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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내 세계에서의 ‘사소한’ 일상 그리고 표현. 나는 지금 하자작업장학교의 디자인팀에 있다. 길찾기 과정을 끝내고 주니어 과정을 지원하면서 디자인팀을 선택(?그때 나에겐 선택이었다.)한 것은 특별히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연 팀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영상은 예전에 관심이 있어서 도시 속 캠프 같은 것을 통해 해보기도 했지만 그 관심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디자인은 예전부터 패션디자인에 관심이 높았고 실제로 옷을 만들기도 했었기 때문에 별로 의심의 여지없이 디자인 팀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작업장학교에서 하는 디자인이 옷을 만들거나 포토샵 넘버원이 되는 기술을 배우지 않는 곳이라는 것은 길찾기 생활을 통해 알고 있었다. 지원을 하면서 당시 디자인 팀 담임판돌이셨던 세이랜에게 디자인 팀에 관하여 몇가지를 질문했었다.(기억으로는 디자인팀에서는 주로 어떤 것을 하느냐는 질문과 함께 디자인 팀 내의 관계 같은 정말 이상꼴리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그때 나에겐 ‘관계’라는 것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으므로.) 세이랜은 사람들이(물론, 나도 포함) 디자인하면 떠올리는 매우 고정된 이미지를 얘기 해주시면서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을 목표로 하는 곳, 하지만 그곳에서 실제로 하는 일은 매우 구체적인 일도 한다.’라는 언뜻 모호하고 어려운 얘기를 해주셨다. 그렇지만 그 말은 지금은 알 듯 모를 듯 하기도 하면서 지금 내가 공부하고 고민하는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디자인 팀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한 것은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이다. 말 그대로 내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들을 재발견해보고 그것을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주제로 나는 ‘눈’이라는 것을 선택했었다. 원래도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눈에 대해서 관심이 있고 나아가 눈빛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한 주제이다. 사람들하고 꾸준히 교류를 하는 것 역시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눈을 그려달라고 하고 수집을 해서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때 나의 문제는 학교에서 하는 프로젝트나 디자인 팀의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이 ‘나의 디자인’이 되지는 못했다. 방식 또한 일방적이어서 작업을 하면서도, 하고 나서도 혼란을 겪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이 길찾기 2학기를 디자인팀 안에 있으면서 내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한 혼란이 있었는데, 그때 1,2학기들에게 주어진 프로젝트가 바로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이었다. 그때 이 프로젝트는 나에게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작업을 하다 보니 작업하는 것 따로, 혼란스럽고 고민하는 것 따로 되다보니 확실히 이게 내 작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잘 안 되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기엔, 내가 사람들과의 만남을 중요시하고 그 안에서 상대방의 눈을 보게 된 것,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눈을 그려달라고 해서 수집하는 일에서 중요하다고 깨달은 것은 그저 내 스크랩북을 만들기 위한 일방적인 방식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1학기를 마무리하면서 디자인 팀들과 리뷰를 했었는데 그런 코멘트도 많이 들었다. 눈 작업은 앞으로도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꾸준히 해 볼 생각이다. 그때 당시 ‘눈’을 선택한 것은 큰 의미는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도 몇 번씩 해보면서, 메솟에서도 명함에 내 눈을 그려서 교환을 하다 보니 뭔가 하나를 꾸준히 해보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몇몇 사람들에게 눈을 부탁했었다. 그렇게 하면서는 처음의 고민을 잠깐 보류하기도 하고 다시 끄집어내보기도 했더니 지금까지 내가 어떤 작업을 할 때나 생각을 할 때 염두에 두게 되고 지금은 뭔가 내 작업 중 하나의 표현 수단이 되기도 하더라. 그러면서 앞으로 내가 어떤 작업을 하게 될 때도 그 표현 수단이 지속되어서 연결성을 띠는 작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디자인 - ‘○○디자인’ : 디자인, 삶 디자인 본격적인 1학기, 주니어 2학기를 지원하면서는 고민을 많이 했다. 지난 1학기를 돌아보면서 내가 한 게 뭔가 싶기도 하고 개인적인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 동생인 구나가 1학기를 지원하면서 그동안 걔는 내 1학기를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으로 지원을 했을까. 나랑은 다른 사람이기는 하지만. 스무 살을 앞두고 앞으로 뭘 할지, 먹고살 걱정과 맞물려 지원 마감일을 몇 시간 지나서 원서를 냈다. ‘이번에는 탱자탱자 놀지는 말자, 뭐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생각해보니 그건 참 막연한 각오다. 그 각오는 ‘그래서 뭘 할 건데?’라는 질문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학습 계약서를 쓰면서, 개인연구주제를 정하면서 디자인 팀의 내가 할 수 있는 연구주제는 뭘까 고민하다가 1학기 초 세이랜이 해주신 말을 떠올렸다.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말을 풀어보기도 하고 정리를 해보기도 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 한다는 것이 곧 ‘삶을 디자인 하다’라는 것과 같게 느껴졌다. 라이프라는 말을 한국어로 바꾸면 삶, 일생이라는 뜻이다. 거기다 스타일을 더하면 삶의 형식이 되는데 그것은 일상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렇게 오늘의 일상들이 모여진 삶을 ‘디자인’한다고 했을 때는, 디자인에 대한 내안의 정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반 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을 목표로 하는 곳’이라고 했을 때, 그럼 우리 혹은 내가 하고 있는 디자인은 뭘까 하는 궁금증에서 ‘삶 디자인’이라는 주제를 물었다. 삶 디자인. 이것만큼 막연하고 모호한 주제가 어디 있나. 그리고 그에 대한 중간 결론으로 ‘신종 인플루엔자와 같은 외부적인 것으로 인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를 끌고 당기고 하는데, 그 흐름을 타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것.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라는 매우 장황한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시민문화 워크숍인 ‘기후 변화 시대 : LIVING LITERACY’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을 하면서 생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하는 질문과 동일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그러기위한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것과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동안 해왔던 작업과 프로젝트, 만남들 그리고 수료하기 전 하고자하는 것이 그런 부분이다. 그리고 인식을 어떻게 지속하고자하는 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랫마을에서 윗마을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을 타는 3분 동안 그 동선에서 묘한 괴리를 느꼈다. 지역의 사회공헌 차원에서 만들었다던 모노레일, 강원 랜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아랫마을과 윗마을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 사람들은 뭐일까? 하는 질문을 했었다. 모노레일도 디자인의 산물이다. 편리를 위해서 디자인 된 모노레일이 제공하는 3분간의 시간, 거리, 이동은 나에게 꽤나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충격이란 자신의 삶의 흐름을 지켜내고 이어나가는 힘이라던 삶 디자인이 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느껴진 것이었다. 결론을 내리면서 모든 사람들은 외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각자 자신의 삶을 디자인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사는 사람들, 타의로 의해서 ‘사이’, ‘중간’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삶을 디자인 한다는 것이 과연 내가 정의 내린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어떤 환경에서든 그 고민 자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하기에 이 경험은 1학기 때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을 통해 혼란스러웠더라도 ‘눈’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눈을 그렸다면, 정선에 가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눈으로 시선을 갖기를 시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정선에세이, 사진작업을 통해서 이야기를 해보려는 것까지. 그것은 아직 나의 관점이라든가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선의 상황을 보려고 애씀과 동시에 그 상황이 내가 하고 있는 것들과 어떻게 닿아있을지를 고민한 것이다. 시민문화 워크숍 - 프레드 : 디자인 작업으로 표현한다는 것 그리고 전달 이 경험과 더불어 같은 시기에 디자인팀과 영상팀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써보는 작업을 했고 프레드와 함께 그 시나리오의 포스터를 만드는 작업을 했었다. 그 워크숍에는 몇가지 제약이 있었다. 첫째는 수작업. 컴퓨터를 통한 작업을 되도록 하지 말자. 둘째는 정해진 사이즈가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전달’에서 나아가 전달 하기위한 작업자로서의 ‘선택’의 중요함을 알았다. 시민문화 워크숍 때 했던 작업과도 비슷한 게, 그냥 내 얘기를 이것저것 꾸며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의 포스터를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포스터를 보고 ‘이런 내용일 것 같다’를 짐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수작업이다! 잡지나 신문, 폰트까지 어떤 재료를 사용해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가 관건이다. 그것들을 한 포스터에 어떻게 담는지가 퀄리티 역시 결정하는 것 같다. 퀄리티란 직역하면 ‘질’이라는 뜻이다. 내가 작품의 질을 평가하자는 것은 아니고 할 수도 없다. 방식이나 표현의 기술에 있어서 외부에서 평가하는 ‘질’도 퀄리티를 얘기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작업을 하면서 생각하게 된 퀄리티는 질 자체를 생각하고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내가 선택한 재료들(?)이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느냐. 그 부분에 대한 퀄리티를 고민을 했었다. ‘효과적인 전달’에 들어가야 할 것은 메시지, 즉 전달 하고자하는 내용을 이야기한다. ‘어떻게’에서는 재료와 방법을 이야기 한다. 우리가 겪었던 여러 가지 시행착오 역시 ‘메세지의 전달’의 문제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법. 앞서 ‘포스터를 보고 사람들이 내용을 짐작할 수 있어야한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미지를 본다는 것은 글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르게 느껴진다. 글은 풀어서든 단어들을 나열해서든 눈에 읽히기 쉬운 것이 있다. 하지만 이미지는 그것들을 함축적으로 담아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시 표현의 퀄리티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과정이 있으면서 내가 내린 결론에 조금 더 확신이 서기도 했다. 내가 하는 고민들이 그냥 떠도는 고민이 아니라 내 세계를 넓혀가면서 나에 대한 힘을 기르게 해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세계,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디자인으로 이야기 한다는 것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뜬 것 같다. 나는 내가 메솟까지 온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고 저녁에 리뷰를 하면서 그것이 시민문화 워크숍, 개인연구주제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들, 봤던 책, 정보들이 내 세계를 넓혀주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듣고자, 만나고자 메솟에 갔던 것은 ‘다름’의 확인이 아니다. 살면서 겪게 되는 변화, 그 변화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려 하는지에 대한 고민. 그 고민을 나의 일상으로 끌어들여 ‘내가 살고 있는 세계’라고 말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다시 내 입으로 말하고 표현하려고 하는 과정. 정말 내 세계에 ‘나와 너’만 존재 했었던 시절보다 그 ‘나와 너’에 포함되는 범위가 넓어지면서 내 삶이라는 것이 그저 ‘나만 잘 살면 되지’라는 모든 것이 오직 나를 시작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나는 나에게도 어떤 변화가 일었다고 생각한다. 그 변화 안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았고, 내가 인식한 상황을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삶 디자인’의 내가 ‘삶’에 더 집중하게 되어서 생각하게 되고 내 삶의 범위라는 것이 어디까지를 얘기하는 것인지,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내 삶의 범위라는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내가 갖게 되는 어떤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것을 항상 염두에 두되, 이런 고민들을 앞으로 끊지 않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삶 디자인’을 풀어가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삶’이란 말을 조금 더 좁혀보면 ‘일상’이 된다. 그리고 그 일상들이 모이고 모여 삶을 이루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일상을 얘기 할 때 어디까지를 이야기할지인 것이다. 그건 내가 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내가 함께 살고 있다고 했을 때,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어떤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봤을 때, 내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나의 일상을 넘어 앞으로 일상의 이야기로 가져올 것인가이다. ) 디자인 : 디자인을 통한 만남, 실질적인 디자인, 삶 디자인에 대한 정리, 앞으로 노먼 포터의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디자이너로서 가져야할 역할, 책임, 디자인을 읽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나는 내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디자인을 통한 표현은 방법으로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디자인을 완전한 내 업으로 삼는다는 생각은 아직 해보지 못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내가 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내가 이 책을 스스로 디자이너를 염두에 두고 본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의 작업과 개인연구주제를 하면서 나와 디자인 팀이 어떤 이야기를 작업을 통해 이야기 했을 때, 전달-방식에 이어서 그 것이 가지게 되는 책임감, 역할들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고 그런 관점에서 나는 이 책을 보았다. 디자인은 작업을 했다고 끝나는 게 아닌 것 같다. 어떤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에 대한 나의 충분한 이해, 그리고 거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아야하고 그것을 또 표현해야한다. 표현에서는 앞서 말한 ‘효과적인 전달’을 위한 고민, 그리고 실제 작업으로 옮기는 과정이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을 때, 그들이 나의 이미지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때에 따라서는 읽어내는 대상에게 또 다른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와 후에 그 디자인이 갖게될 역할과 책임까지. 여기까지가 ‘디자인 작업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메솟에서 디자인팀으로서 ‘디자인팀 ACTIVITY’를 진행했었다.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내 시선을 갖는 시도를 하고 이야기를 작업해보는 것들을 했다면, 이번엔 작업을 통한 만남을 했다. 실제 메솟에서 ‘삶’에 대해서 집중해서 생각하려는 것들이 있었다면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각자 가지전 생각했던 질문들을 가지고 버마 친구들과 디자인팀ACTIVITY를 준비했다. 패션 디자인에서 시작한 나의 디자인에 관한 관심은 그동안의 경험과 공부를 통해 변화했다. 패션‘디자인’의 디자인은 방법과 과정의 목표가 매우 뚜렷하며 그 단어로 하여금 나에게 디자인에 대한 고정된 관념을 갖게 한다. 하지만 ‘디자인이 뭘까?’에서부터 시작한 디자인은 지금 나에게 입고 만드는 옷이 아닌 ‘삶’의 영역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 - 정선 - 시민문화 워크숍 - 메솟(ACTIVITY). 저 흐름 속에서 나도 내 경험을 일상으로 끌어들여 내가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아가고 표현하려는 과정이 각각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연결성을 띨 수 있도록 애쓴 것 같다. 에세이를 쓰는 동안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고 오늘로서 다 읽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맞물리는 부분도 있었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부분도 있었다. 또는 ‘이런 것이!?’하는 것도. 감동하게 된 부분도 있었다. 마지막에 본인이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부르게 된 부분 읽으면서 나도 ‘디자이너’에 관한 생각을 좀 했다. 내가 너무 디자이‘너’라는 단어에 묶여있는 것은 아닌가. 처음에 갖았던 ‘디자인’에 대한 고정관념처럼 이것 역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설명은 자기가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던 것, 지금까지의 고민과 경험을 통해 또 다른 디자인을 얘기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디자이너’에 대한 지금 나의 생각도 앞으로의 내 일상들을 통해 변할 수 있지 않나?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디자인 해보면서 그것에 대한 정의도 한 번 내려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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