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 해남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 꿈꾸는 들판으로 달려 나가자
- 고정희 ‘땅의 사람들-봄비’라는 시 중 해남을 표현한 시.

푸르른 하늘과 녹색으로 뒤덮인 땅, 그리고 이마에 맺은 땀을 훔치는 산들 바람.
이러한 해남의 풍경은 여행자의 발길을 사로잡지만, 이 풍경에 묘미를 더해 주는 건 시인들의 서정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시가 아닐까 싶다.

해남은 ‘땅끝마을’로도 유명하지만, ‘시인의 마을’로도 유명한 곳이다.
해남출신의 시인은 김남주, 황지우, 김준태, 고정희 등이 있다.
이 시인들은 해남이라는 고향을 그리며 아름다운, 혹은 향수가 젖어있는 시를 쓰는 반면,
80년대의 사회적 부조리들에 저항하며 치열하고 열정적인 시를 쓰기도 했다.
이들에게 시는 자신의 낙이었으며, 무기였으며, 언어였으며, 삶의 원동력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김남주 시인은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행복하다 /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질 때 / 시인은 그래도 행복하다 / 세상이 법 없이도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필요없다 / 법이 없으면 시도 없다, 라고 시인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                            )


1) 시의 목소리를 빌리다. - 리사

나는 시를 읽고 매료되어 감성적이 되거나, 지금까지 살면서 마음에 드는 시가 있어 구절을 읊고 다닌 적이 없었다. 시인이란 직업은 따분해 보였고, 시는 뭔가 있어 보이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하나도 모르겠는 아리송한 글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시를 읽지 않는 세대’로 불리게 되었다. 왜 이 시대에 살면서 시가 필요해야할까? 그런 내가 최근에 알게 되었던 시인은 ‘여성주의’를 주장하며 많은 여성들에게 롤모델이 되었던 고정희 시인이었다.

고정희 시인은 남성위주 사회에서 여성해방주의를 주장했던 시인이다. 남녀평등을 지향하던 이 시인은 조신하기만 해야 하는 역사적으로 뿌리박힌 여성상의 이미지를 깨뜨리고 여성 중심의 문화를 사회에 알리고자 <여성신문>에 끊임없이 글을 쓰고, 여성에게는 모순된 제도와 비합리적인 현실을 시를 통해 비판을 하며 '행동문학'의 한 모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행동문학’이란, 여성사 연구를 하며 현실적인 상황을 알려주는 것도 있지만, ‘여성시인은 고상한 시를 써야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당당하게 사회를 비판하는 시를 썼다. 그를 최초의 여성해방주의 여류시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의 이러한 '행동문학' 덕분이었다. 그는 시(말)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직접 여성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했던 것이다.


여자가 되는 것은 사자와 사는 일인가?               고정희

어린 딸들이 받아쓰는 훈육 노트에는
여자가 되어라
여자가 되어라...씌어 있다
어린 딸들이 여자가 되기 위해
손발에 돋은 날개를 자르는 동안
여자가 아닌 모든 것은 사자의 발톱이 된다

일하는 여자들이 받아쓰는 교양강좌 노트에는
직장의 꽃이 되어라
일터의 꽃이 되어라...씌어 있다
일터의 여자들이 꽃이 되기 위해
손톱을 자르고 리본을 꽂고
얼굴에 지분을 바르는 동안
꽃 아닌 모든 것은 사자의 이빨이 된다

신부들이 받아쓰는 주부교실 가훈에는
사랑의 여신이 되어라
일부종신의 여신이 되어라...씌어 있다

신부들이 사랑의 여신이 도기 위해
콩나물을 다듬고 새우튀김을 만들고 저잣거리를 헤매는 동안
사랑 아인 모든 것은 사자의 기상이 된다
철학이 여자를 불러 사자가 되고
권력이 여자를 불러 사자가 되고
종교가 여자를 불러 사자로 둔갑한다

그리하여 여자가 되는 것은
한 마리 살찐 사자와 사는 일이다?
여자가 되는 것은
두 마리 으르렁 거리는 사자 옆에 잠들고
여자가 되는 것은
세 마리 네 마리 으르렁 거리는 사자의 새끼를 낳는 일이다?
그러니 여자여
그대 여자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면
사자의 발톱은 평화?
사자의 이빨은 고요?
사자의 기상은 열반?


시에 직설적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문구가 들어가는 것도 놀랐고, 이렇게 시를 쓰는 ‘방식’ 자체가 대중이 여성을 생각하는 편견을 깨는, 일종의 performance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는 단순히 서정적이기만 하고, 그래서 몽상하는 듯 한 느낌인 것이 아니었다. 고정희에게 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가 되고,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에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길이 되고, 사회변혁을 일으키는 가능성이 되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여성해방을 원했던 그녀는 시를 자신의 삶의 목적과 동일시했던 것이었다. 시는 그의 무기 역할이 되기도 하고, 대변인 역할이 되기도 하고, 동료 역할이 되기도 한다. 결국 시는 고정희의 역사와, 가치관과, 목적을 형상화 시켰던 것 같다. 그럼으로 시를 열심히 쓰는 고정희는, 자기 자신을 열심히 성찰하며 삶을 살았던 것이었다.

나는 아직 시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내가 고정희 시인처럼 강력하게 원하는 것, 열정적으로 매달렸던 것이 없어서일까? 내가 강력하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성취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의 삶은 무엇인가? 고정희는 나에게 이러한 의문들을 안겨주었다.


2) 그녀의 삶과 지금의 나 - 산

고정희 시인. 난 왜 그녀를 기억하는 걸까? 그녀는 자신과 주변 사람, 사회와 세상과의 관계를 선명히 파악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을 일관성 있게 그리고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인생에서 우리가 소망하고 또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실천한 사람 중의 하나이며 시와 삶이 거의 일치한 보기 드문 시인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가 살던 시대에 직면했던 문제들인 '수유리 종교의식'과 '광주의 역사의식', 그리고 '여성의식'에 대해 외면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것들에 대한 시를 써내려감으로써, 부당한 현실에 분노하고 개혁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며 시를 쓰던 시인이다. 때문에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그 시대의 사건과 감정들이 전해져 뭉클해진다.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삶을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살아갔다는 것. 하지만 그의 시에서 '우리'라는 말을 자주 볼 수 있듯이 그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살아가면서도 계속해서 '우리'를 놓치지 않았던 모습은 내가 제프 딕슨이 우리 시대를 역설한데로 달에는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진 시대에 살고 있기에 더욱 그립고 그녀를 기억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가 그녀에게 집중하는 이유는, 사회의 부조리들에 대해서 이미 너무 많이 알아버려, 그 복잡한 사회 속에서의 삶에 대한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때문에 앞으로 해야 할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하자 밖 어디로든 쉽사리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상황에선, '자신이 느끼는 부조리들에 대해 자신의 매체인 시로서 표출하고 다른 이에게 공감을 주는 모습', '민주화 운동을 시작으로 아시아의 여성 등 점점 더 자신의 범위를 넓혀가는 모습'과 '가부장적인 한국에서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서 살았다는 건 내가 그녀를 기억하게 하는 힘이고, 나에겐 부족한 부분이기에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다. 그녀는 나에게 지속적인 저항, 단단함 그리고 자신의 매체를 통한 표출을 떠올리게 하며, '내가 움직이고 있는지'를 묻는다


새 시대 주기도문               고정희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우리 자본님
가진 자의 힘을 악랄하게 하옵시매
지상에서 자본이 힘있는 것 같이
개인의 삶에서도 막강해지이다
나날에 필요한 먹이사슬을 주옵시매
나보다 힘없는 자가 내 먹이가 되고
내가 나보다 힘있는 자의 먹이가 된 것 같이
보다 강한 나라의 축재를 복돋으사
다만 정의나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지배와 권력과 행복의 근본이
영원히 자본의 식민통치에 있사옵니다 (상향~)



3) 당신은 고향이 있나요? 남도와 시인 - 반야
먼저 나의 이야기를 꺼내자면, 나는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고향도 전남이고 조부모님도 전남에서 사신다. 나의 조상은 대대로 전남에서 터를 이루며 사셨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남도는 특별하다.

남도를 생각하면 사람들의 정, 인심이 떠오른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각나고 아버지, 어머니가 떠오른다. 남도는 고정희에게도 특별한 곳이었으리라 추측해본다. 고정희의 시 중 <남도행>은 남도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이 묻어있다.


남도행                     고정희

칠월 백중날 고향집 떠올리며
그리운 해남으로 달려가는 길
어머니 무덤 아래 노을 보러 가는 길
태풍 셀마 앨릭스 버넌 윈이 지난 길
홍수가 휩쓸고 수마가 할퀸 길

삼천리 땅 끝, 적막한 물보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마음을 주다가
문득 두 손 모아 절하고 싶어라
호남평야 지나며 절하고 싶어라

벼포기 싱싱하게 흔들리는 거
논밭에 엎드린 아버지 힘줄 같아서
망초꽃 망연하게 피어 있는 거
고향 산천 서성이는 어머니 잔정 같아서

무등산 담백하게 솟아 있는 거
재두루미 겅중겅중 걸어가는 거
백양나무 눈부시게 반짝이는 거
오늘은 예삿일 같지 않아서
그림 같은 산과 들에 절하고 싶어라
무릎 꿇고 남도땅에 입맞추고 싶어라


고정희 시인은 이 시를 쓰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생각해본다. 고정희 시인에게 남도는 어떤 곳이었을까?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왜 그리움을 느끼는 것일까?

살다가 문득 생각나고 그 곳을 생각하면 위안과 힘을 얻는 곳이 고향이라 생각한다.

특히 시의 연 중 '무등산 담백하게 솟아 있는 거 / 재두루미 겅중겅중 걸어가는 거 / 백양나무 눈부시게 반짝이는 거/오늘은 예삿일 같지 않아서/그림 같은 산과 들에 절하고 싶어라/무릎 꿇고 남도땅에 입맞추고 싶어라.'라는 시 문구는 고정희 시인에게 남도 땅의 의미 또는 고향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리워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에서 '문득 두 손 모아 절하고 싶어라'라는 행은 애정을 넘어서 신성하게 까지 느껴진다.

나는 고정희 시인의 <남도행>을 읽으면서 시와 내 기억이 겹쳐져 떠오른다. 고단한 서울생활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길. 영등포역에서 기차에 몸을 싣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높은 건물과 아파트에서 넓은 평야로 바뀌고, 5시간 30분 후 여수역에 내렸을 때 느껴지는 바다냄새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나는 천리향 향기, 변함없는 집, 나를 맞아주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동안의 고단함이 풀리고 안정과 편안함을 느낄 때, 그동안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때 마음이 꽉 찬 거 같으면서 행복해진다. 남도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포근하고, 안락하고, 행복한 기억들이다. 그리고 그립다. 멀리 있어도 그 곳이 내 눈앞에 선명히 보이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남도행> 시 에서 남도의 바람, 공기, 햇살, 냄새를 느낀다.

고정희 시인에게 남도가 어떤 곳이었는지 죽은 이에게 더 이상 물을 수 없지만 우리는 고정희 시인이 남긴 시를 보면서 시인에게 남도가 어떤 곳이었는지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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