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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2010 에세이 구나 낯설음을 맞이하다 한 장소를 떠나면 또 다른 한 장소에 놓이고, 또 놓이고,... 장소를 떠날 때마다 여지없이 경험들을 얼버무렸다. 또 다른 경험을 위해서는 이전 경험이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험을 정리해버린다는 것은 어쩌면 섣부르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경험을 “어떻게 지속할까”를 고민한다. 하자에서 배운 것들은 너무 많은 고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광범위하지만 나는 하자를 수료한 후 하자에서의 배움을 어떻게 지속시킬까 감을 잡기 위해 조금씩 나의 경험을 돌아보기로 했다. 나는 지금까지 늘 여러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그래서 자신은 단지 여러 사람들 중 한명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그 속에서 “누구”인지 인식하지 않았다. 하자에서는 처음으로 내가 어디에 있으며, 누구랑 함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 속의 “나”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나”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나는 혼자서는 구성될 수 없는 것 같더라. 수많은 연결고리 속에 있기 때문이다. 볍씨에서 하자를 왔듯이, 내가 속한 공간을 옮기면서 나는 낯설음을 감수해야했으며, 자신을 낯설게 보기 시작하면서 내 생각에 대한 “왜”라는 물음을 갖기 시작했다. 하자에서의 배움과, 이동학습까지 모두 “왜”라는 질문과 “어떻게”라는 질문의 연장선이었다. 질문의 연장선 : 메솟 메솟에 가서 만난 상황들은 메솟에 가기 전 자료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던 사실과 조금 달랐다. 메솟에 가기 전, 자료 검색을 통해 버마 내 군부독재정치와 인권유린, 88사태 등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정보들을 접한 것은 간접적인 검색을 통해서였지만, 그것들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 충격적인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으며 버마의 상황에 대해 인식하려 했다. 하지만 자료 검색만으로 무언가를 인식하겠다는 것은 섣부른 생각이었고 과연 어디까지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자료 검색을 통해서 내가 알게 된 사실들은 이동학습을 통해 내가 어떤 만남을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의 밑바탕이 되었지만 그 이상으로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간접적인 정보검색을 통해 알게 된 역사적인 사실과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안에서 내가 어떤 현실을 인식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본 것도, 들은 것도, 한 것도, 만난 것도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경험이었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웠고 내가 하는 말로 나의 경험들이 한마디로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때문에 나는 말과 행동, 단어를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조심스러웠고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을 때도, 어떤 질문을 할 때도. 모두 행동으로 이어지기 전에 몇 번 더 생각하게 됐다. 과연 내가 어떤 사람으로서 행동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부터였다. 그 고민으로 내가 어느 곳에 살고 있는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와 같은 삶의 조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버마 사람들의 삶의 조건에 대해 말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내 맥락에서 그 이야기를 설명해보려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입장에 대한 고민이 들었는데 한 가지, 한국 사람의 입장으로 버마 사람의 입장으로 우리 만남의 경계 같은 것을 만들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절대로 값싼 동정심 같은 거 갖지 말자고 결심했었다. 사실 완전 결심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내 입장에 대해,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복잡한 상태 그대로 남아있었고 메솟은 그 고민의 연장선이었다. 그들은 군부독재정치 아래 삶이 자유롭지 못하다. 어른이든 아이든, 이동과 소득,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 ‘난민’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도 ID카드가 필요하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메솟에 가기 전, 내가 어느 정도 선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그들을 만나면서 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그들의 무엇을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CDC와 LMTC등의 십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처해있는 삶의 조건들은 달라도 십대로서 하고 있는, 자기 삶을 어떻게 꾸려갈까에 대한 고민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정치적 제약의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들이 꿈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하지만”이라는 말이 따랐고, 그들에게 나는 좋은 조건에서 살아가는 ‘운 좋은’사람이었다. ‘함께 살기’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는 그들과의 만남에서 어떻게 ‘함께 살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사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머리로 떠올리는 상상에조차 제약의 한계가 따른다는 것에 가슴이 턱하고 막혔고 바로 내 앞의 친구에게조차 아무 말 못하는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그들의 삶의 조건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 것이 싫어졌다. 그들이 말한 내 삶의 조건은 ‘운 좋은’ 것이었으나 실로 그렇지만도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의 삶의 조건은 비슷한 것들이 있다고, 우리가 처한 상황의 맥락은 다르지만 나와 너의 삶의 조건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내가 십대로 직면해있는 문제에 대해 잘 설명하고 싶었다. 마냥 다르다고만 생각했던 그들과 나의 상황에서, 위치(남녀, 학생, 어른...등)로 구별되는 입장은 비슷한 점이 있었다. (그 위치는 어쩌면 소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비슷했던 것은 우리가 “함께 살기”에 대하여 각자의 위치에서 고민하고 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과 나의 입장 차이와 ID카드를 가졌을 때의 의미의 차이는 분명히 있겠지만 우리는 자신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지속시키려고 한다. 나는 십대로 사회에 대한 어떠한 인식을 조금씩 하고 있었지만, 사실 자신이 어떤 입장인지 잘 알지 못했고 그들이 말하는 내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이 말한 내 삶의 조건이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에 이어, 현재 내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 내 삶의 조건 안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도리어 반문하게 되었다.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나는 내 삶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면서 공간과 상황의 차이가 어떤 삶의 조건을 구성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위치에서, 그들은 그들의 위치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방문했던 대부분의 단체들은 ‘인권’에 대해 피해를 받고 상처 받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있었으며 버마의 민주화를 목표로 그들 자신들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지금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버마의 민주화’였지만 자신들의 상황이 결국 세계의 문제임을 말했다. 나 역시 하자에서 ‘글로벌 이슈’라는 말을 사용하며,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문제와 나의 관계를 인식하려고 한다. 어떤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식한 것을 내 것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에 관심 갖는 지와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처음으로 지금까지 내가 보지 않았던 문제들을 상기하며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나는 물리적 거리로 인한 무관심을 갖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직접 피해가 오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문제들에 방관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기후변화와 재개발 그리고 이번 이동학습을 통해 마주쳤던 버마의 현실은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통해 나에게 가까운 일이 되었다. 그동안 거리감을 느꼈던 문제들이 내 친구의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타인을 통해 다른 현실에 대해 인식하는 바가 가까워졌다. CDC학생들은 당장에 학교를 졸업하면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 그들은 ID카드가 없다. ID카드는 나와 그들 모두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나에게는 ID카드가 의무이고 내(나이와 신분)에 대한 증명이다. 하지만 버마 사람들에게는 마치 ID카드가 최소한의 권리처럼 보인다. 나에게 ID 카드는 어쩌면 신분증명을 해주지만 존재에 대한 증명으로는 가치가 있나 싶다. 하지만 내가 만난 친구들에게 ID카드는 존재에 대한 증명이며 생존과도 관련 있다. 이동하기 위해, 보기 위해, 듣기 위해, 말하기 위해 그들은 ID카드를 필요로 한다. 마치 그들의 ID카드는 자유(가 아닌 자유)를 얻기 위한 허가증인 것처럼 느껴져 그동안 내가 ‘자유’의 권리와 책임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이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게 그런 필요에 의해 생겼지만 불필요한 삶의 조건으로 나의 삶, 그들의 삶 자체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짓인 것 같다. 삶의 조건의 비슷함 안에서도 나와 그들의 의미는 달랐다. 나는 그 다름이 물리적인 공간으로 인한 다름이라고 생각했고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와 만남의 내용으로 물리적인 다름을 넘어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조건 속에서 ‘함께 살기’를 하려는 사람들과의 만남 안에서 내가 어떤 삶의 조건 안에서 살고 있는지 집중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 삶의 조건에 대해서는 늘 익숙하게만 생각해왔지만, 삶의 조건이라는 것은 너무 광범위하다. 어떤 것들을 ‘삶의 조건’이라고 포괄하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내 삶에 있어서 ‘조건’은 대개 주어진 것들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굳이 조건을 만들 필요 없이 주어진 것들에 만족했다. 하지만 그 만족에 대해 느끼는 약간의 모순은 그동안 나의 만족은 안정감에 의해 생겨났지만 그 안정감은 내가 손대지 않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는 조건 안에서 느낀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삶의 조건을 만든다고 할 때, 나는 내 생각을 구체화해야 하는 여러 질문에 직면할 거다. 나 스스로에게 안정감을 주어야 할 거다. 십대로 내 삶에 대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하는 나는 이제 자신이 조건을 구성할 계기를 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고 있다. 9살 때부터 나는 대안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어렸을 때 제도권 교육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대안학교를 택한 것도 아니었다. 대안학교를 택했을 때는 너무 어렸던 터라 자발적인 ‘탈’을 했다고 볼 수도 없다. 내게 ‘탈’이라는 것은 그저 당연한 환경이었다. 일반적인 제도권 교육에서 조금은 다른 길로 빠졌다는 것은 나에게 대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조금 다른 길로 빠졌다’는 생각을 ‘그럼 내가 있는 곳은 어디지?’라는 질문으로, 익숙한 환경을 낯설게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지금 내가 속해있는 공간과 나의 관계는, ‘지금 내가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말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자작업장학교가 나에게 어떤 곳이었는지를 말하기는 아직 어렵지만, 사실 내가 속해있는 공간을 더 잘 알 수 있는 것은 그 공간을 벗어난 후부터 인 것 같기도 하다. 처음 하자를 선택할 때는 익숙함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익숙한 공간에서 느끼는 안정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자는 내가 처음으로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을 마주하게 된 경험이었다. 나는 그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던 다른 문화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정말 내가 어디에 있나 싶을 때도 있었다. ‘어디에’있는가, 방황 할 때는 무엇을 할지조차 급박하게 다가온다. 처음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나는 소속감이 없었다. 이전에 다녔던 볍씨와 하자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방황은 끝이 없었다. 하자에서 내가 던져야할 수많은 질문들을 감당하기가 버거웠고 “왜”라는 질문에 직면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왜 이것을 하고 싶은지,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뒤늦게 이유를 찾는 것이 그저 힘들게만 다가왔다. 하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익숙해지는 것들이 있더라. “왜”라는 질문에 답해가고 그것을 “어떻게”로 이어가는 것은 늘 어려운 과정이다. 그렇지만 “왜”라는 질문에 응하는 나의 반응이 어느 정도 빨라짐을 느꼈다. 이 반응을 체화된 어떤 나의 습관처럼 가져갈 때에는 그에 따른 또 다른 과정을 거쳐야겠지만 내가 보는 것과 듣는 것, 만나는 것에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단순한 경험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해야 한다. 나는 내 삶의 조건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삶의 조건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하여 되풀이 해 질문하고 있다.
9살 때 멋모르고 택한 대안학교가 이제는 당연한 삶의 조건이 아니다. 나는 지금 다시 대안학교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고 있으며 ‘대안적인 공간’에서 대안적인 인식을 갖게 된 이유를 찾는 과정과 함께 ‘어떻게 공간의 시선을 잃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내가 속했던 공간을 ‘대안학교’라고 말했을 때 나는 어떠한 책임감을 느낀다. 공간의 시선을 잃지 않겠다고 했을 때에는 그 공간에 대한 인지와 자신의 신념을 갖기 마련인데 ‘대안학교’는 어쩌면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안학교를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길과 다르다는 인식은 이미 사회적으로 박혀버린 이미지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탈’이라는 말이 주는 일반적인 느낌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일반교육의 시스템을 거부하고, 학교를 그만뒀다고 하더라도 배움을 그만둔 것은 아니다. 내가 대안학교를 다님으로써 어떠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믿음을 갖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대안학교를 다녔다고 하더라도 내 삶의 조건이 내 친구 현실의 조건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설명해야했고 지금도 아주 잘 설명하고 싶다. 사람들의 인식을 내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설명하고 싶은 것은 지금 내가, 어떤 나의 위치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이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왜”라는 질문에 직면하면서 지금껏 내가 보내온 시간들에 대한 이유와 의미에 대해 회의감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와 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감각보다 과거에 대한 자기비하와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더 컸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것만 같아 혼란스러웠고 그 혼란스러움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중심도 놓쳐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이랑 할 수 있는 것이 분리된 것이 아니더라. 사라짐은 나와 기억을 매개한다. 지난 학기 나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까지 익숙하게만 생각했던 것을 다시 낯설게 바라봐야 했다. 그 ‘왜’라는 질문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나는 주제연구라는 것을 했다. 주제는 ‘사라지는 것’이었다. 사라지는 것에 내가 관심을 갖은 계기는 사실 단순한 아쉬움과 그리움에서부터였다. 내가 살고 있는 곳 주변은 1년 365일 공사가 멈추는 날이 없었으며 내가 한때 몸담았었던 좋아하는 공간들이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그런 풍경을 마주하는 나는 단순한 감정이입에 빠져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사라짐’을 주제로 연구하고자 했을 때는 사라짐과 관련된 도시화, 개발과 재개발 등에 대해 짚어봐야 했다. 나는 내 경험과 감정에 의한 주제로 도시화가 되어가는 시대에서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와 고유한 것이 획일화 되어가는 과정, 도시화, 재개발, 간판, 기호 같은 더 세분화된 키워드를 뽑아냈다. 그리고 “왜” 내가 사라지는 것을 주제로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기억”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의 기억은 사회적 기억의 매개물, 혹은 부가적 장치일 뿐이다. 기억 속의 개인은 늘 사회적인 존재이며 개인과 사회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억의 주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이다” ‘사라짐’에 대한 ‘과정’없이 맹목적으로 재개발, 변화를 추구하는 도시화 시대에서는 ‘왜’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사라짐 속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은 나의 기억이다. 나의 기억이자 곧 사회적 기억이다. 그동안 협소하게만 생각하고 사회적인 일에 대해 약간의 거리낌을 느꼈던 나에게 “기억의 주제가 사회”. 즉 개인의 기억이 사회의 기억 속에서 작용한다는 것은 조금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어떻게 기억해야할까’라는 고민과 연결되었다. 사라지는 것은 나와 나의 기억을 매개한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가면서 어떤 기억을 가질 수 있는지, 나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억은 ‘나의 기억과 사회적 기억의 매개’이다. 내가 속한 공간과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서부터 나의 기억은 매개 작용을 하는 듯하다. 내가 살아왔던 공간, 속해있던 공간을, 만났던 사람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가. 일방적인 기억이나 단순한 시간의 흐름으로 내 기억을 놔두기 싫다. 나는 나와의 ‘관계’에 대해 기억하고 싶다. ‘사회적 기억’이라는 것은 그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어떤 관계에 있는가’에 집중하고 싶다.
나에게 기억하는 것은 기록하는 것과 연관된다. 나는 기억하기 위해 기록이라는 수단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기록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사진이 나에게 객관적인 상황과 순간- 스쳐지나가는 상황을 기록할 때 유용하다면 그림은 아주 주관적이다. 기록을 하기 위해서만 매체를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만날 때, 어떤 풍경을 보았을 때, 어떠한 주제를 갖고 있을 때에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순간순간 존재하며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기록한다.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나는 그리움이 많았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그리움도 많았고 오래된 것들이 사라지고, 새롭게 변화된 것만이 남아있는 풍경에 대해서도 그리움이 많았다. 그리워할 때 나의 감정은 과거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기억하고자 할 때 나의 감정은 현재에 머문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의 시간들이 나에게 ‘기억하고 싶은 순간’으로 남았으면 한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내 기억의 주인은 ‘나’이지만 기억의 주제는 내가 맺었던 관계다. 하자에서는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하나를 생각해도 그 하나에 연결된 관계는 수 만 가지다. 내가 사라지는 것을 주제로 연구하고자 했을 때 사라짐에는 사회의 도시화와 재개발에도 큰 관련이 있으며, 사라짐은 기억과 연결되었다. 하자에서는 사회속의, 공동체속의,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의 나를 발견하였으며 그 관계 속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갈 것인가를 만들어갔다. 지금까지 나는 볍씨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무엇을’ 할 것이란 고민은 조금씩 해왔다.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이고, 나는 그 ‘어떻게’를 주어가 ‘나’가 되어 생각해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지금과 할 수 있는 일. 지난 학기 ‘시민’에 대해 생각했다. 시민문화워크숍을 통해 만난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 그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 고민했고 낯설었던 ‘시민’이라는 단어를 내 맥락에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시민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고 내가 시민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민은 뜻과 움직임의 일치가 필요했다. 뜻과 움직임에서 항상 괴리감을 느끼는 나는 움직임이 필요함을 느끼며 내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움직임은 퍼질수록 더 힘이 있다는 걸 알았다. 시민문화워크숍에서 만난 시인들은 각자가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자신이 설정하고 그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동학습에서 만났던 NGOs 역시 그들이 원하는 목표를 갖고 자신들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일이 생존과도 관련 있는 일임에도 ‘내일은 민주화가 될 거다’라는 믿음으로 활동을 한다. 나는 그들의 그런 신념이 어디서 오는 걸까 싶기도 하면서 꾸준히 움직이는 행위들이 어떠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시민문화워크숍의 연장선으로 이동학습을 하면서는 그동안 내가 하자에서 생각해왔던 ‘시민’에 대한 질문들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들 가운데 ‘시민’이라는 것은 내 맥락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왜”라는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기는 한 걸까?”라는 혼란스러움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자에서는 ‘지금’에 충실하여 하고 싶은 일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하자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하는 때’라는 관념을 벗어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제안은 나에게 격려였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위한 격려는 ‘함께 살기’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또 다른 언어가 되다. 나는 하고 싶은 일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매체 작업이며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싶다. 그림과 사진을 통해 기억하고 싶은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란 질문과 또다시 마주치게 된다. 하자에서 우리는 기후변화를 향해 달려온 지금 현재에서 어떠한 움직임을 취하고자 했으며 그 움직임은 우리들의 위치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의 매체를 ‘통해’ 원하는 것을 말했으며 움직임의 내용을 담았다. 예전에는 ‘나 혼자해서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감각하고 무뎠다. ‘나 혼자해서야’라는 생각은 나를 무관심하게, 상황에 대한 반응도 느리게 만들었다. 내가 하는 말은 이미 상황에 대해 인식했음을 말했지만 생각은 조금 뒤쳐져있었다. 하지만 그런 핑계를 둘러대면서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더라. 하자에서 ‘시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금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지금 나의 위치에서 (십대, 대안학교 학생...) “함께 살기”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체를 가지고 매체를 통해 ‘나’를 표현하고 싶다. 매체작업을 하면서 중요했던 것은 매체를 ‘통해서’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매체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가 아닌 매체를 통해 내가 하려는 것이 어떤 것이냐는 것이다. 내가 매체를 통해 작업하고자 했을 때 나는 매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히옥스는 ‘매체의 장악력’ 또한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매체를 가질 때에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섬세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자에서 가장 충돌했던 부분은 내가 하고 있는 생각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시켜야한다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매체로 그것들을 전달할 때에는 매체가 어떠한 매개가 되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 늘 혼란스러웠고 매체 이전에 나의 생각이 있어야 했다. 내 생각과 매체작업이 전혀 생뚱맞을 때도 있었다. 매체에 있어서 필요하다고 느낀 섬세함은 이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매체로 전하고자 했을 때 나의 핵심이 되는 생각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핵심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믿음도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자기 매체에 관한 믿음이 별로 없었고, 자기 생각에 대해 신뢰를 하지 못했던 적이 많아 그것들이 매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또 경험을 언어화 하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매번 이동학습을 다녀와 작업을 할 때 내 경험이 무엇이었는가를 언어화하는 연습을 했다. 충동적인 행위를, 감정적으로 느꼈던 무언가를 내 언어로 말해보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고 그때마다 나는 내 언어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과 충돌해야 했다. 하지만 이 고민은 어떠한 경험을 할 때든 이어져야할 고민이다. 나는 내 매체를 활용할 때,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좋아서 뿐만이 아니라 내가 어떤 행위를 담을 것인가에 집중해 본다. 이제는 내 삶, 경험으로부터 어떤 질문을 꺼내고 경험을 만들어가고 그 질문들을 서로와 함께 구체화시켜가는 것. 그러면서 나와 나의 주위에 대한 사고가 깊어졌으면 한다. 이전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공간과 마주치면서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질문들에 직면하였다. 그 질문들로 나는 자기 삶을 낯설게 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와 나의 주위,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설명시키기 위한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내가 이전에 해왔던 것들을 다시 낯설게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낯설게 보기 전까지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서로의 이야기를 되풀이하며 서로의 질문을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그 질문들을 통해 ‘나’를 둘러싼 더 큰 판을 보기 시작했고 나의 생각, 나의 기억, 나의 매체라고만 생각했던 것들을 ‘나의 관계’ 안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소속해 있는 공간의 구성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갖고 있는 매체로 나를 표현하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 매체를 활용하고 싶다. 매체로 전달할 수 있는 말은 힘이 강력하며 섬세한 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매체를 이용해 나의 관계 속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고 싶다. 지난 2009년 까지만 해도 ‘마무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의 정리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떤 경험을 정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경험과 배움을 정리할 수 있는 건가? 싶다. 지금까지의 나의 경험들을 지난 일으로 남겼던 것처럼 또 다시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을 나의 ‘경험’으로만 남기는 것은 만족스럽지 않은 마무리다. 하자에서 나에게 되풀이 했던 “왜”라는 질문. 상황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했던 고민은 앞으로 내가 마주하게 될 상황에서 또 다시 던질 물음들이다. 앞으로 내 삶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나는 자신에게 계속 질문할 거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일시적인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 행동보다 이제는 내가 속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지속적으로 시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꾸준히 움직이는 행위가 나에게 필요한 시도다. 내 행위가 ‘제 소리와 몸짓’을 담았으면 한다. 또 나의 공간의 시선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움직일 수 있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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