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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민문화 워크숍글 수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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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소한’ 일상과 표현.
1. 길 찾기 2학기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지금 하자작업장학교의 디자인팀에 있다. 길찾기 과정을 끝내고 주니어 과정을 지원하면서 디자인팀에 들어온 것은 특별히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공연팀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영상은 예전에 관심이 있어서 도시 속 캠프 같은 것을 통해 해보기도 했지만 그 관심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예전부터 패션디자인에 관심이 있었고 실제로 옷을 만들기도 했기 때문에 의심 할 여지없이 디자인팀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작업장학교에서 하는 디자인이 옷을 만들거나 포토샵 넘버원이 되는 기술을 배우지 않는 곳이라는 것은 길찾기 생활을 통해 알고 있었다.
지원을 하면서 당시 디자인 팀 담임판돌이셨던 세이랜에게 디자인 팀에 관하여 몇 가지를 질문했었다.(기억으로는 디자인팀에서는 주로 어떤 것을 하느냐는 질문과 함께 디자인 팀 내의 관계 같은 정말 이상꼴리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 세이랜은 사람들이(물론, 나도 포함) 디자인하면 떠올리는 매우 고정된 이미지를 얘기 해주시면서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을 목표로 하는 곳, 하지만 그곳에서 실제로 하는 일은 매우 구체적인 일도 한다.’라는 언뜻 모호하고 어려운 얘기를 해주셨다. 그렇지만 그 말은 지금은 알 듯 모를 듯 하면서 지금 내가 고민하는 가장 큰 화두가 되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
내가 디자인 팀에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한 것은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 프로젝트였다. 말 그대로 내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들을 재발견해보고 그것을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 주제로 나는 ‘눈’이라는 것을 선택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눈과 눈빛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한 주제였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 역시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기가 생각하는 눈을 그려달라고 하고 수집을 해서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디자인 팀 1,2 학기들에게는 의무였기 때문에 나에겐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내가 디자인 팀에서 뭘 하는 건지, 디자인이 뭔지에 대해 헷갈렸기 때문에 작업을 하면서도 이게 맞는 것인지,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다. 또 하나는, 눈 그림을 수집을 하기 위해 내가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방법'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수집을 부탁하려면 내가 이 작업을 하는 이유를 잘 전달해서 상대방이 나에게 눈을 그려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게 끔 해야 하는데 나는 우선은 수집을 하는 데에 급급했었다. 그런 것을 나는 '일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이런 생각이 잘 정리 되지 않았고 내 안에서도 충분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눈 작업을 하는 것이 내가 디자인 팀에서 뭘 하고 있는지를 알기란 힘들었다.
그 후로도 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몇 번 눈 그림을 수집했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나에게 '눈'이 뭐냐는 것이다. 눈은 단순히 무언가를 '보는' 기능을 하고, 나는 그 기능에 대해서 당연하게 느끼고 있다. '봄'이라는 것에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본다는 것은 '시선을 주다'라는 뜻이다. 내가 시선을 주는 것은 관심을 표하는 일이다. 언뜻 추상적이게 들리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눈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기엔 '추상적임'이 크게 작용한다. 설명하기에 어려운 추상적임이 눈을 통해 여러 가지 해보고 싶은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나의 작업을 할 때 '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앞으로 눈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면서 그 추상적임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먼~훗날 내가 한 작업들을 돌이켜봤을 때 내 작업들이 눈으로 연결되는 어떤 연결성을 띄었으면 하는 상상도 해본다.
디자인, 삶 디자인
본격적인 1학기, 주니어 2학기를 지원하면서는 고민을 많이 했다. 지난 1학기를 돌아보면서 내가 한 게 뭔가 싶기도 하고 스무 살을 앞두고 앞으로 뭘 할지, 먹고살 걱정과 맞물려 지원 마감일을 몇 시간 넘겨서야 원서를 냈다. ‘이번에는 탱자탱자 놀지는 말자, 뭐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생각해보니 그건 참 막연한 각오다. 그 각오는 ‘그래서 뭘 할 건데?’라는 질문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디자인 팀에서 뭘 하는 걸까?' 하는 고민을 1학기 때부터 여전히 하고 있었다. 그래서 디자인에 관련된 주제를 공부하게 되면 그 고민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1학기 초 세이랜이 해주신 말을 떠올렸다.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말을 풀어보기도 하고 정리를 해보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 한다는 것이 곧 ‘삶을 디자인 하다’라는 것과 같게 느껴졌다. 라이프스타일을 직역하면 삶의 형식이 되는데 그것은 일상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래서 '삶 디자인'이란 일상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일상을 디자인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 일상을 디자인 하는 것과 실제로 내가 일러스트레이터나 포토샵으로 하는 디자인은 어떤 차이일까 하는 궁금증에서 '삶 디자인'을 내 연구주제로 결정했다.
삶 디자인. 이것만큼 막연하고 모호한 주제가 어디 있나. 그 막연함을 조금이라도 설명해 보려고 책을 읽기도 하고 실제로 ‘삶 디자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그것을 실천(?)하고 계시는 분의 블로그를 염탐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그에 대한 중간 결론으로 ‘신종 인플루엔자와 같은 외부적인 것으로 인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를 끌고 당기고 하는데, 그 흐름을 타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것.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라는 장황한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시민문화 워크숍인 ‘기후 변화 시대 : LIVING LITERACY’ ‘세계를 구하는 시인들’을 하면서 생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하는 질문과 동일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그러기위한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것과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동안 해왔던 작업과 프로젝트, 만남들 그리고 수료하기 전 하고자하는 것이 그런 부분이다. 그리고 인식을 어떻게 지속하고자하는 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선 : 내 주변의 것들을 보려는 시도, 표현
아랫마을에서 윗마을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을 타는 3분 동안 그 동선에서 묘한 괴리를 느꼈다. 지역의 사회공헌 차원에서 만들었다던 모노레일, 강원 랜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아랫마을과 윗마을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 사람들은 뭐일까? 하는 질문을 했었다. 모노레일도 디자인의 산물이다. 편리를 위해서 디자인 된 모노레일이 제공하는 3분간의 시간, 거리, 이동은 나에게 꽤나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충격이란 자신의 삶의 흐름을 지켜내고 이어나가는 힘이라던 삶 디자인이 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느껴진 것이었다. 결론을 내리면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로부터 각자 자신의 삶을 디자인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3분의 사이에 사는 사람들, 타의로 의해서 ‘사이’, ‘중간’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삶을 디자인 한다는 것이 과연 내가 정의 내린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어떤 환경에서든 그 고민 자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경험은 1학기 때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을 통해 ‘눈’ 자체를 그렸다면, 정선에 가서는 글을 써보고 사진작업을 해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눈으로 시선을 갖기를 시도 했다. 그 과정은 아직 나의 관점이라든가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정선의 상황을 보려고 애씀과 동시에 그 상황이 내가 하고 있는 것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지를 고민한 것이다.
시민문화 워크숍 - 프레드 : 디자인 작업으로 표현한다는 것 그리고 전달
시민문화 워크숍에서는 총 7분의 시인을 만났다. 시인들은 운동가, 시인, 대학교수, 의사, 네이버 이사, 예술가 등 각각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이다. 하지만 그 일들을 통해서 하시는 얘기는 우리들로 하여금 '이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했고 시인들 역시 하고 계신 일들을 통해 그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때, 디자인팀은 이 워크숍의 포스터와 워크숍 디자인을 맡았는데 한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그날 있을 시인에 대해서, 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포스터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하나의 디자인 작업이 나오기 까지는 다양한 과정들이 있다.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떤 이야기가 담겨야 하는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 하는 부분은 뭔지,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지. 이 과정에 담긴 이야기가 바로 나와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것을 어떻게 잘 지속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내 자신이 이 시대의 ‘시민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기도 했다. 이것은 나에게, 디자인팀에게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후에 디자인팀에 대해 설명을 하게 될 때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디자인팀은 ‘팀으로서’ 작업을 해 본 경험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가 어떤 디자인 작업을 했을 때 어떻게 잘 표현하면 좋을지, 그리고 그 표현된 디자인 작업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것들이 어떻게 보여 지고 받아들여지는지를 알았다. 우리가 하는 작업은 실로 매우 구체적이었다.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디자인팀의 시점으로 그려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한 방 먹었던 것은 우리의 작업을 보여주고 난 후였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한 작업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프로젝트의 포스터 같은 디자인 작업을 맡았을 때는 우리의 작업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 포스터로 달랑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포스터는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야하고 프로젝트의 분위기를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이 경험과 더불어 같은 시기에 디자인팀과 영상팀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써보는 작업을 했고 프레드와 함께 그 시나리오의 포스터를 만드는 작업을 했었다. (프레드의 원래 이름은 프레데릭 미숑이고 프랑스 사람이다. 그리고 프레드는 예전에 시민문화 워크숍에서 뵈었던 예술가 민욱과 함께 하자센터의 아트 디렉터셨다.) 그 워크숍에는 몇 가지 제약이 있었다. 첫째는 수작업. 컴퓨터를 통한 작업을 되도록 하지 말자. 그래서 잡지나 신문, 폰트까지 선택을 해야 한다. 둘째는 정해진 사이즈가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전달’에서 나아가 전달 하기위한 작업자로서의 ‘선택’의 중요함을 알았다. 시민문화 워크숍 때 했던 작업과도 비슷한 점은, 그냥 내 얘기를 이것저것 꾸며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의 포스터를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포스터를 보고 ‘이런 내용일 것 같다’를 짐작할 수 있게 해야 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메세지'이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지가 무척 중요하다. 또 하나는 우리가 하는 작업은 '이미지'작업이라는 것. 이미지를 본다는 것은 글을 읽는 것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글을 말하는 것을 옮겨서 풀어서든 단어들을 나열해서든 보는 이로 하여금 눈에 읽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지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함축적으로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메세지 전달'과 '표현'이 중요하다. 프레드와 작업을 하면서는 이 부분에 대해 얘기도 많이 하면서 나도 실제로 내 포스터를 만들면서 그 부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다. 시민문화 워크숍에서 전달에 있어서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도 이런 부분이다. 그리고 '퀄리티'에 대한 얘기를 한 것 역시 메세지 전달과 표현에 있어서의 퀄리티를 얘기 했었다. 그 퀄리티란 내가 앞으로 디자인을 하면서 이미지로 나타내는 작업을 할 때도 계속 신경써야하는 부분이다. 나 혼자 보고 즐거우려면 상관이 없지만 내가 이 에세이에서 디자인과 표현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은 나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됨으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에 조금 더 확신이 서기도 했다. 내가 하는 고민들이 그냥 떠도는 고민이 아니라 내 세계를 넓혀가면서 나에 대한 힘을 기르게 해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세계,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디자인으로 이야기 한다는 것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뜬 것 같다.
메솟 : 다름 - 함께 살고 있다는 것 - 경험의 정리
반 학기가 지나고 우리는 태국 메솟 국경지대에 있는 버마 난민 캠프에 갔다. 그곳의 사람들은 버마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도 있고 말 그대로 ‘난민’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가기 전, ‘가서 서로의 다름만 확인하고 오지는 말자’라는 말이 내 머릿속에서 윙윙거렸다. 메솟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ACTIVITY를 하면서 ‘메솟에 왜 왔냐, 여기서 뭘 하고 싶은 거냐’라는 질문을 들으면서 혼란이 있었다. 메솟에서 친구들은 종종 ‘너희에겐 기회가 있다. 그러니 행복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기회가 없다’는 말을 했었고 그런 말은 마치 내가 넓혀왔다고 믿었던 주변 세계에 대한 의미를 또다시 자꾸만 되묻게 되는 것 같아서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확실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생활환경은 있는 것 같다. 나와 메솟 친구들은 사는 곳 자체가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날씨도 다르고 먹게 되는 음식, 옷, 글자도 다르다. 따라서 생활 습관도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그들은 '난민'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ID카드가 있어야만 그나마 제한된 이동을 할 수 있고 SPDC(버마군사정부)와 태국정부 때문에 정치 관련 얘기나 자신들의 입장에서 얘기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자유롭게 표현하기 어렵다. 또한 그들은 소수민족의 인권을 유린하는 정부에 대항하여 자신의 민족을 지켜낼 수 있는 지도자, 선생님, 과학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계획과 조건, 실행은 이루어지지 않는 구조가 있다. 디자인팀 ACTIVITY를 같이 했던 친구들 중에 퍼투와 루루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가족이 모두 멜라 캠프 안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은 자기 민족을 위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 민족들이 너무나 가난하고 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또 버마에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돌아가고 싶지만 그곳은 우리들에게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그런 구조가 나와 그들이 물리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인 것 같다. 그런 물리적인 조건에서 느껴지는 다름은 있지만 그것을 확인하고자 메솟에 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메솟까지 온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고 저녁에 리뷰를 하면서 그것이 시민문화 워크숍, 개인연구주제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들, 봤던 책, 정보들이 내 세계를 넓혀주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어릴 적, 정말 ‘나’가 가장 중요했을 때의 나의 세계엔 나와 ‘너’뿐이었다. 나와 가족, 친구 그리고 학교가 있었다. 그러나 그 가족이 머무르고 있는 집, 친구를 통해서, 학교 안에는 또 그것들을 통한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는(이상한 표현이다.)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 청소년카드라는 것을 만들어야했고 컴퓨터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드나들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과목들이 있었지만(아름다운 말과 글, 민주시민 등) 밖에 나가 뛰노는 것에서 이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이런 변화들이 사건으로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내 이야기로 만들어 가기 때문에 그 변화를 내 일상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내가 메솟에 갔던 것은 '다름'에 대한 확인이 아니다. 정말 내 세계에 '나와 너(이때 '너'의 범위는 가족, 학교 등 내가 한정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만 존재 했던 시절에서 '나 와 너'에 포함된 사람, 그 사람들을 둘러싼 환경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것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려 하는지에 대한 고민, 그 고민을 나의 일상으로 끌어들여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 그리고 다시 내 입으로 말하고 표현하려 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 인식하게 된 사람들과 환경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 것이다. 내가 '삶'에 더 집중해 생각하고 내 삶의 디자인을 얘기할 때 '내 삶'이라는 부분을 과연 어디까지를 말할 것인지 그 안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그 범위는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살면서 만들게 되는 어떤 흐름에 따라 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것을 항상 염두에 두되, 지금하고 있는 고민들을 지속시키는 것이 내가 '삶 디자인'을 풀어나갈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이란 말을 조금 더 좁혀보면 ‘일상’이 된다. 그리고 그 일상들은 모이고 모여 삶을 이룬다. 내가 내 일상을 얘기 할 때 어디까지를 이야기 할 것인지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하고 그것을 정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그들과 내가 이 시대에 함께 살고 있고, 내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 스스로 봤을 때, 내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나의 일상으로 가져올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2. 디자인, 앞으로
디자인 : 디자인을 통한 만남, 실질적인 디자인, 삶 디자인에 대한 정리, 앞으로
노먼 포터의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디자이너로서 가져야할 역할, 책임, 디자인을 읽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나는 내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표현방법으로 디자인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디자인을 완전한 내 업으로 삼는다는 생각은 아직 해보지 못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내가 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작업과 개인연구주제를 하면서 나와 디자인팀이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그것의 전달방식과 그 것이 가지게 되는 책임감, 역할들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고 그런 관점에서 나는 이 책을 보았다. 디자인은 작업을 했다고 끝나는 게 아닌 것 같다. 어떤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에 대한 나의 충분한 이해, 그리고 거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아야하고 그것을 또 표현해야한다. 나는 디자인이라는 매체를 가진 사람이다. 그 매체는 바뀔 수도 있으며 한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메솟에서는 모두들 실제 메솟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려는 것들이 있었다면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각자 가기전 생각했던 질문들을 가지고 '디자인팀 ACTIVITY'를 진행했다.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내 시선을 갖는 시도를 했다면, 이번에는 작업을 통한 만남을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곳에 와서 디자인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하는 질문과 동시에 ACTIVITY를 통한 만남 자체를 디자인으로 본다면, 우리의 만남은 ACTIVITY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작업들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마웅저 선생님께서 메솟에 하자 센터같은 청소년을 위한 센터를 만드신다면서 직업 프로그램으로 미용기술과 오토바이 수리 같은 엔지니어기술을 배우게 하고 싶다고 하셨다. 이곳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렇게 ‘실질적인 기술’인 것이다. 그 기술을 터득해서 메솟이나 버마에 취직을 해서 당장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끔. 사실, 맥락은 다를 수 있지만 요즘 나는 그 ‘실질적인 기술’에 대한 필요를 느낀다. 아니 뭐, 필요라기보다 나도 뭔가 하나쯤 잘 하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디자인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 방법을 통해 ‘하고 싶은 일 하며 먹고살기’가 실현되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 나의 ‘삶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때에, 하고 싶은 것 중 무엇으로 표현하느냐가 중요한데 나는 그 매체가 디자인이었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그 실질적인 기술을 가지고 메솟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면, 나는 이제 디자인이라는 매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내가 살고 있는 한국-서울-광명에서 메솟을 연결, 매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고 싶다는 뜻) 그 경우 디자인은 메솟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디자인'이라는 것을 필요하거나, 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디자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자로 돌아와서 '문화 작업자', '문화 매개자'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이런 고민을 더 하고 있다. 실질적인 기술도 내가 하고자하는 일을 수행하려면 그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메솟에서 '우리는 디자인작업을 하지만 그 전에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지, 왜,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했는데, 지금까지 '삶'에 대해 더 들여다보고자 했다면 이런 고민들을 통해 이제는 '디자인'이라는 매체에 더 들여다보려고 한다.
패션 디자인에서 시작한 나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그동안의 경험과 공부를 통해 변화했다. 패션‘디자인’의 디자인은 방법과 과정의 목표가 매우 뚜렷하며 그 단어로 하여금 나에게 디자인에 대한 고정된 관념을 갖게 한다. 하지만 ‘디자인이 뭘까?’에서부터 시작한 디자인은 지금 나에게 입고 만드는 옷이 아닌 ‘삶’의 영역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까지 고민했던 삶 디자인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정의내릴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외부에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내 삶을 이어나가고 지켜나가는 힘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삶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란, 자신의 일상을 만들고 그걸 또 지속,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중간 결론을 내렸을 때는 지속하는 것까지로 생각을 했었지만 그 후의 정선과 메솟의 경험에서 생각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스스로 정의를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녀온 뒤 생각하면서 내 안에서도 내가 하는 디자인의 구체화가 필요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디자인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 하고자 하는 바를 통해 다시 정리를 해 본다면, 삶 디자인이란 일상을 이어나가는 힘이다. 일상은 이어나간다는 것은 매우 의식적인 것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계속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구체화 하는 것. 살면서 하게 되는 다양한 경험들이 그저 경험들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멀리서 돌이켜봤을 때 어떤 연관성을 띠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일상은 내가 가진 매체를 통해 표현된다. 그리고 표현되기 때문에 나도 내 일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사소한 것들의 디자인 - 정선 - 시민문화 워크숍 - 메솟(ACTIVITY). 저 흐름 속에서 내 경험을 일상으로 끌어들여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아가고 표현하려는 과정이 어떤 연결성을 띠고 있는지 들여다보도록 애쓴 것 같다. ‘눈’이라는 주제로 시작해 내 눈과 너의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눈빛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얘기에 집중. 그러다 점점 눈을 뜨는 시도를 하면서 내 주변의 것들을 보려고 했던 것, 그리고 내가 경험하고 본 것들은 뭔지 정리 작업을 하고, 이제는 디자인이라는 매체를 통해 내 일상,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하루에 5끼를 먹는 것처럼 지극히 사소하다. 앞에서 말한 의식적인 물음과 더불어 내 일상 자체가 경험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사실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계속 어려울 것 같다. 앞에서 나의 일상의 이야기와 영역은 ‘정하면 된다.’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나는 내가 보게 되고 듣게 되는 무수히 많은 정보들을 내 눈으로 제대로 보고 싶다. 그리고 방관하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는 많은 것들을 모른 체 했었던 것 같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마음 아파하고 걱정하는 것까지는 되었지만 그 일과 사람들이 나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인식이 잘 되지 않아 실천으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성과 메솟을 다녀오고 시민문화와 프레드와 함께한 워크숍을 하고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안 뒤에는, 또 그것이 내 일상이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하겠다는 정리가 되고 난 뒤에는 그동안 그들과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모르는 척 하려 했던 것이 얼마나 내 삶에 대해 무책임했는지를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의 언어로 말하고 싶다. 앞으로 내가 인식하게 될 문제들은 다양하겠고 그것들이 모두 각자 존재하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그것들을 따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가 있게끔 한 구조를 인식해야할 것 같다. 그래야 내가 디자인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할 때, 깊은 이해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나의 선택이 일상이라는 삶의 흐름에서 ‘디자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세이를 쓰는 동안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고 오늘로 다 읽었다. 마지막에 본인이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부르게 된 부분 읽으면서 나도 ‘디자이너’에 관한 생각을 좀 했다. 내가 너무 디자이‘너’라는 단어에 묶여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에 대한 설명은 자기가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던 것, 지금까지의 고민과 경험을 통해 또 다른 디자인을 얘기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디자이너’에 대한 지금 나의 생각도 앞으로의 내 일상들을 통해 변할 수 있지 않나?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디자인 해보면서 그것에 대한 정의도 한 번 내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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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한 것 열어 놓아 보았습니다.
최종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