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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영상글 수 646
Outdoor Project : Media City Seoul Review 나에게 있어 이 아웃도어 프로젝트의 주 목적은 민욱의 프로젝트 '손의 무게'를 보는 것이었다.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은 이미 한 달하고 조금 넘은 시간전에 알았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가지 못 했던 것인데 때마침 아웃도어 프로젝트 일정에 있어서 우리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의 무게> -페쇄된 공간, 허락되지 않는 공간을 온도로 스캔하기 -특별한(Strange) 관광단체의 야간 여행(순례) -관광버스 내 퍼포먼스와 로드무비 결합형식 이 영상 안에서 쓰인 열 감지 카메라는 열을 지닌 사물과 물체를 색깔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실제 표정, 어떤 감정상태는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가 정의내린 '정상온도'가 있지만 카메라가 비춘 기계는 그 수치만큼 열을 발생하고 있지만 행동은 '정상'의 의미를 가리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미래인류는 호모 투어리스트가 되어서 ‘나는 구경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를 껴안게 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우리가 보게 될 것은 우리가 잃은 것의 확인인가? 이 작품에 대한 중요한 질문은 위와 같다.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의 단계에서 머무르고 있다면 말 그대로 잃은 것의 확인이 될 수 있다. 개발과 공권력 앞에서 '우리=공동의 책임을 지닌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프로젝트를 참여하지 않고 이 작품을 봤으면 어떻게 읽혔을까. 참여했기 때문에 영상에 담긴 장면들이 어떤 의도로 인해 표현됬는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중간중간 현장에서 촬영되지 않은 비유적 장면들에서 뜻을 유추하는 과정은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 중요한 표현들이 담긴 퍼포먼스(이 영상에 삽입된 노래와도 연결이 되어 있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일치된 동작과 모습들이 있다.) 영상이 유실되어서 이번 영상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 내심 아쉬웠던… 미디어 시티 서울, 글쎄다. 내가 처음 '기무사'전시회에 같을 때 느낀 것은 하나의 맥락을 가진 공간에서 공통의 주제로 전시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품들을 관찰해도 그 의도의 흐름들은 본 주제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감상하기에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이번 행사는 글쎄, 잘 모르겠다. 옆에서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두 번정도는 봐야 이해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당나귀로 시작해서 태국, 4대강 개발과 한강의 연인들, 브라질의 소외된 직업인들 등. 이 행사에 다녀오고'이거다!'싶은, 연결된 내용은 아직 떠오르지 않는다. <김범> [김범은 회화에서부터 드로잉, 오브제, 비디오, 설치, 책에 이르는 폭넓은 매체를 넘나들며 이미지와 개념사이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 주력해온 작가이다. 특히 그는 시각예술의 근간이 되는 '보는 것'과 관련된 자각의 문제, 즉 시각적 인지와 허구적 심리를 지속적으로 다루어왔다. 김범은 망막에 맺히는 이미지나 사회적으로 학습된 개념으로부터 탈피하는 작품을 제시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 주변의 사물이나 상황을 또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숙고하게 한다. <무제 : (뉴스)>는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뉴스 영상물들을 재편집한 비디오 작업이다. 실제 뉴스를 영상 이미지와 음성 언어로 이루어진 재료로 삼아, 장면들을 음절마다 잘라 분절시키고 다시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쳐, 작가가 작성한 뉴스 원고를 앵커들이 말하도록 한다. 작가가 보고되어야 할 만한 뉴스라고 생각한 것은 세상의 '놀랄 만한 일들' 자체가 아니라 이에 대해 알려주는 매체를 통해 세계를 접하게 되는 개인의 반응이나 단상들이다. 본 작품은 실제 뉴스의 영상과 음성을 조작하여 실재와 허구, 진실과 허위, 사회와 개인, 사건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어트리면서, 세상의 이야기들을 선별하고, 편집하고, 비평하는 역할을 하는 매체의 속성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 미디어 시티 서울 팜플랫 중 발췌 이 작가는 내가 두번째로 기무사 전시회에 다녀왔을 때 봤던 작가이다. 각각 다른 뉴스의 영상을 짜맞춰서 원래 앵커가 전달해야하는 내용과는 상관 없이 작가가 써낸 스크립트를 읽게된다. 정확한 정보를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전달하는 앵커를 통해 '알려져야 했던 것들'을 말하게 함으로써 전달 매체 그 자체가 된다. 얼마 전 영상언어 수업에서도, 유럽의 해적당 의원 아멜리아와도 CCL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적이 있다. 이 작업은 일종의 리믹스와 같은데, 뉴스같은 거대한 매체를 과감히 수정한 것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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