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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1. 한 학기를 휴학하고 다시 하자로 왔을 때, 그제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는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 때 생각했던 움직임은 눈앞에 보이는 시각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었고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눈앞에서 움직이는 것을 포착하고 그것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달라지겠지, 하면서 시간이 어서 흐르기를,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편안하게 해결되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눈앞의 움직임만 집중했었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내가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는 것과 함께 마음이 움직여서 일어나는 변화나 어떤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마음에 대한 생각을 했고, 그 움직임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눈에 보이는 움직임과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경험한 내가 멈추지 않는 움직임, 즉 ‘운동’을 이야기 하는 것은 그 전부터 생각해왔던 ‘움직임’과 크게 어긋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봐왔고, 익숙하지만 멀리 하고 싶은 ‘운동’은 몸으로 격렬하게 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운동을 하는 방식의 전부라고 생각했고 그런 방식의 운동을 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었지만 나는 꼭 그렇게까지 운동을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서로 다른 입장과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끼리 부딪히면서 생기는 문제들은 대부분 정치적인 것이었고, 상대방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폭력을 가하고 그것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앙금이 쌓이고 결국에는 서로 피해자는 우리다, 라고 외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정체성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그리고 과연 그것들을 옳고 그름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 단어를 쓰는 것조차 불편해하면서 ‘운동’은 내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지난 학기부터 시민문화워크숍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들을 보면서 ‘운동’이 꼭 온 몸을 써서 격렬하게 상대방과 대치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과 누구에게서 이뤄지고 시작되는지, 그리고 그 움직임이 멈추지 않고 어떻게 하면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도 ‘운동’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던 중, 우리는 보름 정도의 일정을 가지고 현장학습을 떠났다. 홍콩에서는 MaD (Make a Difference) 컨퍼런스에 참가했고, 이후 태국 국경에 위치한 Maesot과 Maela camp에 가서 열흘 정도 되는 시간을 보냈다. 그 곳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와 비슷한 또래들이 다니는 학교인 CDC와 LMTC, 그리고 열 세 곳의 NGO들을 방문했다. 나한테 ‘운동’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는 지금, 메솟에 머무르면서 방문한 NGO에서는 그들의 현실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교육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그들이 하고 있는, 하려고 하는 운동의 방식도 조금씩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버마의 민주화가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교육을 받아서 자기 민족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 위에서 상황을 보면서 판단하고 그들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 그리고 그 결정을 책임 질 수 있는 사람’ 이 그 동안 내가 생각하고 있던 ‘지도자’였지만 지금 그들과 우리의 상황을 봤을 때 내가 생각하고 있던 ‘지도자’ 의 의미가 사라지는 듯 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 그들이 “난 나중에 우리 민족의 지도자가 될 거야.” 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 할 수 없었다. CDC나 LMTC에 다니는 우리와 비슷한 또래들이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같은 청소년이고 교육 역시 받고 있긴 하지만 서로 살고 있는 곳이 다르고 처해있는 상황 또한 다르기에 눈에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받아들이는 정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가기 전부터 생각했던 메솟과 멜라에 있는 청소년들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조급하게 꺼낼 수 없었다. 우리는 현장학습을 마치고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이었고, 사전 계획을 할 때부터 영상을 완성해서 어딘가에서 상영 할 때 그들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 또한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 보였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말했다. 예를 들어 메솟에 있을 때 만난 단체 'HREIB' 와 이야기 중에서 마지막에 ‘당신들 같은 사람들이 방문하면 이야기를 하고 싶을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이 지역에는 있다’ 고 하신 말이 기억에 난다. 4. LMTC에서 GROUP ACTIVITY를 하던 날, 히옥스는 ‘매체에 너무 몰두해서 사람을 보지 못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봤더니 불과 얼마 전까지도 나는 ‘사람’도 보지 않고 ‘매체’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무언가를 찍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이 ‘매체’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있고 어떤 것을 얼마만큼 끌어낼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매체’를 소중히 하고 점차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매체’ 와 내가 그 ‘매체’를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의심을 하고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시간들과 기록할 수 있는 매체를 든 사람이었지만 주변을 살펴보려고 하지 않았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왜 중요한지, 기록을 하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하나도 알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어느 새 무감각하게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가 보였다. 지금은 내가 계속해서 얘기해왔던 ‘운동’ 이라는 것이 나도 모르게 또 무감각하게 그냥 내뱉고 있는 말이 되지 않기를, 그리고 앞으로 내가 생각하는 ‘운동’의 의미를 잃지 않고 쭉 움직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사실 나는 지금도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을 보는 것이, 모르고 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머릿속으로 확 들어오는 것이 두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이번 현장학습 내내 속으로 끙끙 앓았던 것도 매우 큰 것이, 내가 내 힘으로 어떻게 해결 할 수 없는 상황들이 눈앞에 계속해서 펼쳐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많은 곳에 자신들의 상황을 알려주기를 바랐고, 그래서 보기 싫다고 눈을 질끈 감고, 귀를 틀어막을 새도 없이 어딘가로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5. 지난 학기 정선으로 현장학습을 갔다 와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것만 가지고 있었다면 앞으로는 그 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라는 말을 에세이에 썼었다. 그리고 이번 현장학습을 다녀와서도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리는 결국 다른 상황과 사람들을 통해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머물렀기에 우리의 상황과 그들의 상황을 성급하게 비교 할 수는 없었지만 ‘나라’라는 국경을 넘어 우리는 ‘운동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운동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찾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처음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과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고 움직이는 속도가 느리더라도 하겠다고 한 것을 잊지 않고 해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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