그는 그러고서는 파리 방문 중에 정확히 그 반대의 발언을 했다. 10억 아프리카인들을 대표하여 발언한다고 하는 이런 지도자의 신뢰성을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아프리카의 힘과 진정한 자유는 아프리카가 심사숙고한 행동을 취하고, 그 결과를 책임질 때에만 올 것이다. 위엄과 존중은 값을 치른 다음에 온다. 우리는 그것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있을 자리는, 타인의 안락한 삶에 봉사하는 부엌이나 화장실이 고작일 것이다. (김종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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