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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상: 오늘은 연극은 청소년 영화 이런 거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을 보면서 딱히 느끼는 것은 없었다. 연극 자체는 잘 한 것 같다. 범죄라는 얘기를 넣어서 청소년 연극을 만들었는데, 내가 얘기했던 것이 반영이 됐을까 안 됐을까를 찾았다. 나는 뻔한 얘기를 적었다. 내가 말했던 부분은 반영이 안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연극 초반 부분은 하는 내용은 청소년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갈수록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사고 친 것을 가지고 어른이 되가는 과정(?)을 연극 안에서 보여주려고 한 것 같은데, 나에게는 그것들이 와닿거나 공감하기 힘들었다.
- 홍조: 청소년 연극이라고 했을 때,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서 하는 연극이라는 생각과 연극에 적극적으로 표현되는 대상이 청소년인 연극, 이 두 가지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소년이 그랬다.라는 연극을 보고 나서는 청소년기라는 어떤 결핍(관심이나 이해)의 상황에서 일어났었던 문제를 표현하며 그게 청소년 자신일 수도 있고, 청소년이 아닌 사람들일 수도 있겠지만 보다 그 상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얼마나 복잡하고 섬세한 문제인지를 알아볼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풀: 연극 보면서 일반학교 다닐 때에 생각없이 했던 일들이 사실 굉장히 아찔 했던 것들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소년이 그랬다의 주제는 훨씬 여러 가지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니 이야기가 이 작품 하나로 끝나지 않았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게스: 리허설을 공개하면서 관객들의 의견을 듣는 방식으로 기획되는 공연이어서 그 자체로도 새로웠던 것 같아요. 청소년들의 심리도 잘 반영한 것 같구요. 욕도 나쁘지 않게 들었어요. 근데 후반으로 갈수록 뭔가 복잡해지지만 결론이 뚜렷하지 않았단 느낌? 그래도 여러 가지로 괜찮은 연극인 거 같아요.
- 푸른: 연극을 처음 보고 하였던 생각은 정말 소년들만의 잘못일까?하는 것이다.그러한 상황을 만든 사회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또래의 친구들은 입시공부. 오직 대학을 가기위해서 학원-학교-집 이 코스를 밟고 있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속히 말해 낙오 되고 있다. 막 10대중반에 접어든 청소년들이 그 토록 주차장과 놀이터, PC방에서 헤메이는 이유 중 낙오된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이나 그 들이 할 수 있는 활동들이 없다는 것이 아마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 까 싶다. 이런 답답하고 참 어이없는 구조들이 생각나면서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좀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후의 감정표현들. 연기들이 인상깊었는데 특히. “이 집은 꼭 나같다. 어둠고, 더럽고, 쓸모없고, 텅 비어있다.”라든가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라든가 등등 돌이킬 수도 헤쳐나갈 수도 없이. 갇혀버린 듯한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았다. 좋았다. 아쉽게도 극이 끝난 후에 이야기를 하셨던 어른이 바란 것처럼 “내 작은 행동이 큰 결과를 가져올 수 도 있으니 생각하고 행동해야 겠다”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저 내가 조금 더 커서 성인이 된다면, 청소년들의 “비행”, 사건사고들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하는 생각과 사회는 계속 청소년들의 문제를 청소년들만의 문제로 바라볼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사회안의 다양한 것들은 참 조밀하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청소년을 위한 연극이었다고 하지만, 어른들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엄마랑도 다시 보러 가고 싶다.
- 플씨: 오늘 연극은 청소년층부터 중장년층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단 생각이 들었는데요. 여러 관객들이 이들이 유죄인가 아닌가 하는 장면에 비교적 낮은 평가를 냈는데, 제 개인적 취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 그 장면이 압권이었습니다. 손을 들어본 사람들에게도 다시 한 번 생각을 유도하고 죄를 저지른 쪽에 대한 심판에 관해 많은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우리나라는 가끔씩 강호순이나 유영철같이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나오고 있죠. 많은 이들이 그때마다 죽음의 심판과 다른 방법에 대해 많은 논쟁을 벌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건 연극에서 봤듯이 철없는 일부 네티즌이 아닐까 합니다. 그들은 미리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심판을 내려버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듯한 타 네티즌들에 힘입어 더욱 자신만만해지죠. 이번 연국의 경우라면 피해자에게 증오의 마음을 심어주고 가해자에겐 더더욱 삶을 수렁에게 치닫게 하죠. 사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 장면이 조금 문제삼게 될 이유도 있군요. 여러 가지 질문과 보여주는 것들이 있지만 어려울 지도 모르는 질문하나로 좀 가려지는 느낌이 있네요. 우리 청소년은 연극에서 보여주듯 다음에 일어날 상황들을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자신을 가지고 범하는 실수들이 있죠. 그것 때문에 충분한 인성교육과 보호가 필요한 것이겠죠. 뭐 어디까지가 과연 충분한 보호일까도 생각해봅니다만. 이 세상의 모든 사회문제(뿐만 아닌)들은 결국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공사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부모의 보호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죠. 한쪽 부모는 경제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고요. 폭주족 역시 사회문제이자 그들도 주인공들이 공사장에 있거나 돌을 던지는 것 같은 행위들이랑 비슷합니다. 말이 좀 주절주절 거렸네요. 차근차근 해결해야 되는 사회문제들이 많은 현대, 미래에는 큰 변화가 작은 변화들을 끌고 올까요. 아님 작은 변화가 겹치고 겹쳐 하나의 큰 변화가 일어날까요. 우리가 지향하는 건 후자 같지만 또 전자도 일어나고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 동녘: 청소년 연극이라는 게 무엇이면 좋을지 생각해보게 되는데, 청소년이 주체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그 연극의 내용이나 취지가 문제적인 청소년들의 선도, 좋은 예 이런 것들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 연극은 처음 전개 부분에서 많이 재미있게 보았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극에서의 중학생들이 사용하는 은어나 비속어라든지, ‘심심하다’, ‘뭐하지’ 같은 말들이 계속되며 할 게 없어서 달리고 이유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달리곤 했다는 말들이 나름대로 리얼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다보니 튀어나오게 되는 오토바이키를 훔치고 담벼락을 타고 장난전화에다 야리는 애들을 겁주거나 피시방, 그리고 마지막 돌을 던지기 까지 그런 행동들이 나는 그냥 좀 연기와 연출의 차원에서 재미있게 느껴지면서도 현실이랑 겹쳐보였을 때는 좀 답답했다. 아무튼 본격적인 사건이 전개되고 두 명의 주인공이 혼란스러워하며 무겁고 심각한 상황들에 어떻게 하면 좋은지 몰라서 겁먹는다. 유치장에 들어가 취조를 받는데 형사가 유죄냐 무죄냐를 묻는데 그게 답할 수가 없다. 이 연극을 보는 동안 내게는 어떤 결과가 올지도 생각못하고 일을 치는 애들이 자기가 저지르는 일에 책임을 갖고 사소한 것도 다 법과 관련이 있어서 법에 나오는 어려운 단어가 있어야 한다는, 그래야 애들이 이 연극을 보면서 알게 될 거라는 게 제일 중요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한 고등학생이 했던 이야기처럼 청소년들이 하고 있고 해야 한다는 이들이 정말 잘 하는 짓인지 어떤지도 알고 결정하기가 힘들다. 쇼생크탈출을 보고 ‘후리덤!!’을 외치지만 그나마도 피씨방 밖에는 없다. 빈 공사장을 떠돈다. 사실 돌을 던지고 그것으로 인해 사고가 일어났고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죽이게 되었다는 그 사건이 너무 극단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상황이 두 명의 중학생을 어디로 몰아 넣을 수 밖에 없는지 아니까 오히려 옴싹달싹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극 중의 주인공들은 살면서 구질구질하고 치이게 되는 현실 상황 말고 다른 걸 생각해보려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는 것, 그러니까 동년배가 제일 중요하고 피시방이 그나마 편하다는 것 아닐까. 그 돌을 던지 사건보다 그것까지 가게 된 필연적 상황, 대부분 청소년의 삶이 부유하고 스스로 어쩔 줄 몰라 친구랑 이리 튀고 저리 튀게 되는 것, 나는 자꾸 이게 보였다.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뛰곤 했다는 말이 나는 좋았는데 정말 뭐든 그런 이유가 있어서 자기 발로 열심히 뛰어다닐 수 있는 청소년들의 삶을 응원하고 바라야 하지 않나. 바른 방향으로 선도를 하거나 자신도 없는 답을 내라 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나마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유머도 있고, 가끔 진지하게도 진심으로 삶을 바라봐주고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이야기하려고 하는 시도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연극은 후반부에 너무 심각한데 위에 쓴대로 오히려 전반부에 많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고 후반부에는 관객으로서 쫄았다기보다는 그냥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그 사건을 가지고 계속 뒤흔들면서 다른 여러 생각들을 할 많은 여유를 주지는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별: 오늘 소년이 그랬다를 보고나서는 초반에 들었던 생각은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만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을 때에는 청소년의 유죄냐 무죄냐를 떠나서 당연히 잘못이 있는 것이지만 그들이 사회에서 어떤 의식을 갖게 하느냐에 대한 것일 것 같기도 하다 생각을 했었어요. 집중해서 봤던 건 청소년들의 마음혼란이라든지 심경변화였고 상대방 피해자도 너무 안타까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체에서 네티즌들이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에도 만약 나도 저런 기사를 본다면 분명 어이고 요즘 애들이란 쯧쯧 겉멋만 들어서...라고 생각해버렸지 않을까 싶었고 지금의 일반학교 청소년들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별로 안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 레오: 연극 초반엔 정말로 청소년인 연극을 하는 줄 알았지만 배우 얼굴을 본 순간 웬 아저씨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극을 보고 생각난 것은 ‘재미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속담? 결정적으로 저는 이 새로운 장르의 연극들이 임의적으로 어른들이 교훈을 쑤셔넣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연극이 되는 게 아니라 청소년들을 ‘위한’ 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동엽: 연출자의 선배이신 분이 말했듯이 처음에 노는 장면이 필요없이 많이 들어간 점과 이건 얘기하려다가 못한건데 두 분의 복장이 그냥 동네 삼촌 같은 느낌만 들고 학생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서 컨버스화를 신거나 노스페이스 옷을 입거나 귀를 뚫는 그런 연출과 디테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구요. 짧은 이야기가 더 와닿고 충격이었는데 그걸 연극으로 그대로 늘려 나타내다보니까 그런 문제가 또 처음이다보니 수정할 부분이 대부분인 것 같은 느낌이었구요. 마지막에 그냥 우리 진지해져보자 하면서 분위기 잡는 것도 어설펐고 그냥 어정쩡했다는 게 제 전반적인 느낌입니다.
- 주님: 장난이 사고가 되어버려 순식간에 살인을 저지른 청소년 두명과, 그 사건을 담당한 경찰 두명이 있었는데, 청소년 두 명의 심정은 사실 나였다면 완벽히 동감할 만한 마음들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불안해하는 마음과 심리상태의 연기와, 그리고 그런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점 2가지를 경찰의 배역으로 연기했던 게 인상적이다. 사실 (그 때 나왔던 얘기처럼) 유죄니 무죄니, 딱 2가지를 놓고 그 중에 단정을 지을 순 없지만, '청소년'이란 입장은 그런 부분에서 참 애매한 것 같다. (물론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애매한 경우는 충분히 많겠지만) 연극은 나오는 인물도 4명에 배우는 2명이지만 충분히 재밌었고 오히려 그 작은 규모로 더 연극을 살렸던 것 같다.
- 히옥스: 이 연극은 누가 보는 극인가? 학교에서의 상연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는데, 청소년들은 이 극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너무 많은 정해진 생각을 보여주고 있는 연극은 아닌가? (청소년들의 범죄, 특히 우발적 범죄들은 사회적 책임과 돌봄의 체계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교훈극이 되어버릴 위험은 없는가? 특히 유죄냐 무죄냐를 말하기 어렵다고 하는 부분에서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결론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유죄냐 무죄냐를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는.) 피해자 가족의 시선을 언급하는 것은 어른관객을 위한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유죄냐 무죄냐 여부에 관계없이, 아무튼 두 가해학생들은 뭔가 깨달을 거라는?) 상식이의 경우 판결이전에 나오는 대사들로 관객이 생각하도록 하는 충분한 자료를 주고 있지 않은가? 마지막 부분에 두 사람이 모두 내레이션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문제를 상당히 가볍게 만든다. 이 두 아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면 그들을 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그러나 때때로 상식과 같은 아이들이 겪는 문제는 스스로의 상황을 서술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기도와 일방적이고 억압적이기는 하나 보호속에 있는 아이는 나름의 언어를 가지고 변명하고 핑계를 대고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방치된 채 홀로 성장해나가는 상식이와 같은 아이들은 그런 식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연출자나 작가가 그런 아이들을 몇 만나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파편적인 정서와, 그리고 집착할 수 밖에 없는 파편적인 몇 가지 기억들 뿐. 그런 것들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내레이션은 좀 과하다는 생각인데, 상식이의 내레이션은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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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들은 소년이 그랬다 연출팀에게 보냄.
바라건대 동녘이는 핵심만 정리해서 글쓰기 하는 습관을 가졌으면.
플씨도 '주절주절'이라고 스스로 느낄 정도면 그런 글쓰기는 필히 피할 것.
여러분 머릿속을 다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소.
그리고 여러분도 창작자의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너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들을 좀 다시 생각해보고 썼으면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