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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ior Gathering글 수 80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 는 연극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한다는 고전 중의 고전인 작품이다. 지금도 종종 무대에 올려 지고는 하는데 아직까지 연이 닿지 못해 볼 수 없었다. 때문에 연극을 보러가기 몇일 전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 보러 갈 건데 같이 갈래?" 라는 제안에 앞뒤 가리지 않고 "네!" 라고 대답했다. 당일 일이 늦게 끝나 허겁지겁 도착해 팜플렛이나 프로그램을 볼 겨를도 없이 관객석에 앉았다. 숨을 돌리며 무대를 바라보고 있자니 무대가 꼭 마임공연세트처럼 간결했다. 음, 간결하다기 보다는 황량했다. 그 무대를 보며 처음으로 든 질문은 고도가 뭐지? 였다. 연극은 기대이상이었다. 두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사무엘 베케트의 집필 당시 사정이나 뒷배경을 정보라고만 두고 나만의 풀이를 펼쳐보고 싶다. 에스트라공이나 블라디미르에 대해 짧게 설명해보자면 둘은 거지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 하루하루를 당근과 무로 연명한다. 옷은 다 떨어지고 구두는 헤졌다. 즐거운 일 없이 하루하루가 그냥 그렇게 지나간다.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어제인지 알 수 없다. 그 생활만 50년째다. 나는 사무엘 베케트처럼 전쟁이나 은둔생활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디디와 고고의 사정에 동감을 느꼈다. 졸업을 하게 될 12월이 지나면 나에게 많은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니 대학이 눈에 들어왔다. 그 때의 선택에 대비하여 입시 원서를 넣어볼까 싶어 준비를 하게 되었다. 잘 모르는 것도 많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준비하는지 싶어 네이버 카페 '수만휘' (수능날만점시험지를휘날리자)카페에 가입해서 글을 뒤져봤다. 네이버 카페 수만휘는 고삼수험생들과 재수생들이 와글바글한 카페다. 가입자는 뜨악한 숫자 951,576명이다. 하루에 수십개의 글이 올라오는데 사람이 많은 만큼 다양한 글을 볼 수 있다. '내 스펙으로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저 연고대 학생입니다. 후배님들' '면접 후기' '수능 몇 점이어야 안전빵이죠?' '연고대 수시 넣으신 분들!' '우리 딸이 이 성적으로 외대 가능해요?' 등등. 어떤 이는 '이렇게 살아야 되나 싶어요.' 라고 글을 올리는데 거기에 달린 덧글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무한 경쟁 시대잖아요? 열심히 준비해요! 아자!" 아니면 "그 스펙으로 불가능해요." 아니면 "우와, 스펙이 그정도라니 부럽부럽" 이상한 것은 질문이나 조언의 말은 많지만 공유의 글은 없다는 것이었다. 다들 자기가 어떤 자기소개서를 썼는지,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는지 공유하지 않았다. "공유해요!" 식의 글에는 덧글이 하나도 없었다. 총알이 푱푱 날아 다니는 전쟁판 같았다. 어쩌면 나나, 저 고삼 학생들은 에스트라공이나 블라디미르가 아닐까? 다른 쪽,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12일 10번째 수료식이 있었다. 각자 잘 살아온 주니어들이 하자작업장학교의 자기 시간을 정리한 후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직 9만리나 남았다고 수료식의 제목을 9만리라고 정했다. 내가 주니어를 수료할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샀던 '별이 빛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나는 안다.' 라는 제목은 사실 그래서 우리가 빛난 다는 것이 아니라 빛남을 위해 앞으로 오랜 시간을 지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9만리나 '오랜 시간'은 이제 모두에게 필수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너무 전쟁판 같아서 삼성 후계자가 아닌 이상 아둥바둥 노력해야 되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나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을 알아' 가 아니라 이 질문이 중요한 것 같다. 블라디미르 : 내가 무슨 얘기를 했더라. 아, 도둑 얘기였었지. 기억나나 에스트라공 : 듣기 싫어. 블라디미르 : 그것이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니까. (잠시 후에) 구세주와 함께 두 도둑이 십자가에 매달렸었지. 사람들이 에스트라공 : 누구 말인데. 블라디미르 : 사람들의 얘기가 한 명은 구원을 받았고, 한 명은 저주를 받았다는군. 에스트라공 :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것인지 블라디미르 : 지옥으로부터. 에스트라공 : 나 가겠어.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고도를 기다리며 앞 부분 에스트라공이 블라디미르에게 물어본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건데?" 라는 질문은 본질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봤던 영화 '조난 프리타' 의 히로키 이와부치도 물었다. "나는 누구랑 싸우는 것일까?" 도대체 고도가 뭘까? 무엇을 위해 고도를 향해 걸어가는 걸까? 이 질문이 없다면 나는 수만휘의 수많은 덧글판에서 헤맬 수도 있고 내 자소서(자기소개서)를 더 이상 공유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나에게 고도는 뭘까? 일종의 구원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꿈꾼다. 내가 잘 사는 모습을. 그 잘 산다는 것은 그거다. 작업장학교 같은 문화를 내 스스로 정립할 수 있고, 생산해 낼 수 있고 대안 공간을 만드는 것. 누군가와 함께 그 공간을 꾸려 나가는 것. 그 곳에서 전쟁터에 맞서 평화를 외칠 수 있는 것, 방법을 찾아가는 것. 그럴 생각을 할 때 나는 의심이 든다. 수료식 때 말했던 그 빛나는 순간이 오지 않는 다면? 황량한 벌판에서 매일매일을 지내야 한다면? 하지만 나는 고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이제 갈까? 우리 이제 죽을까? 를 버티게 해주는 것은 결국 고도였다. 고도를 만나지 못한다하더라도 고도는 결코 나쁘지 않다. 그 때 중요한 것은 그 고도를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결국 그곳에 등장했던 고고, 디디, 공작, 럭키 모두 다 라는 것이다. 어쩌면 하자작업장학교의 '고도'는 죽돌, 판돌들이 각자의 고도를 기다리는 밤에서 벌어지는 그 만남의 순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도를 기다리면서 와 우리가 다른 점은 어쩌면 세월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그것은 시간이나 년도의 수치가 아니라 쇼하자를 통해 보는 서로의 성장 과정 그리고 우리의 기록들이 증거물이 될 수 있겠다. 때문에 나는 이제 약속을 하겠다. 존재에 관한 비판을 하지 않겠다. 모두와 걸어가고 싶다. <존재에 관한 비판>은 내 속으로 더 정리를 해야겠다. 이 글에서 올리지 못해 아쉽지만 다음글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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