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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S글 수 1,063
예전에 비단뱀클럽(byul.org)를 방문하다가, 너무 좋은 글이 있어서, 긁어왔습니다. 이 글은 그래픽디자이너이자, 아트디렉터, 뮤지션 모임 별의 조태상, 박창용이 패션잡지 <하퍼스앤 바자>에 기고 한 글이라고 하더군요. 이 글을 읽고 새삼 많은 것을 느꼈던게 기억이나네요. HPS식구여러분들도, 읽으시고 어떤실런지요. 하여간, 너무너무 좋은글입니다. 스크롤의 압박이 있지만, 즐겁게 읽어내려가시길. [글을 보아니, 상당히 예전에 쓰여졌던 글같습니다만.] 원제는 봄바람 따스한 종로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입니다. -- 어느새 4월 입니다. 봄중의 봄이라 할 수 있는 4월임에도 전 여전히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로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에 놀라고 있습니다. 눈다운 눈 한번 제대로 내리지 않아 아쉽기만했던 지난 겨울이 지나는 와중에 우리를 둘러싼 혹은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서울'이라는 공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일어나는 중입니다. -수도권 외 지역 독자들의 양해를 조심스레 구합니다. 지난 2월 남대문이 우리 눈앞에서 불에 타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 앞에 숭례문이 나타났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독자 여러분들 주위가 어떠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화재 이전 제 주위에서 '숭례문'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는 그야말로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불과 1-2년전만 해도 국보에 순번을 매긴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들이 뉴스화되고, 남대문의 국보1호 지정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음에도 이를 말하는(용감한) 이는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당시만 해도 많은 이들이 이왕 번호를 매길것이라면 훈민정음 등을 1호로 하자고 했었지요. 대형 포털과 신문사들은 지레 겁을 먹었는지 그와같은 과거 기사들의 상당부분을 삭제하거나 검색을 어렵게 만들어 버린듯 싶더군요. 어쨌거나 역설적이게도 이번 화재를 통해 남대문은 이미 조선초기의 실록에서부터 수백번이나 '남대문'이라 기록될 정도로 사랑받아온 수백년에 걸친 애칭을 순식간에 벗어던지고, '숭례문'이라는 딱딱한 공식 이름을 되찾으며 명실공히 국보1호의 자리를 확고히 한 후 '섬김'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숭례문이 아니라 남대문이라는 용어를 쓴다는 것은 패션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에지(edge)'라 발음하지 않고 '엣지'라 하는 것 만큼, 건설현장에서 모두가 '공구리 치다'라고 하는 틈에서 홀로 '콘크리트 타설'이라 하는 것 만큼 어색한 경우가 되어버렸습니다. 도성으로 밀려드는 화기를 막고 산화한 남대문의 영결식과 부활한 숭례문의 즉위식이 동시에 열리는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중 세종로 너머에서 가리개를 덮어쓴채 숨을 고르는 진정한 강자 광화문이 있었습니다. 얼마전 새벽 광화문 앞을 지나던 중 왠지 길이 너무 휘어져 있다 여기며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고 자책을 하였는데 알고보니 곧 우리 앞에 새롭게 등장할 광화문이 어느새 위치를 남쪽으로 옮겨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더군요. 역사, 문화재, 건축 관련 여러 전문가들은 물론 공무원과 정치꾼들까지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한 끝에 내린 결정이겠으나, 어린 시절부터 그 길을 오고가며 쌓인 제 추억들마저 휘어져 버리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무척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관습헌법상 수도인 서울시에서 야심차게 진행하는 '디자인서울' 프로젝트입니다. "건설과 산업 중심, 기능과 효율 중심의 개발 패러다임이 우선시되는 하드시티(hard city)를 벗어나 문화와 디자인이 중심인 '소프트시티'(soft city)를 만들어 내겠다"라며 사뭇 자신만만해하더군요. 서울시가 이를 위해 진행할 여러 사업들중 가장 우리의 피부로 느끼고 눈으로 보게 될 것이 바로 일명 '공공디자인 개선', '옥외광고물(간판)' 정비사업이라 생각합니다. '공공디자인'이라는 용어는 불과 1-2년 사이에 부쩍 우리 대중 곁에 다가온 일종의 '낡고 상식적인 신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얼핏 들어도 천문학적인 예산이 직, 간접적으로 소요되리라 쉬이 짐작할 수 있는 이 사업에 학계는 물론 건축가 단체와 시각디자이너 단체들을 비롯한 각종 고래 사이즈 연합들, 게다가 전국의 온갖 어중이 떠중이 업자와 잔새우 디자이너들까지 모조리 들고 일어나 '공공디자인'에 대한 종주권을 부르짖으며 사활을 건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하더군요. 부디 불어오는 봄바람이 잘생긴 오세훈 시장의 부드러운 앞머리만 간지를 것이 아니라, 두눈을 부릅뜬 각계 디자인 전문가들의 마음과 머리도 조금씩 식혀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건강한 경쟁의 과정을 통해 만연한 온갖 유착의 고리들이 끊어지고,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넘어 장기적 관점에서 시민들에게 품위있는 편의 공간이 안겨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듣기좋은 명분들이야 얼마든지 가져다 붙일 수 있겠으나 하늘에서 느닷없이 황금비가 쏟아지지 않는 이상 결국 '공공디자인' 개선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선 다른 분야의 예산들이 야단법석 '치장'을 위해 희생될 수 밖에 없는 측면 또한 클 것이 분명합니다.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한 투자라고는 하지만 결국 먹고 살만 하게 된 졸부의 급급한 치장놀이 정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선, 서울시내 서민들을 위한 복지예산이나 대중교통수단/시스템 개선 등의 시급한 사안들 만큼 아니 그보다 얼마나 왜 더 중요한 일인지를 시민들에게 설득하고 확신시키는 작업 또한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관계된 많은 분들께 한가지 더 부탁을 드리자면 지금 서울의 모습 또한 충분히 아름답다는 점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번 이 지면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우리가 건설하기 원하는 도시는 뉴욕같은 서울이, 취리히 같은 서울이, 시드니같은 혹은 밴쿠버 같은 서울이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서울다운 서울이겠지요. 여드름이 피어오른 소녀같은 서울이 지닌, 서울만이 지닌 흥분과 미숙함 그리고 조심스런, 설레이는 꿈들을 천천히 가꾸어 나갈때, 전국의 전통기와집과 초가집을 모조리 쓸어내 버리고 당시로서는 선진문물이었던 알록달록 슬레이트 지붕으로 단번에 교체해버린 60, 70년대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청계천 사업이 낳은 결과에 감격한 중앙과 지방의 정치꾼들을 비롯 그에 밥그릇을 걸친 많은 교수, 디자이너 및 예술가들 또한 새삼스레 문화의 중요성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문화산업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굴뚝 없는 산업이니 영화 한편을 수출하면 자동차 몇백대 수출보다 낫다느니 소리 높여 투자와 지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은, 우리가 원하는 도시는 문화산업이 아니라 문화가 녹아있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문화란 존재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치와 역할이 있는 것임을 모르는 이들일수록, 급속성장 산업국가를 위한 '고급 화장품으로서의 문화 역할'을 목청높여 외치는듯 보이는 것이 저 혼자만의 생각일런지요. 그런 관점에서 볼때 서울시는 남대문뿐만이 아니라 수백년간 이어진 피맛골과 피맛길 하나조차 재개발 사업자들로부터 지켜내지 못한 무심한 기관입니다. 30년뒤의 서울시장이 빽빽한 도심에 가득찬 첨단주상복합시설들의 숲을 뚫고 전통의 '피맛골'과 '길'을 새삼 복원하겠다며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일이 없기를 횡설수설 기도하는 수 밖에요. 부디 신선한 봄바람이 포스와 함께 독자여러분들의 마음 속 안에 가득차기를 바랍니다. 아, 참고로 피맛길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몇몇 식당들은 결국 강남으로 이전키로 했다고 하네요. 따스한 봄날 곧 사라질 피맛길에 소풍삼아 발걸음 해보시는 것도 좋을듯 싶습니다. ahn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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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금칠 된 세종대왕님도 좀 거시기 하고, 도로 한가운데, 때마다 화분 싹 바꿔가며 꾸미는 광장도 잘 이해할 수 없지만 세종로, 세종대왕 뒷편 현판을 한자로 쓰다니. 디자인의 기본에는 일관성도 있을텐데, 세종로는 좀 한글을 살린다던가...그러면 안되나. 그것도 그 전에는 박정희가 쓴 한글 현판이 달려있었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