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태초에 그가 그의 세계를 창조하느니라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그가 그의 세계를 창조하였을 때 그는 8점의 작품을 손길로 빚어냈다. 그리고 그는 이들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만들어낸 가상 세계는 일상의 비천함과 고귀함이 천국과 지옥처럼 공존하고 있으며, 인간은 바벨탑처럼 치솟는 끝없는 욕망에 몸부림치며, 끊임없이 순결한 이삭의 피를 희생양으로 요구하며 자기 증식을 계속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현실로 곧바로 치환된다.

 

 

사회적 부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이상향을 찾아 떠나는 창세기

땅이 혼돈하고 공허(公許)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그의 신(神)은 수면에 운행하니라. 그가 가라사대 이야기가 있으라 하매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는 그가 보기에 좋았더라. (1장 2절-4절)

 

‘땅의 혼돈과 공허함’을 그의 작업실 풍경은 그대로 증거하고 있었다. 굉음과 함께 포크레인의 기계손은 땅을 침식해 들어가 바벨탑처럼 높이 솟구치는 뉴-타운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Dream Ship 3호]는 이처럼 현대의 무분별한 개발정책과 사회적 부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이상향을 찾아 출항하면서 생기는 가상의 이야기를 영화적 요소를 통하여 공간예술로 재구성한 일종의 창세기이다. 완전함을 상징하는 ‘3’을 이름으로 한, 뱃머리가 3개인 회색 배와 눈이 세 개인 소년 그리고 작살에 찍힌 아기 고래를 등에 업은 어미 고래가 주요 작품들이다. 이들은 각각 독립된 조형물로 보이지만 삼각형의 꼭지점처럼 서로 연결되어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F.R.P 기법과 실제 시멘트를 섞어 메마른 도시의 회색 빛을 재현해낸 조각 작품을 중심으로 서술적인 이야기를 한 공간에 보여줄 수 있도록 시각화했다. 이는 총 세 장면(sequence / 3번의 전시)으로 전시장에 선보였다.

 

 

 

가상의 이야기, 영화 같은 스토리를 가진 조각 작품


첫 장면(sequence)은 정부와 기업의 도시개발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철거민들이 노아의 방주처럼 배를 띄워 남태평양의 이상향을 찾아 떠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풍파로 인해 배가 정지하면서 사람들은 분열되기 시작한다. 논쟁 끝에 배를 3등분해 개조하고, 배의 이름도 꿈과 이상, 성장과 창조의 ‘3’호로 바꾼다. 그러나 배는 세 개의 뱃머리로 인해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자기 모순에 빠진다. 두 번째 장면은, 이러한 공황 상태에서 배가 바다의 그림자와 맞닥뜨리게 되는 장면이다. 철거민들은 바다의 그림자의 존재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며 배 안에서 파벌과 쿠데타 등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들은 그저 상처 입은 고래들이었을 뿐이다. 세 번째 장면에서 사람들은 해적질 등을 하며 생존하다가 국제 사회의 관심 속에서 관광 산업을 시작하게 된다. 결국 ‘3호’에서도, 현대식 빌딩이 발전과 개발의 상징으로 높게 솟아나게 된지만 끝내 자기 한계 속에서 쇠퇴하고 만다. 그때 이 배에서 태어난 기형아 ‘낙타’가 사람들의 편견으로 죽음에 내몰리자, 이 배를 운행해왔던 선장은 뱃머리에 불을 지르게 되고 마침내 배는 침몰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텍스트와 시각 조형물의 통합적 시도를 유연하게 실로 엮고 봉합하고 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이야기가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등장인물과 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상황을 관람객들과 함께 만들 온라인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라고 한다. 이는 상호 소통을 중요시하는 인터렉티브 구조로 연결된다. 이처럼 크고 작은 소통구조로 열린 작품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예술이 사람들의 관심과 소통 속에 자리를 잡고, 삶에 감동을 주기 원하는 바람과 맞닿아 있다.

 

 

세 개의 눈을 가진 소년과 고래의 의미는?

그가 흙으로 사람을 짓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2장 7절)

 

작가는 배에서 불미스런 일로 태어난 세 개의 눈을 가지고, 휜 등을 가진 ‘낙타’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지어냈다. 임승천의 작품에서 ‘낙타’와 ‘고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낙타는 좌우 대칭이 완벽한 조형성에 대비되는, 균형을 깨는 세 번째 눈이 강렬한 느낌을 준다. ‘낙타’라는 아이는 제 3의 눈을 통해 낙타가 바라보았던 광할한 사막의 뜨거운 열정을 보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소년의 생명력은 제 3의 눈이라는 혜안에서 비롯됨과 동시에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는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 불행한 역사, 전쟁 이후 한국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적 비극과 유사하다.

 

 

 

 

그들의 모습은 작살이 꽂힌 고래처럼 역사와 사회 속에서 맴돌고 있을 것이다. 포획된 고래는 훼손된 자연이자 혹은 진리로 해석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해할 수 없거나 정복되지 않는 존재는 공포를 몰고 온다. 그 공포는 잔혹한 집단 이기주의를 합리화시키고 인간을 서로 짐승처럼 멸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죽임을 당하는 두 존재의 눈빛은 놀랄만큼 담담하고 맑다. 섬세하고 긴 세공으로 탄생한 눈빛은 생생한 느낌 그대로, 이 존재들이 삶 자체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들은 그저 스스로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인 자연인 것이다.

 

 

방주에서 시작되는 희망, 새로운 사회를 향한 출항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9장 13절)

 

그러나 그의 배는 꽃처럼 아름답다. [Dream ship 3호]를 수직으로 내려 볼 수 있는 미니어처와 스케치를 보면 배는 작은 꽃잎처럼 앙증맞다. ‘3’이란 숫자의 완전함이 비록 움직일 수 없는 현실에 갇혀있다고 해도, 완전함이 주는 아름다움도 숨길 수 없는 진리인 것이다. 비록 우리가 어떤 ‘Dream ship’이란 섬에 갇혀 고통 받더라도 먼 사막의 열정과 방주로 시작되는 희망을 그의 작품을 통해 기억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를 통해 다시 한번 바다를 향해 나갈 수 있다는 뜨거운 열정과 꿈을 모두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젊은 작가 임승천이 모색하는 우리 사회일 것이다. (작가의 정체성 부분과 관련하여 성경의 창세기 구절을 인용하여 나타내보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이는 어떤 종교적인 의도도 없음을 밝혀둔다)

 

 

 

임승천 (1973 ~  )

수원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2009년 [북위 66도 33분 - 잠들지 않는 땅](모로 갤러리), 2008년 [Dream Ship 3](관훈 갤러리), 2007년 [정지된 또는 부유하는](모로 갤러리) 총 3번을 열었다. 2001~2006년 총 10여 회의 단체전에 참가해 작품을 발표했다. 2008년 키미 아트 기획공모에 선정, 2007년 동아 미술제 기획공모에 당선되었고 구삼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경기도 미술관, 모로 갤러리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국립 미술창작스튜디오(고양 6기) 입주 작가이다. 

 

 

 

 강수정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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