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탐구생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은 ‘자신의 매체를 어떻게 쓸 것인가’였다. 20세기의 미술/영화사를 본 것도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작업을 할 것인가를 질문하게 하는 과정이었다. 

인상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화가들 모두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표현 했다. 하지만 억지로 비판하거나 찬양하지는 않았다. 간혹 ‘대세’였던 형식을 따라가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정말 자기가 진심으로 느끼는 것들에 집중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다다이즘이 인상 깊었다. 옛날 미술가들, 그리고 회화나 조각을 하는 사람들이 미술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전쟁 후 이전에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자, 다시 한 번 그것을 비판하는 운동을 시작한 것은 대단한 것 같다. 더군다나 허무주의에 빠져 미술을 그만 뒀을 수도 있는데 더욱더 열정적으로 창작했다는 것이다.

이미지 탐구생활을 통해 배운 것은 ‘예술가’라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그때, 그때 특수한 시대적 상황을 어떻게 읽었으며 표현했는지 이다. 사실 ‘미술가가 뱉어내는 모든 것이 예술이다’, ‘미술은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예술가는 가치가 있다’ 등의 말에 내가 동의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까지 예술가들의 삶에 대해서 공부하고 보기만 했지 내가 그 삶에 동참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예술가에 대한 정의도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한 학기 이미지 탐구생활을 통해서 내가 생각하게 된 예술가는 ‘자기 자신과, 세상과, 그 외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 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 예술가의 작품과 삶을 공부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상황, 집단, 배경, 시대까지 엿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단지 우연의 계기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예술가들이 동료, 친구 예술가들을 꾸리고 서로 영감을 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은 힘이 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10대라면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가 10대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내가 도시에 살고 있다면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가 도시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뭔가 심플한 답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 중에 더 의미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싼 카메라를 들고 어떨 땐 남들의 프라이버시까지 침해하면서 영상을 찍는다고 했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도 의미가 있지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10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얘기란, 10대인 내가 정말로 간절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어떤 영상을 보고 진정성/진심이 느껴진다고 칭찬을 한다. 말하는 사람의 간절함에 공감하기도 하는 것 같고, 실제로 그 주제에 공감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 두 가지의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다.

아무튼 앞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나 혼자 만이 아닌 좀 더 여러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고, 그런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는 것이다. 요즘 유스 토크를 하면서 항상 생각하는 것은, ‘동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연대/공감’이다. 과연 우리가 이번 유스 토크를 통해서 이런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있는 것 같지만 좀처럼 뚜렷하게 보이진 않는 것 같다.
과거나 미래의 사람들에게 얘기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것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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