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 새해특집- 길 떠나는 사람들
생명평화의 탁발순례를 떠난다
도법(실상사 주지)
"모색하고 모색한 끝에 만난 친구가 생명평화이다. 이것저것 포기하고 얻은 화두가 생명평화이다. 깨달음과 부처와 수행도 내려놓고 붙잡은 것이 생명평화이다. 그런데 지금 생명평화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생명평화를 찾기 위해 선재를 흉내 내어 순례의 길을 떠나려고 한다. 오늘도 걷고 내일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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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은 전체가 80권이다. 불교인들이 최고로 치는 경전이다. 누군가는 인류가 창조한 최고의 업적이요, 유산이다. 내용을 보면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웅대하고 화려하다. 신비로움이 극치를 이루고 있다. 곳곳에서 또는 사물들마다에서 빛이 쏟아져 나온다. 시간과 공간, 영원과 순간, 무한과 미진이 자유자재하게 넘나든다. 부처와 중생, 깨달음과 미혹, 정신과 물질, 인간과 자연이 온통 한 빛이요, 한 몸이요, 한 생명이다. 大地에서 휘황찬란한 빛이 흘러나온다. 보리수에서 미묘한 설법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법당에서 부처의 광명이 나오고, 불가사의한 음성이 들려온다. 사자좌에서 부처와 보살과 중생들이 나오고, 온갖 불가사의한 신통이 나타난다. 부처가 빛이 되고, 빛이 세계가 된다. 세계가 빛이 되고, 빛이 부처가 된다. 부처가 중생이고, 중생이 부처이다.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이다. 인간이 자연이고, 자연이 인간이다.
무한히 관계 맺고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따로따로 분리 독립되거나 고정 불변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물의 그물코처럼 무궁무진하게 겹겹으로 관계 맺어져 있다. 강물의 흐름처럼 영원에서 영원 끝까지 변화의 흐름으로 존재한다.
불가사의, 불가사의라고 밖에 달리 어찌할 길이 없다. 신비하고 신비하다고 밖에 달리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다. 도대체 말문이 막히게 하고 입을 열 수 없게 만드는 화엄경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전통적으로 화엄가들은 지금 여기의 구체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설명하는 것이 화엄경이라고 했다. 실상을 제대로 보면 눈뜬 자가 본 존재의 실상과 눈먼 자가 본 존재의 실상은 전혀 다른 내용과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구체적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너는 너일 뿐이고 나는 나일 뿐이다. 정신은 정신일 뿐이고 물질은 물질일 뿐이다. 인간은 인간이고 자연은 자연일 뿐이다. 어느 것 하나 네가 나일 수 없고 내가 너일 수 없다. 정신이 물질일 수 없고 물질이 정신일 수 없다.
인간이 자연일 수 없고 자연이 인간일 수 없다. 온통 분리된 남남일 뿐이다. 이것이 눈먼 자가 본 구체적 현실의 실상이다.
반면,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이다. 정신이 물질이고 물질이 정신이다. 인간이 자연이고 자연이 인간이다. 너 없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 없는 정신은 공허한 관념이다.
자연 없는 인간이란 있을 수 없다. 이 세상 그 무엇도 분리하려고 해도 분리 할 수 없는 총체적 관계의 존재이다. 이것이 눈뜬 자가 본 구체적 현실의 실상이다. 지금 여기 구체적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화엄경인 것이다.
古人들은 화엄경을 진리의 세계관과 진리실천의 길을 설파한 경전이라고 여겨왔다. 우리의 스승 원효는 화엄의 가르침을 따라 진리 실천의 길을 무애행이라 했고, 일생 천촌만락을 누비며 무애의 길을 걸었다.
" 문수여!
우주의 법은 항상 그러하나니
법왕에게는 오직 한 법뿐이네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나도다. "
원효가 읊고 다녔던 무애의 노래이다. 법왕(진리의 왕 = 옛 성인)이 걸어간 길은 지혜를 뜻하는 진리의 세계관과 자비를 뜻하는 진리실천의 길인 무애의 길 하나 밖에 없다. 법왕이 살아간 삶의 내용은 무애의 길이 전부이다. 그 길은 동서고금 남녀노소 빈부귀천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하게 적용된다. 그 길을 가는 자 누구나 할 것 없이 그 길 위에서 평화롭고 자유롭고 행복하다. 인간이 걸어야 할 길은 그 길 하나 밖에 없다. 미안하지만 그 길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노력도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이 되고 만다. 경제적으로 2만불이 아니라 10만불 시대를 열어도 불신과 불만, 갈등과 대립은 여전하다. 정보화를 넘어 수십 배 고도화된 과학기술 사회를 이루어도 비인간화와 생명위기의 상황은 해결되지 않는다. 소유와 편리가 향상된 만큼 불신과 불만이 계속 증폭되어 왔다. 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한 만큼 갈등과 대립의 골이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물론 부분적이고 현상적으로 보면 좋아지고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21세기 현대사회를 비인간화와 생명위기의 시대라고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근원적이고 보편적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위험스러운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음이 사실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진리의 세계관으로 삶을 다루지 않는 한 변화와 발전은 또 다른 모순과 혼란을 낳을 뿐이라는 것이 법왕들의 견해이다. 진리의 길을 걷지 않는 한 어떠한 성취와 업적도 끝없는 불신과 불만, 갈등과 대립을 심화시킬 뿐이라는 것이 성자들의 가르침이다. 진리의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은 역사경험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성자들의 가르침이 옳고 바람직하다는 사실은 오늘의 사회현상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역사적으로 철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 더 늦기 전에 너나없이 정신차리고 성숙해져야 할 때이다. 언제까지나 구태의연하게 힘 겨루기 해도 괜찮을 만큼 한가한 시절이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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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화엄경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늘어놓을 필요가 있겠다. 어디로 떠날 수도 없고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었다. 애매하기도 하고 무료하기도 했다. 그때 손에 잡힌 것이 화엄경이었다. 알아도 좋고 몰라도 개의치 않고 무작정 읽어 갔다. 무료를 달래는 심정으로 마음의 흐름을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뭔가 뚜렷하게 잡히진 않았지만 가슴 벅찼다. 잘 알 수는 없었지만 한없이 뿌듯했다.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었다. 세계란 참으로 멋지고 대단한 곳이로구나. 인생이 이런 것이라면 한바탕 열정 바쳐 살만하겠구나. 그래 인생을 살 바엔 화엄의 내용처럼 가꾸어야 할 일이다. 적어도 화엄의 내용처럼 삶을 살아야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을 터이다. 멋진 꿈을 꾸고 깨었을 때의 기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인간의 통찰력이 이렇게도 웅혼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의 상상력이 이렇게도 풍부하고 무한할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에 근거해서 이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내용을 만들어 낸 것일까.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일출의 장엄함과 일몰의 황홀함으로 표현되어지는 멋진 친구 인간 석가모니의 一生이 화엄경으로 꽃피워졌다.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돌아가신 무애자재한 탁발순례의 나그네인 고오타마 붓다의 생애가 화엄경으로 활활 타오른 것이다.
화엄경에는 <입법계품>이라고 불리는 한마당이 있다. 화엄의 세계관을 구체적 실천으로 형상화한 것이 입법계품이다. 선재라는 한 소년 구도자가 진리의 세계관을 확립하고자 스승을 찾아 편력 수행하는 내용이다. 선재동자의 구도 행각기인 입법계품을 소재로 한 작품이 '헷세'의 '싯달타'라는 소설이다. 입법계품 내용이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로 만들어져 나오기도 했다. 고은의 '화엄경'도 그 중의 하나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이렇다.
'어느 날 선재동자가 처음 문수보살이라는 선지식을 만난다. 선지식인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사상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깨달음의 삶을 추구하겠다는 뜻을 일으켜 질문한다. "성자시여,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가 어떻게 하면 보살행을 배우고 닦아 빨리 완성할 수 있읍니까?" "수행자여, 깨달음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스승을 찾아 끊임없이 묻고 배워야 하오. 스승을 찾는 일에 고달프다는 생각이나 짜증스러워 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되오. 여기에서 남쪽으로 가면 승락국의 묘봉산에 덕운 비구가 있소.
그대는 그 선지식에게 나아가 구도자가 어떻게 하면 보살행을 배우고 닦아 빨리 완성시킬 수 있습니까 하고 묻구려. 그 선지식이 자세하게 가르쳐 줄 것이오"
문수보살의 지도를 받은 선재동자는 기쁜 마음으로 남쪽에 계신 스승을 찾아 구도의 길을 떠났다. 이렇게 시작한 구도행각은 온 우주 구석구석을 편력 순례로 이어졌다. 때론 고산준령을 넘기도 하고, 때론 강과 바다를 건너기도 했다. 끝없는 초원을 걷기도 하고 아득한 사막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비바람과 눈보라 속을 걸었는가 하면 봄바람과 가을 단풍 속을 거닐기도 했다. 인적 없는 심산유곡에서 잠들었는가 하면, 북적거리는 시장바닥에서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어느 때엔 비구 선지식과 장자 선지식을 만났다. 여자선지식과 신선 선지식을 만났다. 바라문 선지식과 소녀 선지식을 만났다. 소년 선지식과 거사 선지식을 만났다. 임금 선지식과 타종교인 선지식을 만났다. 뱃사공 선지식과 비구니 선지식을 만났다. 장사꾼 선지식과 기생 선지식을 만났다. 보살 선지식과 천신 선지식을 만났다. 전체적으로 55명의 선지식을 찾아 온 우주 곳곳을 편력했다.
이 스승을 만나 피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저 스승을 만나 환희용약 하기도 했다. 절망하기도 했고 희망차기도 했다. 걷고 또 걸었다. 묻고 또 물었다. 배우고 또 배웠다. 마침내 진리란 지금 여기 구체적 사실에 깃들어 있음을 터득했다. 자기 자신이 본래 부처였고 지금도 부처이고 앞으로도 부처임을 깨달았다. 온 우주 구석구석을 돌고 돌아 돌아온 곳이 바로 지금 여기 현장이었다. 온갖 유형의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만난 것이 지금 여기 자신의 참 면목이었다. 진리가 있는 곳은 바로 지금 여기일 뿐 그 어떤 곳도 아님을 깨달았다. 부처란 지금 여기 늘상 깨어있는 자신일 뿐 그 밖에 부처가 따로 없다는 사실에 눈떴다. 영겁에서 영겁 넘어까지 펼쳐지는 참사람의 삶이었다. 선재동자 자신이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는 날까지 활발발하게 살아가는 영원한 보현행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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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가 묘한 느낌으로 와 닿는다. 그래 너도나도 길떠나는 사람들일 뿐이다. 어제도 오늘도 우리는 길 떠나는 나그네들이다. 2004년에는 어떤 길을 떠나게 될지 사람들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을 것이다. 매우 치밀하게 준비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닥치는 대로 떠나겠노라고 작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럴까 저럴까 고민만 붙잡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늘 상 해왔던 대로 가자고 결정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 사람마다 떠나는 길들이 각양각색일 터이다. 그래서 세상은 아름답고 재미있는 것 아닌가 싶다.
길 떠나는 사람들! 주제를 다시 음미해 본다. 올해 내가 떠나야 할 길은 어떤 길일까.
사실 닥치는 대로 "길 떠나는 삶"을 살아온 것이 지금까지의 내 삶이었다. 그때그때 옳고 좋고 여러 사람에게 유익하고 필요하다 싶으면 그 길을 따라 걸어온 것이 그 간의 삶이었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올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일이 뭐 있겠는가. 어제 그랬듯이 오늘도 그렇게 갈 터이다. 그런데 "길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를 받고 나니 자의든 타의든 진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왕 주어진 인연이니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몇 가지 정리해 볼까 한다. 올해는 체념하고 포기하는 길을 떠나 볼까 한다. 붙잡고 있었던 것들을 비우고 버리는 길을 떠나 볼까 싶다. 포기하고 버리는 길에서 진정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그 길을 떠나고자 한다.
깨달음이라는 환상을 쫓아온 그 간의 삶을 포기할 작정이다. 부처라는 꿈을 쫓아온 집념을 내려놓기로 작심했다. 훌륭한 수행자라는 허상을 쫓아온 너무나 벅찬 꿈을 접기로 결심했다. 도둑질하면 도둑놈 된다는 단순한 진리의 길을 가고자 한다. 미워하지 않으면 편안해진다는 명료한 진리의 삶을 살고자 한다. 나누면 여유로워진다는 명백한 진리를 믿고 가고자 한다. 부처 짓 하면 부처의 삶이 된다는 불교의 진리를 지금 여기에서 당장 살아 보려고 한다. 이 정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도법(중생)의 길을 포기하고 부처의 길을 흉내내려고 한다. 고상하고 특별한 삶을 버리고 화엄의 선재동자를 흉내내고자 한다.
50중반이 되는 오늘날까지 자신의 능력으로 뭔가 해 왔다고 믿었었는데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비로소 눈치챘다. "도법스님 훌륭하다"는 식의 덕담을 믿고 제 잘난 줄 알았던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철들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저렇게 정리하고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흉내내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결국 부처를 흉내내서 이것도 빌고 저것도 비는 탁발을 나서 볼까 한다. 선재를 흉내내서 동네방네 편력해 볼까 한다. 고상하게 말해서 탁발순례지 이실직고하자면 유랑잡승의 길인 셈이다. 어찌하겠는가.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길이 흉내내는 일 말고는 달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모색하고 모색한 끝에 만난 친구가 생명평화이다. 이것저것 포기하고 얻은 화두가 생명평화이다. 깨달음과 부처와 수행도 내려놓고 붙잡은 것이 생명평화이다. 그런데 지금 생명평화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생명평화를 찾기 위해 선재를 흉내 내어 순례의 길을 떠나려고 한다. 오늘도 걷고 내일도 걸을 것이다. 포장길도 흙길도 마다하지 않겠다. 큰길도 골목길도 앞길도 뒷길도 가리지 않겠다. 술집 골목길도 시장 바닥길도 피하지 않겠다. 길이 있으면 걸을 것이다. 지금 생명평화가 무엇인지 아직 잘모른다. 지금 나에게 생명평화가 없다. 그러므로 생명평화를 구걸하기 위해 부처를 흉내내어 탁발의 길을 걸으려고 한다. 생명평화를 구걸하기 위해 온갖 사람들을 만나려고 한다. 상인도 만나고 농부도 만날 것이다. 거지도 만나고 사장도 만날 것이다. 실업자도 만나고 장관도 만날 것이다. 사기꾼도 만나고 주정뱅이도 만날 것이다. 목사도, 신부도, 교무도, 스님도, 어떤 종교인도 만날 것이다. 술집도 찾아가고 가정집도 찾아 갈 것이다. 식당도 들리고 관공서도 들릴 것이다. 조선일보도 찾아가고 한겨레도 찾아 갈 것이다. 교회도, 성당도, 교당도, 절도, 굿당도 찾아 갈 것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밥도 빌고 돈도 빌고 땅도 빌고 마음도 빌 것이다. '누군가가 굶주려서 생명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밥을 나누어 주십시요. 밥을 나누어주면 당신도 누군가도 함께 생명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누군가가 이해 받지 못하여 생명평화를 잃었습니다. 당신이 이해의 마음을 나누어 주십시요. 이해의 마음을 나누어주면 당신도 누군가도 함께 생명평화를 되찾게 됩니다. 누군가가 사회모순 때문에 생명평화가 병들었습니다. 당신이 사회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나누어 주십시요.
누군가도 당신도 함께 건강한 생명평화의 삶을 살게 됩니다. 누군가가 소외 받아서 생명평화가 무너졌습니다. 당신이 따뜻하게 보살피는 마음을 나누어 주십시요. 누군가도 당신도 함께 생명평화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 사람을 만나서도 탁발하고 저 사람을 만나서도 탁발할 것이다. 이곳에 가서도 탁발하고 저곳에 가서도 탁발할 것이다. 사람 사람마다 이해하고 보살피는 능력의 일인자가 되도록 이해와 보살핌을 탁발하려고 한다. 곳곳마다 나누어주고 헌신하는 데 앞장서는 현장이 되도록 나눔과 헌신을 탁발하려고 한다. 마침내 이해와 보살핌이 각자 인생살림살이의 기본 되어 너나없이 모두 생명평화의 삶 이루길 기도하며 탁발순례를 하려고 한다. 나눔과 헌신이 우리 사회의 강물 되어 우리 사회가 생명평화의 사회되길 꿈꾸며 탁발순례를 하려고 한다. 한 가지 욕심이 더 있다. 돈, 명예, 권력 따위에 인생을 걸었던 구태를 버리고, 생명평화에 인생을 거는 좋은 벗들을 만나고 사귀고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작성일 : 2003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