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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세계의 한 조각이 되어 움직이다 지난 9월, season1을 마무리 짓는 학기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같이 들어와서 길찾기부터 주니어까지 꼬박 2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떠났고, 나는 혼자 절절 매며 조급함 속에 남아있었다. 먼저 떠나간 사람들은 또 다른 곳에서 자신이 있을 자리를 마련하느라 대부분 뒤를 돌아볼 여유를 금방 갖지 못한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못내 서운했다. 그 마음을 나 혼자 갖고 있다는 사실이 싫어 외롭다고 보낸 문자에 “걔네 다 나가면 이제 네가 대빵인게지. 의젓한 선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외로울 틈 없이 바빠야지.” 라는 답장이 왔다. 최고 학기에 올라선 내가 어떤 모습으로 다른 주니어들에게 보일까 하는 걱정보다 더 중요했던 건 다시 이 공간과 새로운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덧, 수료를 준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자에서 보냈던 지난 3년여의 시간을 떠올리고 에세이를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뭘 하면서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시간도 있었고, 일부러 떠올리지 않는 것도 있었다. 내가 보냈던 시간들을 하나하나 기억하지는 못 하지만 적어도 그 시간들을 부정하는 것만큼은 하기 싫었다. 그건 마치 지금 내 모습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 하자 건물과 마주보며 스스로에게 힘을 실었던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그 때의 힘과 설렘이 다른 무게로 다시 찾아오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경운기를 끌었다
길찾기를 마치고 디자인팀에서 주니어과정을 시작했다. 그 때는 내가 손바닥 안에 쥐고 있는 것에 대한 어떤 종류의 생각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것이 ‘매체’라는 생각은 더더욱 내 머릿속에 없었다. 펜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에게는 익숙한 것이었고 좋아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디자인팀으로 같이 들어온 내 친구들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그림을, 정말 쉽게 잘 그렸다. 그걸 보면서 뒤쳐진다는 느낌이 들었고, 처음으로 내 속도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느려. 여기엔 나보다 잘 하고 속도도 빠른 애들이 많으니까 난 없어도 되겠다,” 라는 마음이 나를 뒤덮었고 결국 사람도, 상황도 싫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느린 속도를 탓하며 도망 갈 곳을 만든 것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그 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른 사람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책했고 나의 하루 중 절반은 늘 도망 중 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그림책을 하나 만들었고, 얹혀가는 것이긴 했지만 전시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은 그저 우리끼리 마음이 맞아서 그림책을 하나 만들겠다고 한 것이었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라는 떨떠름한 마음과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는 두려움이 컸다. 한편으로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과 함께 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고, 이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 하는 내 모습에 당황스러움과 불편함을 느꼈다. 그렇게 주니어 첫 학기는 나에게 속도에 대한 열등감과 자괴감, 당혹스러움을 아무런 해결방법 없이 툭 던져놓은 채로 지나갔다.
그리고 주니어 2학기, 당시 영상팀인 캐치스코프는 작업장학교 Promotion Video를 제작하기로 했고, 내가 있던 디자인팀 TOT(Thoughtful Eyes Of Guerrilla Teens)에게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가 하자에 들어오기 전에 만들어졌던 ‘고래이야기’에 담겨져 있는 당시 청소년들의 상황과 지금 우리의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 현재 우리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자작업장학교를 소개 할 때 보여 줄 수 있는 영상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후 꽤 많은 수의 사람이 모여서 머리를 쥐어짜며 이야기를 했다. 사실 그 때의 나는 내가 십대라는, 청소년이라는 자각도 없었고 단순히 하자를, 작업장학교를 알리는 것에만 필요한 영상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뼈대를 만들고 캐릭터를 설정하고 이야기를 붙여가는 과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고, 회의는 늘 모두가 지친 상태에서 끝이 났다. 어찌되었든 P.V는 완성됐고, 상영회도 가졌지만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건지, 그 이야기가 진심인지 아닌지, 하는 질문과 의심은 내 안에 묻혔다. 그리고 내 몫으로 남겨진 것은 그 질문들과 맞닥뜨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때는 맞닥뜨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을 뿐더러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게 다가온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이해하는 것이 달라 부딪히는 부분이 생겨도 서로 눈치를 보며 할 말을 하지 못 하고 우물쭈물 넘어갔던 것들이 나중에 가서는 큰 불편함이 되었다.
학기 마무리를 하면서 나는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동안 작업장학교에 있으면서 했던 프로젝트 중에서 내가 공감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을 수가 없었고, 1,2학기를 되짚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상태로 하자에 있는 것은 더 이상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휴학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휴학을 했지만 그래도 겁이 났던 것은 쉬는 동안 하자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잘 알 수 없고 그 것이 내가 복학했을 때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큰 부분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다시 하자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것이었다.
휴학을 하고 거의 매일같이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읽고 싶은 책도 맘껏 읽었고, 그리고 싶은 그림도 충분히 그렸다.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편안했고, 그 시간에 충실했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매일매일 머릿속을 비우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것이 얼마나 지났을까. 사실 머릿속에서 제일 지우고 싶었던 하자에서의 생활이 자꾸 비집고 올라왔다. 하자에 있는 시간동안 무언가 했다고 말하기 어려웠던 까닭에 기억하기조차 싫었고, 그래서 휴학 기간 동안 앞으로는 정말 ‘할 일도 하고 할 말도 꼭 하자’ 는 결심을 했다. 이 결심은 나에게 하는 약속이자 일종의 으름장과도 같았다. 지금 생각하기에도 매우 크고 어려운 말이지만 휴학 중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자랑스럽게 내보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 때는 이 정도 다짐도 안 하고 쉬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깨닫는 것도 하나 없이 시간만 죽이다가 다시 하자로 돌아가서 또 아무것도 안 하다가 끝날 것 같다는 걱정에서 한 결심이 컸다. 담임들이, 친구들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들에 그 전보다 더 솔직히, 진심으로 대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움직임으로
다시 하자로 왔을 때 ‘진심’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학습계약서에 썼다. 휴학 당시 생각하기를, 나에게 지금 가지고 있는 마음 그대로를 솔직하게 보이는 것이 필요하기도 했고, 그것부터 시작하게 된다면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했다. 그리고 좀 더 지나면 꺼내놓은 이야기를 내가 가지고 있는 매체로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나 행동을 취하기 전에 마음에 진심을 담아서 움직여야 된다고 생각했다.
“춘천으로 가는 길 위, 그 길을 달리는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그냥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다. 기차든 버스든 움직이는 경로는 늘 같다. 늘 똑같은 길을 가는데도 매번 보이는 게 다르다.”
3학기에 들어와서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 이라는 프로젝트를 했다. 이 프로젝트는 일상에서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 중에 중요하게 삼고 싶은 주제를 가지고 스크랩북 형식으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나에게 사소하게 지나가는 것 중 하나는 매주 주말 춘천과 서울을 오가는 것이었다. 나의 시선이 들어가 있는 시공간의 변화를 보는 게 좋았고, 그럴 때는 그림보다 사진이 더 효과적으로 표현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오가는 길을 연속사진으로 기록했다. 계속 신경을 쓰면서 다녔더니 그 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더 잘 보이기도, 기억 속에 있던 것과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 혼자 늘 보았던 것, 혼자만 간직하고 있었던 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그제야 비로소 ‘움직임’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움직임 속에서 시간이 발생하고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보이는 움직임들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움직이는 화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앞으로는 좀 더 나아가서 움직임과 함께 ‘발생하는 시간’ 과 사람들의 마음이 동요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 알고 싶다”
‘움직임’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개인 연구주제 발표를 하면서 ‘움직임’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매학기 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을 겪으면서 ‘마음이 움직이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물론 그 전에도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마음에 따른 사람들의 움직임, 마음이 움직여서 일어나는 변화,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마음 이라는 것을 중심에 놓고 생각한 것도, 입 밖으로 꺼낸 것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움직임과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사고와 감정이 세계의 한 조각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나의 내면에 대해 치유하고 행동하는 것은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며 치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 시인 조원규
세계의 한 조각이라는 말이 나를 설레게 하지 않았을까. 나의 움직임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통해 타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이 나를 동요하게 했다. 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워크숍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을 통해 조원규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생각했던 ‘마음이 매일매일 움직인다’라는 것은 단순한 감정의 변화들에 대한 표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감정만을 생각하지 않고 그 안에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고 그 말을 어떻게 표현 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고 있다.
하자에 오기 전 나는 늘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지만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 내가 ‘매체’를 다룬다는 것에 대해 깊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하자에 와서 비로소 매체를, 도구를 사용하는 의미에 대해 질문하면서 매체와 나를 이어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업자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며 그것이 곧 ‘작업자의 언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주니어 과정 중 총 3학기를 디자인팀에 있으면서 일러스트, 디자인 작업 등의 정지된 상태의 이미지작업들을 해왔다. 그런데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전까지 해왔던 작업방식을 넘어서 이미지를 움직일 수 있는 ‘영상작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이후 영상팀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따라 매체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태국 메솟과 멜라캠프에서 나는 영상팀과 함께 짧은 영상을 만드는 액티비티를 진행했었다. 이 과정에서 히옥스로부터 ‘매체에 너무 몰두해서 사람을 보지 못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코멘트를 들었다. 코멘트를 듣기 전까지 나는 언제 또 다시 매체가 바뀔지 모르니 내 손에 다른 매체가 쥐어지기 전까지 얼른 카메라를 내 것으로 만들어놔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는 내 것으로 만들고, 채운다는 것이 단순히 촬영을 많이 하고, 편집기술을 익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체에 눌리는 작업자가 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지금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까 카메라에만 집중해야 된다는 알 수 없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조급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 보니 그것이 왜 중요한지, 기록을 하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하나도 알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어느 새 무감각하게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와 마주했다.
카메라를 처음 잡았을 때는 내가 잘 다루지 못 할까봐 두려웠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작업장학교를 수료하면 지금보다는 카메라에 소원해질 것 같다는 두려움에 조금은 자포자기 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카메라를 나보다 먼저 수료시킬 뻔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내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이대로 생각을 흘려보내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운 일이고, 그 동안 함께 해왔던 영상팀 사람들에게도 큰 잘못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매체에 눌리지 않고 작업한다는 의미를 아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하다
'나'에게 '운동’ 이 이렇게 중요한 키워드가 된 지는 얼마 안 되었다. 그렇지만 운동이라는 말 자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익숙한 단어 중 하나였다. 내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봐왔음에도 멀리 하고 싶은 ‘운동’이라는 것은 온 몸을 써서 격렬하게 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운동을 하는 방식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단어를 쓰는 것조차 불편해하면서 ‘운동’은 내 삶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중 지난 가을학기에 진행된 시민문화워크숍을 통해 여러 시인들을 만났다. 여섯 명의 시인들은 시를 쓰고, 시민운동을 하고,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이슈를 다루기도 하면서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시인들을 만나면서 운동이 왜, 누구에게서 어떻게 시작되고 이뤄지는지, 그 움직임을 어떻게 하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도 ‘운동’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들을 보면서 ‘운동’은 꼭 온 몸을 써서 격렬하게 상대방과 대치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았다.
‘운동’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기 시작 할 즈음 우리는 보름 정도의 일정을 가지고 현장학습을 떠났다. 홍콩에서는 MaD (Make a Difference) 컨퍼런스에 참가했고, 이후 태국 국경에 위치한 메솟과 멜라캠프에 가서 열흘 정도 되는 시간을 보냈다. 메솟은 버마의 군부독재 아래에서 도망쳐 나온 버마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우리는 ID카드가 없으면 쉽게 돌아다닐 수가 없는 공식적으로는 어디에도 등록되어있지 않은 ‘난민’들을 만나게 되었다.
메솟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와 비슷한 또래들이 다니는 학교인 CDC(Children Development Center) 와 LMTC(Leadership Management Training Collage), 그리고 열 세 곳의 NGO들을 방문했다. 우리가 만난 NGO들을 통해 버마의 현실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교육문제, 그들이 하고 있는 ‘운동방식’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NGO들은 공통적으로 청소년들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민족을 위한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지도자’는 곧 ‘정치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TV를 통해 보는 ‘정치가’들의 모습은 서로 치고받으면서 싸우고, 국민들에게 칭찬보다 정치를 잘 못 한다고 욕을 먹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지도자’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고, 내 또래 아이들에게서도 나중에 정치가가 되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 생각이 겹쳐지면서 나는 그들 전부가 입을 모아 얘기하는 ‘지도자’란 무엇인지, 그들은 도대체 어떤 지도자가 되겠다고 말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우리가 메솟과 멜라캠프에서 그들과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눈앞에 보이는 큰 차이들만을 가지고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쉽게 행동하고 머릿속에서 판단을 하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임에도 배움을 지속하고자 했고, 자신들의 배움이 버마의 민주화를 위한 작은 실천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배움 자체가 하나의 ‘운동’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운동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마주 할 수 있는
나는 지금도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을 마주하는 것, 모르고 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머릿속으로 확 들어오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이번 현장학습 내내 속으로 끙끙 앓았던 것도 내 힘으로 어떻게 해결 할 수 없는 상황들이 눈앞에 계속해서 펼쳐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많은 곳에 자신들의 상황을 알려주기를 바랐다. 우리는 현장학습을 떠나기 전 전체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을 세우면서 카메라를 통해 드러날 그들의 신분노출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 또한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카메라 앞에서 열심히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곳에서 그들을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영상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다큐멘터리 완성 후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영상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지점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은 버마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앞으로 더 크고, 복잡한 문제들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때마다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무엇을 통해, 누구에게 알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지속하다보면 나름의 방법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이제 막 발걸음을 뗐고, 앞으로 어디로 생각이 뻗어나갈지, 무엇으로 운동을 말 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내가 계속해서 생각해온 ‘운동’ 이라는 것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무감각한 말로서만 존재하지 않기를,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운동’의 의미를 잊지 않고, 그것에 앞으로 겪을 경험과 만남들이 합쳐지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지금 운동을 보는 사람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곧고 굳은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을 어디에 보태고, 누구와 같이 움직일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지금 내가 손바닥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은 오랜 시간을 사회 안에서 싸우고 부딪히며 얻은 것은 아니다. 이 거대한 사회와 비교하자면 터무니없이 작게 보일 수 있는 ‘하자’ 라는 공간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시대를 읽는 눈을 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고, 하고픈 이야기가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하게 하고, 자신 앞에 거대하게 서 있는 벽을 볼 수 있게 했다. 그 동안 내가 줄곧 생각해왔던 벽은 다른 사람, 다른 환경이었고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탓해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내가 나를 좀 더 진지하게 마주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제야 ‘벽’은 나의 자책과 불안감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수료를 생각하는 지금, 그 벽을 하나도 남김없이 깨부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벽을 뚫고 지나가기 위해 시동을 슬슬 걸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하자에서 보낸 3년여의 학습 과정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하자에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의 속도가 늘 부러웠다.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여태껏 나에게 콤플렉스였고, 늘 조급한 마음을 가지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흐름을 알고 조급한 마음을 앞세워서 욕심을 내기보다는 그 흐름에 맞춰서 하나하나 다져가고, 내가 지금 있는 곳만 보는 것이 아닌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같이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행동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시선을 가지고 싶다. 지금까지 보낸 시간은 나에게 남들보다 조금 느려도 내가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그 곳에서 하나씩 알아가고 깨닫는 것을 멈추지 않게 용기를 주었다.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라는 질문의 답도 마주하는 순간마다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매 순간 부딪히는 문제와 질문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나의 상황에서 유연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을 갖고 싶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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