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스러운 동네, 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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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잡지는 9월부터 시작해 약 2개월간 탐구한 서촌을 통해 우리 주변에 어떤 삶의 형식들이 있는지, 이웃 혹은 마을과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은 작업물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발견한 것은 도시화로 인해 잃어버린 마을의 정서와 거처를 이루는 재밌는 모습들입니다. 서촌에는 밖으로 나와 뛰어노는 아이들, 팔각정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어르신들, 하굣길 학생들 등 정겨운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처를 재밌는 모양으로 이루게 만드는 다양한 문짝의 생김새, 옛날 간판이 여전히 걸려있는 가게 등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들이 이 마을이 특별하게 만드는지, 그 첫 번째 질문을 끝까지 추적해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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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村의 골목길 
           

-아이, 램프, 동녘 


골목길, 골목길. 참 익숙하고 정감있는 단어이긴 하다.  왜 이 단어는 유독 정감이 가는걸까. 아마 골목길에서 서로 얼굴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골목길하면 주민이 있고, 이웃이 있고, 동네가 있다. 또 '동네'라고 하는 말은 살고있는 집의 근처라는 단순한 사전 정의를 넘어서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결의 느낌을 준다. 골목은 깨끗하게 텅 비지 않는 법. 그곳엔 언제나 여러가지 손때 묻은 물건들과 흔적들이 있다. 단순히 '거기에 있다는 것'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았고 우리는 서촌의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서촌, 이 동네는 집들이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옹기종기 모여있다. 산 밑 언덕에 이곳의 모든 집들과 골목길들이 자리잡았다. 이곳에 오고나서 특이하다고 해야 할지 반갑다고 해야 할지, 다양하고 오래된 집들보다도 더 살피게 되었던 것은 집과 집 사이에 난 골목길들이었다. 이 곳을 돌게 된 때는 여름과 가을 사이였는데, 모퉁이를 돌 때마다 문 앞, 담벼락 앞, 골목 어귀에 놓여진 화분들과 곳곳의 화단들에서 자라는 다양한 화초들을 볼 수 있었다.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채소만 해도 고추, 배추, 부추, 깻잎과 상추 그리고 겨자채까지 밥상 위에 올라갈만한 것들도 많다. 여기 주민들은 그렇게 아기자기하게 가꾸는 화초를 자기네 집 담벼락이나 울타리 안에 모셔 놓지 않는다. 골목 어귀에, 문 옆에, 전봇대 옆, 집 앞, 정류소 등 생각할 수 있는 많은 장소에 내어놓고 가꾼다. 덕분에 골목 골목이 푸르다. 골목 어딜가나 식물들이 있어서 그게 참 좋았다. 

또 한 가지 많았던 것이 의자였다. 길 한켠에는 꼭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자들이 있었다. 물론 의자의 종류도 다양했다. 가정집 식탁 의자, 판자로 만든 박스 모양의 의자, 포장마차에 있을 법한 플라스틱 의자도 보였다. 의자들이 있었던 장소들도 마찬가지로 다양했다. 큰길 앞 인도에 있던 의자, 문을 마주 보고 있던 의자, 계단 옆 의자, 작은 가게 앞 의자, 그냥 인도에 놓여 있던 의자, 그런 의자 주변에는 즉석해서 깔고 앉으면 그때부터 그건 그냥 의자가 되는 여러가지 잡동사니들이 꼭 있었다. 의자의 주된 이용층은 할머님들이었다. 할머니가 집 앞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있으면 아는 사람과 마주치기도 하고 인사나누며 잠깐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잠깐 인사를 나누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명히 어딘가 가던 길이었는데도 어느새 눌러앉아 같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누구는 의자에 앉아있고 누구는 뒤집은 우유박스에 앉아서 말이다. 어쨌든 앉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이야기 공간이 되었다. 모두 우리가 서촌의 골목길에서 보고 듣고, 이야기하고 느낀 것이다. 

서촌의 골목길은 의자와 화분, 화단 등으로 채워져 있다. 서촌 모든 골목길마다 그런 물건들이 나와있다. 바로 이런 주민들의 흔적들로 인해 골목은 그저 단순히 집 사이에 생긴 텅 빈 공간, 오고 가는 공간으로만 남지 않는다. 서촌의 주민들은 화초를 가꾸고 의자를 가져다 놓으면서 각자 골목의 어느 부분에 손길을 남겼다. 이것을 일종의 '사적점유'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골목길이란 건 아마 원체 그런 공간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걸 서촌 주민들은 알고있는지, 그런 일들이 이미 자연스러운 건지 그 누구도 골목 한켠에 나와있는 것들을 치우라거나 사적인 공간이 되는 것에 대해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골목길이라는 공간을 사이에 두고 꾸준히 마주치기도 하고 나누기도 하는 동네 주민들은 골목길을 같이 돌보아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나, 나와있는 화초들은 너도 나도, 나름대로 애정을 가지고 가져다 그 자리에 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삶 속에는 수많은 소셜 미디어니 뭐니하는 기술들이 가득 차있다. 간단하고 편리한 소통이 가능해졌고 세상이 연결되었다고 말한다. 소통과 연결을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세계가 연결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나의 동네와 이웃들에게는 그다지 관심도 없고 어색하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피해다닐 정도다. 이렇듯 요즘 시대, 미디어도 넘쳐나면서 또 높은 아파트들이 즐비한 도시에서의 삶에서 소통의 의미는 점점 흐릿해져 간다. 그런 가운데 서촌의 골목길을 돌아다니던 우리는 집들이 위아래로 쌓여진 높은 아파트가 아닌, 작은 집들이 마주보고 있는 골목길에서 뭔가 좀 다른 소통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과연 우리는 진정한 소통의 가치를 골목에서 발견했을까? 


자의든 타의든, 서촌의 주민들은 골목길에서 이웃을 마주쳐야 한다. 골목길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주민들이 가꾸고, 돌보고, 치우지 않으면 누구도 치워주지 않는다. 골목길을 통해 주민들은 자의든 타의든 동네 주민으로 연결된다.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골목의 사람들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고, 화분과 화초를 바깥에 내놓은 사람들은 골목이라는 공간의 한부분을 어쩌다보니 가꾸고 돌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골목은 주민 누구도 점유할 수 없는 공간이자 누구나 지나다니고 같이 쓰는 동네의 공간이다.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두의 것인 셈이다. 이곳에서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발견했다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만났던 서촌의 골목길은 이웃들의 손길과 마주침이 느껴지는 사람냄새나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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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시간


-주님


Intro

내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다. 살았던 빌라는 좁았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바퀴벌레도 자주 나왔었다. 동네의 골목골목은 좁고 가팔랐다. 내가 초등학교로 들어가면서 집은 아파트로 이사했고, 그 뒤로 집 사정이 좋아질 때마다 더 넓은 집으로 옮겼다.

나는 아직도 그 빌라에 살던 시절의 기억을 자주 떠올린다. 아빠가 담배피던 베란다, 가파른 길 위에 있던 슈퍼, 엄마랑 딸기우유 사들고 갔던 목욕탕, 200원짜리 딱지, 구멍 뚫린 모기장. 이렇다 할 큰 이야기 없이 소소한 일상의 연속이었지만, 그 기억들은 겪어온 삶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더 그립게 남아있다. 나는 그 집과 그 동네의 낡고 소박한 느낌이 좋았다. 서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오래되어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는 문들은 그 때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겉은 낡았지만 그 안에서의 기억은 소박하고 따듯했기 때문에, 그런 문들을 열어보면 단촐한 저녁상이지만 정답게 밥을 먹고 있는 가족이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서촌의 문들에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가장 그리운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던 문을 시작으로 나는 다른 서촌의 문들도 좀 더 찾아보기 시작했다.


본론

서촌에는 여러 문들이 있다. 집 문, 창고 문, 화장실 문, 주차장 문, 새로 페인트칠을 한 문, 반원 모양의 문도 있고 문이 3개나 달린 집도 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얇은 문도 있고, 앞에 화분을 잔뜩 놓은 문도 있다. 네 집 내 집 다 똑같은 아파트 문이 아니라,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집마다 다른 문을 갖고 있다. 다양한 만큼 더욱 보는 재미도 있다. 



_예쁜 문 신기한 문


-볼 때마다 참 예쁘다고 생각한 문이다.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 나무문을 만들다니! 저 문 안에는 분명 감각 있는 디자이너의 작업공간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곳에서 나온 것은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용변을 끝마친 남자였다.

-저 문은 2층인데 밖에 베란다도, 계단도 없다. 낭떠러지다. 창문 위에 창살도 덧붙여 놓은 걸 보니, 죄수라도 감금했던 것일까?!

-누구 쓰라고 저렇게 얇게 만들어 놓은 걸까. 빚쟁이에게 쫓기던 사람이 숨어있던 문이었을까. ‘설마, 창고라고 생각하고 지나치겠지-’하는 생각에 만들었을까? 아 그런데 보통 빚쟁이들은 덩치 큰 형님들이라 저렇게 얇은 문으로 들어가다간 복부나 엉덩이가 낄지도 몰라. 그걸 노린 걸지도!!



_꾸며져 있는 문

사람들은 각자의 집집마다 문을 재미있게 꾸미기도 한다. 노란색으로 칠한 문도 있고 화분을 문 앞에 잔뜩 갖다놓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문을(집과 삶을)다르게 꾸민다. 아무것도 없다면 그저 ‘공간’일 뿐인 곳에, 그들만의 거처를 만들고, 꾸미고, 기억을 남기며 그들만의 삶의 ‘장소’를 만들어간다.



_작은 문

-사람처럼 살고 싶었던 개가 “누구쇼” 하면서 문 열어 줄 것 같다.

-아무리 어린이집이라지만 문 정말 작다. 정말 ‘어린아이’의 집인 것을 배려한 디자인일까. 어른들의 간섭이 싫었던 당돌한 꼬마가 설립한 ‘정말 어린이만을 위한 집’ 일지도.

-그 외에도 작은 문은 정말 많다. 서촌에 있는 작업 공간 ‘만들지’에는 내부에도 작은 문이 있다. 그 문의 정체는 화장실이다. 이런 작은 나무문은 적산가옥의 특징이다. 적산가옥은 일제시대 때 들어온, 좁은 나무 계단이 있는 낮은 일제식 가옥이다. 서촌엔 이 옛 가옥의 형태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익숙지 않아 신기하고 재밌을 작은 문들이, 서촌 안에서는 너무 많아서 굳이 신기할 것 없는 일상의 문 중 하나이다.




outro

서촌의 문이 다양해질 수 있었던 건 이곳이 커다란 변화 없이 세월을 자연스레 따라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의 흐름이 녹아있는 서촌의 모습이 사람들로 하여금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서촌에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그리워하거나, 잊어버리고 있었거나, 돌아가고 싶은 지난 시간의 모습이 서촌 안에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문은 마치 서촌에 사는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대신해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서촌의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사람이 서촌이라는 장소를 거쳐 갔다. 문의 다양함은 ‘공간’을 기억과 의미가 있는 ‘장소’로 만들어 나가는 서촌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의 이야기만큼이나 다양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다양한 문들을 보며 옛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재밌는 상상도 할 수 있었다. 시간의 두께로 인한 다양함은 사람들이 그리움을 느끼게 하기도, 즐겁게 만들기도 하며 그곳으로 사람을 이끄는 힘을 가진다. 그것이 서촌의 큰 특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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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


-무브


Intro

이번 프로젝트 초기에 마음의 고향을 떠올려 이미지화해서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당시 내게 떠올랐던 키워드는 '거처'다. 나에게도 머무르고 싶은 장소, 지키고 싶은 곳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누구도 머무르지 않음으로써 폐허가 되어버렸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이웃의 정과 공간에 대한 애착을 찾아볼 수 없다. 개인적인 공간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는 동네고 공유하는 문화가 하나도 없다 보니 서로 접촉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나는 서촌이 대단하게 격이 다른 마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촌에 오가면서 자주 눈에 띄는 것은 주민들과 작업자들이 맺는 관계다. 공방에 오가며 소식을 주고받고 물건을 나누고 차를 대접하는 모습을 보면 '이웃이 있는 마을'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 마을의 작업자들과 주민들은 서로에게 쌀쌀맞지 않고 둥글게 잘 지내는 것 같다. 

 

작업자들의 집합지를 생각하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곳은 홍대다. 내 생각에 지금의 홍대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다보니 점차 소비의 거리, 유흥가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서촌도 작업자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은데 이들에게는 이 마을에 같이 산다는 말이 어울리는 듯하다.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곳으로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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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사진)

서촌 거리의 가게는 대부분 땅딸막하다. 작은 사무실쯤 되는 주유소, 옷가게, 나무공방, 중국집, 친환경 물품 판매점, 비디오 대여점, 예쁜 카페, 구멍가게, 신문사, 아주 오래된 서점 등. 마치 이 거리는 대형 마트의 카테고리를 옆으로 뉘어놓은 느낌이었다.

그 사이에 간판 없는 가게가 눈에 띈다. 그 안에는 창호지가 덕지덕지 남은 낡은 문, 물고기 그물 같은 커튼, 벽면에 붙은 계란반. 범상치 않은 공간인 듯하다.

 

(***만들지 스케치 사진)

 

이곳은 [만 들 지]다.

만들지는 '생각한 것을 현실화하자, 상상한 것을 종이라는 세상에 풀어보자, 무엇이든 만들어보는 나만의 세상'이라고 한다.이곳은 재료부터 결과물까지 자연과 연관되어 있는 것들을 이용해 디자인을 작업하는 공간이다. 갈피표, 손수건지갑 등을 수제로 만들고 접시에 수채화를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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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사진)

['만들지' 자연디자이너 이유정]

 

(***작업물 사진들)

-만들지의 작업물은 한국의 야생화를 그린 책갈피와 휴지의 일회성과 방수가 되지 않는 손수건의 결함을 보완한 손수건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어요. 그 밖에도 하고 있는 다른 작업은 서촌의 파편과 재료들을 이용해서 문을 만들고 있어요. 저기 보이는 문들도 버려진 틀이었는데 다시 재활용 한 것이죠.

 

 

-원래는 홍대에 작업실이 있었어요. 저를 비롯한 친구들과 같이 작업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홍대의 대부분의 공간이 유흥가로 바뀌면서 정이 떨어졌어요. 그렇게 다른 작업공간을 찾고 있었는데, 수소문 끝에 서촌을 알게 된 거죠.

 

서촌에는 이곳저곳 젊은이들이 많다. 주로는 카페, 개인 작업실이 가장 많았는데 대부분 열린 공간이었다. 소문으로는 마을주민들이 카페에 가서 신 메뉴를 제안하시기까지도 한다던데?

(***할아버지 사진)

중절모와 신사복을 차려입은 멋쟁이 할아버지가 들어오셨다. 한 손에는 깨진 컵, 한 손에는 우편물을 들고 계셨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보니 서로 가까운 사이신 듯 보였다. 그 두 개를 이유정 디자이너에게 건네고는 밖으로 나가셨다.

 

-이쪽 마을 분들이요? 오지랖들이 아주 넓으시죠! 제 작업실은 개인 작업공간이기도 하지만 일종에 마을사람들이 드나드는 사랑방이기도 해요. 보셨듯이 깨진 컵이나 망가진 것들을 많이 갖다 주시는데요.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물건들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만들지 제 역할이에요.

 

 

-서촌은 작업하기 굉장히 좋은 공간이에요. 굉장히 재미있지요. 앞서 말하신 것과 같이 건축도 다양하고, 흐르는 문화들도 다양해요. 조용히 작업하기도 좋은 공간이구요. 이 마을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요. 혹시 '백년골목'이라고 아세요? 뒤쪽 길에 가면 백 년 전의 모습을 유지해오고 있는 골목이 있어요. 오랜 시간동안 지켜져 온 것은 건축물이나 어떤 물질들이 아니고, 삶의 형식이 많이 바뀌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옆에는 자신의 집 앞에 꽃을 매일 가꾸는 주민의 집이 있어요. 이렇듯 이 마을 사이에서는 주민들끼리만 아는 재미있는 비밀들이 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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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골목을 조명하는 사진들)

-백년골목

이곳이 바로 백년골목. 기대에 부풀어 100년이나 된 골목은 얼마나 옛 되었는지 새삼스레 했던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구석구석 보수된 낡은 집들과 얼마 되지 않은 새 한옥이 나란히 있는게 조금 특별해 보인다. 그 외에는 어느 동네에도 있을법한 풍경이다. 별 특징이 없음에도 이곳이 100년 골목이라 부르는 것은 이곳의 모습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같이 흘러왔기 때문이다.

 

(***백년골목을 조명하는 사진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의 세월도, 장소의 세월도 흐른다. 흐른다는 것은 ‘일정한 모습으로 영원히’가 아니라 흐르는 모양대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을 말한다. 서촌이 바로 그렇다. 서촌은 낡다고 버리지 않고 고치고 오랫동안 쓰는 옛 사람들의 정서가 여전히 존재하는 골목길이었다. 백년 골목뿐만 아니라 서촌이란 곳 전체는 시간을 따라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쳐 왔기 때문에 갑작스럽고 성급한 변화가 아닌, 자연스러운 변화를 거쳐 왔다는 것이다. 백년골목은 마치 과거와 현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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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찾은 핸드메이드 천연 화장품과 비누 가게 RIZ Soap 리즈솝. 이곳은 숯, 녹차, 커피 등 천연 재료 100%로 만든 핸드메이드 천연 화장품과 비누, 향초를 판매 및 제작워크숍을 진행한다. 몇 차례 서촌 골목길을 거닐다가 이 가게를 보면서 ‘아, 방향제 하나 사두면 요긴하게 잘 쓰겠군.’이라 생각했다. 때마침 이야기도 나눌 겸 찾았더니 문이 잠겨있었다. 외출 중 팻말에 적힌 번호로 연락을 드렸더니 금세 오셔서 일이 많이 있으신 듯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었다.

 

[***리즈솝RIZSOAP 변미숙 대표님]

Q.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 금속공예공방 'Helena'에 방문했었어요. 그분이 너무 바쁘셔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 했지만 이쪽을 추천해주시면서 '문화놀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면 좋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문화놀이터는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 마을에서 재미있게, 잘 지내보자'라고 할 수 있죠.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실행에 옮기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던 사이에 찾은 대안은 마을 사람이 누가 있는지 찾는 거였죠. 주변을 둘러보니 이 지역에는 작가들도 많이 살고, 공방들도 많고, 자기 작업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뭔가를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아울러 우리는 자기 작업을 하지 않는 주민들도 작업자로 생각해요. 집에서 혼자 무언가를 만들면 똑같이 작업의 일환이 되는 거고 작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죠.

 

Q. 이 프로젝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호의적인가요?

네. 아직까지는 좋으신 것 같아요. 여기를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것에는 호의적인 것 같아요. 우리는 작업을 하는 작가그룹은 아니고, 그걸 지향하지도 않고요. 저희는 우리가 열심히 한 것을 선보이듯이 와서 보고 구경하라는 의미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는 않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다보니 마을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해서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또 우리 스스로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다보니까 일치점이 생기더라고요.

 

Q. 이 마을이 좋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주민들의 관심은 많지만 간섭이 심하지 않고, 무심한 척 하지만 항상 주시한다는 점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작업하기에도 좋고요. 때문에 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거죠.

 

Q. 이 마을의 작업자들은 마을을 정말 아끼시는 것 같아요. 이 마을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작업자들의 역할이 무엇일까요?

현재 이 마을의 이름이 '세종마을'로 바뀌었어요. 이 지역은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아요. 서촌이 갑자기 세종마을로 바뀌는 것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생각이 드는 거죠. 그리고 여전히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촌’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서촌에 오는 거지, 세종마을에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이렇게 서촌으로 불리는데 작업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문화작업을 벌이고, 서촌이 계속 서촌으로 불리게 될 명분을 제공하는 역할이 바로 우리들의 일이 아닐까요?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이 프로젝트를 계속 하는 이유는 이곳이 정말로 우리가 바라는 동네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설령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좋아서 하기 때문에 계속 이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있는 거죠. 대체로 프로젝트를 돈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래 못가요. 그리고 우리 같이 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자발성 없이는 오랫동안 지속하기 어렵지요. 그래서 저희는 주민과의 소소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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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촌을 통해 발견한 것은 Hardware Software, 공간과 삶의 방식이다.

마음의 고향을 현실화하는 것은 조건이 갖추어진 자신만의 완벽한 고향으로 '돌아가는'것이 아니라 어떤 공간의 주민들과 '함께' 가꾸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현 시대에 개발로 인한 이웃과 고향이 뿔뿔이 흩어진 가운데 옛 향수가 그립다면 그 기억을 함께 나누고, 또 다른 기억이 되어가는 그런 공간들이 필요한 것 같다. 자기가 사는 마을이 또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이 되어 찾을 수 있는 곳이 된다면, 어디에서든지 자신들의 마땅히 머물러도 좋을 거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유정 디자이너 블로그 : blog.daum.net/mandleji )