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두
이야기해주세요 라는 행사를 만들게 되는 과정들을 이야기해주셨는데
그 행사를 생각함 계기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알리고 전하자라는 생각에서 시작되기 이전에 
뭔가를 표현하려는 자유를 박탈당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으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여러 예술인들이 누군가 자신의 표현의 자유의 권리를 침해했다는것에 공감했다는 부분이 새로..웠다 
무엇을 표현하고자 할때 얼마만큼 고민하고 생각하고 시도했는지에 따라  뭔가를 결과물로 만들었을때 
그것은 이미 그 사람의 귀중한 한 부분이되었으며,말하자면 그 작업의 과정이 자신과 세상의 연결성을 
그이 나름대로 파헤치고 찾아가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몇예술가들은 어떤작가의 사진들을 변한 상황에 의해 전시할수없게 된것에 심각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계기로 또 다시 어떤 것들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할수있었던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h)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았다는 것이 이야기해주세요의 계기라니. 그 부분은 듣질 못해 아쉽네. 뭔가 흥미로운 이야기인 것 같다. 영상팀기록으로 잘 들을 수 있으려나...? 암튼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 나름의 뭔가 실마리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길....

핑두) 
행사를 만들게 된것은 일본의 캐논 회사의 공모전에 
어떤 작가가 중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을 찍은 작품들이 심사를 거치고 뽑혔는데 
그후에 캐논 보다 더큰 회사들.. 우익회사들로부터 압렫이 있었나봐요 
그래서 그 캐논회사는 지원못해주겠다..라고 했고 그 작가가 소송을 냈었대요. 
그 일을 알게된 안해룡감독님과 다른 여러 사진작가들이 이 일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사진전과 상영을 함께하는 행사에 대해 처음 이야기가 나왔었대요. 
마침 아시아의 위안부에 관해 작품을 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예산이 아주 많이 부족했었는데 각자 자신의 사진을 걸수있게 만들어오기로 하고 
지인들의 지지로 돈문제는 없었다고 하셨었어요.
(지지받는 사람.. 안해룡감독님은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구나라는 것만으로 예술가로서 멋있었습니다..) 
아무튼 영상엔 더 자세히 들을수있으시겠지만 이런 이야기가 흐르는 동안 그런 생각들을 했었어요.

h) 그렇구나. 고마워

서키) 
오늘 처음 알게 되는 것들이 머리를 흔들어놨어요. 
도대체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싶었고 안해룡 선생님이 하시고 싶으신 말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여기서 끝... 차별이라...메솟에서 봤던 사람들도 그렇고, 생각할 게 늘어나네요. 
저는 할머니랑 고모가 예전부터 일본에서 살고 계시는데, 고모부가 일본사람이에요. 
그 분들의 딸들, 사촌언니 두 명이 있어요. 언니들은 한류가 들어오기 전에는 굉장히 홀대 받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게 자꾸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오르더라고요.
개인의 역사의 시작과 연결은, 뭔가 생각이 나면 그 때...

h) 응 :)

신상) 
오늘 무언가를 느꼈다기보다 새로 알게 된 것들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일단 일본사람들 모두가 조선학교를 싫어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 나에게는 좀 놀라운 얘기 중 하나였다. 
900만엔인가? 현장기부라는 말이었던가? 여하튼 현장에서 900만엔이 모였다는 것이 어떻게보면 
많거나 적은 액수이겠지만 나는 그 돈을 낸 사람들이 일본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많다고 느꼈다. 
조선학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일본인들을 인터넷에서 많이 봐와서 그런 것일지도. 
반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돈을 줬던 것인지. 
우리와는 분명 다른 생각을 하고있을거라 생각한다. 또
그들은 조선학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분명 조선학교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조선학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일본인의 입장과 생각을 들어본 기억이 없어서 
나는 그것이 좀 궁금하기도 하다. 
탈핵에 대해서는 2년동안 계속 공부를 해와서 익숙하고 어렵다고 느끼지 않지만 
아직까지 위안부 얘기나 조선학교 얘기는 나에게 조금은 낯선 얘기라 강의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을 하며 듣고 무엇을 꼭 느껴야 할 것 같아 오늘 선생님의 강의가 어렵고 낯설다고 느껴졌다. 
역시 익숙해지려면 공부를 해야겠지만 공부를 한다고 얘기한 것이 벌써 몇번인지...

h) 하게 될 거야, 곧. :)

나나) 
핑두-캐논이 아니라 니콘. 니콘이 일본의 전쟁을 지지한(단어가생각이안나네) 미쯔비시계열 회사

비노)
이번 강연과 크게 관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중도 잘 못하다가 들었던 생각 적어봅니다.
북한과 관계만으로 지원받지 못하는 조선학교의 말을 듣고..

한국사람들은 일본에 지진이 나고 원전이 터지면,   '원숭이들 제값을 치루었네' 라며 욕합니다.
대하소설 아리랑을 읽으면 책속의 일본인들과 친일파, 그들에게 속아 외국땅으로 실려가 
지금 한국의 외국인노동자들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옛분들의 이야기를 보고  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다른 면에서는,  일본 여행을 갔을때 만났던 분들. 모리즈미 다카시 씨와 같은 분들을 보고 놀라워하게 됩니다.
인도사람이건 한국사람이건 외국인한테 바가지 씌우는건 똑같습니다. 
우린 사람보단 앞선 판단과 편견으로 누구를 판단하죠. 저또한 깊이 생각해 봐야할 문제입니다.

 고개도 끄덕이며 열심히 듣던 까르가 대단해뵙니다. 
일단 강연을 듣고나서 제 집중력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요. 
말의 핵심이 뭔지 해깔리다 결국 놓치고 딴생각하고.. 
뭔가 강연을 듣고 나름의 생각과 정리하는 과정을 만들어나가야 겠습니다.

동녘) 
오늘 이야기를 듣고나니 지난달 말에 보았던 영화 '지슬'이 생각났다. 
나라는 현재를 살고 있는 개인과 내가 살고 있는 지금보다 이전의 
역사(누군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월이라고 말하는...)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야할까?라는 생각이 
영화 관람 직후에 하게 된 생각이었기 때문에... 

위안부 할머니들이나 조선학교에 다니는 재일한국인(혹은 재일조선인)들은 내가 잘 알고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역시 '계속되는 역사'인 것 같다. 메솟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난민인 자기 자신에 대해 알기위해서는 역사를 알지 않으면 스스로를 정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에 비해 나는 현재로서는 나의 역사와 어떤 관계같은 것이 내 삶 전체의 중요한 화두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단지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해룡 선생님께 자신과 역사의 연결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아까 질문 했어야하는데...)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조선학교를 거치는 마치 씨족공동체와도 같은 재일조선인들의 공동체 이야기였다.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작업자로서 기록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다가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에는 공동체의 형성이 따른다'는 문장이 머릿속에 남았는데, 
우리는 어떤 식으로 역사에 대한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지 생각을 좀 해보고 싶다. 
위안부문제나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들을 제대로 공부해야겠고...

푸른) 
1. 돈과 예술. "전업000"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는 다른일들을 함께 병행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아마 몇 년안에 여러분들도 이런 고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하는 말씀이 인상깊었달까.. 여러 생각을 하게 하였다.

2. 한국의 민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메솟에서 분단된 한국에대해 물어본 한 학생이 떠오르기도 했다. 
조선학교 설명을 들으며 우리나라가 3개의 문화 혹은 나라로 나뉘어진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한도 북한도 아닐 것같은 그곳의 문화가 궁금해졌다. 
민족교육이 어떤 개념인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공동체와 같이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의 중요성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되었다.

선호)
우리가 갔던 이야기해주세요 콘서트와 사진천을 기획하신 분을 만나게 된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리고 나중에 얘기하시기를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조선학교의 피해에 대해서 처음으로 움직이신 분이었어서 역시 놀라웠다. 
그런 보도들은 나에게 중요하게 느껴졌었는데 직접뵙다니.. 
강연을 들으면서는 주로 이야기해주세요 일의 과정이나 비하인드스토리들에 관심이갔다.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예산을모으고 SNS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등.. 
그런 걸 들으면서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는데 메솟이었다.
"그래 나도 일할수있어..!"하는 생각이었다. 
이야기해주세요 앨범의 디렉팅을 송은지씨가 나서서 했다고 하셨는데 
몇년전에봤던 소규모아카시아밴드영화에서의 송은지씨 이미지랑 딱맞아떨어져서 
정말 그녀다운 일을했구나 그리고 스스로 업그레이드해오셨구나 생각했다. 
재일동포와 조선학교는 늘 마음의 부채같은것이다. 
그래서늘 그들을 실망시키는 짓을 하지않아야한다라고 생각해왔지만, 
오늘강연을들으면서는 내가 그동안 너무 막연하고 잘알지도못하면서 너무 물러나있었던것같다고 생각했다. 

영화 우리학교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우리는 학교에 가요…
우리의 학교가 기다립니다 기다~립니다"하는 노래가 머릿속에서 자동재생되면서 
내가 작업장학교다니는것도 생각나고 메솟에서 교육이 중요한것이다 라고말하던 사람들도 생각나서 
역시 직접만나고싶다,고 생각했다.

푸)
지금생각 해보면 강의내용중 위안부 내용은 생각이 나지를 않고 조선학교 이야기가 생각이 나요 
강의에집중을 해서라기 보다 제가 관심있는 주제여서 기억이 나는 것 같고 
느낌으로는 내가 어제 이야기에대해 알고있는 것이 없기도하고 공감도 되지않아서 
마치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 인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 에 익숙해지고 공부를 더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지금까지는 강의나 수업에대해서 가볍게 생각하고 그랬었는데 
어제강의를 듣고나니 그런태도를 취하면 안될 것 같네요 다음부터는 열심히 강의 듣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후기나 리뷰를 말할 때 내 느낌을 표현하기가 힘들었는데 하자에서 강의를 들음으로서 그런 취약한 부분도 보완되었으면 좋겠네요

까르)

4월 4일 이야기해주세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안해룡 감독의 강의를 듣고
"그들의 감성이나 문화의 많은 것들이 일본의 문화와 비슷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아이덴티티가 한국 혹은 북한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엔 왜 그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일본에 마음을 붙이지 못 하고, 
자신들을 북한 혹은 한국 사람이라는 국적이나 민족의 개념을 확실히 하려고 하는지 의문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한반도 인이라고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들은 그걸 생각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국가가 무엇인지 국적이 무엇인지 모를 때부터, (다수와 같은 민족이고 같은 국적인)나 같은 경우 
구지 알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때부터도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너희들은 조선인이야"라는 것으로 일본에서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난 너희를 이해해, 인정해"라고 혹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희는 일본에서 사라져야해"라는 말들을 듣고 
차별이든 도움이든 여러 영향을 받으며 그들은 ‘내가 도대체 누구 길래.’ 혹은 ‘한반도 인이라는 것이 무엇 이길래.’라는 
질문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런 고민을 가지고 조선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모두가 선배이고 후배인 
꽤나 강력한 공동체에서 지내는 그들은 한국에 대해 혹은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국적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세계시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소수였지만 뭉침으로 
그들의 힘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세상에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실제로 그들은 어떤 것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을까. 

자신의 정체성 혹은 신분이 다수와 같은 입장일 때는 그것으로 생기는 다름의 경계를 잘 느끼지 못 하지만 
소수의 입장이 되었을 때는 그 경계가 잘 보이고 그것으로 인해 여러 일들이 일어나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를 갈라놓고 누군가를 소수로 만들어 버리는 개념들은 무엇이 있을까. 
국적, 나이, 성, 성적취향, 외모, 학력, 가족, 재산, 집 등이 있는 것 같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나는 대한민국에 사는 한국인이다. 18살 여자. 
남자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는데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 내 성적취향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의 외모는 잘 모르겠는데 난 나의 신체가 좋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비인가 대안학교를 다녔고 검정고시는 초등졸업까지만 따놓은 상태이다. 
엄마 아빠 동생 나 모두 전과자나 특별한 경력 같은 것 없이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고 
집은 회사대출과 온 가족의 돈을 싸그리 모아서 가족 이름으로 샀다. 
20년 된 주공아파트 동네이지만 주변에 아는 사람도 많고 나무도 많아 굉장히 아끼는 동네이다. 

나는 이러한 나의 신분으로 억압이나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다. 
생각해야만 했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대안학교 학생이라는 것 정도 빼고는...? 
차별을 받았더라도 내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길 정도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세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은데 
내가 오랜 세월을 볍씨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서로의 다름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기록상의 신변들 보다는 
그런 것들이 아닌 다른 자기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우리들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아이가 어디에 살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든 그냥 그 아이는 그런 아이일 뿐이었다. 초
등학교 4,5학년 때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일반학교 사람들도 오는 캠프들을 가게 되면서 
대안학교 학생을 사람들이 조금 다른 학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알게 되었지만 
난 내 학교에 자부심이 있었고 자신감이 있었기에 별 스트레스 없이 쉽고 자신 있게 
볍씨학교에 대해, 그리고 그 곳에서 내가 뭘 하는지 설명할 수 있었고 
그러면 그들은 그런 나를 별달리 생각하지 않고 그런 나를 오히려 신기해하고 좋아해주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두 번째는 아직 사회경험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알바를 해본 적도 없고 직장을 다녀본 적도 없으니. 세 번째는 내가 평범하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아이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자에서 지내고 있는 지금도 나의 활동영역은 하자이고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우리를 잘 알고 있던가 대안교육에 눈이 트인 사람들뿐이어서 
나는 나를 설명하고 대안교육을 설명해야만 하는 일이 없었고 
아직까지도 내가 나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감지하지 못해 관심 또한 갖지 않게 되는 것인데 사실 잘 살펴보면 분명 있다. 
학력인정이 안 된다거나, 정부에서 우리를 학업중단학생이라고 칭하고 있다는 것이나, 급식지원이 안 되는 것이라던가, 
아, 볍씨학교가 인가받지 않은 학교라는 이유로 우리들의 학교가 보금자리주택으로 인해 
통으로 없어질 뻔하기도 했다(지금도 현제진행형이지만)... 그렇네...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공동체 안에서 아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그런 차별들도 안 생기고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따지고 보니 조선학교에 다니는 그 학생들도 어쩌면 자신들의 국적에 대해 별 생각 안 한 사람도 있겠구나 싶다. 
그들 안에서 자치가 되는 공동체에 살고 있으니까 구지 깊게 생각 안 해도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마치 나처럼. 아! 이렇게 생각하니 난 내가 앞으로 어떤 걸 생각해보아야 하는지 알겠다! 
난 방금 조선학교 안의 학생 중에서도 구지 자신들의 위치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그건 아쉬운 일이야. 
그들이 그들이기 때문에 생각해보고 우리들에게 제안할 수 있는 삶의 방향이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니까 나도 나이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대안교육을 한 나이기 때문에 주장할 수 있는 
삶의 방향이나 던질 수 있는 물음이 있을 것이란 것이다
(이런 걸 대안교육네트워크에 있을 때 이야기 했으면 좋으련만)! 
더불어 내가 나이기 때문에 생기는 제한들도 알아보려는 노력이 조금은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런 이야기들은 대안교육 연대나 교사들 혹은 학부모 위원회 사이에서만 이야기가 되고 
우리 쪽으로는 잘 넘어오질 않는 것 같다. 알려고 찾아보지 않아서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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