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깊은 상상력이 만들어낸 로드스쿨링, 『길은 학교다』* (아침독서신문에 기고한 글)

 

김희옥(서울시대안교육센터 부센터장)

 

『길은 학교다』를 읽는 동안 나는 몇 번이고 글쓴이가 과연 자퇴를 하였었나를 뒤적여 보고 있었다.

제도의 형식과 절차에 따르면 글쓴이 이보라(이하 ‘보라’)는 분명히 자퇴생이었고,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 그러나 학교를 ‘거부’하고 때로 제도에 저항하거나 탈출을 감행하며 자퇴를 하였던 탈학교생 선배들의 거친 경험과 달리, 보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그는 오히려 학교를 거부하거나 학교 밖으로 나갔다기보다는 결과적으로 ‘학교’의 경계를 확장하고 넓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글쓴이가 말하는 ‘길은 학교다’라는 것은, 부모나 교사들에게도 위안이 되는 안전한 서약서 같은 문장으로 등장했던 것 같다. 작고 호기심 많고 따뜻하고 착실한 성품을 가진 글쓴이는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고집을 피우거나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떼를 쓰거나 하지 않고, 처음부터 부모를 설득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여행기획서를 쓰고,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내고, 또 그 말씀대로 믿을 만한 대학생언니와 함께 출국장을 떠난다. 주변의 가족과 지인들이 놀라고 화내지 않도록 줄곧 안심시키는 일을 해내면서,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일탈하지만 일탈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시킨다. 교사, 친구, 멘토 등으로부터의 지지와 후원 그리고 자기확신은 보라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인 듯하다. 그는 갑작스럽게 자퇴하거나 가출하거나 도망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다. 자신과 타인을 위해 충분히 배려하고 준비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쁜 짓도 안할 거고 위험하지도 않게, 저는 괜찮을 거예요’라는 서약의 내용이던 ‘길은 학교다’라는 문장은 이제 다시 자신과 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청소년들에게 상상력을 제공한다. 길을 나서고 세상과 마주할 때에도, 세상이 거칠고 우발적이고 낯선 곳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의 큰 범위 안에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 자신의 역할이 있으며, 새로운 만남과 배움이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말로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아마도 보라의 다큐멘터리는 그런 내용이었을 것 같다.

네팔여행에서 만났던 태은이와의 대화는 그래서 흥미로웠다. 태은이는 고1 종업식을 마치자마자 부모님의 통장에서 천만 원을 빼내 가출을 하고 37개국을 여행한다. ‘사고’를 치고 부모님에게 큰 걱정을 끼쳐드리는 방법을 선택한 것은 보라와 다르지만, 여행을 해나가는 동안 태은이 성장하고 다시 학교에 돌아가고, 세계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는 것 또한 아마도 세계화되고 디지털문화가 확산된 이 시대 21세기 청소년들에게 가능한 ‘가출’의 이야기일 것 같다. 일본어에 능숙하고 타문화에 호의적이며 인터넷에 친숙한 태은이는 어쩌면 부모보다 훨씬 더 ‘똑똑하게’ 여행의 일정을 짜고 정보를 수집하며 자신의 여정을 기획하였을 것이다.

신앙이 있고 따뜻한 성품의 보라는 아무에게도 걱정을 끼치려고 하지 않는다. ‘여행은 좋은 거야’라고 슬쩍 생각을 내비쳤던 엄마와의 첫 대화(조금씩 정보를 주면서 부모를 설득하려던) 보라의 계획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로드스쿨러가 되는데 성공한다. 가출과 불협에서 시작했던 태은이가 다시 학교로 돌아갔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보라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이란, 막연히 ‘길’이나 ‘여행’이 주는 일탈의 경험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믿을 만한 멘토 교사를 발견했고,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청각장애를 지닌 부모로부터 삶의 다양한 결을 배웠던 보라는, 자신의 삶을 사회에 충격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설득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면서 이 ‘길학교’, ‘로드스쿨링’을 찾고 만들어낸 것이다. 뭔가 ‘시도하면 할수록 나빠지는 시대’를 사는 막다른 기분에 우울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보라와 보라 세대가 만들어 낼지 모를, 자율과 공존의 세상에 희망을 걸어보고 싶을 테니까.

 

 


* 밑줄긋기:

맥그로드 간즈에서 읽었던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세 권짜리 시리즈인데다 각 권의 두께도 만만치 않아 책꽂이에 꽂혀 있는 걸 본 순간 나는 헉,했다. (중략) 무엇보다 느릿느릿 걸으며 사람들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그의 모습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느릿느릿 여행하는 일, 그건 속도강박에 시달리며 빨빨 돌아다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으니까. (중략) 고등학교 1학년 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야자시간에 읽은 적이 있다. 그런 날 본 선생님은 “책 읽지 말고 공부해”라고 말했고, (중략)그때부터 나는 문제집만 빽빽하게 꽂혀 있는 서점이 싫었다. 어린이 코너는 따로 마련되어 있으면서 중․고등학생 코너에는 약속이라도 했는지 입시문제집만 정신없이 꽂혀 있는 그 모양새란. 책을 한 권 더 읽기보다는 문제집을 한 권 더 풀라고 말했던 대한민국에서 나는 그만 정신의 끈을 놓고 말았다.(pp.14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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