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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ior Gathering글 수 80
하자작업장학교를 졸업하는 나는/ - living literacy를 할 수 있는 사람 겐지의 봄을 보고서 히옥스가 실생활에서 비롯/적용 되는 지식에 대해 얘기해주셨고 그게 living literacy가 될 수 있다고 이해했다. 무려 시민운동가대회에서도 듣게 된 ‘관념’에 빠지지 말라는 얘기는 특히 내가 여러 번 들어왔던 말이다. 관념적인 것의 반대는 현실적인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내가 속해 있는 현실과 삶을 읽고/인식/직시 하는 living literacy를 하는 사람이고 싶다. 또한 living literacy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시니어과정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체적으로 찾아가며, 실현에 옮겨보는 과정이다. - 하자에서 학습한 내가 어딜 가서든 ‘나’를 지킬 수 있는 것 + 하지만 변화를 회피하지 않는 것. 학습의 지속, 지금까지의 경험의 지속. 주니어 수료에세이에도 빠지지 않았던 이야기이다. 하자의 문화를 접하고 일곱 가지 약속을 외우게 되면서, 하자에 들어오기 전 무의식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편견들이나 행동방식이 많이 전환 되었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으로 이해하고, 일상에서 스스로 상기시키고, 실제로 내가 이것들을 타인에게 말해줄 수 있을 때까지는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체화된, 이제는 내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에서 나간다고 해서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제 나는 또 다른 소속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싶지 않다고 수료에세이에도 썼다. 작업장학교 같은 학교나, 소속이 나에게 따로 없더라도, 나 나름의 어떠한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 존재감이나 위치에 대한 혼란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때 한 가지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변화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것이다. ‘나’를 지킨다고 너무 강경하게 외부의 변화를 밀쳐내면 또 다시 편견을 가진, 보수적인 사람이 되어버린다. 하자에서 내가 여러 차례의 전환점을 수용했듯이 앞으로도 내가, 내 생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지속해나가고 싶다. 변화를 수용한다고 해서 이전의 내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이 변화가 내 주변 환경의 변화든, 생각의 전환점, 새로운 지식이든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을 나는 지켜나간다고 생각한다. (내가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은 여태까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는 중이다) - Design을 하는 사람 최근에 손으로 만드는 포스터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내 손으로 눈에 보이는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주 작은 디테일인 화살표의 방향을 바꾼다고 하면 이 변화는 보는 사람들에게 시각적인 것뿐만 아닌 의미상의 변화로도 읽힌다. 한 가지 더 인상 깊었던 것은 프레드가 하신 말인데 “현실은 수많은 가로와 세로들로 이루어진 그리드(grid)이다. 디자인을 하는 것은 캔버스 위에서 이 그리드의 규칙을 깨기도 하며, 전혀 새로운 동그라미를 그려본다거나, 색깔을 입히는 등의 ‘놀이’를 하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어디선가 다른 비유로 비슷한 말을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나에게 이 말은 실제로 디자인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앞서 말한, 변화를 수용하는 것과 이어지기도 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변화 외에도 원칙들에 어긋나본다거나, 이성적인 판단을 제쳐두고 직관을 한 번 따라 본다거나, 평소에 눈길 주지 않는 ‘틈새gap’을 들여다본다거나 하는 시도는 변화가 생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에 나열한 예시들은 그 자체가 약간 통념적이지만, 말하고 싶은 것은 시민운동가대회에서도 들었던 ‘문맥 밖에 있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쓰고 나니 약간은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해왔던 거 열거해 놓은 것 같기도. 1차니까요..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
2009.10.19 07:01:05
와 정말 대단한 말들이네요... 스스로를 designer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근데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들도 있어서 댓글 달아요. "보다 느긋한 관점을 취하면 우리 모두가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들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말은 우리 주변이 어둠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는 건가요? "디자이너는 타인을 통해, 타인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문제를 주로 다룬다는 사실" - 이 부분을 읽으면서,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은 앞서말한 '인공물'을 디자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즉 'art'와는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예술은 물론 타인에게 보이는 것이지만 그 '타인'에 자기 자신도 포함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잘 알려진 대로 디자인은 사회적 타협을 통해 이루어지고, 또 어떤 면에서는 디자인의 문제가 곧 정치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객관성을 내세운다고 해도, 디자인에 대한 책치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책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언제나 자유주의 좌파의 관점을 흔들림없이 고수했으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 디자인은 사회적 타협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말, 디자인의 문제가 정치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말이 뭔지 모르겠네요. '잘 알려진대로 디자인은'을 제가 뭔지 몰라서 그런 듯. 이런 건 어디서 찾아봐야 할지...
2009.10.23 21:15:56
- 각 개별 지성의 취약함에 대한 인식에 대한 얘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협업과 집단지성을 스스로 요청하고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 "인공물"이란 단어는 좀 낯설다. 어디서(어떻게) 찾게 된 단어인지? - 어떤 의미에서든, 사회와의 관계, 소통 속에서 디자인이라는 작업이 수행된다는 것. 그러니 "나 혼자"하는 일은 아예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것. 나 혼자 고립된 장소에서 나 자신의 "예술적" 정열로만 수행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지. 말하자면 시골길의 그 고즈넉한 저녁을 그저 <시>라고 부를 수는 없는가?라는 질문은 상당히 "예술적" 질문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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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능력은 기술, 지식, 이해, 상상의 결합에서 나오고, 경험을 통해 단단해진다. 무거운 말들이고, 근본을 가리키는 말들이다. 우리는 직업적 자긍심의 토대로서, 그리고 타인에게 쓸모있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약간의 담보로서, 최소한의 자격 조건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중략) 디자인을 "가르칠"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다른 모든 창조활동과 마찬가지로, 디자인 역시 유기적으로 자라나는 일 처리 방법으로서, 어쩌면 정규 디자인 교육의 맥락에서도 - 하지만 그 바깥에서도 - 그런 성장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정도가 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